
인터뷰를 위해 서울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에서 만난 윤 대표는 사무실에 들어서자 공간을 스캔했다. 그리고 “휴식 공간과 업무 공간을 잘 갖췄다”며 “아이 공부하라고 책상만 잘 꾸며주고 휴식 공간에는 소홀한 엄마들도 있는데, 잘 쉬어야 오히려 집중도 잘 된다”라고 말을 꺼냈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 좁고 답답한 집도 나만의 에너지 충전소가 될 수 있다.
마음은 미니멀라이프, 현실은 맥시멀라이프일 때
책을 읽다 보니 공간 컨설팅이 인생 상담 같은 느낌이었어요. 공간 정리를 넘어 공간 심리 분야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어느 날 주거 환경을 개선해주는 봉사활동을 하게 됐어요. 봉사하면서 본 집들이 정말 충격이었어요. 장애가 있는 한 어르신은 이부자리를 치웠더니 벌레들이 쏟아져 나왔어요. 그런데도 그분이 처음에는 정리를 거부했어요. 자기 집을 오픈한다는 게 벌거벗은 느낌이잖아요. 설득해서 정리하고 나오는데 저를 안고 우셨어요. 공간만 바뀌었을 뿐인데 태도가 변하고 마음의 상처가 회복되는 모습들을 보면서 보람되고 호기심이 생겼어요. ‘공간이 우리 마음과 연결되어 있구나’ 알게 되면서 공간 심리로 접근해 회사 이름도 짓고 학교에서 공부도 하게 된 거예요. 그런데 진짜 상담할 때 별별 얘기를 다 하세요. 집이란 공간은 자신의 마음이 투영된 곳이니까요. 대부분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해요.
일반 인테리어 상담과 공간 심리 상담은 어떤 점이 다른가요.
공간을 어떤 목적에 따라 물건을 비우고 가구를 배치하는 건 똑같아요. 다만 의뢰인의 마음 상태를 알면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치매 할머니와 아이가 있는 집은 두 사람의 공간을 분리해줘야 해요. 할머니는 할머니대로 TV도 크게 틀고 보면서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아이는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사적인 공간으로 만들어줘야죠. 그냥 단순히 아이방, 할머니 방으로 정리해주는 것과 그 집의 사연을 듣고 심리적 접근을 하는 건 다른 결과가 나와요.

윤주희 대표 집은 채광이 좋고 가장 큰 안방이 아이들 방이고, 수면에 초점을 둔 부부의 방은 작고 어두운 편이다. 또 각자의 방 외에도 거실과 베란다에 저마다의 케렌시아를 만들어놓았다.
특히 자립준비청년들의 집을 바꿔줄 때가 보람 있어요. 그 아이들은 보육원이나 단체 시설에서 지냈기 때문에 자신의 집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어요. 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전등이 나가도 그대로 깜깜하게 살아요. 특히 심리적으로 창과 마음은 닮았는데, 창문을 열지 않아요. 들어가면 곰팡이가 어마어마해요. 그런 아이들 집에 가서 정리해주고 밥을 차려주면 그 아이한테는 그게 아늑한 집에 대한 첫 경험이에요. 한번 경험하면 그 감정을 유지하고 싶어 해요. 이건 누구나 그래요. 치우기까지가 힘들지, 한번 쾌적함을 맛보면 ‘내가 그동안 쓰레기 집에 살았구나’ 알게 돼요. 물건이 쌓이면 마음이 짓눌려요.
미니멀라이프를 위해 어디서부터 손을 대면 좋을까요.
공간을 바꾸고 싶다면 그 첫걸음은 비움이에요. 비워야 공간이 있고, 자기가 좋아하는 색과 필요한 오브제를 놓을 수 있어요. 비우지 않고는 모든 게 이뤄질 수 없어요. 다만 저는 미니멀라이프를 아주 추구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무조건 텅 비워내는 게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집에 들어와 소파에 눕고 싶을 때 막상 없으면 불편하지 않겠어요. 물건이 10개가 필요하면 10개 다 있어야 해요. 대신 깔끔하게, 사용하기 편하게 제자리에 있어야겠죠. 어디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 10개를 가지고 있으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집에 물건이 많을 때는 필요한 걸 남기는 작업부터 먼저 해야 나머지 불필요한 걸 수월하게 정리할 수 있어요.
아이를 키우는 집은 특히 더 난장판이 되기 일쑤인데요.
대부분 연령대에 맞지 않는 물건을 혹시나 필요할까 싶어서 갖고 있어요. 더 큰 문제는 아이들 물건이 거실부터 안방, 부엌까지 다 침범해버리는 거고요. 그러면 부모가 쉴 곳이 없어져요. 어느 공간만큼은 부부의 자리로 정해놓고 아이들 물건이 쌓이지 않도록 경계해야 해요. 산후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을 보면, 육아가 힘드니까 우울증이 오고 그것 때문에 물건을 못 치워 집이 지저분하니 또 스트레스가 쌓이는 악순환이 반복돼요. 임신 초기부터 아이 물건은 어디에만 두고 자기 공간을 지키겠다고 정해두면 좋아요.
그러면 아이들 공간이 좁고 답답하지 않을까요.
간혹 아이 물건이 거실에 너무 없고 장난감을 자유롭게 꺼내 놀지 못하면 창의성 발달에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놀 때는 레고 같은 장난감을 펼쳐놓고 자유롭게 놀다가 원래 있던 자리에 정리하는 습관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자기 주도적인 아이로 자라게 도와주거든요. 그러려면 부모가 먼저 각종 물건의 제자리를 만들고 아이에게 알려줘야 해요. 이걸 안 해놓고 아이에게 정리하라고 하면 아이가 잘 못 하죠.

“집 어디든 나만의 의자 두고 10분만 머물러보세요”
윤주희 대표는 더 나은 삶을 위한 공간 리셋의 원칙으로 4가지를 강조한다. 비움, 공간의 목적 정하기, 공간에 자연의 요소와 컬러 더하기, 가구 재배치하기다. 그러나 대개 귀찮거나 용기를 내지 못해 처음 이사 온 상태 그대로 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소파와 TV를 마주 보게 해놓은 거실 구조에서 소파를 L 자형으로 배치하거나 소파끼리 마주 보도록 변화시키고, 조명을 바꿔 어두운 공간을 밝혀주는 것만으로도 집 안 분위기가 달라지고 삶의 질이 개선된다. 특히 윤주희 대표는 집에 자기만의 ‘케렌시아’를 만들라고 제안했다. 스페인 투우에서 유래된 단어인 케렌시아(querencia·경기장에서 소가 잠시 쉬는 장소)는 몸과 마음이 회복되는 나만의 공간, 심리적 피난처를 뜻한다. 그런 공간을 만들어두면 굳이 캠핑장, 카페, 공방 등으로 떠나지 않고 그곳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충전된다.집에 있어도 집에 가고 싶을 때가 있어요. 가장 편안해야 할 곳이 제 역할을 못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의외로 제대로 앉아서 밥 먹을 공간, 쉴 곳이 없는 집이 진짜 많아요. 대개 하루의 끝을 집에서 보내잖아요. 집에 들어가면서 ‘옷 벗고 무얼 먹고 어디에서 뭘 해야겠다’는 안정감, 그 행위 리추얼이 반복되면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어요. 그런데 ‘집에 쉴 곳은커녕 누울 곳도 없네’란 생각이 들면 이미 집이 아니죠. 당장 애써서 공간을 바꾸지 않아도 괜찮아요. 공간을 다시 바라보는 일만으로도 변화가 시작돼요. 제 책 중에 ‘오늘부터 그 자리에 의자를 두기로 했다’가 있어요. 힐링 스폿이란 목적을 정해 어디에 의자를 두려는 시도만으로도 스스로 삶을 조금 더 명확하게 살아보겠다는 의지를 다지게 되는 거예요. 특히 창가 같은 경계의 자리는 내면의 정리를 도와요.
아파트에 살면 창밖으로 또 다른 아파트가 보이는 경우가 허다한데, 이런 뷰가 좋지 않은 집은 어떡하죠.
창밖 뷰가 중요한 게 아니라 창밖으로 보이는 정도가 중요해요. 창가에 물건을 쌓아 창문이 아예 안 보이게 해놓고 사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실내에 물건을 둘 공간이 없어 베란다에 쌓아놓는 거죠. 앞서도 얘기했지만 창이 중요해요. 자연이 보이면 플러스알파겠지만, 창문을 열어 환기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감정의 호흡을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만약 뷰가 좋지 않다면 실내에 화초를 두거나 실물처럼 느껴지는 이미지 액자를 걸어 자연을 집으로 들이세요. 예전에 우울증이 심한 아이의 방에 실사 이미지 액자를 걸어주고 의도적으로 계속 보게 했는데, 나중에 심리 검사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어요.
실사 이미지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요.
가장 좋은 건 숲, 나무 같은 녹색 자연 사진이에요. 하버드대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제안한 ‘바이오필리아’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자연 속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느낍니다. 구름, 나무, 강 등에서 발견되는 무한히 반복되는 프랙털 패턴도 인테리어에 적용하면 그 공간이 더 편안하게 느껴져요. 공간 심리란 게 이런 부분이에요. 자기가 어떤 공간을 좋아하면 그건 다 이유가 있어요. 다른 사람 방해 없이 휴식하고 싶으면 카페에 가서 구석에 앉잖아요. 공간에 심리와 자기 취향이 반영되기 때문이에요. 이를 반대로 목적에 맞게 활용한다면, 소통을 잘하고 싶은 집은 식탁을 둥근 모양으로 바꾸거나 원형 배치를 하면 서로의 눈을 보며 대화할 수 있어요.
그런데 대부분 집에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어요. 일단 공간을 목적별로 구분해 쓰기보다 아이방, 안방, 거실 식으로 나눠 방 하나에 침대와 책상을 다 두지 않나요.
아무래도 제일 큰 안방을 부부가 쓰고 나머지 작은방들을 아이들 각자에게 주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방 크기와 상관없이 목적에 맞게 나눠야 해요. 예를 들어 퇴근 시간이 늦고 방에서 지내는 시간이 아이보다 적은 부모라면 작은 방을 써야죠. 또 아이 학습 공간을 집에서 해가 가장 잘 들어오는 방으로 해줘야 해요. 그럼에도 많은 부모는 아이가 집중해야 한다며 사방이 막힌 도서관 책상을 들이고 암막 커튼을 다는 실수를 해요. 그런 빛이 안 들어오는 꽉 막힌 환경은 심리적인 압박을 주고 공부에 도움이 안 됩니다. 오히려 침실을 해가 안 들어오는 곳으로 정해야 잠이 더 잘 와서 좋아요.
그럼 집중이 잘되게 하려면 방을 어떻게 꾸며야 하나요.
요즘 ‘데스크테리어’가 유행이죠. 일단 작업을 해야 할 책상 위는 무조건 비워놔야 해요. 모든 물건을 책상 밑 서랍으로 내려보내고 책상 위에는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오브제 정도만 남겨놓으세요. 아이가 공부 잘되는 방을 만들어주고 싶으면 방을 2가지 영역으로 나눠주는 게 좋아요. 한쪽은 공부하는 스폿으로, 다른 쪽은 침대 옆에 가구나 파티션을 둬 방문을 열면 직통으로 보이지 않도록 아이만의 공간을 꾸며주세요. 무엇보다 효능을 끌어올리려면 쉴 때 잘 쉬어야 해요. 저는 침구에 신경 쓰라는 조언을 많이 합니다.
집에서 대표님의 케렌시아는 어디이며, 그곳에서 주로 뭘 하세요.
햇살이 많이 들어오는 거실의 한쪽에 제가 좋아하는 의자를 뒀어요. 원래 집에 앉아 있을 시간이 없게 바빴는데, 머리를 비우지 않으면 안 되겠단 느낌이 들더라고요. 최근에 저도 집 정리를 새로 했어요. 그리고 일부러 시간을 내 햇살 들어오는 때에 맞춰 그 의자에 앉아 멍을 때려요. 그게 제 케렌시아예요.
케렌시아는 어떻게 만들면 더 좋나요.
크지 않아도 돼요. 마음이 편해지는 곳을 찾아 잡다한 물건은 치우고 나에게 필요한 것만 남기세요. 저는 주부들이 집에서 자기 공간은 주방이라고 할 때 안타까워요. 주방은 노동의 공간이지, 쉬는 곳은 아니잖아요. 물론 주방이더라도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고 카페처럼 앉아 쉴 곳이면 괜찮아요. 좋아하는 책, 여행 기념품 같은 나만의 이야기가 담긴 물건과 포근한 쿠션, 러그의 촉감이 더해진다면 금상첨화고요. 코로나19 이후 집을 다용도로 쓰기 위해 공간을 쪼개고, 그러다 보니 짐도 늘어난 집이 많아요. 어디든 나만의 힐링 스폿을 꼭 만들면 좋겠어요. 그런 작은 시도가 어려운 분들을 위해 요즘 특강도 다니고, 취약계층 주거환경개선 프로젝트도 시작했어요. 커튼 한번 안 열고 살고 있다면, 지금 창부터 열어보세요.
#공간심리 #인테리어 #여성동아
사진 조영철 기자 사진제공 윤주희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