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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왜 지금, 다시 가죽재킷일까!

안미은 프리랜서 기자

2026. 02. 06

2026 S/S 시즌 런웨이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묵직한 가죽 재킷의 등장은 지금 우리가 옷에 기대하는 역할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더할 나위 없이 냉소적인 시대를 살고 있는 요즘, 세상은 차갑고 무정하며 불안과 긴장이 일상처럼 스며든다. 이런 현실 앞에 옷은 더 이상 단순한 멋내기용 소품에 그치지 않는다. 외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스스로를 단단히 여밀 수 있는 일종의 방어 장치로 기능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부드럽고 친절한 옷이 아니라, 충격과 마찰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을 단단한 갑옷이 아닐까. 이번 S/S 시즌 가죽 재킷이 가장 설득력 있는 아우터로 부상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가죽 재킷은 태생부터 보호에 가까운 옷이다. 제1차세계대전 당시 미 공군 비행사들이 방한복으로 착용했던 플라이트 재킷이 그 시작이다. 가죽은 고도의 혹독한 추위와 바람을 막아주는 실질적인 보호막이었고 동시에 강인함과 영웅성의 상징이었다. 가죽 재킷은 전쟁이 끝난 뒤 거리로 흘러들어 다양한 문화를 덧입으며 대중 사이에 전파됐다. 1950년대 무수한 바이커와 로커, 제임스 딘이나 말론 브란도 같은 영화 속 아이콘들이 가죽 재킷을 입고 등장하며 반항과 자유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젊은 세대의 저항 정신과 함께 성장해온 이 옷은 하위문화부터 오트쿠튀르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시대적 감정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상징적인 아이템이 됐다. 혼란스러운 사회와 정치적 기류 속에서 가죽 재킷이 다시 주목받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심리적 갑옷으로 자리매김

2026 S/S 시즌 컬렉션을 살펴보면 이 흐름은 더욱 명확해진다. 봄여름 시즌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런웨이에 가죽 재킷이 대거 쏟아져 나왔기 때문. 이는 트렌드를 넘어 견고하고 묵직한 외피로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집단적 심리가 패션에 반영된 결과에 가깝다. 특히 다수의 패션 하우스는 남성적인 라이더 재킷과 여성적인 스커트 조합을 전면에 내세우며 날 선 긴장감을 보여줬다. 예컨대 1970~80년대 프랑스 밤 거리를 배경으로 시작된 생로랑 컬렉션은 전통적인 푸시 보 블라우스에 각 잡힌 어깨선의 가죽 재킷과 타이트한 스커트 셋업을 매치해 관능적이면서도 위태로운 장면을 연출했다. 베르사체 역시 깃을 바짝 세운 멋들어진 가죽 재킷과 스커트 차림으로 무대를 가로지르며 강인한 여성상을 드러냈고, 알렉산더맥퀸은 짙은 와인빛 크롭트 라이더 재킷과 로라이즈 스커트의 대담한 조합으로 남성성과 퇴폐미가 공존하는 색다른 신을 만들어냈다. 

보다 클래식한 접근도 눈에 띄었다. 가죽 재킷을 테일러드 팬츠나 슬랙스와 함께 스타일링해 마치 현대식 파워 슈트를 보는 듯한 인상을 남긴 것이다. 셀린이 이를 단적으로 드러냈다. 컬렉션 곳곳에 1980년대 패션 거장 클로드 몬타나의 파워 드레싱을 연상시키는 가죽 아우터웨어를 배치해 가죽 재킷 특유의 묵직함을 테일러링 안에 녹여냈다. 그 결과 도시적이면서도 시크한 파리지앵 분위기를 완성했다. 보테가베네타는 장인정신이 깃든 가죽 재킷과 여유로운 실루엣의 가죽 팬츠를 매치해 절제된 럭셔리의 기준을 제시했고, 발렌시아가와 알투자라는 테일러드 팬츠 룩에 블랙 가죽 재킷을 얹어 가죽 고유의 거침과 세련됨의 양면성을 동시에 드러냈다. 

한편 가죽 재킷을 보디슈트나 최소한의 이너웨어와 결합한 급진적인 연출도 등장했다. 무게감 있는 소재와 가벼운 신체 노출의 대비가 극대화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대표적으로 로에베는 새 디자이너 듀오, 잭 맥콜로와 라자로 에르난데스의 데뷔 시즌답게 에너지 넘치는 스포츠 무드를 내세웠고, 오프닝 룩으로 스쿠버다이빙 슈트를 연상시키는 매끈한 몰드 가죽 재킷을 선보이며 특유의 재치를 드러냈다. 가볍고 경쾌한 보디슈트와 어우러진 색색의 가죽 재킷은 거친 풍파를 막아줄 안전한 보호막처럼 느껴졌다. 지방시는 한층 더 파워풀한 장면을 연출했다. 지퍼 장식의 와이드 칼라 가죽 재킷에 클리비지 라인의 보디슈트를 착용해 여성성과 남성성, 부드러움과 거침의 충돌을 의도적으로 부각했다. 클래식에 뿌리를 둔 에르메스마저 대담한 노출을 택했다. 스포츠 브라톱과 쇼츠, 롱부츠 위에 견장 디테일이 돋보이는 캐러멜 컬러 가죽 코트를 더해 하우스 전통 유산에 젊고 관능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알라이아는 아예 보디슈트와 가죽 재킷을 결합한 구조적인 실루엣을 통해 가죽 재킷의 조형적 한계를 시험했다. 



이처럼 패션 하우스들은 가죽 재킷을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심리적 갑옷으로 제시한다. 거칠고 단단한 외피, 각을 세운 실루엣, 쉽게 타협하지 않는 인상. 역사 속 전쟁터와 반항의 거리를 지나 2020년대 런웨이를 질주하고 있는 가죽 재킷은 이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외투가 됐다. 시대가 우리에게 불확실성과 위험을 강요한다면, 그에 맞서는 대응이 필요하다. 이번 시즌 가죽 재킷만큼 흔들리지 않는 선택지는 드물다. 

#가죽재킷 #가죽패션 #여성동아

기획 강현숙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제공 베르사체 알라이아 알렉산더맥퀸 알투자라 지방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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