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ISSUE

AS 시급한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

전혜빈 기자

2024. 10. 24

서울시가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을 진행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인 8월부터 교육비 미지급과 업무 범위 모호성 등을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시범사업 시행 후 2명의 외국인 가사관리사가 숙소에서 무단이탈하는 일도 발생했다. 

8월 6일 외국인 가사관리사들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8월 6일 외국인 가사관리사들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8월 6일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을 위해 외국인 가사도우미 100명이 한국에 입국했다. 이들은 한 달여간 교육을 받고 9월 3일부터 신청 가정으로 출근했다. 출근한 지 2주가 채 지나지 않은 9월 15일, 가사관리사 2명이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숙소를 이탈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

법무부 부산출입국외국인청 이민특수조사대는 10월 4일 무단으로 이탈한 외국인 가사관리사 2명을 부산 연제구에서 경찰과 합동으로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무단이탈한 가사관리사 2명은 숙박업소에 불법 취업해 청소 업무를 하고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이 불법 체류자가 될 위험까지 감수하고 무단이탈한 이유는 뭘까.

과로에 통금 시간까지

필리핀 정부는 그 이유를 과도한 업무량이라고 밝혔다. 베르나르 올라리아 필리핀 이주노동부(DMW) 차관은 10월 9일(현지 시간) 필리핀 지엠에이(GMA)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근무지를 이탈한 필리핀 가사관리사 2명이 과로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9월 24일 서울시가 연 긴급 간담회에서도 업무 과중에 대한 호소가 나왔다. 필리핀 가사관리사 자스민 에리카는 “하루 8시간을 한 가정에서 일하지 못하고 세 가정까지 쪼개서 일하다 보니 이동이 부담되고 공원이나 지하철역에서 식사를 때우고 있다”고 말했다.

숙소 통금 시간도 문제가 됐다. 그동안 시범사업 참여 업체들은 매일 오후 10시, 인원 확인 절차를 통해 가사관리사들의 복귀 여부를 확인했다. 긴급 간담회에서 필리핀 가사관리사 조안은 “일이 끝나면 대부분 오후 9시인데 우리에게 허용된 자유 시간은 1시간뿐”이라며 “숙소 통금 시간은 여유 시간을 쓸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10월 2일 서울시는 고용노동부, 서비스 제공 기관과 대책 회의를 열고 개선안을 마련했다. 개선안에는 이동 거리·시간 최소화 배치, 오후 10시 귀가 확인 폐지, 시범사업 종료 후 심사를 거쳐 체류 기간 연장(3년 이내) 추진, 체류 관리 특별 교육 등이 포함됐다. 가사관리사들에 대한 전반적인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비용 문제 해결 ‘막막’

서울시는 처우 개선에 애쓰고 있지만 고질적인 비용 문제가 남았다. 이번 시범사업은 돌봄 인력 감소와 고령화 문제의 해결책으로 외국 인력을 활용할 것을 서울시가 제안하고 고용노동부가 협업해 추진했다. 여기에 저렴한 인건비로 돌봄 비용을 줄이려는 취지가 더해졌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2022년 9월 27일 페이스북에서 “오늘 국무회의에 참석해 ‘외국인 육아 도우미’ 정책을 제안했다”며 “싱가포르의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월 38만~76만 원 수준이다. 앞으로 출범할 범정부 TF에서 비중 있게 논의해주실 것도 건의드렸다”고 밝혔다. 애초에 오세훈 시장은 홍콩, 싱가포르를 모델로 삼아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되 ‘입주형’으로 가사관리사를 고용하는 방식을 추진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에서 최저임금에 예외를 둘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 도입 취지를 지키지 못했다. 국제노동기구 협약 비준국인 우리나라는 최저임금에 외국인 차별을 두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월~금요일 하루 8시간 기준 월 이용 금액은 약 238만 원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재 여성가족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공공 돌봄 사업의 경우 시간당 1만5110원인 반면 해당 사업은 최저 시급에 4대보험을 더해 1만3700원으로 책정돼 공공 부분보다 저렴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만 6세 아이를 키우는 정 모 씨는 “소통이 한국인처럼 원활하지 않은 외국인 가사관리사에게 200만 원 이상을 주고 고용하고 싶지는 않다”고 밝혔다. 정지윤 명지대 산업대학원 전공주임교수는 “싱가포르와 홍콩의 낮은 가격에 비해 월 200만 원이 넘는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돌봄 서비스를 국민이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높은 비용에 대한 해결책으로 서울시는 입주형 모델을 도입하겠다는 입장이다. 오세훈 시장은 10월 15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홍콩과 싱가포르처럼 입주형을 혼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며 “고용노동부와 의논이 되는 대로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가사관리사 사업이 입주형으로 도입되면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개인 가정이 직접 고용하게 된다.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고용한 가정은 급여 외에도 식사와 주거, 의료비, 항공비 등을 제공해야 한다.

따라서 최저임금이 적용되는 현재의 방식과 입주형 모두 높은 비용을 수요자가 감당해야 할 확률이 높다.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입주형 모델로 도입하더라도 부대 비용을 가정이 부담하는 것을 고려하면 결국 수요자는 최저임금 수준만큼의 비용을 감당할 확률이 높다”며 “외국인 가사관리사에 대한 수요와 비용을 제대로 조사하고 시범사업을 재정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윤정 분당서울대병원 연구협력교수는 “소득분위별 적합한 보조금 지급을 통해서 중저소득층도 보편적으로 해당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면 실효성이 있는 저출생 대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서비스가 아닌, 사람이 오는 것”

10월 15일 국정감사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관련 질의를 받고 있다(왼쪽). 9월 24일 서울 강남구에서 열린 긴급 기자간담회에 외국인 가사관리사가 참석했다.

10월 15일 국정감사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관련 질의를 받고 있다(왼쪽). 9월 24일 서울 강남구에서 열린 긴급 기자간담회에 외국인 가사관리사가 참석했다.

한편 서비스 공급자인 외국인 가사관리사의 입장에서는 임금이 충분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외국인 가사관리사는 최소 150만 원의 월급으로 서울 생활을 감당해야 한다. 계약서상 보장된 최소 근무 시간이 주 30시간이기 때문이다. 외국인 가사관리사가 머물 공동 숙소는 지하철 역삼역 도보 5분 거리에 있다. 이들은 월 40만 원대의 숙소비를 자비로 감당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물가가 가장 높은 서울의 중심부에서 식비, 교통비 등 생활비도 자력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주노동자평등연대는 외국인 가사관리사가 감당해야 하는 높은 생활비를 우려하며 8월 7일 성명을 냈다. 이주노동자평등연대는 “애초에 강남 3구를 시범사업 지역으로 선정할 때부터 예상되는 문제였다”며 “좁은 공간에 값비싼 비용을 노동자들이 감당하는 것은 무리”라고 했다. 또 “최저임금으로 주 30시간 일한다고 할 때, 150만 원을 받아서 숙소비, 식비, 교통비, 사회보험료를 부담하면 손에 쥐는 건 60만~70만 원밖에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유재언 가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번 시범사업으로 유입되었다가 더 높은 임금을 주는 다른 한국의 일자리로 옮겨가는 경우를 대비한 방지책이 필요하다”며 “높은 수준의 돌봄 서비스를 받으려면 돌봄 분야 종사자들에게 적절한 처우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필리핀 가사관리사의 수요가 가장 높다”며 “한국에서 외국인 가사관리사 2명이 과로 때문에 무단이탈한 상황에서 실질적 임금도 높지 않다면 더 이상의 가사관리사 유입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근본적으로 서비스 그 자체가 아닌, 사람이 들어온다는 관점에서 외국인 가사관리사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가사관리사 #필리핀가사관리사 #저출생대책 #아이돌봄

사진 뉴스1 뉴시스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