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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근 부영 회장의 착한 서프라이즈

김명희 기자

2024. 03. 25

고향 마을 주민과 초등학교 동창생들에게 1억 원씩 나눠줘 화제가 됐던 이중근 회장이 이번에는 직원 출산장려금 지원에 나섰다. 이 회장의 착한 서프라이즈에 담긴 속뜻은 무엇일까.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앞줄 가운데)이 2023년 1월생 쌍둥이를 둔 직원 가족에게 출산장려금 2억 원을 지급하면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앞줄 가운데)이 2023년 1월생 쌍둥이를 둔 직원 가족에게 출산장려금 2억 원을 지급하면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부영의 ‘사랑으로(아파트 브랜드명)’가 찐이었네요.” “나라가 할 일을 부영이 하네요.” “부영 공채 언제 뜨나요?”

부영그룹이 지난 2월 5일 시무식에서 직원들에게 출산장려금을 지급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는 하루 종일 이 얘기로 들썩였다. 그도 그럴 것이 부영은 이날 2021년 이후 태어난 직원 자녀 70명에게 1인당 1억 원씩 총 70억 원을 지급했다. 2021년과 2022년 연년생 자녀를 둔 직원, 2023년 쌍둥이 자녀를 낳은 직원은 각각 2억 원을 받았다. 부영은 앞으로 태어날 직원 자녀에게 1억 원씩 줄 계획이다. 셋째를 낳는 경우 출산장려금 또는 전용면적 60㎡ 규모의 영구임대주택 제공도 약속했다.

민간 기업에서 직원에게 억대 출산장려금을 지원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대해 부영그룹 관계자는 “이중근 회장의 미래세대를 위한 통 큰 결정이자 저출산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83세의 노령 이중근 회장은 시무식이 끝난 뒤 기자들과 즉석 백브리핑을 갖고 저출산 문제 해소를 위해 다른 기업도 동참해달라는 뜻을 밝혔다. 이후 금호석유화학 박찬구 회장이 7남매를 키우는 20대 부부에게 1억 원을 쾌척한 데 이어 올해부터 회사 차원에서 첫째 출산 시 500만 원, 둘째 1000만 원, 셋째 1500만 원, 넷째 2000만 원의 축하금을 주기로 했다. 쌍방울그룹도 올해 1월 1일 이후 자녀를 출산한 5년 이상 근속자에게 첫째 3000만 원, 둘째 3000만 원, 셋째 4000만 원의 출산장려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도입했다.

기업이 직원에게 출산장려금을 지급하더라도, 정부가 지급 형식에 따라 소득세나 증여세 등을 부과할 경우 실지원액은 크게 줄어들 수 있다. 이에 이중근 회장은 정부에 세제 혜택을 제안했고, 정부는 기업이 직원에게 지급하는 출산장려금은 전액 비과세, 직원 자녀에게 지급하는 장려금은 10% 증여세를 부과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당초 직원 자녀 명의로 1억 원씩 지급했던 부영은 직원에게 주는 방식으로 형식을 바꾸는 것을 검토 중이다.

지방 소멸·저출산 문제에 특히 관심 갖고 지원

지난해 채널A와 동아일보가 주최한 에이팜쇼 2023 고향사랑 특별관에서 기부식을 진행한 이중근 회장.

지난해 채널A와 동아일보가 주최한 에이팜쇼 2023 고향사랑 특별관에서 기부식을 진행한 이중근 회장.

1941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난 이중근 회장은 건설업을 통해 부를 일군 자수성가 기업인이다. 순천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마치고 건국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으나 생계가 어려워 중퇴했다. 이후 건설업에 뛰어들어 부침을 거듭하다 1983년 삼진엔지니어링을 설립해 임대아파트 건설로 성공 발판을 마련한 뒤 회사 이름을 부영으로 바꿨다. 지난해 경제 매거진 ‘포브스코리아’가 발표한 한국 50대 부자 순위에서 11억2000만 달러(약 1조5000억 원)의 자산을 보유, 29위에 랭크됐다.



이중근 회장의 파격 선행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6월 고향 순천 운평리 280여 가구 주민에게 거주 기간에 따라 세금을 공제하고 2600만~9000만 원을 개인 통장으로 입금했다. 동산초와 순천중, 순천고 동창생들에게 최대 1억 원, 친척과 군 동기들에게도 적게는 5000만 원부터 많게는 10억 원까지 골고루 나눠줬다. 이 회장이 고향 지인들에게 준 금액은 현금만 1400억 원, 선물 등 물품을 포함하면 24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영그룹 관계자는 “모두 회장님이 사재를 털어 나눠준 것이라 회사 임직원들도 전혀 모르고 있다가 언론 보도를 통해 뒤늦게 알게 됐다“고 밝혔다. 당시 이 회장은 살면서 인연이 됐던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으로 현금 선행을 베푼 것으로 알려졌다. 기부 대상을 고향 마을로 특정한 것은 지방 소멸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이었다고 한다. 고향을 떠나지 않고 지켜온 이들에 대한 그 나름의 감사 표시였던 셈이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이 회장의 선행을 삐딱하게 보는 시선이 존재했다. 이 회장은 2020년 회삿돈 횡령 및 배임 등의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에 벌금 1억 원을 선고받았다. 2022년 형기가 만료됐지만 ‘5억 원 이상 횡령·배임 등의 범죄를 저지를 경우 형집행 종료일로부터 5년간 취업을 제한’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조항에 따라 취업이 제한된 상태였다. 따라서 이 회장이 경영 복귀를 위해 사면을 노리고 ‘꼼수 선행’을 펼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광복절 특별사면을 통해 경영 일선에 복귀한 이 회장의 행보를 보면 사회 공헌에 대한 진정성이 엿보인다. 그는 사면 이후에도 개인 혹은 회사를 통해 카이스트 기숙사 리모델링 비용 200억 원, 외국인 유학생 83명에게 장학금 3억4000만 원, EBS 사회 공헌 프로그램 ‘나눔 0700’에 10억 원, 대한적십자사에 3억 원 등을 기부하며 꾸준하게 선행을 이어오고 있다. 무엇보다 고향 마을 주민들에게 돈을 나눠주거나 국내 대학에 재학 중인 외국인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을 지급하고 직원들에게 출산장려금을 지원하는 것에는 지방 소멸, 저출산 등 한국 사회 근본을 위협하는 문제들에 대한 깊은 우려와 성찰이 담겨 있다.

이 회장의 3남 1녀 모두 아이 셋씩 낳아

이중근 회장은 캄보디아에 태권도 훈련센터를 건립하는 등 태권도 국제화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이중근 회장은 캄보디아에 태권도 훈련센터를 건립하는 등 태권도 국제화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이중근 회장의 인생 여정을 살펴보면, 기업인 외에도 여러 흥미로운 이력들이 눈에 띈다. 우선 건국대 중퇴 학력에 머무르지 않고 50대 후반 독학 행정학사 학위를 취득한 데 이어 고려대 대학원에서 행정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올 2월에는 ‘공공임대주택 관련법의 위헌성 및 개선 방안에 대한 헌법적 연구’로 고려대에서 법학 박사 학위까지 받으며 노익장을 보여주었다. 일제강점기 역사를 기록한 ‘미명(未明) 36년 12,768일’, 1945년 광복부터 6·25전쟁 직전까지를 다룬 ‘광복 1775일’, 1950년 6월 25일부터 휴전협정까지를 기록한 ‘6·25전쟁 1129일’ 등 역사서를 출간하고 한국자유총연맹 고문과 대한노인회 회장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부인 나길순 여사와의 사이에 장남 이성훈 부영그룹 부사장과 장녀 이서정 부영 상무, 차남 이성욱 전 부영파이낸스 이사와 삼남 이성한 영화감독 겸 부영엔터테인먼트 대표 등 3남 1녀를 두고 있다. 4남매가 모두 자녀를 3명씩 출산해 12명의 손주를 얻었다. 부영의 정책으로 보자면 4자녀 모두 영구임대주택을 받을 자격을 갖춘 셈이다. 창업주가 80대에 접어들면 후계 구도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부영은 예외다. 이중근 회장이 지주회사 격인 (주)부영의 지분을 93.79% 보유, 막강한 지배체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장 외에 맏아들 이성훈 부사장이 (주)부영의 지분 2.18%를 보유하고 있을 뿐, 다른 자녀들의 주식 보유 현황은 미미하다.

이중근 회장의 선행은 지원 범위나 규모 면에서 선례가 없었던 터라 더 놀랍고 반갑다. 다음 벼락 선행의 대상이 누가 될지에도 자연스레 관심이 쏠린다. 이에 대해 부영그룹 관계자는 “현재 회사 차원에서 준비 중인 건 없다”면서도 “회장님이 회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여러 활동을 진정성 있게 해온 만큼 앞으로도 좋은 일이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중근 #출산장려금 #여성동아

사진제공 부영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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