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ISSUE

당신이 라부부에 열광하는 이유

오한별 객원기자

2025. 10. 04

립스틱 하나와 굿즈 하나가 하루를 버티게 하고, 콘서트와 여행이 삶의 활기를 불어넣는다. 불확실성의 시대, Z세대와 밀레니얼은 ‘트리토노믹스’를 통해 자신만의 경제학을 쓰고 있다.

@popmart_korea  팝마트의 1만~2만 원대 크라이베이비 키 링은 SNS 인증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popmart_korea  팝마트의 1만~2만 원대 크라이베이비 키 링은 SNS 인증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경기 침체와 불확실성이 길어지면서 사람들은 지갑을 닫는 대신 ‘나를 위한 작은 보상’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이런 흐름은 트리토노믹스(treatonomics·treat와 economics를 합친 말), 즉 작은 사치와 보상 소비가 만들어낸 새로운 경제학으로 설명된다. 과거 불황기에 립스틱 매출이 오르며 등장한 ‘립스틱 효과’가 단일 품목에 국한됐다면, 오늘날의 트리토노믹스는 Z세대와 밀레니얼을 중심으로 립스틱·향수·디저트 같은 소품부터 콘서트·여행 같은 경험까지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물질 대신 기분과 추억을 중시하는 세대의 등장과 맞물리며 불황에도 꺾이지 않는 소비문화로 자리 잡은 것이다.

@exnihiloparis 프랑스 니치 향수 브랜드 엑스니힐로의 대표작 ‘블루 탈리스만 오 드 퍼퓸’.

@exnihiloparis 프랑스 니치 향수 브랜드 엑스니힐로의 대표작 ‘블루 탈리스만 오 드 퍼퓸’.

작은 사치는 불황 속에서도 확실한 위안을 준다. 최근 루이비통은 브랜드 최초의 뷰티 컬렉션 ‘라보떼루이비통’을 론칭하며 럭셔리 뷰티 시장에 뛰어들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메이크업 아티스트 팻 맥그라스를 기용한 이 라인업은 립스틱 55종이 개당 23만 원, 립밤이 9만8000원 등 고가임에도 출시 직후 품절 대란을 일으켰다. 419만 원짜리 트렁크 케이스까지 완판됐을 정도다. 같은 시기 청담동 루이비통 메종에 문을 연 ‘르 카페 루이비통’은 비프 만두(4만8000원), 유자 시저 샐러드(4만 원), 페어 샬롯(2만9000원) 같은 디저트 메뉴를 화제에 올리며 패션 하우스의 미식 공간까지 ‘작은 사치’로 즐기려는 젊은 세대의 발길을 끌었다.

이런 흐름은 니치 향수 시장에서도 뚜렷하다. 신세계인터내셔날에 따르면 올해 스몰 럭셔리 카테고리 매출이 크게 증가했다. 특히 프랑스 니치 향수 브랜드 엑스니힐로는 지난해 동기간 대비 120% 매출 성장을 기록했다. 대표작 ‘블루 탈리스만 오 드 퍼퓸’은 100ml에 40만 원대지만 SNS에서 입소문을 타며 품절 사태를 빚었고, 같은 향을 담은 핸드크림과 디스커버리 세트까지 매출 상위권에 올랐다.

반대로 저가 사치 역시 열풍이다. 대표적으로 캡슐 토이 뽑기 공간인 가챠파크는 ‘뽑는 재미’와 수집의 즐거움으로 줄을 서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팝마트의 1만~2만 원대 라부부 키 링과 크라이베이비 키 링은 SNS 인증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단돈 몇천 원으로 하루를 특별하게 만드는 경험은, 큰돈을 쓰지 않고도 스스로에게 보상을 주려는 세대의 소비 심리를 잘 보여준다.

@louisvuitton 루이비통 뷰티 컬렉션 ‘라보떼루이비통’

@louisvuitton 루이비통 뷰티 컬렉션 ‘라보떼루이비통’

르 카페 루이비통의 인기 디저트 ‘페어 샬롯’.

르 카페 루이비통의 인기 디저트 ‘페어 샬롯’.

대체 불가 경험 제공하는 콘서트와 뮤지컬 인기 

불황에도 최근 Z세대와 밀레니얼이 가장 적극적으로 지출하는 영역은 콘서트다. 공연예술전산통합망(KOPIS)에 따르면 국내 대중음악 공연의 평균 티켓 가격은 2020년 8만3000원대에서 2023년 12만 원대로 44% 이상 올랐다. 블랙핑크 공연은 VIP석이 27만5000원, 지드래곤 콘서트는 22만 원, 세계적인 록밴드 콜드플레이 내한 공연은 일반석 25만 원, VIP석은 108만 원에 책정됐다. 그럼에도 표는 순식간에 매진됐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디 에라스 투어’ 리셀링 티켓은 2023년 평균 1088달러(약 150만 원)에 거래되며 ‘티켓플레이션(티켓과 인플레이션이 합쳐져 티켓의 가격이 계속해서 올라간다는 의미)’이라는 신조어까지 낳았다. 미국 마케팅 기업 ‘머지(MERGE)’가 올해 Z세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The Event Effect: Gen Z Retail Survey)에서는 응답자의 86%가 공연 관람을 위해 예산을 초과 지출한 경험이 있다고도 답했다. 과소비의 가장 큰 이유로는 ‘FOMO(Fear Of Missing Out·좋은 기회를 놓칠까 두려운 심리)’가 꼽혔다. 공연은 단순한 관람을 넘어 SNS에 기록되는 하나의 ‘인생 이벤트’로 인식되는 것이다.



@taylorswift

@taylorswift

@musicalaladdin.kr 뮤지컬 ‘알라딘’ 티켓의 최고가는 19만 원이지만 매회 매진을 이어가고 있다.

@musicalaladdin.kr 뮤지컬 ‘알라딘’ 티켓의 최고가는 19만 원이지만 매회 매진을 이어가고 있다.

뮤지컬도 예외는 아니다. 2023년 ‘오페라의 유령’ VIP석이 15만 원에서 19만 원으로 인상된 이후, 최근 ‘알라딘’ ‘위키드’ ‘위대한 개츠비’ 등 주요 작품은 모두 VIP석을 19만 원대로 책정했다. 덕분에 올해 1분기 연극, 뮤지컬 입장권 판매액은 각각 179억 원, 1340억 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격은 오르지만 경험은 대체 불가라는 인식이 불황기에도 공연장을 찾게 만드는 이유다.

립스틱 한 개, 장난감 하나, 콘서트 티켓 한 장과 같은 작은 지출이 불확실한 시대를 견디게 하는 힘이 되고 있다. 물건보다 경험을, 필요보다 만족을 우선하는 Z세대의 선택은 소비의 의미를 ‘생존’에서 ‘자존감 유지’로 확장시켰다. 앞으로도 트리토노믹스는 소확행, 헬시 플레저 같은 라이프스타일 트렌드와 결합하며 더 정교해질 것으로 보인다. 결국 작은 사치와 경험 소비가 만들어낸 불황의 역설이 오늘날 가장 강력한 소비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coldplay 세계적인 밴드 콜드플레이의 8년 만의내한 공연은 팬들이 티켓과 굿즈에 수십만~100만 원대를 기꺼이 지출하게 만들었다.

@coldplay 세계적인 밴드 콜드플레이의 8년 만의내한 공연은 팬들이 티켓과 굿즈에 수십만~100만 원대를 기꺼이 지출하게 만들었다.

#트리토노믹스 #립스틱효과 #루이비통 #여성동아  

사진제공 루이비통 사진출처 인스타그램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