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 이화여대 교수 & 김민정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 대담
현재 정우성의 선택을 두고 일부는 사랑 없는 결혼보단 낫다고 평하고, 반대편에서는 가족 붕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결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입장에서는 해외 연예계와 스포츠계 사례를 든다. 세계적인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슬하에 3명의 아이를 뒀으며, 할리우드 배우 알 파치노는 3명의 여자 친구로부터 4명의 자녀를 얻었다. 배우 휴 그랜트 역시 결혼 전 5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가 58세에 결혼했다.
정우성은 이들과 비슷하나 다른 점이 있다. ‘비혼 출생자’가 많은 외국과 달리 정우성과 문가비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전통적 가족관을 가진 한국에서 ‘혼외자’라는 낙인이 찍힌 채 살아갈 가능성이 있다. 원래 혼외자의 사전적 의미는 혼인 외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를 뜻한다.
여러모로 정우성의 이번 스캔들은 우리 사회에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정우성이 쏘아 올린 새 가족의 형태는 한국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까. 가족 지원 분야에서 연구를 인정받아 2019년 녹조근정훈장을 수상한 바 있는 가족 관련 사회문제 전문가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명예교수와 김민정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를 만나 사회 변화에 따른 가족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미혼과 비혼 가르는 결혼 의지 여부
문가비가 SNS에 출산 사실을 밝힌 뒤 아이의 친부로 정우성이 지목되자 소속사는 이를 인정하면서도 “아이 출산 시점과 두 사람의 교제 여부, 결혼 계획은 확인해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왼쪽). 논란 이후 정우성은 제45회 청룡영화상에 최다관객상 시상자로 무대에 올라 “모든 질책은 제가 받고, 안고 가겠다. 아버지로서 아들에 대한 책임은 끝까지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민정(이하 김) | 일단 생물학적인 아빠가 정우성 씨잖아요. 그렇다면 결혼과 별개로 아이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많은 미혼모, 미혼부들은 상대가 떠났기 때문에 남은 선택지 안에서 미혼 상태의 출산을 택한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함인희(이하 함) | 그런데도 책임감 있는 모습으로 언론에 비쳐 좀 불편하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우리나라처럼 결혼, 임신, 출산이 가족이라는 맥락 안에서 이뤄질 때 더 의미가 있는 상황에서는 아빠의 책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데 동의해요.
그럼 결혼까지 해야 완벽하게 아이를 책임지는 거라고 보나요.
김 | 정우성 씨가 아이 때문에 결혼을 해야 한다는 의견은 너무 나갔어요. 결혼 생활은 서로 의지하며 앞으로 함께 나아가야 하는 건데, 그러려면 두 사람의 성향이 맞아야죠.
함 | 정우성 씨 관련 기사 댓글에서 가장 많은 공감을 사고 있는 부분이 바로 책임의 범위예요. 양육비 외에 더 어떻게 아빠 역할을 해줄 수 있느냐는 거죠. 남편은 아니더라도 아빠로서 아이에게 해줘야 하는 역할이 간단하지 않아요. 책임 논란은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는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김 | 아이에게는 사실 엄마, 아빠가 다 필요하죠. 저는 정우성 씨도 아이를 만나다 보면 사람 마음이라는 게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일단은 정우성 씨가 자발적으로 양육비를 지원하겠다고 밝힌 부분이나 문가비 씨 같은 유명인을 통해 미혼모 및 양육비에 대한 이슈가 부각된 점은 긍정적으로 바라봅니다. 현실에선 양육비 소송에서 승소해도 안 주는 경우가 많아요.
함 | 현재로선 아이 양육에 무책임한 상대방을 규제할 방법이 별로 없죠.
김 | 양육비 승소 판결이 났는데도 3개월 동안 양육비를 주지 않으면 차압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마저도 3개월이 되기 전 양육비 한 달 치를 입금하고, 또 3개월 지나기 전 입금하는 식으로 편법을 쓰는 경우가 많아요.
서울가정법원 양육비 산정 기준표에 따르면 정우성 씨가 지급해야 할 양육비가 현재 기준 최대 월 300만 원이란 예측이 나옵니다. 보통은 어느 정도인가요.
김 | 미혼모의 경우 양육비를 청구하는 비율이 30%도 안 돼요. 아빠를 찾으려면 인지청구 소송부터 해야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거든요. 게다가 내가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게 알려지면 상대방이 아이를 데려갈까 봐 소송을 안 하기도 하고, 애초 좋게 헤어진 사이가 아니라 다시는 엮이고 싶어 하지 않기도 합니다. 상대방이 범죄자이거나 빚이 많아도 청구하지 않고요. 이래저래 30%만 소송을 하고, 그중에서도 꾸준히 양육비를 받는 비율은 정말 얼마 안 돼요. 받는 금액도 협회에서 조사했을 때 30만~60만 원 사이였어요. 300만 원이면 큰돈이죠. 양육비는 아이가 대학에 가면 졸업할 때까지, 진학하지 않으면 만 18세까지 지급하도록 되어 있어요.
법적으로 혼인 관계가 아닌 상황에서 나중에 아이가 정우성 씨의 유산을 물려받을 수 있나요.
김 | 생물학적인 부모와 자녀 관계로 인지되면 자동으로 상속권이 생겨요. 상속권만 생기는 게 아니라 부모에 대한 자녀로서의 책임도 생기고요. 한편 결혼 후 아이가 태어났고 사별 혹은 이혼해 한 부모가 된 경우라면 어쨌든 양가에서 아이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인지청구 절차를 건너뜁니다. 여성가족부에서는 미혼모와 한 부모를 혼용해 쓰지만 엄밀히 말하면 같은 의미는 아닌 거죠.
미혼모와 한 부모가 다르듯, 미혼과 비혼도 개념이 다를까요.
김 | 일단 저는 자발적인 선택인가가 미혼과 비혼을 결정짓는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결혼 의사가 있었던 문가비 씨가 출산을 선택했다고 해서 자발적 비혼모라 할 수 있을까요. 요즘 언론에서 미혼모 대신 비혼모에 더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해 미혼모라는 단어를 지워가는 경향이 있는데, 정작 미혼모 당사자들은 억울한 부분이 있어요. 미혼모는 미혼모로의 삶을 택한 게 아니라 정확히는 아이를 선택한 거예요.
함 | 미국도 비혼 출산이 두 부류로 나뉘어요. 하나는 아주 소수의 고학력 전문직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싱글 맘이 되는 거고요. 여기서 흥미로운 부분은 이 선택에 친정 엄마가 영향을 미쳐요. “내가 살아보니 결혼은 안 해도 괜찮은데 아이는 키워볼 만하더라. 네가 아이를 낳으면 도와줄게”라며 권하는 거예요. 반면 학력이 낮고 저소득층 여성은 다른 이유에서 싱글 맘으로 남아요. 내 처지도 안 좋은데 아이 아빠라는 이유로 남자까지 책임지느니 차라리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거죠. 계층적인 요소가 들어가면 같은 싱글 맘이라도 다음 스텝이 달라져요.우리와 완전히 같진 않지만 지켜볼 만한 부분이에요.
정우성 씨의 아들을 지칭할 때 쓰는 ‘혼외자’라는 표현 대신 ‘비혼 출생자’라고 부르자는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함 | 사전적 의미로만 본다면 정우성 씨의 아이가 혼외자는 맞죠. 법적인 결혼과 무관한 상태에서 태어난 아이라는 뜻이니까요. 다만 혼외자는 예전부터 배우자의 외도로 생긴 아이라는 부정적 의미로 더 많이 쓰였고, 요즘 들어 사유리 씨처럼 정자은행을 통한 자발적 비혼모가 생기면서 사전적 의미로도 쓰여 혼란이 있는 듯해요.
김 | 혼외자는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시대적으로 맞지 않는 단어라고 생각해요. 제 아이는 그냥 김민정의 아들이에요.
함 | 학생들과 국내 미혼모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을 때도 경제적인 문제 다음으로 힘든 건 사회적인 시선이라고 얘기하더라고요. 저는 대표님이 얘기한 것처럼 누구의 아이가 좋은 듯해요. 옛날에는 결손가정이라고도 말했지만 그 역시 편견이 들어간 개념이라 모자 가족, 부자 가족 등 가능한 한 중립적 표현이 좋겠어요.
엄마 아빠 중 한 명만 있어도…
2023년 출생 통계자료를 보면 2023년 혼외 출생자는 1만900명으로 나타났다. 전체 출생아의 4.7% 수준. 한국 사회는 1981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혼외 출생 비율은 2% 미만을 유지해왔으나 2021년부터 3년 연속 증가세다. 물론 OECD 평균인 41.5%에 비하면 여전히 낮지만, 가족 형태가 변화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특히 정우성의 세기 스캔들 이후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이번 일을 거론하며 프랑스식 ‘등록 동거혼(PACS)’ 도입을 위한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등록 동거혼은 혼인하지 않은 커플이 동거 신고를 하면 국가가 혼인 가족에 준하는 세금·복지 혜택 등을 제공하는 제도다. 커플은 성별을 구별하지 않으며, 헤어질 때도 서로 합의만 하면 계약 해지 선에서 끝내 금전 갈등을 벌일 필요가 없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동거인에게 혼인한 배우자에 준하는 권한과 의무를 부여하는 ‘생활동반자법’을 재발의할 예정이다.
문가비가 출산 소식을 알리기 전 마지막으로 올렸던 2022년의 모습. 1989년생인 문가비는 2011년 미스 월드 비키니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모델로 데뷔했다.
김 | 결혼이란 제도에 속하지 않고 서로 합의해 동거하다 간단한 절차로 헤어질 수 있다면 무책임한 부모가 많아지지 않을까 염려가 됩니다. 저는 미혼모, 비혼 출생자 증가 문제를 해결하려면 동거 등록 제도보단 차라리 혼자서도 아이를 낳아 잘 키울 수 있도록 지원을 촘촘하게 해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지금 출산장려정책은 출산 이후 양육에 집중되어 있어요. 미혼모들은 임신 중기 이후 경제활동이 쉽지 않다 보니 당장 생활이 막막해져요. 임신 7개월 때부터 예비 부모 수당을 지급해 미혼모들이 안정된 출산을 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봅니다. 또 등록 동거혼 도입이 출산율을 늘리는 목적이라면 한국이 결혼하고 아이 낳아 키우기 괜찮은 사회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게 먼저라고 생각해요.
함 | 젊은이들이 아이 키우기 어려운 세상이라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데, 1960년대 초반까지 한국 상황을 보면 지금보다 더 가난했고 의료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어요. 아이를 낳다 죽는 경우가 허다한데도 목숨을 걸고 아이를 많이 낳았어요. 사회학자로서 이 수수께끼의 답을 찾아보니 옛날에는 여자들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지 않고서는 살길이 막막했잖아요. 1990년대 초반까지 아이는 조금 낳아도 아들은 꼭 낳아야 했고요. 2000년대로 넘어가면서 더 이상 대를 잇기 위해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사상은 약화됐고, 결혼과 출산이 여성의 삶에서 덜 중요해졌어요. 한국만의 독특한 사교육 문화도 결혼과 출산을 꺼리는 요인으로 한몫하고요. 그래서 섣부른 동거 제도보다는 아이를 낳아 잘 키울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먼저 갖춰져야 한다는 말에 동의해요.
프랑스에서 동거 등록 제도 도입 후 출산율이 늘어난 건 사실입니다.
함 | 우리나라와는 정서적으로 안 맞는 제도일 가능성이 높아요.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은 그 제도가 있기 오래전부터 커플 3쌍 중 하나는 동거 커플일 정도로 혼인 없이 파트너 상태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에 대한 지원이 없어서 아예 출산을 안 한다는 걸 정부에서 알아채고 동거 커플에게도 부부와 같은 혜택을 제공하게 된 거죠.
김 | 저는 제가 미혼모가 될 줄 몰랐어요. 현모양처가 꿈이었어요. 지금도 경제적 여건이 된다면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사는 게 이상적인 가족 형태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건 결혼 비용이라든지 전통적 가족 제도 안에서 해야 할 책임 증가, 양육비 부담 등 분명 이유가 있어서겠죠.
저만 해도 아이가 대학교 2학년이 되면서 한 부모로서 등록금 감면 혜택이 사라졌어요. 이번에 혼자 대학 등록금을 다 감당하려니 부담스러웠어요.
함 | 제가 2024년에 학교를 떠났어요. 최근까지 젊은 세대와 얘기할 기회가 많다 보니 그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겠더라고요. 그들은 삶의 선택지가 많아지길 원해요. 부모 세대가 적당한 나이에 결혼해 아이 낳고 사는 패턴이었다면, 지금은 생애 주기의 탈표준화가 일어나고 있어요. 각각의 선택을 존중해주고 거기에 맞는 필요한 부분을 지원해주면 좋겠어요.
필요한 부분을 맞춤 지원하고 인식 개선에 나서려면 현재 상황을 잘 파악하는 게 우선으로 보이는데요.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조사와 연구가 이뤄지고 있나요.
함 | 그 점이 중요해요. 현장과 맞닿아 있는 사회 복지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은 당장 눈앞의 문제 해결에 바쁘고, 저 같은 연구자들과 실제로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 사이에는 괴리가 있는 것 같아요. 현실에 바탕을 둔 리서치 자료도 생각보다 적고요. 사람들의 생각이 얼마큼 바뀌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체계적인 연구가 더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아직 가족 제도는 따라오질 못하고 있네요.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건 부모의 선택으로 변화의 한가운데서 살아갈 아이 아닐까요.
함 | 아이는 엄마, 아빠가 있어야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인식 자체에서 좀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어요. 서로 돌보고 사랑해주는 게 꼭 가족 안에서만 이뤄져야 하나요. 가족이 너무 많은 짐을 짊어지고 가니까 가족을 만들기도, 유지하기도 어렵죠. 아이가 엄마 아빠가 있든 없든, 엄마 혹은 아빠가 둘이 있든 간에 충분히 사회적 지원을 받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김 | 사회적 인식이나 편견에서 벗어나는 일이 정말 중요한 게, 우리는 흔히 미혼모를 떠올리면 10대나 20대를 생각하죠. 하지만 우리 협회 신입 회원을 보면 30대, 40대에 출산하는 엄마들이 늘었어요. 그런데도 정부 지원은 어린 싱글 맘에게 집중되어 있어요. 그리고 요즘 싱글 맘들은 미혼모 시설에 입소하려 하지 않아요. 제가 2004년도에 입소할 당시에는 100일을 기다려야 했어요. 요즘은 단체 규율에 얽매이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냥 본인이 살던 곳에서 아이를 낳아요. 그렇다면 변화에 발맞춰 지원 방향을 시설이 아닌 지자체로 돌려야 제대로 돌아가겠죠. 아이를 선택하는 건 엄청난 결정이에요. 그 결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면 좋겠고, 누군가의 삶에 대해 평가의 잣대를 들이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정우성 #문가비 #혼외자 #여성동아
사진 홍태식
사진출처 문가비, 정우성 SNS, 청룡영화제 유튜브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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