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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저출생 책임을 청년에게 물어선 안 돼, ‘가족 가치 회복’이 급선무” 홍석철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조지윤 기자

2024. 10. 11

정부는 2030년까지 합계출산율을 1명대로 회복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출산율 반등을 위한 저출생 대응 정책이 쏟아지는 가운데 홍석철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정책보다 중요한 것은 “인식 개선”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홍석철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홍석철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저출생 문제는 한국이 짧은 기간에 산업화를 이뤄내면서 생긴 부작용입니다. 성장 과정에서 주요 가치로 강조된 ‘경쟁’이 과열되면서 청년으로 하여금 결혼과 출산에 대한 심리적·물질적 비용은 높이고 편익을 낮춘 결과죠. 이를 정책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어요. 결국 청년층의 근본적인 인식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9월 9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에서 만난 홍석철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저출생을 청년들의 ‘이기심’으로 프레임을 잡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생존 자체가 문제가 되는 상황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것을 이기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면서 “청년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어떤 문제에 놓여 있는지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정책을 짜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낸 홍 교수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저출생 전문가로 통한다. 올 초 국민의힘 공약개발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겨 여당의 저출생 공약 설계를 주도하기도 했다. 결국 저출생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근본이자 기본, 가족의 가치를 복원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하는 홍 교수와 나눈 이야기를 전한다.

일하는 여성이 늘어나야 출산율도 높아져

“전쟁통에도 애는 낳았다”면서 현 세태를 이해 못 하는 시선이 있습니다.
그때랑 지금은 상황이 다르죠. 경제학적으로 따져보면, 당시는 농업 기반의 사회인 만큼 자녀가 노동 공급의 중요한 원천이었습니다. 사회보장제도가 잘 마련돼 있지 않다 보니 자녀가 곧 노후 대비 기반이기도 했고요. 영유아 사망률이 높아서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이 유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국가 차원에서 사회보장제도가 마련되고, 아이를 낳지 않아도 노후를 대비할 수 있습니다. 여성들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서 가사나 양육 등 전통적인 여성의 성 역할도 달라졌습니다. 저출생의 원인을 파악하려면 시대의 흐름을 잘 읽어야 합니다.

시대의 흐름이 어떤가요.‌
2015년 전후로 국내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달라졌어요. 당시 20대 후반 여성 고용률이 남성을 추월했고, 대학 진학률도 남성보다 여성이 높아졌습니다. 경제활동참가율 역시 자연히 늘어나는 상황에서 결혼과 출산, 양육은 여성 경제활동의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데 따른 기회비용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죠. ‘일·가정 양립’이 저출생 정책의 핵심이 돼야 하는 까닭입니다.‌
높은 20대 고용률과 대학 진학률에도 불구하고 국내 남녀 경제활동참가율 격차는 18%1)가 넘습니다. * 1)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해 발표한 성평등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남녀 경제활동참가율 격차가 38개국 중 7번째로 큰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도 과거에는 마찬가지였습니다. 100년 전만 해도 미국의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이 10%대였습니다. 심지어 여성이 결혼하면 사회생활을 못 하게 하는 법이 존재하는 주도 있었죠. 1950년대 이후 여성들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사회 진출이 늘어나면서 경제활동참가율도 높아졌는데, 그 과정에서 한국이 지금 겪고 있는 갈등을 겪었습니다.


어떻게 극복했나요.
사회적 인식의 변화도 필요하지만 결국 산업 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여성이 일할 수 있는 서비스직과 사무직이 다양해지고, 기업의 근로 환경이 유연해져야 합니다. 특히 남녀 간의 임금 격차를 줄이는 것이 중요해요. 여성이 30대에 일을 그만두는 이유 중 큰 부분이, 돌봄 서비스에 지불하는 비용과 본인 소득이 큰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양육 비용이 더 큰 경우도 있는데, 가계를 고려했을 때 여성이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것이 더 경제적이죠. 결국 경제활동에 참여할 동기가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은 1960년대부터 직장 내 성차별을 규제하는 법을 만들었어요. 일·가정 양립 정책이 잘 마련돼 있는 스웨덴도 1950년대 전후 페미니즘 운동이 몰아친 뒤에 양성평등을 정책에 반영해나갔고요. 우리나라도 근래 많이 바뀌는 추세입니다.


일·가정 양립 정책 가운데서도 ‘단시간 정규직’ 제도 확대가 중요하다고요.
실제로 지난해 미취업 기혼 여성을 대상으로 필요한 정책에 관한 설문조사를 했을 때, 양질의 단시간 일자리 요구가 1위였습니다. 소득이 다소 줄더라도 정규직으로서 일의 연속성을 가져가고 싶다는 것이죠. 풀타임으로 근무하면서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는 사실상 어려워요. 단축 근무제나 시차 근무제는 기업과 근로자 모두에게 부담입니다. 기업도 노무 관리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근로자도 중간에 자리를 비우면 결국 동료가 업무를 분담해야 하는 실정이죠. 하지만 풀타임 근로자 1명을 고용할 자리에 단시간 근로자 2명을 고용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생산 인력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이를 통해 경력 단절 여성들을 노동시장으로 끌어들일 수도 있고요. 유연하게 근무할 수 있기 때문에 출산율도 개선될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일본도 단시간 정규직 근무 활성화 정책을 발표했는데 호응이 좋아요.


저품질 일자리가 늘어날 우려도 있지 않나요.
일각에서는 단시간 정규직 제도로 인해 여성 근로자에게 불이익이 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는 전일제와 단시간 근무자를 동일한 조건으로 고용한다면 충분히 보완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임금체계, 휴가, 휴직은 기본이고 회사 내 직무교육 등에서도 차별을 두면 안 됩니다. 네덜란드나 프랑스 등 복지 선진국이 이미 시행하고 있는 기조기도 합니다. 나아가 독일은 오히려 단시간 근로자에게 보험료 면제 등 혜택을 줘서 제도를 더 활성화하려고 합니다. 급변하는 사회에서는 제도도 유연해질 필요가 있어요. 평균만을 고려해서 제도를 만든다면 제도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은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죠.

가족에 대한 가치 회복이 급선무

저출생 정책 무용론도 나옵니다.
18년 동안 약 380조 원을 들였음에도 출산율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이유가 큽니다. 하지만 이를 쓰지 않았다면 출산율이 지금보다 낮았을 것이라고 봐요. 지난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상임위원으로 근무할 당시를 돌아보면 어린이집 보육료, 유치원 학비, 부모 급여, 아동 수당 등 지원금 중 어느 하나 불필요한 예산은 없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저출산 대응 정책은 점점 선진국 수준으로 가고 있습니다. 실제 스웨덴 분들이 한국에 와서 오히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의 인프라는 한국이 훨씬 낫다고도 하고요. 단, 미비한 정책은 있어요. 앞서도 말한 일·가정 양립 정책입니다. 사실 제도는 잘돼 있는데 아직 조직문화 등의 이유로 시행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고 봅니다. 이를 해결하려고 최근 기업주가 승인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육아휴직이 가능하게 제도를 보완했고요.


그런데도 무용론이 불거지는 까닭은 무엇인가요.
결국 출산율인데, 이는 정책이라기보다는 ‘인식’의 문제입니다. 아무리 가족 정책을 체계적으로 짜고 예산을 집행해도 결국 청년들의 가치관이 변화하지 않으면 효과가 없어요. 정책만으로 사회를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사회 전반에 걸쳐 다각도로 접근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결혼과 출산 이전에 애초부터 연애 자체를 포기하는 청년들이 많아졌습니다.
코로나19 사태의 여러 영향 중 하나가 청년층의 고립, 고독이었습니다. 사람을 만나지 않는데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것은 불가능하죠. 또 치열한 경쟁의 시기에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개인의 생존이 절박한 사람에게는 사치일 수도 있어요. 안타까운 일이죠.


결혼·출산을 유인할 방법이 있을까요.
예나 지금이나 국가를 위해서 결혼하고 애 낳는 사람은 없습니다. 결혼과 출산은 순수하게 개인의 문제죠. 저출생으로 국가가 위기에 처했기 때문에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캠페인으로는 아이를 더 안 낳아요. 가족 정책의 목표가 ‘출산율 상승’이 아니라 ‘행복한 가족 만들기’가 돼야 하는 이유입니다. 결혼과 출산이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개인이 선택하게끔 해야지 강요를 해서는 안 됩니다. 실제 올해 4월 국내 출생아 수가 19개월 만에 반등했습니다. 지난해 시행한 주거지원 정책이나 ‘6+6 부모육아휴직제’가 청년들에게 큰 반향을 모은 덕분이라고 봅니다. 이처럼 청년들의 삶을 개선할 방법을 진정으로 고민하다 보면 어느 순간 출산율도 높아진다고 생각해요. 그 기저에는 청년층의 결혼, 출산에 대한 인식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고요.

윤석열 대통령이 6월 19일 경기 성남시 HD현대 아산홀에서 열린 2024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왼쪽). 지난 8월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4 킨텍스 미베 베이비페어 & 유아교육전’ 현장이 인파로 붐비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6월 19일 경기 성남시 HD현대 아산홀에서 열린 2024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왼쪽). 지난 8월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4 킨텍스 미베 베이비페어 & 유아교육전’ 현장이 인파로 붐비고 있다.

이미 결혼, 출산에 대한 부정적인 개념이 쌓인 상황에서 정말 어려운 문제네요.
쉽지 않죠. 특히 인식 문제는 우리나라만 겪는 게 아니에요. 최근 핀란드 국영방송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2010년만 해도 출산율이 2명 수준이었던 핀란드가 지난해 1.2로 뚝 떨어졌어요. 인터뷰 요지는 20년 이상 초저출산을 경험한 한국 입장에서 핀란드를 위해 조언해줄 수 있냐는 것이었죠. 일·가정 양립과 사회적 돌봄이 중요하다고 말했더니 “그건 이미 우리나라가 잘하고 있는 영역”이라더군요. 실제 가족 정책이 잘 짜인 북유럽 국가들도 최근 출산율이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제 청년들이 가족보다는 개인의 가치를 더 크게 생각하기 때문에 정책만으로는 효과가 없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인식이라는 것은 상당히 오랜 경험의 축적물이에요. 지금 청년들은 어릴 때부터 입시 경쟁을 뚫고, 또 노동시장의 경쟁을 지나왔습니다. 과도한 경쟁 사회에서 생존 자체가 버거운데 ‘어떻게 아이를 낳냐’는 생각이 자리 잡았죠. 이를 단기간에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희망찬 미래에 대한 믿음을 줄 수 있도록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이혼 등을 주제로 한 예능 프로그램이 부정적 인식을 강화한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일정 부분 동의합니다. 사실 사회적인 가치를 생각한다면 방송이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결국 수익 창출이 목표기 때문에 쉽지는 않아요. 그래서 정책적으로 맞불을 놓는 콘텐츠를 많이 생산해야 합니다. 지난해 KCC건설 주거 브랜드 스위첸의 광고가 청년층 사이에 반향이 있었어요. 출산과 육아에 어려움이 있지만 결국 그 안에 행복이 자리한다는 것이 주제였죠. 이처럼 가족을 다양한 방향에서 다루는 콘텐츠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에서 먼저 움직이면 민간에서도 좋은 콘텐츠가 나올 것이라고 믿어요.


교수님께서는 결혼과 출산에 따른 비용보다 가족의 가치가 더 크다고 생각하나요.
개인적으로는 그렇습니다. 특히 아이를 키우면서 힘든 점도 많았지만 즐거움과 행복이 더 컸어요. 사람은 결국 사람과의 관계에서 행복을 찾는다고 생각합니다. 독신으로 살더라도 주변에 좋은 지인이 있어야지 그 삶을 더 즐겁게 누릴 수 있고요. 사람을 통해 얻는 행복은 좋은 일에서만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위로하고 응원해주는 것도 결국 가족입니다. 미국의 ‘퓨 리서치 센터’가 2021년 전 세계 17개 선진국 국민을 대상으로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조건’에 대해 조사했어요. 14개 국가는 ‘가족’을 1위로 꼽았는데,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물질적 풍요’라는 답이 가장 많았죠. 그만큼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가족의 가치를 낮게 보는 상황입니다. 가족의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단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논의입니다. 정책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정책적인 노력도 반드시 동반돼야 하고요.

#저출생 #가족정책 #여성동아

‌사진 지호영 기자 뉴시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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