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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링 한 번이면 바로 구매 가능” 10대까지 손대는 스테로이드 오남용 실태

정세영 기자

2024. 11. 20

선명한 초콜릿 복근을 위해 ‘약물’을 사용하는 건 더 이상 일부 보디빌더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반인 사이에서도 공공연하게 일어나며 사회적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스테로이드 오남용 실태를 취재했다. 

말 근육 부럽지 않은 탄탄한 허벅지, 구획 확실한 빨래판 복근, 출렁일 기미가 1도 없는 단단한 팔뚝···. 누구나 완벽한 보디를 꿈꾼다. 꾸준히 홈트를 하고 헬스장을 찾아 ‘쇠질’을 하는 이유 또한 다르지 않다. 이처럼 금쪽같은 시간을 투자해 열심히 땀 흘리는 이들이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스테로이드제 오남용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인천에 위치한 한 헬스장 직원은 “며칠 전 샤워장 하수구가 막혀 업체를 불렀는데 구멍에 스테로이드 주사기가 잔뜩 버려져 있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화장실 변기는 기본이고 요즘은 옷 보관함에서도 주사기가 나온다”며 “회원들에게 적발 시 환불 없이 헬스장 이용 중단을 공지했지만 소용없다”고 말했다.
스테로이드 주사기를 아무 데나 버리는 회원들 때문에 큰 공사비를 지불하는 등 피해를 보는 헬스장도 생겨나고 있다. 서울시 강남구에서 헬스장을 운영하는 이정인 씨는 “몇 달 전 스테로이드 주사기 때문에 화장실 변기가 막혀 몇백만 원대의 공사비가 들었다”며 “스테로이드 사용은 모른 척할 테니 제발 주사기만 쓰레기통에 버려달라”고 하소연했다.

사실 스테로이드 불법 남용에 대한 심각성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일례로 2019년 유튜브를 중심으로 한국 보디빌딩 및 피트니스계의 불법 약물에 대한 내용이 공개되며 큰 충격을 줬다. 특히 완벽한 근육을 자랑하며 각종 대회를 휩쓴 보디빌더가 스테로이드 약물을 투여했다는 점이 드러나며 파장이 일었다. 대중은 이를 성범죄 피해 사실을 폭로하는 미투(Me Too)에 빗댄 ‘약투’로 표현하며 보디빌더를 조롱하는 밈을 만들어냈다.

과거에는 불법 스테로이드가 일부 보디빌더의 전유물이었다면 이제는 몸짱을 꿈꾸는 일반인들에게까지 마수를 뻗치고 있어 큰 우려를 자아낸다. 헬스장 화장실에 무더기로 버려진 스테로이드 주사기, 온라인에서 불법 유통되고 있는 각종 스테로이드제 등 요즘 매체에서는 이와 관련된 심각한 현실을 앞다퉈 보도하고 있다.

근육과 부작용 동시에 키워주는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스테로이드는 크게 2가지로 구분한다. 성호르몬과 구조가 비슷한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와 신장의 부신피질에서 주로 생성하는 코르티코스테로이드와 유사한 코르티솔 스테로이드다. 피부 연고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언급하는 물질은 코르티솔 스테로이드지만, 몸짱을 거론할 때 등장하는 스테로이드는 바로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소, 돼지 등 동물의 고환에서 추출 및 합성한 남성호르몬의 일종으로, 세포 내 단백질 합성을 촉진해 단기간에 근육량을 크게 늘려주는 효과가 있다. 체지방은 늘지 않으면서 근육은 커지고, 피로 회복 시간을 단축해준다니 그야말로 사기 캐릭터에 가깝다. 하버드 의대 해리슨 G. 포프 교수팀 연구에 따르면 스테로이드를 사용하면서 운동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근육 성장 효과가 3배나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운동선수가 스테로이드 사용에 강력한 유혹을 느끼는 이유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노력 대비 뛰어난 성과를 얻고 싶은 건 모든 인간의 공통적인 욕망이다. 일반인들 역시 힘들게 운동했는데도 근육량이 별로 늘지 않을 때, 보디 프로필 사진 촬영 등 단기간에 몸을 만들어야 하는 경우 스테로이드를 떠올리게 된다. 온라인에서 스테로이드 관련 후기를 검색하면 그 유혹은 더욱 강력해진다. “근육의 펌핑감이 다르다” “몸이 지치지 않는다” “근육통이 사라지고 쫀쫀하게 조여주는 느낌이 든다” “단기간에 몸이 불었다” 등 각종 커뮤니티에는 스테로이드에 혹하게 만드는 후기가 넘쳐흐른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서울아산병원 내과 전문의 우창윤 교수는 “(스테로이드 복용으로 인해) 외부에서 고농도의 남성호르몬이 들어오면 뇌는 몸에서 남성호르몬이 많이 생성된다고 인지하게 된다”며 “결국엔 전반적인 호르몬 분비 능력이 저하되고 남성호르몬을 고환으로 보내는 신호가 미약해 정자 생성 기능을 떨어트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어서 그는 “여드름, 여성형 유방, 탈모, 전립선 비대, 전립선암, 비후성심근병증, 심장마비 등 크고 작은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지속적인 스테로이드 사용으로 발기부전, 무정자증, 고환 축소 등 다양한 성기능장애를 호소하는 남성들이 많다. 헬스트레이너이자 유튜브 박승현TV를 운영하는 박승현 씨는 MBC ‘실화탐사대’에 출연해 엉덩이 괴사, 발기부전 등의 심각한 부작용을 설명하며 스테로이드의 위험성을 피력하기도 했다.

이처럼 수많은 위험 요소를 동반한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근감소증, 유전성 혈관부종 등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판매 및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의사의 처방 없이 이를 복용, 투약하는 것은 불법이다. 판매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며 약사법 개정으로 2022년 7월 이후 구매자 역시 처벌이 가능하다.

명확한 처벌이 명시됐음에도 스테로이드제 불법 거래는 증가하는 추세다. 김광수 민주평화당 국회의원이 식약처로부터 제출받은 ‘스테로이드 온라인 불법 판매 적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적발 건수는 2016년 272건, 2017년 344건, 2018년 600건, 2019년 5월 기준 4373건으로 매년 상승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주문까지 약 1시간이면 충분” 무허가 판매 판치는 SNS

서울 중랑구의 한 헬스장 화장실 내부에 사용 후 버려진 주사기들이 쌓여  있는 모습(왼쪽). SNS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스테로이드 판매 게시글.

서울 중랑구의 한 헬스장 화장실 내부에 사용 후 버려진 주사기들이 쌓여 있는 모습(왼쪽). SNS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스테로이드 판매 게시글.

스테로이드 불법 거래가 증가하는 이유는 그만큼 해당 약물에 대한 접근성이 높다는 의미다. 실제 기자가 인터넷에 디볼, 아나바, 위니, 스타노졸 등 구체적인 스테로이드 품목을 입력하자 구매 경로가 노골적으로 등장했다. 경로를 클릭하니 약의 특징, 반감기, 간독성 정도에 대한 상세한 설명 및 텔레그램, 카톡 등의 아이디가 노출됐다. 해당 아이디로 연락을 시도해봤다. 5분 정도 지나자 판매자는 “디볼 10mg 100정에 6만5000원”처럼 구체적인 제품 목록과 가격을 제시하며 사용 목적을 물었다.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라고 대답하자 이에 따른 복용법, 복용 기한 등을 친절히 안내했다. 부작용에 대해 걱정스러운 반응을 보이자 판매자는 “요즘 스테로이드제 안 먹는 사람이 없다”며 “오랫동안 먹지 않으면 부작용은 거의 없다”고 기자를 설득했다. 구글링부터 주문 직전까지의 시간을 계산해보니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빠르게 관련 약물을 구입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판매자들은 대부분 경구용 알약과 바이알(주사약이 들어 있는 유리 용기로, 증류수를 섞어 일회용 멸균 주사기로 주사하는 형태)을 모두 취급하는데 이러한 약들은 태국, 중국 등 해외에서 불법으로 수입돼 안전을 담보하기 어렵다. 이들은 대부분 중국에서 벌크 상태의 원료의약품을 가져와 스테로이드제를 제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공식적인 방법으로 만든 스테로이드제를 투여할 경우 더욱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다. 소윤수 경희대학교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비공식 경로로 구입한 스테로이드는 제조 및 유통 과정에서 안전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성분을 정확히 알 수 없다”며 “실제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신체에 심각한 위해를 가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그는 “용량 조절이 어려워 과다 복용을 할 가능성이 크며 부작용을 겪을 확률도 높다”고 덧붙였다.

스테로이드제에 대한 안전이 심각하게 우려되는 상황임에도 관련 커뮤니티에는 여전히 우려스러운 글들이 우후죽순으로 업로드되고 있다. “케미컬 처음인데 도와주세요” “직거래 가능한 업자분들 쪽지 주세요” “벌킹 스택표(스테로이드 등의 약물 복용 계획표) 좀 봐주세요”와 같은 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 또한 약물 효과를 극대화하거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여러 약물을 동시에 사용하겠다는 글도 다수 있었다. 예를 들어 스테로이드와 성장호르몬을 혼합해 주사한다거나 간 기능 회복에 도움을 주는 영양제를 함께 복용하겠다는 식. 의사나 약사의 전문적인 지도 없이 임의로 조합해 복용하는 약이 신체에 어떤 악영향을 줄지는 간과하는 것이다.

SNS가 스테로이드의 주 유통 경로로 주로 꼽히지만 헬스장, 스포츠 교실 등의 오프라인 공간에서도 거래가 빈번하다. 지난해 헬스트레이너 형제가 6억 원 상당의 무허가 스테로이드 의약품을 제조해 판매하다 적발된 사례가 있다. 강원도 춘천에서는 10대 A 군이 헬스장 코치를 통해 구입한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고 엉덩이와 어깨 근육이 괴사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헬스장 코치는 A 군에게 대회 참가를 권유하며 약을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또 다른 피해자에게는 “비타민제와 비슷하다” “유명 선수들도 사용한다”며 안심시켰다고 한다. 청소년이 스테로이드 약물을 복용하면 어떤 부작용이 발생할까. 소윤수 교수는 “성장판이 조기에 닫혀 최종 신장이 작아질 수 있다”며 “성호르몬 불균형으로 남성 청소년은 고환 위축, 여성형 유방 등의 현상이 나타날 수 있으며 여성 청소년은 목소리 굵어짐, 체모 증가 등의 남성화 증상을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 밖에 피지선 활동을 증가시켜 여드름과 같은 피부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

스테로이드제에 대한 치명적인 위험이 감지되고 있지만 근절은 쉽지 않아 보인다. 국내법상 마약으로 분류돼 있지 않아 경찰의 적극적인 대응이 쉽지 않은 것. 이를 개선하기 위해 개인 간 스테로이드를 거래하다 적발될 경우 판매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며, 구매자 역시 처벌받도록 법을 개정함으로써 제재의 수위를 높였지만 불법 거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여전히 불법 거래가 만연한 이유로 판매자의 입장에서 위험 부담을 감수할 만큼 수입이 큰 점, 죄에 대해 처벌 수위가 약한 점 등을 꼽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좀 더 강력한 판매 단속과 처벌 규정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관계자는 “(스테로이드가) 오남용과 중독성 측면에서 마약만큼 위험한 물질”이라며 “특히 식욕 억제 기능이 있는 필로폰과 병행 복용하는 사례가 많아 정부 당국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김재섭 의원은 “어떠한 행정 조치를 통해 스테로이드제 유통을 규제할지는 숙의가 필요하다. 투약 현장을 적발하는 행정 단속은 불가능에 가깝고, 단순히 의약품 사용을 금지하는 조치는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며 신중한 태도로 접근할 것을 주문한 바 있다.


#스테로이드 #웨이트트레이닝 #보디빌더 #여성동아

‌사진 언스플래쉬 
‌사진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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