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술교육’ 전공 서울교대 원진숙 교수
독서와 글쓰기 즐기는 아이로 키우기
서울교대 국어교육과 원진숙 교수(43)는 10여 년 전 고려대에서 ‘논술교육’과 관련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예비 초등교사들에게 작문과 화법, 독서교육을 가르치는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차근차근 읽고 쓰는 능력을 발달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읽기와 쓰기를 가르치는 국어 교과는 다른 모든 교과 학습을 수행하도록 하는 도구 학습이에요. 하지만 도구로서의 기초 기능에서 더 나아가 고등사고를 수행하는 기능을 하죠. 우리가 사고를 할 때도 언어를 이용하고, 언어를 통해 표현하니까요.”
원 교수는 많은 부모들이 아이가 수학을 못하면 수리·연산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문제가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서 정답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그는 사회나 과학 등 다른 교과도 마찬가지로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며 읽고 쓰는 능력은 범교과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측정하는 척도가 된다고 말한다. 때문에 어려서부터 읽기와 쓰기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그런데 문제는 실제 국어교육이 행해지고 있는 교실을 들여다보면 글 읽는 교육이 돼야 할 국어시간에 단편적인 지식을 배울 뿐 정작 있어야 할 읽기 경험은 없다는 점이다. 원 교수는 더군다나 논술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논술학원과 족집게 논술 과외가 성행하고 있는 걸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안타깝다고 말한다.
“사교육 현장에서 벌어지는 논술교육 행태를 보면 아찔해요. 아이들 논술을 채점하면서 하나같이 천편일률적이고 개성 없는 글을 쓰는 데 깜짝 놀랐어요. 알고 보니 사교육 시장에서 예상문제를 뽑아 모범답안을 가르친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아이들은 어떤 문제가 나오든 자기가 암기한 지식들을 쏟아붓고 나가는 거예요. 논술을 이런 방식으로 교육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거예요. 논술시험에 정답이 있다는 게 참으로 놀라울 뿐이죠.”
그는 논술은 단순히 읽고 쓰는 기술로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주제에 대해 자신만의 생각을 독창적으로, 명료하게, 창의적으로 표현해내는 것이 관건이라고 설명한다. 정형화된 글보다는 꾸준한 독서를 통해 배우고 익힌 것들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글이 높게 평가받는다는 것.
“세계 어디를 가봐도 우리나라 아이들처럼 많은 시간을 공부에 투자하는 사례는 찾기 힘들 거예요. 몇 년 전 영국 BBC 방송에서 대치동의 한 특목고 대비 학원을 해외토픽으로 내보낸 적이 있어요. 14, 15세밖에 안된 아이들이 밤 12시 넘도록 밀폐된 공간에 모여 과외수업을 듣는다는 게 그들로서는 놀라운 거죠. 그런데 그렇게 많은 공부를 한 아이들이 막상 사회에 나와 직장생활을 시작하면 기업에서는 정작 필요한 공부는 전혀 안됐다면서 비싼 돈을 들여 재교육을 시켜요. 경제적으로 엄청난 손실이죠.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아이들이 초·중·고 시절의 과도한 학습 부담으로 인해서 공부에 넌더리를 친다는 거예요.”
그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공부하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다는 걸 알지 못하고 진저리치게 만드는 우리의 교육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자녀가 어릴 때부터 글을 읽고 쓰는 걸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먼저 집안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부모는 관심이 온통 부동산에 쏠려 있으면서 아이들한테만 책을 읽으라고 하면 아이들이 책을 좋아할 리 없다는 것. 그 다음은 부모가 책을 보는 안목을 지녀 아이들이 발달 단계에 맞게 책을 고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한다. 또 미취학 아동이나 초등 저학년 아이들에겐 부모가 좋은 책을 골라 읽어주는 것이 책읽기를 즐기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매일 30분만 온 가족이 하던 일을 멈추고 아주 편안한 자세로 책 읽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일주일에 한 번은 함께 서점에 가서 책을 고르는 안목도 키워주고요.”
독후감 강요 말고 원하는 글 쓰게 해야, 독자 반응 경험케 하면 쓰기 실력 신장돼
원 교수는 논술을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아이에게 토론을 시키거나 독후감을 쓰도록 강요하면 독서를 또 하나의 부담스러운 과제로 여길 수 있다고 충고한다. 그는 “책 읽는 건 아주 자연스럽고 즐거운 것인데 아이들에게 책읽기가 점점 스트레스이자 강요가 돼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앞으로 논술시험 본다는데 그렇게 책을 안 읽으면 어떻게 할 거냐’고 말하며 책을 읽으라고 종용하는 건 또 다른 형태의 고문이라는 것.
아이가 책에 관심을 갖게 만든 다음에는 거창한 토론이 아닌 대화를 통해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한 소감을 나누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는 말하고 쓰는 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표현 욕구인데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그러한 재능을 잃게 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어린아이가 있는 집에 가보면 대개 벽이 온통 아이들 낙서로 가득 차 있잖아요. 자신의 사진과 글을 올려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싸이월드가 유행하고, 알타미라 동굴벽화가 남아 있는 건 인간의 본능적인 표현 욕구를 증명해줘요. 그런데 우리의 교육 형태가 아이들의 그러한 욕구를 점차 거세시키는 것 같아요.”
그는 “아이들의 쓰기 능력이 받아쓰기 실력이라고 생각하는 부모가 많아 받아쓰기 시험을 잘 못 보면 큰일이 난 것처럼 생각하는데 쓰기란 의미를 구성하고 표현하는 활동이지 맞춤법이 아니다”라며 “자신의 수준에 맞는 언어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줄 알게 하는 것이 아이의 삶을 가꾸는 교육”이라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원인과 결과에 맞게 써야 한다, 시간적 순서에 맞게 써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아이들이 쓰기를 부담스러워하게 만들어요. 논리적 글쓰기를 강요하기보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책을 좋아하고, 글을 통해 표현하는 것을 즐기게끔 돕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죠.”
그는 아이들이 혼자서도 많이 배우지만 혼자서 읽고 쓴 것을 공유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좋다며 이웃 아이들과 또래 집단을 구성해 자연스럽게 자신이 읽고 쓴 것을 발표하게끔 해볼 것을 권했다. 또한 아이가 인터넷 공간에 글을 올리게 하고, 가족들이 댓글을 달아 반응을 보여주면 아이가 자신의 글에 대한 부모, 친구, 순수한 독자의 반응을 경험하게 돼 자연스럽게 쓰기 실력이 신장된다고 한다.
원 교수는 부모가 아이의 성공에 대한 강박증에서 벗어나 책 읽는 자체가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경험인가를 깨달을 수 있도록 본보기가 돼줄 것을 당부했다.
▼ 독서치료연구소 하제 소장
아이의 마음을 열어주는 독서법
“독서치료는 독서교육과는 또 다른 분야예요. 독서교육은 책을 효과적으로 읽고 활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고, 독서치료는 심리상담에 책을 활용하는 것이지요. 책을 읽고 책의 내용이나 지은이의 생각을 알아내는 것보다는 책을 읽은 느낌이 어떠했는지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아이의 마음을 알아가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하제독서치료연구소 하제 소장(40)은 대학 졸업 후 사단법인 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와 인연을 맺으며 독서교육에 첫발을 들여놓았다. 그 후 연세대학교 사회교육원에서 ‘NIE(Newspaper In Education) 인성교육’을 공부하며 독서교육과 상담을 접목하는 연구를 시작해 지금은 독서치료사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독서치료는 음악치료나 미술치료와 마찬가지 형태로 책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독서치료라는 개념이 도입된 지는 10년 남짓 됐고, 최근 사람들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고 한다. 독서치료는 동일시-카타르시스-성찰의 3단계로 이루어지는데 먼저 아이가 처한 상황과 가장 비슷한 문학책을 읽게 한다. 형제끼리 다툼이 심할 때는 형제의 이야기가 담긴 동화를 보여주고, 아빠와 관계가 좋지 않을 때는 그에 맞는 동화를 읽게 한다. 그러고 난 다음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동일시라는 것은 책의 주인공과 자기 자신, 주인공이 처한 환경과 자신의 환경을 같게 생각하는 거예요. 주인공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주인공의 마음이 어떠했을 것 같은지 주인공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지요. 본인의 이야기를 하라고 하면 못하는 아이들도 주인공에 대해 말해보라고 하면 별 거부감 없이 이야기를 잘하거든요.”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주인공의 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고 한다. 책의 내용을 빌려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쏟아내고 나면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욕구도 생기고 자신감도 생긴다고. 이때 비로소 상대방의 말이 귀에 들어오고 배려하는 마음도 갖게 된다고 한다.
그 다음 과정은 성찰.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는 단계다. 책에 나온 주인공처럼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사용할 것인지 아이와 함께 결정을 내려보는 것. 독서치료를 할 때는 지식을 전달하는 책보다는 아이들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문학책이 효과적이라고 한다.
10여 년간 독서치료사로 활동해온 하제 소장은 현재 아이들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로 공부 스트레스와 애정 결핍, 애정 과잉을 꼽는다.
하 소장은 “대부분의 부모가 자신이 자라온 성장 배경과 경험에 근거해 아이들에게 사랑을 전달하는데 그 사랑이 너무 넘치거나 모자랄 때 문제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책을 통해 아이들의 문제를 파고들어가 보면 어린 시절 부모의 경험이 아이들 양육에 영향을 미쳐 문제를 일으킨 경우가 많다는 것. 이럴 때는 가족 모두가 함께 독서치료를 받기도 한다. 어린이 책을 선정해 함께 읽은 다음 이야기를 나누며 문제해결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부딪치는 문제들 책을 통해 풀면 가족사랑 커지고 좋은 독서습관도 생겨
하 소장은 권위적이고 사랑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빠 때문에 고민하는 아이들에게는 ‘나는 아빠를 사랑해요’ (교학사) ‘아빠가 내게 남긴 것’(베틀북)을, 부모와 대화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아이들에게는 ‘들키고 싶은 비밀’(창비) ‘놀기 과외’(비룡소)를 읽게 한 뒤 이야기를 나누어볼 것을 권했다. 이와 함께 아이들과 책을 매개로 이야기하고자 할 경우 어른의 입장에서 책에 나온 이야기를 훈계조로 이야기하거나 책 내용을 확인하는 듯한 질문은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아이들이 책을 읽고 어떤 느낌을 가졌는지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 “등장인물 중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니?” “읽고 나니까 어떤 느낌이 들어?” “등장인물 중에 바꾸고 싶은 사람이 있니?”와 같이 책 중심이 아닌 아이 중심에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고.
“부모가 함께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해요. 부모가 아이의 문제 상황을 판단하고 그에 맞는 책을 찾아 먼저 읽어본 후에 아이한테 권해주어야 하죠. 부모가 책을 읽으며 어떤 느낌과 생각이 들었는지 아이에게 이야기해주며 대화를 유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또한 단기간에 아이들의 행동이 변화할 것을 기대하기보다는 아이와 함께 책을 읽고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 데 의의를 두는 것이 좋아요.”
독서치료라 해서 특별히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무수히 많은 책 중에서 내 아이에게 꼭 필요한 책을 선택해 독서치료의 방법을 응용하는 것이다. 하 소장은 “공부에 영 관심이 없는 아이, 친구와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 내성적인 아이와 외향적인 아이, 형제자매 간에 갈등이 있는 아이 등이 일상생활에서 부딪치는 문제들을 책을 통해 풀어나갈 수 있게 도와주면 가족 간의 정도 돈독해지고, 좋은 독서습관도 들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경우에는 이런 책’ 하고 기계적으로 공식을 적용하는 것은 옳은 방법이 아니다. 먼저 부모가 독서치료에 대해 알아봐야 한다. 인터넷이나 관련 도서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독서치료에 대한 개념을 정립한 뒤 수많은 추천도서 중에서 내 아이에게 맞는 책을 골라낼 수 있는 안목을 갖추어야 한다. 하 소장이 운영하는 하제독서치료연구소 사이트(www.hajebook.com)를 이용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 한국독서교육개발원 남미영 원장
아이에게 올바른 독서습관 길러주기
공자의 제자들은 언제 어디서나 스승의 책을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고 한다. 죽간(종이가 발견되기 전에 사용했던 필기도구)을 묶은 가죽 끈이 해어져 그 끈을 여러 번 다시 이은 책은 공자의 책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공자는 왜 책을 그렇게 험하게 다루었을까? 그 이유는 공자가 책을 한번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죽간의 가죽 끈이 끊어질 때까지 반복해 보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독서법 지도에 앞장서고 있는 한국독서교육개발원(www. kredi.co.kr) 남미영 원장(63)은 위의 공자 이야기처럼 독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책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사고의 폭을 넓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요즘 어린이들의 독서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어요. 하루에 10권 읽는 아이들도 있고, 20~30분에 책 한 권을 뚝딱 읽어버리는 아이들도 많아요. 고기를 꼭꼭 씹어서 천천히 먹으면 고기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독서도 마찬가지예요. 천천히 읽으면서 책이 주는 감동을 느끼는 게 중요하죠.”
23년 동안 한국교육개발원(KEDI)에 재직하며 국어교육연구실장을 역임한 남미영 원장은 책을 많이 읽는 것보다는 생각하며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저급 독자는 줄거리만 읽어 내려가는 사람이고 고급 독자는 줄거리를 기본으로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가며 책을 읽는 사람이라는 것이 남 원장의 얘기. 예를 들어 ‘장발장’을 읽을 경우 저급 독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줄거리만 기억하며 읽기 때문에 금방 책 한 권을 읽지만 고급 독자는 ‘빵 한 조각을 훔쳤는데 감옥에 보낸다는 것은 가혹하지 않나?’ ‘과연 정의란 무엇인가?’ ‘신부가 거짓말을 해서 되겠는가?’ ‘신부가 솔직히 이야기했다면 장발장은 어떤 인생을 살게 됐을까?’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읽기 때문에 책 한 권을 읽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천천히 읽으면서 책이 주는 감동 느끼는 것이 중요
책을 읽기 위해서는 어휘력이 가장 중요하고 그 밖에도 집중력, 변별력, 관찰력, 추리력, 상상력 등 18가지 능력이 필요하다. 어휘력이 낮을 경우 책을 읽어도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해 만화처럼 쉽게 읽히는 책들만 찾게 된다고 한다.
“만화는 대부분 그림으로 상황 설명이 되기 때문에 다양한 어휘를 사용하지 않아요. ‘화살이 쏜살같이 날아왔다’는 문장을 만화에서는 화살 그림에 ‘슝’ 하는 단어 하나 붙이면 되거든요. ‘시나브로’와 같은 아름다운 우리 말들은 오직 책 속에서만 만날 수 있죠.”
남미영 원장은 어휘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올바른 책읽기 습관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올바른 독서습관을 기르는 방법 중 한 가지는 아이 수준에 맞는 책을 골라 아이와 부모가 함께 책을 읽는 것. 책을 읽다가 아이가 이해하지 못하는 단어가 나올 때는 부모가 적극적으로 그 뜻을 설명해주면서 아이에게 새로운 어휘를 알아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리고 어휘력이 뛰어난 아이는 교과서 내용도 쉽게 이해하기 때문에 학교 공부도 잘하게 된다고.
“아이를 고급 독자로 만들기 위해서는 부모의 태도가 매우 중요해요. 아이가 책을 읽고 난 다음에는 독후감을 쓰라고 강요하는 대신 ‘네가 주인공이었다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 것 같니?’ 등과 같은 질문을 하면서 아이와 함께 부모의 생각을 나누는 것이 좋아요.”
아이와 함께 서점이나 도서관에 자주 다니면서 아이가 책에 대한 호기심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 또한 부모가 책 읽는 모습을 아이에게 자주 보여주면 아이가 그대로 따라 하게 되고, 책을 좋아했던 위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아이도 덩달아 책을 읽으려 하는 경우도 있다고.
끝으로 남미영 원장은 “초등학교 때 들인 독서습관이 평생을 좌우하는 만큼 아이가 어려서부터 올바른 독서법을 몸에 익히도록 부모가 도와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 초등학교 교사 출신 독서토론 강사 여희숙
효과적인 독서·논술·토론 교육
“아이가 책읽기를 싫어한다고요? 그럼 스스로 읽겠다고 할 때까지 엄마가 읽어주세요.”
독서토론 강사 여희숙씨(46)는 22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며, 독서와 토론 지도를 학급경영에 접목한 교육전문가. 5년 전 교직에서 물러난 그는 전국 곳곳에서 교사와 학부모를 대상으로 독서·토론 지도법을 강의하고 있다.
“초등학생 때 독서능력을 키우지 못한 아이는 중·고교에 진학하면 학습능력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자녀가 어렸을 때 책값을 아끼면, 나중에 수천만원의 사교육비를 써야 할지도 몰라요. 그렇다고 거창하게 ‘독서지도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지 마세요. 아이들은 ‘지도’받는 것에 별로 흥미가 없으니, 먼저 책과 놀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세요.”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재미있게 책을 읽을까. 여희숙씨는 “‘책을 읽지 못하게 하는 전략’으로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라”고 조언한다. 아이들을 멋진 책의 세계로 초대하려면 극적인 첫 만남이 필요하다는 것. 1천 권의 책을 교실에 놓아둔 여씨는 새 학기가 되면 아이들에게 “학급문고에 절대 손대지 말라”며 당부했다고 한다. 책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기 위해서다. 2주일쯤 지나 그가 학급문고에서 한 권의 책을 빼내들고 일부를 읽어주자 아이들은 놀라운 관심을 보이며 듣기에 열중했다고 한다. 그 책 속에 있는 다른 이야기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넌지시 일러주면, 성질 급한 아이들은 그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을 정도였다.
“한 달간 아이들이 책을 못 읽게 하다가, 4월에 학급문고를 여는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때 문고에 있는 책 제목과 저자 맞히기 게임 등을 하며 아이들의 흥미를 돋웠어요. 그러면 아이들은 ‘드디어 책을 읽는다’며 설렘을 감추지 못합니다. 이 방법을 가정에서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어요. 아이는 책에 손도 못 대게 하면서, 엄마는 그 책을 ‘정말 재밌다’고 읽으면 아이의 호기심은 커지게 마련입니다. 동화책 읽는 엄마의 모습만큼 아름답고 자극적인 독서지도가 또 있을까요?”
‘책 읽어주기’는 엄마가 실천할 수 있는 중요한 독서교육법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어렵고 복잡한 내용의 책이라도 누군가 들려주면 혼자 읽을 때보다 훨씬 더 잘 이해한다는 것. “15세 전에는 책을 읽는 것보다 듣는 데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 여희숙씨의 설명이다.
“엄마가 자녀의 독서 수준보다 약간 높고 또 큰 소리로 읽기에 적당한 책을 골라 읽어주면 아이는 평생 좋은 독서습관을 갖게 됩니다. ‘천천히 읽을 수 있다’는 것도 ‘책 읽어주기’의 장점이에요. 책을 천천히 읽어주며 아이들이 책을 ‘마음으로 보도록’ 이끄는 것이죠.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기를 계속하면, 커다란 변화를 관찰할 수 있어요. 한글을 깨치지 못해 고생하던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두어 달 지나면 저절로 책을 읽게 되거든요.”
책을 읽어주거나 읽게 하고 나면 어른들은 반드시 뭔가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질문할 거리를 만들고, 억지로라도 독후감을 쓰게 만든다. 하지만 여씨는 “과도한 ‘독서 후 과제’는 아이들의 흥미를 반감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독서를 마친 아이에게 ‘이 책의 주제가 뭐니?’ 하는 식으로 꼬치꼬치 캐묻지 말았으면 합니다. 어른들의 탐문성 질문에 아이는 부담부터 갖거든요. 독서 후 과제를 꼭 하고 싶다면, 저는 ‘명상하기’를 권합니다. 책을 다 읽은 아이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인물을 하나 정하게 한 후 잠깐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그려보게 하는 것입니다. 요즘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 순간이 바로 집중력이 길러지는 순간이라고 해요.”
아이가 책에서 가장 감동받은 부분을 독서기록장에 옮겨 적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
아이가 책을 읽으며 가장 감동받은 부분에 밑줄을 긋도록 하는 것도 좋은 독서지도법이다. 책읽기를 마친 후에는 아이가 자신의 독서기록장에 밑줄 친 부분을 그대로 옮겨 적도록 한다. 독서기록장에 ‘황금 글귀’나 ‘○○의 보석상자’처럼 예쁜 이름을 붙여주면, 아이는 이 노트에 더욱 애착을 갖는다. “노트에 글을 쓰는 것조차 귀찮아하는 아이는 어떻게 지도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아이가 밑줄 친 부분을 엄마가 대신 옮겨 적어도 된다”고 답했다. 그 작업을 통해 엄마는 아이의 독서 수준을 가늠하고, 아이는 독서기록장을 보면서 자신이 읽은 책들을 되새길 수 있다고 한다.
아이의 나이와 발달 정도에 맞춰 독서교육법도 달라져야 한다. 여씨는 “초등학교 3, 4학년 때는 책을 읽으며 감동받는 것이 중요하다면 5, 6학년 때는 본격적으로 비판의식과 창의적 사고력을 길러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가 초등학교 고학년생의 사고력을 길러주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제시한 것이 바로 토론학습이다.
“교단에 선 후 꾸준히 ‘일기 지도’와 ‘독서 지도’를 했더니, 아이들은 책읽기와 글쓰기를 즐기게 됐어요. 그런데 많은 책을 읽고 날마다 글을 쓰는 아이들의 생각이 기대한 만큼 크게 변하거나 깊어지지 않더라고요. 답답한 마음에 이리저리 방법을 찾던 중 만난 것이 바로 토론학습이었습니다.”
여씨가 토론학습을 수업에 도입한 것은 경북 포항 지곡초등학교에서 근무하던 9년 전. 그는 방과 후 토론학습 전문가인 김병윤 포항공대 교수를 초청, 두 달간 반 아이들과 함께 강의를 들으면서 토론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가 “발표해보자”고 하면 쥐죽은 듯 조용해지던 반 아이들이 토론교육을 받은 후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데 주저함이 없어졌다.
“한국의 공교육을 받으며 자란 아이들이 토론을 어려워하는 이유는 자기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A는 B다’식의 단답형으로 공부하다 보니 ‘A는 왜 B일까’ 하는 의문조차 갖지 않은 거죠.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거기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를 밝히는 훈련을 함으로써 아이들은 생각하는 능력을 조금씩 기를 수 있었어요. 토론은 어떤 형태의 학습보다 개개인의 참여도와 성취도가 높아요.”
토론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그가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일러준 것은 바로 ‘주장을 위한 6단 논법’이다. 그는 “‘6하 원칙(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에 입각해 신문기사를 쓰듯 토론에서 주장을 펼칠 때도 6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설명한다.
“우리가 주장을 내세울 때, 먼저 안건(1단계)에 대해 결론을 밝히고(2단계) 그런 결론에 이르게 된 이유를 말합니다(3단계).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주장과 이유가 합리적으로 연결돼야 해요. 이를 위해서는 자신이 왜 그런 주장을 하게 됐는지 이유만 밝히는 것보다는 배경 상황이나 유사한 자신의 경험, 또는 이미 증명된 관련 이론을 들어 설명하는 것이 좋겠죠. 이것이 ‘충분히 설명하기(4단계)’입니다. 의견이 대립할 때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문제가 의외로 쉽게 풀리기도 합니다. ‘반론에 대한 고려’가 바로 5단계죠. 마지막으로 어떤 일에든 찬성도 반대도 아닌 예외적인 부분이 존재하는 것을 생각하며 ‘정리’하는 과정(6단계)이 필요합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6단 논법으로 정리하는 공부를 계속하면, 그것만으로도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생각을 하게 돼요.”
‘텔레비전을 없애야 할까’ 등 생활과 밀접한 주제로 아이들의 토론 참여 유도
여씨는 ‘주장의 6단 논법’을 골치 아파하던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주제를 던져 토론을 유도했다. “좋아하는 남자친구(짝사랑)를 보기 위해 우리 반 교실에 자주 드나드는 옆 반 영희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물으며 “영희 문제를 ‘6단 논법’으로 풀어보자”고 제안한 것. 그러자 아이들은 ‘공부에 방해가 되니 막아야 한다’ ‘좋아하는 마음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므로 막을 수 없다’ ‘막을수록 보고 싶어지니까 나중에 영희가 나쁜 행동을 할지도 모른다’ 등의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토론이 과열되면, 그는 “너희도 경험이 있는 모양이구나” 하며 아이들을 다독거렸다. ‘누나를 무시하는 동생을 어떻게 할 것인가’ ‘산타클로스는 존재할까’ ‘편식을 하면 안 될까’ ‘텔레비전을 없애야 하는가’ 등의 생활과 밀접한 주제는 아이들이 즐겁게 토론에 참여하도록 만든다.
토론학습은 생각하는 힘과 논리력을 길러줄 뿐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공부하고 혼자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갖도록 돕는다. ‘독도는 우리 땅인가’ ‘한국과 미국이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등의 시사적인 이슈를 토론 주제로 삼으면, 아이들은 개념 정리부터 관련 이론 탐색, 참고문헌 찾기, 반론 고려 등을 하며 폭넓게 공부하게 된다는 것.
“제가 근무하던 학교에서는 1년에 한 번씩 4~6학년 전 학급이 참여하는 토론대회를 열었어요. 우리 반은 ‘생명공학이 발달하면 환경오염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를 놓고 찬반 토론을 벌였죠. 처음에는 생명공학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던 아이들이 책을 읽고 인터넷을 뒤지며 생명공학의 개념부터 정리하더군요. 심지어 전문가에게 이메일을 보내 생명공학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묻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생명공학이 발달하면 불치병을 치료하고 식량의 생산량을 높일 수는 있지만, 유전자 조작기술이 인체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단점도 알게 됐습니다. 토론학습을 통해 아이들은 정보를 찾고 관련된 지식을 모아 자신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능력, 상대방의 주장을 듣고 그 속에 담긴 내용을 변별해 문제를 가려내는 능력,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어요.”
토론은 ‘하나의 문제’에 대해 찬성과 반대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동등한 의견 진술의 기회를 갖고 설득력 있는 논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는 것이다. 여씨는 “토론학습이 보다 효과를 발휘하려면, 제비뽑기를 해서 찬성팀과 반대팀을 나누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팀의 토론패널로 나서면서 아이들은 유연한 사고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찬반으로 갈려 이긴 쪽이 있다 해도 이긴 주장이 꼭 옳은 것은 아니며, 안건에 벗어나지 않으면서 논리적으로 일관되게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러한 토론교육을 가정에서도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3, 4학년인 자녀에게 ‘만화책만 읽는 것이 나쁜가’라는 주제로 부모가 토론을 제안해보세요. 자신의 생활과 밀접하게 맞닿은 주제라서 아이들이 먼저 대화에 흥미를 보일 거예요. 아이가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제시할 때,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아이에게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설명을 잘하지 못하면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정립하도록 옆에서 도와주세요.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할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다면, 토론방법과 절차를 합의해 직접 토론에 들어가야 합니다. 아이가 찬성편이 되면 부모는 반대편이 되고, 다음에는 서로 입장을 바꿔서 약식 토론을 전개하세요. 토론을 할 때 부모는 무엇보다 아이에게 많은 질문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토론을 마친 다음 날, 반드시 어제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다시 들어보세요. 그때 사용하는 어휘의 종류와 수준을 주의 깊게 살피면, 토론을 통해 아이의 언어 능력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언어 능력 키우려면 독서·토론·논술 교육 함께 이루어져야
그는 토론이 끝나면 반드시 글쓰기로 수업을 마무리지었다고 한다. 토론을 통해 자신의 생각이 변화된 과정을 글로 쓰면서 최종적으로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창의적이고 좋은 이유를 들어 주장을 전개한 글, 설명이 훌륭한 글, 반론 고려가 뛰어난 글, 어느 한 군데라도 남다른 생각이 들어간 글은 꼭 아이들에게 읽어줬다고 한다.
“언어로 생각하고, 말하고, 글로 표현하는 언어능력을 향상시키려면 독서·토론·논술 교육이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 지금껏 우리는 언어 능력을 키우기 위해 ‘무조건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라’고 가르쳤지만, 사실 보다 구체적인 원칙이 필요해요. 먼저 아이들이 원해서 스스로 책을 찾아 읽게 해야 합니다. 그 다음, 생각을 깊고 넓게 하는 방법을 가르쳐서 일정한 규칙에 따라 토론해보게 하는 거죠. 토론을 통해 보다 풍부해진 생각을 재미있게 쓰는 (주장의 ‘6단 논법’으로 논술) 가운데 아이들은 저절로 언어 능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현재 고등학생 아들을 키우는 어머니이기도 한 여희숙씨는 아이에게 사교육을 거의 시키지 않았다. 아이가 중학교에 다닐 때 “수학과 영어 공부를 보충하고 싶다”고 해서 잠깐 학원에 보냈을 뿐, 그는 아들과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다양한 책을 읽는 데 주력했다고 한다.
“아들은 학교 성적이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니지만 스스로 공부할 줄 아는 아이입니다. 언젠가 책을 많이 읽은 아들의 문학 성적이 나빠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아이는 ‘문제를 푸는 방법론이 잘못됐다’고 실패 원인을 분석하더군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저는 아들이 마음에서 우러나 즐겁게 공부하고 자신에게 맞는 공부법을 찾도록 기다리고 있어요.”
독서와 글쓰기 즐기는 아이로 키우기
서울교대 국어교육과 원진숙 교수(43)는 10여 년 전 고려대에서 ‘논술교육’과 관련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예비 초등교사들에게 작문과 화법, 독서교육을 가르치는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차근차근 읽고 쓰는 능력을 발달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읽기와 쓰기를 가르치는 국어 교과는 다른 모든 교과 학습을 수행하도록 하는 도구 학습이에요. 하지만 도구로서의 기초 기능에서 더 나아가 고등사고를 수행하는 기능을 하죠. 우리가 사고를 할 때도 언어를 이용하고, 언어를 통해 표현하니까요.”
원 교수는 많은 부모들이 아이가 수학을 못하면 수리·연산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문제가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서 정답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그는 사회나 과학 등 다른 교과도 마찬가지로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며 읽고 쓰는 능력은 범교과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측정하는 척도가 된다고 말한다. 때문에 어려서부터 읽기와 쓰기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그런데 문제는 실제 국어교육이 행해지고 있는 교실을 들여다보면 글 읽는 교육이 돼야 할 국어시간에 단편적인 지식을 배울 뿐 정작 있어야 할 읽기 경험은 없다는 점이다. 원 교수는 더군다나 논술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논술학원과 족집게 논술 과외가 성행하고 있는 걸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안타깝다고 말한다.
“사교육 현장에서 벌어지는 논술교육 행태를 보면 아찔해요. 아이들 논술을 채점하면서 하나같이 천편일률적이고 개성 없는 글을 쓰는 데 깜짝 놀랐어요. 알고 보니 사교육 시장에서 예상문제를 뽑아 모범답안을 가르친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아이들은 어떤 문제가 나오든 자기가 암기한 지식들을 쏟아붓고 나가는 거예요. 논술을 이런 방식으로 교육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거예요. 논술시험에 정답이 있다는 게 참으로 놀라울 뿐이죠.”
그는 논술은 단순히 읽고 쓰는 기술로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주제에 대해 자신만의 생각을 독창적으로, 명료하게, 창의적으로 표현해내는 것이 관건이라고 설명한다. 정형화된 글보다는 꾸준한 독서를 통해 배우고 익힌 것들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글이 높게 평가받는다는 것.
“세계 어디를 가봐도 우리나라 아이들처럼 많은 시간을 공부에 투자하는 사례는 찾기 힘들 거예요. 몇 년 전 영국 BBC 방송에서 대치동의 한 특목고 대비 학원을 해외토픽으로 내보낸 적이 있어요. 14, 15세밖에 안된 아이들이 밤 12시 넘도록 밀폐된 공간에 모여 과외수업을 듣는다는 게 그들로서는 놀라운 거죠. 그런데 그렇게 많은 공부를 한 아이들이 막상 사회에 나와 직장생활을 시작하면 기업에서는 정작 필요한 공부는 전혀 안됐다면서 비싼 돈을 들여 재교육을 시켜요. 경제적으로 엄청난 손실이죠.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아이들이 초·중·고 시절의 과도한 학습 부담으로 인해서 공부에 넌더리를 친다는 거예요.”
그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공부하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다는 걸 알지 못하고 진저리치게 만드는 우리의 교육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자녀가 어릴 때부터 글을 읽고 쓰는 걸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먼저 집안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부모는 관심이 온통 부동산에 쏠려 있으면서 아이들한테만 책을 읽으라고 하면 아이들이 책을 좋아할 리 없다는 것. 그 다음은 부모가 책을 보는 안목을 지녀 아이들이 발달 단계에 맞게 책을 고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한다. 또 미취학 아동이나 초등 저학년 아이들에겐 부모가 좋은 책을 골라 읽어주는 것이 책읽기를 즐기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매일 30분만 온 가족이 하던 일을 멈추고 아주 편안한 자세로 책 읽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일주일에 한 번은 함께 서점에 가서 책을 고르는 안목도 키워주고요.”
독후감 강요 말고 원하는 글 쓰게 해야, 독자 반응 경험케 하면 쓰기 실력 신장돼
원 교수는 논술을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아이에게 토론을 시키거나 독후감을 쓰도록 강요하면 독서를 또 하나의 부담스러운 과제로 여길 수 있다고 충고한다. 그는 “책 읽는 건 아주 자연스럽고 즐거운 것인데 아이들에게 책읽기가 점점 스트레스이자 강요가 돼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앞으로 논술시험 본다는데 그렇게 책을 안 읽으면 어떻게 할 거냐’고 말하며 책을 읽으라고 종용하는 건 또 다른 형태의 고문이라는 것.
아이가 책에 관심을 갖게 만든 다음에는 거창한 토론이 아닌 대화를 통해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한 소감을 나누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는 말하고 쓰는 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표현 욕구인데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그러한 재능을 잃게 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어린아이가 있는 집에 가보면 대개 벽이 온통 아이들 낙서로 가득 차 있잖아요. 자신의 사진과 글을 올려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싸이월드가 유행하고, 알타미라 동굴벽화가 남아 있는 건 인간의 본능적인 표현 욕구를 증명해줘요. 그런데 우리의 교육 형태가 아이들의 그러한 욕구를 점차 거세시키는 것 같아요.”
그는 “아이들의 쓰기 능력이 받아쓰기 실력이라고 생각하는 부모가 많아 받아쓰기 시험을 잘 못 보면 큰일이 난 것처럼 생각하는데 쓰기란 의미를 구성하고 표현하는 활동이지 맞춤법이 아니다”라며 “자신의 수준에 맞는 언어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줄 알게 하는 것이 아이의 삶을 가꾸는 교육”이라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원인과 결과에 맞게 써야 한다, 시간적 순서에 맞게 써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아이들이 쓰기를 부담스러워하게 만들어요. 논리적 글쓰기를 강요하기보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책을 좋아하고, 글을 통해 표현하는 것을 즐기게끔 돕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죠.”
그는 아이들이 혼자서도 많이 배우지만 혼자서 읽고 쓴 것을 공유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좋다며 이웃 아이들과 또래 집단을 구성해 자연스럽게 자신이 읽고 쓴 것을 발표하게끔 해볼 것을 권했다. 또한 아이가 인터넷 공간에 글을 올리게 하고, 가족들이 댓글을 달아 반응을 보여주면 아이가 자신의 글에 대한 부모, 친구, 순수한 독자의 반응을 경험하게 돼 자연스럽게 쓰기 실력이 신장된다고 한다.
원 교수는 부모가 아이의 성공에 대한 강박증에서 벗어나 책 읽는 자체가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경험인가를 깨달을 수 있도록 본보기가 돼줄 것을 당부했다.
▼ 독서치료연구소 하제 소장
아이의 마음을 열어주는 독서법
“독서치료는 독서교육과는 또 다른 분야예요. 독서교육은 책을 효과적으로 읽고 활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고, 독서치료는 심리상담에 책을 활용하는 것이지요. 책을 읽고 책의 내용이나 지은이의 생각을 알아내는 것보다는 책을 읽은 느낌이 어떠했는지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아이의 마음을 알아가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하제독서치료연구소 하제 소장(40)은 대학 졸업 후 사단법인 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와 인연을 맺으며 독서교육에 첫발을 들여놓았다. 그 후 연세대학교 사회교육원에서 ‘NIE(Newspaper In Education) 인성교육’을 공부하며 독서교육과 상담을 접목하는 연구를 시작해 지금은 독서치료사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독서치료는 음악치료나 미술치료와 마찬가지 형태로 책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독서치료라는 개념이 도입된 지는 10년 남짓 됐고, 최근 사람들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고 한다. 독서치료는 동일시-카타르시스-성찰의 3단계로 이루어지는데 먼저 아이가 처한 상황과 가장 비슷한 문학책을 읽게 한다. 형제끼리 다툼이 심할 때는 형제의 이야기가 담긴 동화를 보여주고, 아빠와 관계가 좋지 않을 때는 그에 맞는 동화를 읽게 한다. 그러고 난 다음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동일시라는 것은 책의 주인공과 자기 자신, 주인공이 처한 환경과 자신의 환경을 같게 생각하는 거예요. 주인공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주인공의 마음이 어떠했을 것 같은지 주인공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지요. 본인의 이야기를 하라고 하면 못하는 아이들도 주인공에 대해 말해보라고 하면 별 거부감 없이 이야기를 잘하거든요.”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주인공의 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고 한다. 책의 내용을 빌려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쏟아내고 나면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욕구도 생기고 자신감도 생긴다고. 이때 비로소 상대방의 말이 귀에 들어오고 배려하는 마음도 갖게 된다고 한다.
그 다음 과정은 성찰.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는 단계다. 책에 나온 주인공처럼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사용할 것인지 아이와 함께 결정을 내려보는 것. 독서치료를 할 때는 지식을 전달하는 책보다는 아이들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문학책이 효과적이라고 한다.
10여 년간 독서치료사로 활동해온 하제 소장은 현재 아이들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로 공부 스트레스와 애정 결핍, 애정 과잉을 꼽는다.
하 소장은 “대부분의 부모가 자신이 자라온 성장 배경과 경험에 근거해 아이들에게 사랑을 전달하는데 그 사랑이 너무 넘치거나 모자랄 때 문제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책을 통해 아이들의 문제를 파고들어가 보면 어린 시절 부모의 경험이 아이들 양육에 영향을 미쳐 문제를 일으킨 경우가 많다는 것. 이럴 때는 가족 모두가 함께 독서치료를 받기도 한다. 어린이 책을 선정해 함께 읽은 다음 이야기를 나누며 문제해결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부딪치는 문제들 책을 통해 풀면 가족사랑 커지고 좋은 독서습관도 생겨
하 소장은 권위적이고 사랑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빠 때문에 고민하는 아이들에게는 ‘나는 아빠를 사랑해요’ (교학사) ‘아빠가 내게 남긴 것’(베틀북)을, 부모와 대화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아이들에게는 ‘들키고 싶은 비밀’(창비) ‘놀기 과외’(비룡소)를 읽게 한 뒤 이야기를 나누어볼 것을 권했다. 이와 함께 아이들과 책을 매개로 이야기하고자 할 경우 어른의 입장에서 책에 나온 이야기를 훈계조로 이야기하거나 책 내용을 확인하는 듯한 질문은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아이들이 책을 읽고 어떤 느낌을 가졌는지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 “등장인물 중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니?” “읽고 나니까 어떤 느낌이 들어?” “등장인물 중에 바꾸고 싶은 사람이 있니?”와 같이 책 중심이 아닌 아이 중심에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고.
“부모가 함께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해요. 부모가 아이의 문제 상황을 판단하고 그에 맞는 책을 찾아 먼저 읽어본 후에 아이한테 권해주어야 하죠. 부모가 책을 읽으며 어떤 느낌과 생각이 들었는지 아이에게 이야기해주며 대화를 유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또한 단기간에 아이들의 행동이 변화할 것을 기대하기보다는 아이와 함께 책을 읽고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 데 의의를 두는 것이 좋아요.”
독서치료라 해서 특별히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무수히 많은 책 중에서 내 아이에게 꼭 필요한 책을 선택해 독서치료의 방법을 응용하는 것이다. 하 소장은 “공부에 영 관심이 없는 아이, 친구와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 내성적인 아이와 외향적인 아이, 형제자매 간에 갈등이 있는 아이 등이 일상생활에서 부딪치는 문제들을 책을 통해 풀어나갈 수 있게 도와주면 가족 간의 정도 돈독해지고, 좋은 독서습관도 들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경우에는 이런 책’ 하고 기계적으로 공식을 적용하는 것은 옳은 방법이 아니다. 먼저 부모가 독서치료에 대해 알아봐야 한다. 인터넷이나 관련 도서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독서치료에 대한 개념을 정립한 뒤 수많은 추천도서 중에서 내 아이에게 맞는 책을 골라낼 수 있는 안목을 갖추어야 한다. 하 소장이 운영하는 하제독서치료연구소 사이트(www.hajebook.com)를 이용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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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독서교육개발원 남미영 원장
아이에게 올바른 독서습관 길러주기
공자의 제자들은 언제 어디서나 스승의 책을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고 한다. 죽간(종이가 발견되기 전에 사용했던 필기도구)을 묶은 가죽 끈이 해어져 그 끈을 여러 번 다시 이은 책은 공자의 책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공자는 왜 책을 그렇게 험하게 다루었을까? 그 이유는 공자가 책을 한번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죽간의 가죽 끈이 끊어질 때까지 반복해 보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독서법 지도에 앞장서고 있는 한국독서교육개발원(www. kredi.co.kr) 남미영 원장(63)은 위의 공자 이야기처럼 독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책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사고의 폭을 넓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요즘 어린이들의 독서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어요. 하루에 10권 읽는 아이들도 있고, 20~30분에 책 한 권을 뚝딱 읽어버리는 아이들도 많아요. 고기를 꼭꼭 씹어서 천천히 먹으면 고기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독서도 마찬가지예요. 천천히 읽으면서 책이 주는 감동을 느끼는 게 중요하죠.”
23년 동안 한국교육개발원(KEDI)에 재직하며 국어교육연구실장을 역임한 남미영 원장은 책을 많이 읽는 것보다는 생각하며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저급 독자는 줄거리만 읽어 내려가는 사람이고 고급 독자는 줄거리를 기본으로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가며 책을 읽는 사람이라는 것이 남 원장의 얘기. 예를 들어 ‘장발장’을 읽을 경우 저급 독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줄거리만 기억하며 읽기 때문에 금방 책 한 권을 읽지만 고급 독자는 ‘빵 한 조각을 훔쳤는데 감옥에 보낸다는 것은 가혹하지 않나?’ ‘과연 정의란 무엇인가?’ ‘신부가 거짓말을 해서 되겠는가?’ ‘신부가 솔직히 이야기했다면 장발장은 어떤 인생을 살게 됐을까?’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읽기 때문에 책 한 권을 읽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천천히 읽으면서 책이 주는 감동 느끼는 것이 중요
책을 읽기 위해서는 어휘력이 가장 중요하고 그 밖에도 집중력, 변별력, 관찰력, 추리력, 상상력 등 18가지 능력이 필요하다. 어휘력이 낮을 경우 책을 읽어도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해 만화처럼 쉽게 읽히는 책들만 찾게 된다고 한다.
“만화는 대부분 그림으로 상황 설명이 되기 때문에 다양한 어휘를 사용하지 않아요. ‘화살이 쏜살같이 날아왔다’는 문장을 만화에서는 화살 그림에 ‘슝’ 하는 단어 하나 붙이면 되거든요. ‘시나브로’와 같은 아름다운 우리 말들은 오직 책 속에서만 만날 수 있죠.”
남미영 원장은 어휘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올바른 책읽기 습관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올바른 독서습관을 기르는 방법 중 한 가지는 아이 수준에 맞는 책을 골라 아이와 부모가 함께 책을 읽는 것. 책을 읽다가 아이가 이해하지 못하는 단어가 나올 때는 부모가 적극적으로 그 뜻을 설명해주면서 아이에게 새로운 어휘를 알아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리고 어휘력이 뛰어난 아이는 교과서 내용도 쉽게 이해하기 때문에 학교 공부도 잘하게 된다고.
“아이를 고급 독자로 만들기 위해서는 부모의 태도가 매우 중요해요. 아이가 책을 읽고 난 다음에는 독후감을 쓰라고 강요하는 대신 ‘네가 주인공이었다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 것 같니?’ 등과 같은 질문을 하면서 아이와 함께 부모의 생각을 나누는 것이 좋아요.”
아이와 함께 서점이나 도서관에 자주 다니면서 아이가 책에 대한 호기심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 또한 부모가 책 읽는 모습을 아이에게 자주 보여주면 아이가 그대로 따라 하게 되고, 책을 좋아했던 위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아이도 덩달아 책을 읽으려 하는 경우도 있다고.
끝으로 남미영 원장은 “초등학교 때 들인 독서습관이 평생을 좌우하는 만큼 아이가 어려서부터 올바른 독서법을 몸에 익히도록 부모가 도와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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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교사 출신 독서토론 강사 여희숙
효과적인 독서·논술·토론 교육
“아이가 책읽기를 싫어한다고요? 그럼 스스로 읽겠다고 할 때까지 엄마가 읽어주세요.”
독서토론 강사 여희숙씨(46)는 22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며, 독서와 토론 지도를 학급경영에 접목한 교육전문가. 5년 전 교직에서 물러난 그는 전국 곳곳에서 교사와 학부모를 대상으로 독서·토론 지도법을 강의하고 있다.
“초등학생 때 독서능력을 키우지 못한 아이는 중·고교에 진학하면 학습능력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자녀가 어렸을 때 책값을 아끼면, 나중에 수천만원의 사교육비를 써야 할지도 몰라요. 그렇다고 거창하게 ‘독서지도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지 마세요. 아이들은 ‘지도’받는 것에 별로 흥미가 없으니, 먼저 책과 놀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세요.”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재미있게 책을 읽을까. 여희숙씨는 “‘책을 읽지 못하게 하는 전략’으로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라”고 조언한다. 아이들을 멋진 책의 세계로 초대하려면 극적인 첫 만남이 필요하다는 것. 1천 권의 책을 교실에 놓아둔 여씨는 새 학기가 되면 아이들에게 “학급문고에 절대 손대지 말라”며 당부했다고 한다. 책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기 위해서다. 2주일쯤 지나 그가 학급문고에서 한 권의 책을 빼내들고 일부를 읽어주자 아이들은 놀라운 관심을 보이며 듣기에 열중했다고 한다. 그 책 속에 있는 다른 이야기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넌지시 일러주면, 성질 급한 아이들은 그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을 정도였다.
“한 달간 아이들이 책을 못 읽게 하다가, 4월에 학급문고를 여는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때 문고에 있는 책 제목과 저자 맞히기 게임 등을 하며 아이들의 흥미를 돋웠어요. 그러면 아이들은 ‘드디어 책을 읽는다’며 설렘을 감추지 못합니다. 이 방법을 가정에서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어요. 아이는 책에 손도 못 대게 하면서, 엄마는 그 책을 ‘정말 재밌다’고 읽으면 아이의 호기심은 커지게 마련입니다. 동화책 읽는 엄마의 모습만큼 아름답고 자극적인 독서지도가 또 있을까요?”
‘책 읽어주기’는 엄마가 실천할 수 있는 중요한 독서교육법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어렵고 복잡한 내용의 책이라도 누군가 들려주면 혼자 읽을 때보다 훨씬 더 잘 이해한다는 것. “15세 전에는 책을 읽는 것보다 듣는 데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 여희숙씨의 설명이다.
“엄마가 자녀의 독서 수준보다 약간 높고 또 큰 소리로 읽기에 적당한 책을 골라 읽어주면 아이는 평생 좋은 독서습관을 갖게 됩니다. ‘천천히 읽을 수 있다’는 것도 ‘책 읽어주기’의 장점이에요. 책을 천천히 읽어주며 아이들이 책을 ‘마음으로 보도록’ 이끄는 것이죠.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기를 계속하면, 커다란 변화를 관찰할 수 있어요. 한글을 깨치지 못해 고생하던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두어 달 지나면 저절로 책을 읽게 되거든요.”
책을 읽어주거나 읽게 하고 나면 어른들은 반드시 뭔가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질문할 거리를 만들고, 억지로라도 독후감을 쓰게 만든다. 하지만 여씨는 “과도한 ‘독서 후 과제’는 아이들의 흥미를 반감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독서를 마친 아이에게 ‘이 책의 주제가 뭐니?’ 하는 식으로 꼬치꼬치 캐묻지 말았으면 합니다. 어른들의 탐문성 질문에 아이는 부담부터 갖거든요. 독서 후 과제를 꼭 하고 싶다면, 저는 ‘명상하기’를 권합니다. 책을 다 읽은 아이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인물을 하나 정하게 한 후 잠깐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그려보게 하는 것입니다. 요즘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 순간이 바로 집중력이 길러지는 순간이라고 해요.”
아이가 책에서 가장 감동받은 부분을 독서기록장에 옮겨 적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
아이가 책을 읽으며 가장 감동받은 부분에 밑줄을 긋도록 하는 것도 좋은 독서지도법이다. 책읽기를 마친 후에는 아이가 자신의 독서기록장에 밑줄 친 부분을 그대로 옮겨 적도록 한다. 독서기록장에 ‘황금 글귀’나 ‘○○의 보석상자’처럼 예쁜 이름을 붙여주면, 아이는 이 노트에 더욱 애착을 갖는다. “노트에 글을 쓰는 것조차 귀찮아하는 아이는 어떻게 지도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아이가 밑줄 친 부분을 엄마가 대신 옮겨 적어도 된다”고 답했다. 그 작업을 통해 엄마는 아이의 독서 수준을 가늠하고, 아이는 독서기록장을 보면서 자신이 읽은 책들을 되새길 수 있다고 한다.
아이의 나이와 발달 정도에 맞춰 독서교육법도 달라져야 한다. 여씨는 “초등학교 3, 4학년 때는 책을 읽으며 감동받는 것이 중요하다면 5, 6학년 때는 본격적으로 비판의식과 창의적 사고력을 길러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가 초등학교 고학년생의 사고력을 길러주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제시한 것이 바로 토론학습이다.
“교단에 선 후 꾸준히 ‘일기 지도’와 ‘독서 지도’를 했더니, 아이들은 책읽기와 글쓰기를 즐기게 됐어요. 그런데 많은 책을 읽고 날마다 글을 쓰는 아이들의 생각이 기대한 만큼 크게 변하거나 깊어지지 않더라고요. 답답한 마음에 이리저리 방법을 찾던 중 만난 것이 바로 토론학습이었습니다.”
여씨가 토론학습을 수업에 도입한 것은 경북 포항 지곡초등학교에서 근무하던 9년 전. 그는 방과 후 토론학습 전문가인 김병윤 포항공대 교수를 초청, 두 달간 반 아이들과 함께 강의를 들으면서 토론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가 “발표해보자”고 하면 쥐죽은 듯 조용해지던 반 아이들이 토론교육을 받은 후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데 주저함이 없어졌다.
“한국의 공교육을 받으며 자란 아이들이 토론을 어려워하는 이유는 자기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A는 B다’식의 단답형으로 공부하다 보니 ‘A는 왜 B일까’ 하는 의문조차 갖지 않은 거죠.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거기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를 밝히는 훈련을 함으로써 아이들은 생각하는 능력을 조금씩 기를 수 있었어요. 토론은 어떤 형태의 학습보다 개개인의 참여도와 성취도가 높아요.”
토론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그가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일러준 것은 바로 ‘주장을 위한 6단 논법’이다. 그는 “‘6하 원칙(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에 입각해 신문기사를 쓰듯 토론에서 주장을 펼칠 때도 6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설명한다.
“우리가 주장을 내세울 때, 먼저 안건(1단계)에 대해 결론을 밝히고(2단계) 그런 결론에 이르게 된 이유를 말합니다(3단계).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주장과 이유가 합리적으로 연결돼야 해요. 이를 위해서는 자신이 왜 그런 주장을 하게 됐는지 이유만 밝히는 것보다는 배경 상황이나 유사한 자신의 경험, 또는 이미 증명된 관련 이론을 들어 설명하는 것이 좋겠죠. 이것이 ‘충분히 설명하기(4단계)’입니다. 의견이 대립할 때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문제가 의외로 쉽게 풀리기도 합니다. ‘반론에 대한 고려’가 바로 5단계죠. 마지막으로 어떤 일에든 찬성도 반대도 아닌 예외적인 부분이 존재하는 것을 생각하며 ‘정리’하는 과정(6단계)이 필요합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6단 논법으로 정리하는 공부를 계속하면, 그것만으로도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생각을 하게 돼요.”
‘텔레비전을 없애야 할까’ 등 생활과 밀접한 주제로 아이들의 토론 참여 유도
여씨는 ‘주장의 6단 논법’을 골치 아파하던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주제를 던져 토론을 유도했다. “좋아하는 남자친구(짝사랑)를 보기 위해 우리 반 교실에 자주 드나드는 옆 반 영희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물으며 “영희 문제를 ‘6단 논법’으로 풀어보자”고 제안한 것. 그러자 아이들은 ‘공부에 방해가 되니 막아야 한다’ ‘좋아하는 마음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므로 막을 수 없다’ ‘막을수록 보고 싶어지니까 나중에 영희가 나쁜 행동을 할지도 모른다’ 등의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토론이 과열되면, 그는 “너희도 경험이 있는 모양이구나” 하며 아이들을 다독거렸다. ‘누나를 무시하는 동생을 어떻게 할 것인가’ ‘산타클로스는 존재할까’ ‘편식을 하면 안 될까’ ‘텔레비전을 없애야 하는가’ 등의 생활과 밀접한 주제는 아이들이 즐겁게 토론에 참여하도록 만든다.
토론학습은 생각하는 힘과 논리력을 길러줄 뿐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공부하고 혼자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갖도록 돕는다. ‘독도는 우리 땅인가’ ‘한국과 미국이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등의 시사적인 이슈를 토론 주제로 삼으면, 아이들은 개념 정리부터 관련 이론 탐색, 참고문헌 찾기, 반론 고려 등을 하며 폭넓게 공부하게 된다는 것.
“제가 근무하던 학교에서는 1년에 한 번씩 4~6학년 전 학급이 참여하는 토론대회를 열었어요. 우리 반은 ‘생명공학이 발달하면 환경오염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를 놓고 찬반 토론을 벌였죠. 처음에는 생명공학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던 아이들이 책을 읽고 인터넷을 뒤지며 생명공학의 개념부터 정리하더군요. 심지어 전문가에게 이메일을 보내 생명공학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묻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생명공학이 발달하면 불치병을 치료하고 식량의 생산량을 높일 수는 있지만, 유전자 조작기술이 인체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단점도 알게 됐습니다. 토론학습을 통해 아이들은 정보를 찾고 관련된 지식을 모아 자신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능력, 상대방의 주장을 듣고 그 속에 담긴 내용을 변별해 문제를 가려내는 능력,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어요.”
토론은 ‘하나의 문제’에 대해 찬성과 반대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동등한 의견 진술의 기회를 갖고 설득력 있는 논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는 것이다. 여씨는 “토론학습이 보다 효과를 발휘하려면, 제비뽑기를 해서 찬성팀과 반대팀을 나누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팀의 토론패널로 나서면서 아이들은 유연한 사고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찬반으로 갈려 이긴 쪽이 있다 해도 이긴 주장이 꼭 옳은 것은 아니며, 안건에 벗어나지 않으면서 논리적으로 일관되게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러한 토론교육을 가정에서도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3, 4학년인 자녀에게 ‘만화책만 읽는 것이 나쁜가’라는 주제로 부모가 토론을 제안해보세요. 자신의 생활과 밀접하게 맞닿은 주제라서 아이들이 먼저 대화에 흥미를 보일 거예요. 아이가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제시할 때,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아이에게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설명을 잘하지 못하면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정립하도록 옆에서 도와주세요.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할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다면, 토론방법과 절차를 합의해 직접 토론에 들어가야 합니다. 아이가 찬성편이 되면 부모는 반대편이 되고, 다음에는 서로 입장을 바꿔서 약식 토론을 전개하세요. 토론을 할 때 부모는 무엇보다 아이에게 많은 질문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토론을 마친 다음 날, 반드시 어제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다시 들어보세요. 그때 사용하는 어휘의 종류와 수준을 주의 깊게 살피면, 토론을 통해 아이의 언어 능력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언어 능력 키우려면 독서·토론·논술 교육 함께 이루어져야
그는 토론이 끝나면 반드시 글쓰기로 수업을 마무리지었다고 한다. 토론을 통해 자신의 생각이 변화된 과정을 글로 쓰면서 최종적으로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창의적이고 좋은 이유를 들어 주장을 전개한 글, 설명이 훌륭한 글, 반론 고려가 뛰어난 글, 어느 한 군데라도 남다른 생각이 들어간 글은 꼭 아이들에게 읽어줬다고 한다.
“언어로 생각하고, 말하고, 글로 표현하는 언어능력을 향상시키려면 독서·토론·논술 교육이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 지금껏 우리는 언어 능력을 키우기 위해 ‘무조건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라’고 가르쳤지만, 사실 보다 구체적인 원칙이 필요해요. 먼저 아이들이 원해서 스스로 책을 찾아 읽게 해야 합니다. 그 다음, 생각을 깊고 넓게 하는 방법을 가르쳐서 일정한 규칙에 따라 토론해보게 하는 거죠. 토론을 통해 보다 풍부해진 생각을 재미있게 쓰는 (주장의 ‘6단 논법’으로 논술) 가운데 아이들은 저절로 언어 능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현재 고등학생 아들을 키우는 어머니이기도 한 여희숙씨는 아이에게 사교육을 거의 시키지 않았다. 아이가 중학교에 다닐 때 “수학과 영어 공부를 보충하고 싶다”고 해서 잠깐 학원에 보냈을 뿐, 그는 아들과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다양한 책을 읽는 데 주력했다고 한다.
“아들은 학교 성적이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니지만 스스로 공부할 줄 아는 아이입니다. 언젠가 책을 많이 읽은 아들의 문학 성적이 나빠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아이는 ‘문제를 푸는 방법론이 잘못됐다’고 실패 원인을 분석하더군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저는 아들이 마음에서 우러나 즐겁게 공부하고 자신에게 맞는 공부법을 찾도록 기다리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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