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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빈티지와 재활용만으로도 이토록 멋진 안젤리나 졸리

김명희 기자

2024. 12. 04

일과 사생활에 있어서 자기중심이 뚜렷한 배우 안젤리나 졸리. 그녀는 옷 한 벌에도 진심을 담는다.

영화 ‘마리아’ 프리미어 행사에 참석한 안젤리나 졸리. 실크 드레스는 기존 의상을 재활용한 것이다.

영화 ‘마리아’ 프리미어 행사에 참석한 안젤리나 졸리. 실크 드레스는 기존 의상을 재활용한 것이다.

스타 패션의 시작과 끝은 ‘협찬’이다. 공항 입출국, 새로 개봉하는 영화나 드라마의 시사회, 그 외 무수한 행사 때마다 유명 브랜드의 런웨이에서 갓 건져 올린 따끈한 신상을 갖춰 입는 게 ‘국룰’이 됐다. 누가 더 빨리 혹은 누가 좀 더 센스 있게 코디하느냐의 차이일 뿐, 개인의 취향이나 스타일을 따지는 건 크게 의미가 없다. 할리우드 배우 안젤리나 졸리는 이런 흐름을 의식적으로 거스른다. 그녀는 지난 10월 28일 영화 ‘마리아’ 프리미어 행사에서 베이비핑크 컬러 실크 드레스와 블랙 가운을 매치했는데, 금발 웨이브에 레드 립을 한 그녀를 더욱 고혹적으로 만든 이 드레스는 ‘아틀리에 졸리(Atelier Jolie)’에서 디자인한 빈티지 의상이다.

졸리의 아버지는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존 보이트고, 엄마 마셸린 버트런드 역시 유명 배우였다. 부모가 세계적인 셀럽이었던 덕분에 태어날 때부터 카메라 앞에 선 본 투 비 스타, 아름다운 비주얼과 그에 걸맞은 커리어를 지닌 배우, 3명의 아이를 낳고 3명을 입양한 슈퍼 맘이자 인도주의 활동가…. 이미 너무나도 많은, 탐나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졸리는 지난해 아틀리에 졸리를 론칭하고 패션 사업가라는 직함을 하나 추가했다. 미국 뉴욕의 그레이트 존스 스트리트, 앤디 워홀이 사들여 친구인 화가 장미셸 바스키아에게 빌려준 2층 건물에 자리 잡은 아틀리에 졸리는 데드스톡(Deadstock·재고)을 활용해 업사이클링 의상을 만든다. 졸리는 아틀리에 졸리를 론칭하며 “우리는 되살리고 싶은 옷장의 옷을 수선하거나 업사이클링해 완벽한 핏을 만들고, 버려지는 옷에 새 생명을 불어넣고, 개인적인 의미를 지닌 고품질 의상으로 재창조해낼 것”이라고 밝혔다.

지속 가능 패션을 추구하는 아틀리에 졸리는 그녀의 수십 년에 걸친 인도주의적 활동의 결과이기도 하다. 난민, 사회적 기업과의 네트워크를 통해 제품을 생산해내기 때문이다. 아틀리에 졸리는 이미 탈레반 정권 치하에서 탄압받는 아프간 여성들에게 안전한 일자리를 제공하는 브랜드 ‘자리프 디자인’(Zarif design) 디자인과의 협업을 통해 캡슐 컬렉션을 발표한 바 있다. 아틀리에 졸리는 맞춤옷 제작과 더불어 지역 장인을 위한 갤러리 공간, 난민 단체와 함께 카페 등도 운영하고 있다. 아틀리에 졸리 구상 및 운영에는 베트남과 에티오피아에서 입양한 두 자녀, 팍스와 자하라도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엄마의 옷장에서 영감을 얻는 아이들

졸리가 입었던 디올의 플라워 프린트 드레스를 리폼해 입은 샤일로.

졸리가 입었던 디올의 플라워 프린트 드레스를 리폼해 입은 샤일로.

그러고 보면 졸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지속 가능 패션에 꾸준한 관심을 보여왔다. 아이들이 엄마의 의상을 업사이클링해 공식 석상에 입고 나오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2021년 10월 영화 ‘이터널스’ 프리미어 행사에서 자하라는 프랑스 브랜드 엘리사브의 오트쿠튀르 드레스를 입었는데, 이는 졸리가 2014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입었던 옷이다. 반짝이는 크리스털로 장식한 이 시스루 롱 드레스를 입은 졸리는 그해 오스카 베스트 드레서에 올랐다.

3 4 사브의 크리스털 시스루 드레스를 입었다.

3 4 사브의 크리스털 시스루 드레스를 입었다.

안젤리나 졸리와 브래드 피트 사이에서 태어난 맏딸 샤일로도 며칠 후 열린 ‘이터널스’ 시사회에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드레스를 입고 나왔다. 해당 의상은 졸리가 2019년 영화 ‘말레피센트’ 개봉을 앞두고 기자간담회에서 입었던 디올의 플라워 프린트 드레스다. 샤일로는 이 드레스를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미니원피스로 수선해 깜찍하고 발랄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졸리는 이후 한 인터뷰에서 “아이들에게 특정 스타일의 의상을 강요하지 않는다. 공개 석상에서도 마찬가지다. 가고 싶지 않으면 안 가도 되고, 차려입고 싶지 않으면 안 차려입어도 된다고 말한다. 마침 ‘이터널스’ 행사를 앞두고 아이들이 의욕적으로 차려입고 싶어 해 레드카펫을 지속 가능 패션에 대한 실험 무대로 삼았다”고 밝혔다. 이후 빈티지 드레스를 재현 혹은 재활용하는 것이 할리우드에서 크게 유행했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애프터 파티에선 배우 시드니 스위니가 2004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졸리가 착용했던 화이트 새틴 드레스를 약간의 디테일만 바꾼 채 입고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패션은 자신을 표현하는 가장 창의적이고 재미있는 행위”

배우 시드니 스위니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2004년 졸리가 입었던 드레스를 오마주했다.

배우 시드니 스위니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2004년 졸리가 입었던 드레스를 오마주했다.

패션을 ‘자신을 표현하는 가장 재미있는 행위’라고 정의하는 졸리는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패션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2014년 브래드 피트와 결혼식 당시 베르사체의 커스텀 드레스에 아이들이 직접 그린 그림과 낙서를 수놓은 베일을 매치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지난 9월 30일 뉴욕에서 열린 영화 ‘마리아’ 시사회에서는 파리에서 공수해온 70년 된 빈티지 드레스를 입었다. ‘마리아’는 1950~70년대를 풍미한 그리스 출신의 전설적인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다. 마리아 칼라스가 생전 입었을 법한 드레스를 수소문한 졸리는 프랑스 디자이너 마담 그레(1903~1993)의 아카이브에서 여기에 꼭 맞는 옷을 찾아냈다. 우아한 ‘V’ 자 네크라인과 몸의 실루엣을 따라 흐르는 주름 장식이 인상적인 이 드레스는 ‘드레이프의 여왕’이라 불리는 오트쿠튀르 디자이너 마담 그레가 자신의 최전성기였던 1956년에 제작한 옷이다. 졸리는 레트로풍의 이 드레스에 까르띠에 주얼리와 레드 컬러 하이힐을 매치해 자신만의 스타일로 소화했다.

요즘 옷은 유행을 따라 사서 한 철 입고 버리는 소모품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오죽하면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이라는 표현까지 생겼을까. 자신이 입는 옷의 원단이 어디에서 왔는지, 단추는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바느질은 누가 했는지 알 수 없고 알려고 하는 사람도 없다. 이런 시대에 패션이 트렌드에 의해 좌우되거나 취향의 결정권자가 되는 것을 방관하지 않고,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써 의미를 찾고, 이를 타인과 공유하려 노력하는 안젤리나 졸리. 그녀는 무심한 패션 소비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왜 단순히 디자이너 라벨을 탐내기만 하는가. 당신도 자신에게 꼭 맞는 창의성 넘치는 옷을 만들 수 있다”고.


#안젤리나 졸리 #아틀리에졸리 #빈티지 #여성동아

‌사진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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