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차 가수이자 ‘벨 아빠’ 심신
계절이 바뀌는 사이 키오프의 입지가 달라졌다. 디지털 싱글 앨범 ‘Sticky’와 미니 3집 ‘Lose Yourself’로 두 번의 컴백을 했고, 두 번 모두 음악방송 1위를 꿰찼다. 키오프는 10월 26일과 27일 서울을 시작으로 첫 번째 월드 투어 ‘키스 로드’를 떠났다. 북미 20여 개 도시를 돌며 글로벌 팬들과 만나고 올 예정이다. 그리고 때마침 심신의 신보 발매 소식이 들려왔다. 11월 1일 발표한 ‘이 밤’은 블루스 느낌의 멜로디에 재즈를 접목한 싱글곡으로, 심신이 곡을 쓰고 벨이 작사를 했다. 이보다 더 완벽한 타이밍이 또 있을까. 수화기 너머 심신의 목소리가 밝았다. 며칠 뒤 스튜디오에서 만난 심신의 표정은 목소리보다 더 밝았다.
음원사이트에서 신곡에 대한 반응이 좋던데요. 대부분 신선하다는 반응이에요.
들어본 분들이 평을 좋게 해주더라고요. 별 5개도 나오고(웃음). 사실 ‘이 밤’은 히트를 목적으로 발표한 곡은 아니에요. 그때그때 제가 느끼는 감성을 진솔하게 담아 많은 분에게 제 음악을 들려드리는 게 우선이고, 히트는 두 번째예요.
‘이 밤’은 어떻게 만들게 된 곡인가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공연이 거의 없었잖아요. 그때 곡을 많이 썼는데, ‘이 밤’도 예전에 만든 곡이에요. 지금 발표한 건 크리스마스도 다가오고, 요즘 젊은 친구들이 잘 들을 수 있는 노래 같아서요. ‘이 밤’은 1930∼40년대 미국에서 유행하던 빙 크로스비가 부른 캐럴 스타일로 만든 곡인데, 요즘 이런 클래식한 무드가 다시 유행이더라고요.
‘심신’ 하면 강한 록발라드 곡이 익숙한데, 힘 빼고 부르는 스타일도 잘 어울려요.
제가 샤우팅 창법으로 지르는 곡들을 그동안 많이 불렀어요. 그런데 본래 타고난 소리는 고음보단 저음 쪽이에요. 중학생 때 예고 진학을 위해 성악 레슨을 1년 정도 받았어요. 그때 제 소리가 바리톤이라는 걸 알았죠. 그런데 아버지가 성악가를 반대해서 반항심에 고등학교 때부터는 록에 빠졌어요. 학교 그룹사운드에 들어가 하드록을 본격적으로 했죠. 쇳소리를 만들려고 노력하다가 어느 날 문득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장르가 있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재즈의 본고장 미국에 가서 현지 연주자들과 어울리며 공연도 하고 여러 경험을 쌓았어요.
‘오직 하나뿐인 그대’ ‘욕심쟁이’ 같은 파워풀한 록발라드를 부를 때와 ‘이 밤’ 같은 이지 리스닝 곡을 부를 때 어느 쪽이 더 녹음하기 수월한가요.
저는 예전부터 제가 거의 디렉팅을 다 해왔는데, 이번에 더 시간을 많이 들였어요. 이런 스타일이 낯설고 어려워서 오래 한 게 아니라 예전에는 경제적인 부분 때문에 짧게 끝냈죠. 스튜디오를 빌린 시간 안에 모든 걸 끝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어요. 요즘은 좋은 장비를 갖춘 개인 스튜디오도 많고 경제적인 여건도 좀 나아졌잖아요(웃음). 더 좋은 소리를 내려 공 많이 들였어요.
특히 이번 곡은 딸 벨 양이 작사했는데, 어떻게 부녀가 같이 작업하게 됐나요.
제가 멜로디를 먼저 만들고 거기에 맞는 가사를 고민하던 차에 딸에게 제안했죠. 들어보더니 노래가 예쁘다더라고요. 그로부터 며칠 있다가 새벽 3시쯤 카카오톡으로 가사를 보내왔어요. 멜로디랑 잘 어울리는 건 물론이고 가사와 음 길이도 정확하게 들어맞는 거예요. 딸이 자기도 한 번에 썼대요. 딸과 마음이 통했다고 할까요.
딸이 작사한 노래를 불러 세상에 내놓은 소감이 어떤가요. 가사는 마음에 드나요.
정말 감사할 일이죠. 딸과 이런 작업을 처음 같이 해보는 거니까 히트 부담 없이 정말 좋은 곡으로 만들어보자, 했어요. 일단 가사가 예뻐요. ‘우리 처음 만난 더운 날과 비 오는 날 젖은 두 어깨’처럼 대조적으로 상황을 표현한 부분도 좋고, ‘낙엽 사이 은행들을 밟다 마음을 들켰던 날까지’는 내 마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거죠. 좋아하는 사람과 은행잎 떨어진 길을 걷다가 은행 열매 특유의 냄새를 맡으면 괜히 신경 쓰이고 창피하잖아요. 그런 내 모습에서 사랑을 들켰다는 표현이 얼마나 예뻐요. 그래서 녹음을 할 때도 딸과 같은 풋풋한 스무 살의 심신으로 돌아가 불렀어요. 오래 사랑받는 곡이 되면 좋겠어요.
‘붕어빵’에 나왔던 똘똘한 꼬마, 육각형 아이돌로
지난 10월 29일 SBS MTV ‘THE SHOW’에서 1위를 차지한 키오프.
1990년 ‘그대 슬픔까지 사랑해’로 데뷔해 꽃미남 가수로 큰 인기를 누린 심신 역시 다재다능한 싱어송라이터다. 권총 춤으로 유명한 ‘오직 하나뿐인 그대’는 총 13관왕을 차지하며 그해 각종 가요 시상식에서 신인상과 본상을 휩쓸었다. 1994년과 1995년에는 연기자로도 활동했다. 1996년 결혼과 동시에 호주로 떠나 재즈를 배우던 심신은 이후 컴백과 음악 공부를 계속 해오며 여전히 현역 가수로 활동 중이다. 2004년생인 딸 벨은 심신이 미국 시애틀에서 재즈 공부를 하던 시기에 태어났다.
딸의 끼와 음악 재능은 아빠한테 물려받은 건가요. 특별히 신경 써준 부분이 있나요.
제가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어요. 하루에 10시간 이상 모든 장르의 음악을 들었어요. 그것도 아주 궁합이 좋은 오디오를 매치해서 더 나은 소리를 찾아 들었죠. 제가 거실에서 하루 종일 크게 음악을 트니까 아무래도 혜원이에게 자연스럽게 전 세계 좋은 음악이 입력된 것 같아요. 타고난 재능 외 후천적으로 노력하는 부분도 많았고요. 초등학교 때 클래식 피아노를 한 4년 정도 가르쳤는데 대회에 나가 우수상도 받아오고 그랬어요. 재즈 같은 경우는 빌 에반스, 쳇 베이커 같은 훌륭한 연주자들 책과 악보를 쭉 보고 독학했고요.
벨 양이 작곡도 많이 하잖아요. 작곡은 따로 가르쳤나요.
혼자 이것저것 해보더니 중학교 2학년 때는 크리스마스 노래를 만들더라고요. 자기가 작곡해 노래까지 부른 동영상을 보면서 제가 작곡 프로그램이 깔린 컴퓨터를 선물해줬어요. 그것도 금방 배우더라고요. 작곡을 시작한 이후로는 스스로 음악인들과 교류하면서 꿈을 키워나갔어요. 혼자 잘해내서 대견스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그래요.
작곡하던 딸이 갑자기 아이돌을 하겠다고 했을 때 반대하진 않았나요.
저는 혜원이가 목소리가 크고 다양하게 소리를 낼 줄 아니까 다른 걱정은 안 했는데 딱 한 가지 춤이 걱정이었어요. 요즘 아이돌들은 딱딱 맞춰서 어려운 군무를 추잖아요. 춤을 춰보지 않은 아이라 걱정했죠. 그런데 연습을 하루에 10시간 이상 하더라고요. 하도 연습해서 다리에 알이 배고 그러더니 결국 해내는 거예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요즘은 K-팝 업계가 글로벌화되면서 중소 기획사에서 용이 나오기 쉽지 않은 구조잖아요. 물론 홍승성 설립자가 워낙 가요계에서 유명한 분이긴 해도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을 듯해요.
크게 걱정하진 않았어요. 홍승성 회장은 제가 데뷔해 여기저기 인사 다닐 때 알게 된 형님이에요. 둘 다 헝그리 정신으로 버티던 시절이었죠. 이제 그 형님의 아들이 회사를 운영하는데 성실해요. 아이디어도 좋고, 아티스트와 매니지먼트가 단합해 긍정적인 마인드로 달려가니까 좋은 결과가 생기고 있지 않나 싶어요. 묵묵히 뒤에서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웃음).
“‘다른 사람이 날 어떻게 볼까’에서 벗어난 나, 칭찬해요”
심신이 벨의 콘서트에서 찍은 셀카. 이목구비와 슬림한 체구가 꼭 닮았다.
네! 데뷔곡은 3위까진 올라갔지만 1위는 못 했는데 이번에 ‘Sticky’와 ‘Get Loud’가 연달아 음악방송에서 1등을 했어요. 점점 노력의 결실이 맺히는 듯해요. 사실 발표한 노래가 잘되고 못되고를 떠나서 가수로서 가장 큰 기쁨이고 보람은 내 목소리로 사람들에게 기쁨을 전할 때예요. 그런데 지금 노래를 많은 사람에게 들려줄 수 있고 또 사랑까지 받으니, 아이에게 앞으로 더 노력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되어줄 거예요.
1년 3컴백이면 이미 엄청 노력 중인걸요. 오히려 고음을 내지르는 라이브 무대가 많아서 몸이 상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팬들도 있어요.
아, 그랬구나. 하이 보이스 쓰는 사람들이 목에 피로를 많이 느껴요. 혜원이가 저음부터 돌고래 소리 같은 초고음까지 다 잘 내지만, 초고음을 많이 쓰는 건 저도 걱정이 좀 돼요. 알아서 잘하겠죠. 20대까지 한 10년만 더 하고 그다음에도 또 얼마든지 보여줄 게 많으니까 다른 분위기로 가면 되죠. 아직 발표 안 한 곡 중에 좋은 노래는 저한테 들려주거든요. 데뷔 전 만들어놓은 작업물 중에도 좋은 곡들이 많아요.
집에서는 어떤 딸인가요. 키오프의 이해인 프로듀서가 팀을 꾸리며 처음 벨 양에게 부여한 캐릭터는 청순인데, ‘푼수’ 같은 면이 있어 포기했다더라고요.
하하하. 겉으로는 시크해 보이지만 정말 솔직해요. 그래서 오히려 이런 면이 귀여운 벨만의 캐릭터로 되어가는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저를 많이 웃겼어요. 같이 있으면 재미있어요.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어릴 때 식당에 같이 가면 서빙하는 분들이 저를 알아보잖아요.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어딜 가면 자기가 “우리 아빠 심신이에요” 말하는 것도 귀여웠고 굉장히 당찬 어린이였어요. 저는 초등학교 다닐 때는 정말 공부하란 얘기 한 번도 안 했거든요. 그런데도 항상 다 100점 받아오고, 친구들과 선거인단을 꾸려서 전교 부학생회장에도 당선됐어요. 어려서부터 뭘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어떻게든 해내고 마는 강단이 있었어요. 하여튼 대단했어요.
어떤 일을 하든 아빠가 적극적으로 지지해주니까 더 자신 있게 한 것 같은데요.
칭찬이 사람을 만든다는 얘기가 있잖아요. 저는 아이에게 싫은 소리를 한다거나 막 혼낸 적이 없어요. 되도록 칭찬해줘요. 칭찬이 아이를 더 연습하게 만들고 그러더라고요.
1990년에 데뷔해 현역으로 쭉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준 게 산교육 아니었을까요.
그렇겠죠? 제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지금의 벨처럼 바쁘게 활동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아빠이자 음악인으로서 현실에 부딪히며 거기에 맞는 속도로 달리고 있어요. 크고 작은 무대에 서며 쉬지 않고 계속 음악을 하는 것 자체가 공부하는 시간이 됐어요. 내 진짜 목소리와 내 음악이 무엇인지 연구하며 지내왔고, 혜원이 역시 아빠가 노력하는 그 모습을 어려서부터 봐왔죠. 데뷔하고 나서 방송에서 제 얘기를 굉장히 좋게 해주는 걸 보면 고맙죠.
딸에게 칭찬 들으면 기분이 좋겠는데요. 스스로에게 칭찬해주고 싶은 부분은 무엇인가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마음에서 벗어나 ‘나는 그냥 내 길을 간다(I’m just going my way)’의 정신으로 산 거요. 그래서 중간에 음악을 관두지 않을 수 있었어요. 록 스피릿이 ‘고통은 나의 친구이고, 힘든 상황을 즐기며 사는 정신’이잖아요. 어릴 때부터 록 스피릿이 멋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살려고 했어요. 앞으로도 신선한 음악을 한다는 칭찬을 받도록 노력할 거예요.
반대로, 돌이켜봤을 때 아쉬운 부분도 있나요. 만약 타임머신 타고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가서 바꿀 건가요.
아쉬운 건 1∼2가지가 아니죠(웃음). 그런데 중학교 때 윤리 선생님 말씀이, 팔자는 노력해서 고칠 수 있어도 운명은 고칠 수가 없대요. 그렇다면 거기에 토 달지 않고 이 주어진 것에도 감사할 줄 알며 살아야죠. 빌리 홀리데이가 부른 재즈 중에 ‘Come Rain Or Come Shine’이란 곡도 있잖아요. ‘해가 뜨고 비가 오고 또다시 해가 뜨고’ 이게 우리 삶에 반복되는 건데, 다시 해가 뜬다는 걸 모르고 산다면 살아 있는 게 아니죠.
요즘 재미있는 건 뭐예요.
음악하는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잼(즉흥연주)도 하고, 멜로디 떠오르면 녹음하고 그런 작업들이요. 또 세상 구경하러 다니는 것도 좋아요. 고맙게도 공연 요청으로 전국 팔도 안 가는 데가 없어요. 낯선 곳에 가 그 지역 사람들과 풍경을 보면 느낌이 올 때가 있어요. 그런 감성들을 하나씩 모아놓으면 나중에 노래할 때 전달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솔직히 ‘장인어른’으로 사랑받는 요즘과 ‘오빠’로 사랑받던 예전, 어떤 행복이 더 큰가요.
한 3일 전에 북한산국립공원에서 음악회가 있었어요. 거기서 초등학교 여학생들이 사인해달라는 거예요. 그렇게 어린아이들에게 사인을 해준 건 정말 오랜만이었어요. 키오프 팬이라 응원해준 거겠죠. 그런데 지금의 혜원이처럼 사랑받는 건 저도 어릴 적에 여한 없이 경험해봤잖아요(웃음). 이제는 중장년층이 된 분들이 저를 보며 좋았던 과거를 회상하고 응원해주세요. 그분들의 아이들은 벨 덕분에 저를 알아보고요. 온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차피 저를 만나 사람들이 기뻐한다는 건 똑같잖아요. 기쁨이 현재진행형이라는 게 중요하죠.
이번 크리스마스에 계획 있으세요.
특별한 계획이 있다기보단 12월에도 무대에서 자주 만나도록 할게요. ‘이 밤’이 크리스마스에 잘 어울리니까 많이 들어주세요. ‘이 밤’ 이후로도 이제 한 3개월에 한 번씩 싱글곡을 발표하려 해요. 예전에는 정규 앨범으로 냈었는데 그러면 12곡 정도 중에 1곡만 알려지고, 아깝더라고요. 이제 저도 싱글곡을 내다가 모아서 정규 앨범을 발표하는 식으로 활동할 생각이에요.
#심신 #키오프 #여성동아
사진 이상윤
사진제공 심신, 키스오브라이프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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