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ULTURE

drinkology

부동산 폭등이 위스키 오픈런 불렀다?

오홍석 기자

2022. 08. 31

몇 년 전부터 1980년대 일본의 버블경제 시절 유행했던 ‘시티팝’이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아시아 대중문화를 연구하는 김은영 스탠퍼드대 박사가 시티 팝의 발흥을 연구한 논문을 출간했는데, 이 글에서는 시티 팝 장르가 생겨난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20, 30대 젊은 신흥 중산층의 구매력은 노동계급이나 이전 세대 젊은 층과 비교했을 때는 확실히 높았다. 하지만 비정상적으로 폭등한 자산 가격을 감당할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 결과, 그들의 구매력은 주로 문화상품과 사치품, 여행이나 밤 문화로 대표되는 여가 및 유흥을 위한 소비로 흘러 들어갔다. 이 같은 소비를 통해 그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도시적 취향과 감성을 만들어나가게 되었다.”

얼마 전 필자는 위스키를 사러 갔다. 한국에 잘 수입되지 않는 위스키의 입고가 예정된 날, 대형 주류 매장을 찾은 것. 그런데 매대가 비어 있어 직원에게 물었더니, 그는 ‘왜 이렇게 순진하냐’는 표정으로 “고객님, 그 위스키는 매장 열기 전에 줄 선 고객분들이 다 사 가셨어요. 전국 매장에서 거의 동시에 품절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유행은 많은 것을 바꿔놨는데, 그중 하나가 싱글몰트 위스키에 대한 수요 증가다. 싱글몰트 위스키는 가격이 비싸고 종류가 많은 데다 무엇보다 생산 지역과 빈티지에 따라 호불호가 크게 갈린다. 코로나19 이전엔 국내에선 수요가 적었다. 라거 맥주와 희석식 소주가 여전히 주류 생활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한국인에게는 어느 정도 진입장벽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진행된 싱글몰트 위스키 팝업 행사에 몰려든 인파.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진행된 싱글몰트 위스키 팝업 행사에 몰려든 인파.

그럼에도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취향을 중시하는 ‘알코올 고관여층’이 증가했다. 7월 말 한 지상파 채널에서 ‘MZ세대, 술판이 바뀐다’는 제목으로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프로그램은 집단문화에서 맛보다는 결속을 위해 술을 소비했던 과거 세대와 MZ세대를 구분하며, 젊은 층을 ‘술의 맛을 제대로 느끼기 시작한 첫 번째 세대’라고 명명한다. 이렇듯 새로운 소비자의 등장으로 인기 있는 위스키는 이제 주말 아침에 줄을 서야 살 수 있는 술로 변모했다.



하지만 이러한 ‘위스키 오픈런’을 보는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보면 볼수록 위스키의 인기가 상승한 한국의 사회적 배경이 일본의 시티팝이 부흥한 사회상과 비슷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20, 30대는 이전 세대가 젊었을 적보다 구매력이 있지만 부동산(자산)을 구매할 정도는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은 구매력을 바탕으로 독특한 취향을 만들어나간다. 이는 곧 문화상품(K-콘텐츠)과 사치품(명품, 스니커즈, 고가 주류) 소비로 이어진다.

차이가 있다면 여행 시장과 밤 문화는 코로나19 유행으로 한없이 위축됐다는 점이다. 공교롭게도 일본에서 저출산과 혼인율 급감이 사회문제로 대두된 시점은 자산 가격이 급상승하기 시작한 1970~80년대다. 당시는 일본에서 위스키 판매율이 가장 높았던 시기이기도 하다.

1980년대 정점을 찍은 일본 경제는 침체기를 맞이했다. 최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상승한 한국의 부동산 가격이 경기침체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적으로 급등하는 물가, 감소하는 인구,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 결혼과 출산 생각이 없는 그리고 새로운 취향을 만들어가는 젊은 세대…. 위스키 오픈런은 신기하게만 볼 현상이 아니다. 어쩌면 미래를 예고하는 하나의 사회현상일지 모르겠다.

#위스키오픈런 #싱글몰트위스키 #시티팝 #여성동아


오홍석의 Drinkology
마시는 낙으로 사는 기자. 시큼한 커피는 아침부터 밤까지 시간대 안 가리고 찾는다. 술은 구분 없이 좋아하지만 맥주와 위스키를 집중 탐닉해왔다. 탄산수, 차, 심지어 과일즙까지 골고루 곁에 두는 편. 미래에는 부업으로 브루어리를 차려 덕업일치를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다.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제공 디아지오코리아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