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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무비디깅 | 이런 홀로코스트 영화는 없었다

문영훈 기자

2024. 07. 16

‘존 오브 인터레스트’ 개봉 3일 만에 3만 명의 관객이 극장을 찾았다. 박스오피스를 점령하는 거대 예산 영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성과지만 여전히 좋은 영화를 갈구하는 관객은 많다는 증거다.

인지할 수 있는 세상은 한계가 분명하다. 기술의 발달로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참상도 유튜브로 볼 수 있는 세상이라지만 손가락으로 넘기면 그만이다. 밥 벌어먹고 사는 일에 치이다 보면 타인의 고통은 옅어진다. 그래도 우리는 어렴풋이 알고 있다. 도처에 지옥은 널려 있으며, 그건 바로 옆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우리는 살 수 있다는 것.

보여주기 대신 들려주기

나치와 홀로코스트에 대한 영화는 셀 수 없이 많다. 일부는 영화사에 기록될 만큼 반짝였다. 우직하게 유대인이 느꼈을 고통을 다룬 ‘피아니스트’나 ‘쉰들러 리스트’,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시체를 치우는 사람의 시점에서 참상을 그려낸 ‘사울의 아들’, 독일의 어린아이 시선으로 참상을 아릿하게 풀어낸 ‘조조 래빗’까지. 더 이상 새로운 홀로코스트 영화가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시점에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등장했다. 제76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국제영화상을 받았다. ‘쉰들러 리스트’를 만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최고의 홀로코스트 영화”라는 평을 내렸다.

간단히 줄거리를 설명하면 루돌프 회스 중령의 단란한 가족 이야기다. 일잘러 아빠, 이층집과 마당을 꾸미는 데 심혈을 기울이는 엄마, 귀여운 아들과 딸들이 가정을 이루고 있다. 주말에는 집 근처 강가로 피크닉을 가기도 하고 수영장이 있는 너른 마당에서 성대한 생일잔치를 여는 단란한 가족. 고분고분한 하인들은 이 가족의 대소사를 돕는다. 행복이 가득한 집의 담장만 넘으면 아우슈비츠 절멸 수용소가 있다. 이곳에서 1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바꿀 수 있는 셈이다. 아빠 루돌프는 아우슈비츠 총관리자로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유대인을 죽이는 공장을 쉬지 않고 가동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그의 아내 헤트비히는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에게 빼앗은 옷과 장신구로 치장하고 거울을 본다. 아이들이 몸을 담그는 강에는 시체를 태운 재가 흘러들어오고, 아이들은 타지 못한 치아를 가지고 놀기도 한다. 영화 제목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는 수용소 인근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카메라는 지옥도가 예상되는 담장을 넘어가지 않는다. 대신 사운드가 흘러들어온다. 소름 끼칠 정도로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영위하는 가족 위로 담장 너머에서 들리는 총소리와 사람들의 비명이 언뜻언뜻 겹친다. 밤에는 아우슈비츠의 존재감이 더 커진다. 루돌프 가족의 침실 창문 너머 굴뚝에서는 붉은 연기가 치솟고, 총소리는 칠흑 같은 어둠에 공명해 더 선연해진다. 하지만 루돌프 가족은 화염과 아우성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헤트비히는 루돌프의 베를린 전근으로 집을 잃게 되지는 않을지 걱정한다. 한낮 풀장에서는 아이들이 미끄럼틀을 타고 저녁에는 가족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정갈하게 차려진 음식을 먹는다.

하지만 관객들이 느끼는 섬뜩함을 작중 인물들도 미약하게나마 감지한다. 루돌프의 딸은 잠을 자지 못하고, 헤트비히의 엄마는 딸의 집을 찾았다가 하룻밤 만에 말도 없이 떠나버린다. 루돌프는 강박적으로 집 안의 모든 문을 걸어 잠그고 나서야 잠을 이룬다. 그럼에도 이들의 고민은 일상에 집중돼 있다. 겨울의 추위를 걱정하고 프랑스산 향수와 치약이 보급품으로 들어왔는지가 중요하다. 남편의 전출로 이사 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민이 커진 헤트비히는 폴란드인 하녀에게 소리를 지른다. “너 같은 건 재도 못 남아.”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은 실제 아우슈비츠 지휘관이었던 루돌프 회스를 주인공으로 한 동명 소설을 각색해 영화를 만들었다.



이상한 것들의 자기주장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은 이상한 영화들을 만들어왔다. 인간을 사냥하는 외계인이 등장하는 ‘언더 더 스킨’(2014), 남편의 환생이라고 주장하는 소년을 만나는 여자가 나오는 ‘탄생’(2004). 그의 영화에서 평이한 시각은 뒤틀리고 재조립된다.

이번 영화도 만만치 않다. 대개 영화는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기 위해 클로즈업을, 동선을 보여주기 위해 트래킹숏을 주로 사용한다. 하지만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극히 일부 장면을 제외하곤 시종일관 롱숏을 구사한다. 연극 무대처럼 인물의 머리부터 발끝, 천장과 바닥이 함께 보인다는 의미다. 감독은 루돌프의 안전 가옥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스태프가 없는 공간에서 배우들이 연기하도록 했다. 글레이저 감독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그들이 가히 헌신적일 정도로 지켜내는 평범함, 그것이 주는 그로테스크한 느낌에 몰두했고 영화를 완전히 그 방향으로 끌고 갔다”고 말했다. 롱숏이 주는 건조함은 이들이 전하는 그로테스크함을 두드러지게 한다.

연극의 막을 연상케 하는 장면도 삽입돼 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칠흑의 화면으로 시작해 3분가량 어둠 속에 관객을 머물게 한다. 화면 전체가 흰색으로 바뀌거나, 붉은색 꽃을 클로즈업하다가 화면 전체가 빨간색으로 물들기도 한다. 일차적으로는 수용소의 어둠과 가스 연기, 희생자들의 피를 연상케 한다. 영화의 막과 함께 터져 나오는 기괴한 소리는 관객들에게 ‘우리가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감독은 이 장면에 삽입된 소리를 만들기 위해 1년간 전 세계에서 고통의 소리를 수집했다.

러닝타임 대부분은 루돌프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할애한다. 영화 중반 카메라의 시선은 잠깐 다른 곳으로 옮아간다. 색이 반전된 상태로 한 폴란드 소녀를 비춘다. 루돌프가 잠들지 못하는 딸에게 동화 ‘헨젤과 그레텔’을 읽어주는 장면 다음에 등장한다. 그 소녀는 수감자들을 위해 그들이 일할 노동 현장에 사과를 숨겨두고 있다. 영화에서 유일한 희망의 순간은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해 소녀의 실루엣만이 반짝거리며 빛난다. 그레텔이 빵 부스러기를 남기는 동화 속 장면이 연상되기도 하지만, 이는 실제 이야기다. 감독은 실제로 현장을 취재하던 중 아우슈비츠를 돌며 사과를 놓아둔 90세 폴란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영화 속 장면에 넣기로 결심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베를린으로 전근 간 루돌프는 언제나 그렇듯 성공적인 성과를 거둔다. 그리고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는 자랑스럽게 아내에게 통화로 그 소식을 전달하고 계단을 내려오다 문득 멈춘다. 그리고 관객을 바라보는데, 이때 시간을 뛰어넘는 한 장면이 삽입된다.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그들이 그때 무엇을 했는지 보세요’가 아니라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는지 보세요’를 말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공식 포스터는 마당에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가족 뒤 검은 공간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영화 내내 우리는 담장 뒤를 보지 못하지만 그곳에 무엇이 존재하는지는 선명하다. 감독의 말대로 이건 비단 과거에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우리가 모른 척하는 저 담장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존오브인터레스트 #홀로코스터 #무비디깅 #여성동아

사진제공 TCO㈜더콘텐츠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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