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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누가 요즘 명품백 사나요” 수천만 원대 주얼리로 눈 돌린 명품족

정세영 기자

2024. 09. 05

오픈런을 무릅쓰고 명품 백 구매에 열광하던 명품족들이 주얼리로 눈을 돌리고 있다.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주얼리가 명품족들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으로 급부상한 이유는 무엇일까. 

“샤넬 백, 루이비통 백은 이제 너무 흔해요. 살 사람은 다 샀잖아요. 요즘 찐 명품족들은 반클리프아펠, 불가리 등 명품 주얼리 시장으로 넘어갔어요.”
지난 8월 4일 일요일, 서울 중구 한 백화점의 반클리프아펠 매장 앞에서 만난 김진아(38) 씨는 “알함브라 컬렉션을 구매하기 위해 4시간 정도 웨이팅했다”고 밝혔다. 순서가 돼 입장은 했지만 원하는 모델이 품절돼 사지 못했다는 그는 “점원이, 원하는 제품은 워낙 인기가 많으니 선금을 내고 예약 대기를 걸어놓으라고 했다”고 귀띔했다. 이처럼 요즘은 오랜 시간 기다려도 명품 주얼리 구매를 장담할 수 없다. 매장에 먼저 온 사람이 인기 제품을 여러 개씩 사가는 바람에 물건 구경도 쉽지 않다.

명품 주얼리 구입을 위해 오픈런도 마다하지 않는 명품족들.

명품 주얼리 구입을 위해 오픈런도 마다하지 않는 명품족들.

반면 샤넬 매장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매장을 빙 둘러쌀 정도로 늘어서 있던 줄이 사라졌다. 이날 대기 인원은 단 5명. 샤넬 백을 구매하기 위해 근처에 숙소를 잡아 아침부터 줄을 서던 과거와는 딴판이다. “샤넬 오픈런이 이렇게 쉬웠나”라는 얘기도 나온다.

2022년 19조6767억 원이었던 국내 명품시장 규모는 불황 속에서도 지난해 22조 원까지 커지며 지속 성장하고 있다. 특기할 만한 점은 명품시장을 주도하는 품목이 일명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의 가방이 아닌 시계, 주얼리라는 점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백화점 VIP 고객 사이에서 명품 시계, 보석의 성장 속도가 명품 가방보다 빠르다”며 “까르띠에, 반클리프아펠, 피아제 등의 국내 영업을 전개하는 리치몬트코리아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7.4% 증가한 1조5014억 원을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영국 국제 비즈니스 신문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해 불가리의 고가 주얼리 제품 소비자가 늘었다”며 “전년 대비 100만 달러(약 13억8900만 원) 이상 판매된 품목이 2배 정도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는 한 고객이 평균 2개씩 구매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명품이 더욱 비싸면서 가치 있는 제품으로 수요가 전환되는 중”이라고 평가했다.

주얼리 열풍의 배경에는 ‘남들과 차별화하고 싶은 심리’가 존재한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명품 가방에 비해 주얼리가 상대적으로 희소성이 있기 때문. 이제 럭셔리 주얼리는 ‘나만의 명품’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꽤 좋은 수단이 됐다.

과거 명품은 부유한 사람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코로나19로 인한 보복 소비의 일환으로 값비싼 명품 가방을 구매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오픈런, 노숙런, 리셀 등이 등장하며 점점 명품 백의 희소가치가 떨어지게 됐다는 분석이다. 결국 수많은 명품족은 흔한 명품 백보다 값비싼 주얼리나 시계로 관심을 옮겨 소비 트렌드를 이끌었고, 이런 유행이 미디어나 SNS 등을 타고 점차 확산하면서 명품 주얼리에 대한 전반적인 소비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N차 인상도 괜찮아, 값 뛰기 전에 사자”

샤넬 앰배서더 제니의 영향으로 MZ에게 사랑 받고 있는 코코크러쉬 링.

샤넬 앰배서더 제니의 영향으로 MZ에게 사랑 받고 있는 코코크러쉬 링.

명품 주얼리, 시계 등에 대한 소비자의 니즈가 커지자 명품 브랜드는 더욱 큰 공을 들이고 있다. 일례로 갤러리아백화점은 지난 6월 명품 시계 파텍필립 매장 면적을 기존 대비 2배 넓혔다. 갤러리아백화점 대전 타임월드점은 롤렉스 매장을 기존보다 3배 더 크게 리뉴얼했다. 그런가 하면 명품 주얼리 브랜드 티파니앤코는 청담동에 단독 플래그십스토어를 오픈할 계획이다. 팝업스토어의 성지인 서울 성수동에는 지난 7월 샤넬의 코코크러쉬 팝업스토어를 오픈해 많은 인파를 끌어모았다. 팝업스토어에서는 코코크러쉬의 신제품부터 네클리스, 링, 브레이슬릿, 이어링까지 전 컬렉션을 구경할 수 있었는데, 반지 가격이 200만~600만 원을 호가함에도 많은 이의 구매가 이어졌다. 코코크러쉬 컬렉션은 특히 샤넬 앰배서더로 활동하는 블랙핑크 제니의 영향으로 MZ에게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다. 또 패션에 주력하던 명품 브랜드 역시 주얼리 제품의 라인업을 강화하고 있다. 구찌는 하이 주얼리 컬렉션 ‘라비린티(Labirinti)’를 출시했으며 루이비통, 디올 등도 팔찌나 목걸이, 반지, 브로치 등 어느 때보다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반클리프아펠의 시그니처 알함브라 컬렉션은 모티브 갯수에 따라 수천 만~수억 원을 호가한다.

반클리프아펠의 시그니처 알함브라 컬렉션은 모티브 갯수에 따라 수천 만~수억 원을 호가한다.

수요가 늘어나면 덩달아 가격이 오르는 법. 명품 주얼리 역시 예외는 없다. ‘값이 뛰기 전에 사두자’는 소비자들의 심리를 자극하기 위해서다.

한 해에 가격을 수차례 올려 이른바 ‘N차 인상’ 브랜드로 유명한 샤넬은 올해 두 번이나 주얼리 가격 인상을 감행했다. 그 결과 ‘코코크러쉬 링 화이트 골드’ 미니 모델은 253만 원에서 262만 원으로, ‘코코크러쉬 링 베이지 골드’ 스몰은 441만 원에서 457만 원으로 각각 약 3.6% 상승했다. 제니의 시계로 알려진 ‘J12 워치 칼리버’ 33mm 모델도 1400만 원에서 1450만 원으로 약 3.6% 인상됐다. 또 프랑스 럭셔리 주얼리 브랜드 부쉐론의 ‘콰트로 블랙 에디션 웨딩 밴드’는 299만 원에서 321만 원으로 약 7.4% 올랐으며, 반클리프아펠의 빈티지 알함브라 펜던트(18k 옐로골드·마더오브펄 기준)는 391만 원에서 약 412만 원으로 가격이 인상됐다. 그 밖에 디올, 롤렉스, 티파니, 피아제, 까르띠에, 다미아니 등 대다수 주얼리 브랜드가 일제히 가격 인상을 감행하고 있다.

높아진 가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명품 주얼리에 대한 관심은 뜨겁기만 하다. 오히려 가격이 오르기 전 구매해야 유리하다는 인식마저 존재하는 상황. 명품 마니아라는 30대 박 모 씨는 “이미 인상을 한 브랜드는 구매 수요가 줄고 재고가 풀릴 수 있어 안심된다. 주위를 보면, 국내에서 제품을 구매하던 이들이 지금은 고환율로 물량이 남아돈다는 해외로 사러 간다”고 말했다.

티파니의 블루 북 컬렉션. 옐로우와 화이트 다이아몬드를 감싼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디자인으로 명품족들의 위시 리스트로 꼽힌다.

티파니의 블루 북 컬렉션. 옐로우와 화이트 다이아몬드를 감싼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디자인으로 명품족들의 위시 리스트로 꼽힌다.

이러한 현상은 가격이 올라도 수요가 줄지 않고 오히려 계속 증가하는 ‘베블런 효과’를 연상시킨다. 비쌀수록 선호도가 올라가는 이유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나 부를 과시하기 좋은 수단이기 때문. 다만 과한 소비에 앞서 생각해볼 부분은 분명히 있다. 플로리다대학교 교수로 현대 소비문화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는 제임스 트위첼은 저서 ‘럭셔리 신드롬’을 통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소비하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욕구란 감기처럼 전염되는 것이다.” 이처럼 반짝이는 작고 소중한 ‘그것’이 과연 내 욕망인지, 타인의 욕망인지 냉철히 판단해볼 필요가 있다.




#명품주얼리 #명품 #오픈런 #여성동아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출처 샤넬 까르띠에 반클리프아펠 불가리 에르메스 티파니 채널A 뉴스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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