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TV 드라마의 이변인가? 10월 18일부터 금·토요일에 tvN에서 방송되고 있는 ‘응답하라 1994’(이하 ‘응사’)의 순간 최고 시청률이 10%를 돌파했다. 더욱이 10%의 시청자가 작품에 갖는 몰입도와 충성도는 통계적 기록을 뛰어넘는다. ‘응답하라 1994’ 시청자들은 “볼 때마다 새로운 것이 보인다”고들 한다. 본방송, 재방송, VOD까지 챙겨 보며 작품을 깨알같이 분석하는 재미에 폭 빠져 있다. 30, 40대라면 “응사 보냐”는 말로 인사를 대신할 만큼 지금 ‘응사앓이’의 온도가 여느 드라마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사실 작품이 갖는 대략적인 뼈대는 다른 드라마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당당하고 상큼한 스무 살 여주인공, 성나정(고아라) 가족이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서 운영하는 하숙집이 드라마의 배경. 신촌하숙에서 생활하는 젊은 청춘 7명의 사랑과 우정, 꿈을 그렸다.
드라마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1994년에 대한 추억으로 시청자의 가슴을 아련하게 만들더니 이제는 ‘성나정의 남편 찾기’로 그들의 심장을 쫄깃하게 한다. 시청자는 드라마가 제시하는 시대적 배경에 자신의 추억으로 응답하고, 작품 곳곳에 포진된 퀴즈 힌트를 열성적으로 찾아내고 있다.
‘여성동아’는 12월호 마감 직전 ‘응사’의 연출을 맡고 있는 신원호 PD와 ‘1994년 돋는’ 아날로그 접속을 시도했다. 그토록 기다리던 삐삐 음성 사서함에 남겨진 메시지처럼 가슴 졸이며 듣는 ‘응사’ 뒷이야기.
Code 01 추억의 응답
예능적 구조를 차용한 드라마. 신원호 PD가 연출한 첫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이하 ‘응칠’)은 그래서 신선했다. 박진감 넘치는 리얼 드라마 같았다고나 할까. 2012년은 ‘응칠’의 열풍으로 뜨거웠다. KBS2 ‘남자의 자격’을 연출한 예능 프로그램 PD가 드라마 PD로 대성공을 거둔 셈이다.
그가 ‘응칠’의 속편으로 ‘응사’를 만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반신반의했다. 전작의 배경이 됐던 1997년과 고작 3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과연 소재가 신선할까? 하지만 3년을 사이에 둔 이야기가 이토록 다를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만큼 오히려 ‘응사’는 흡입력 있는 소재와 스토리로 드라마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작품 초반, 단연 눈에 띈 것은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한 추억 코드. 30, 40대들의 향수를 자극할 만한 수많은 장치들이 등장하면서 시청자들에게 드라마 속 인물이 된 듯한 느낌을 선사했다. “나도 그땐 그랬는데” 하며 경험담을 털어놓게 만들었으니까. 더욱이 ‘서태지와 아이들’ ‘농구대잔치’ ‘삐삐’ ‘별이 빛나는 밤에’ ‘사랑을 그대 품안에’ ‘M’ ‘마지막 승부’ ‘월드컵 스페인전’ 같은 그 시절 추억 코드가 소품이 아닌 소재가 되면서 탄탄한 개연성과 설득력까지 갖췄다.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실제 94학번인 신원호 PD는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이야기”라고 했다. 그때의 젊은이가 그리는 그 시절 젊은이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 활기 있고 박진감 넘치는지도 모르겠다.
▼ 드라마 초반에는 추억 코드가 훨씬 더 많이 배치돼 있었던 것 같다. 조금씩 추억의 색이 옅어지고 사랑 코드에 집중되고 있다. 지금은 ‘연세대 농구부 빠순이’ 성나정의 모습이 거의 사라졌다.
처음부터 ‘추억’은 소재였을 뿐 주제는 아니었다. 그것은 ‘응칠’ 때도 마찬가지였고. 초반기에는 캐릭터 정립도 안 돼 있는 상황이었고, 소재로 재미를 이끌어야 할 때여서 그쪽에 더 집중했다. 캐릭터가 정리되면서 러브 라인이 강화돼 그쪽에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다. 시대적 소재가 반복되다 보니 무뎌지기도 했을 거다. 하지만 여전히 지속적인 시대적 미장센을 집어넣고 있는데, 최근에는 사천과 삼천포 통합이나 서태지 악마 소통, 매직 아이 같은 것들이 있다.
▼ 극 중 ‘서태지 빠순이’ 윤진(도희)이 서태지 악마 소동으로 삼천포와 가까워지고, 매직 아이를 통해 칠봉(유연석)이 나정에게 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시대적 미장센을 스토리 구성과 적절하게 사용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강박적으로 소재와 이야기를 연결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하려고 한다. 흔히들 ‘응사’가 추억 팔이를 하는 게 아니냐고 하는데, 물론 ‘응사’에 추억이 큰 요소이긴 하지만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데 스토리보다 앞서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 시대적 소재에 이야기를 입히는가, 아니면 이야기 구성에 맞는 시대적 소재를 찾는 건가?
뭐가 먼저라고 말할 수 없다. 우리에게는 그 시절의 자료가 수북하게 준비돼 있고, 스토리라인은 따로 수많은 회의를 거치며 탄생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딱 맞닿아 있는 부분을 발견하게 되는 거다. 볼 수 있는 사람만 보고, 보이지 않는 사람은 볼 수 없는 매직 아이라는 소재가 칠봉의 짝사랑과 딱 맞아떨어졌던 것처럼 말이다.
▼ 반드시 등장할 것 같았던 ‘성수대교 붕괴’는 뛰어넘고 1995년을 맞았다. 총 20부작인데 절반 만에 제목을 바꿔야 할 판이다. 이제 ‘응답하라 1995’가 되는 건가?
우리가 역사 도감을 만드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웃음) 굵직한 시대 배경을 꼭 넣어야 한다는 생각은 없다. 실제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다 보니 역사 자체가 스포일러다. 그때의 사건을 되짚어보면서 어떤 사건이 어떻게 연출될지 예상해보는 것도 ‘응사’를 보는 또 다른 재미일 수 있다.
▼ 스포일러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관리가 참 잘되고 있는 것 같다. 결과가 예측 불허라고 해야 할까?
어느 작품이든 스포일러를 좋아하지는 않을 거다. 우리는 질문을 던지는 구조다 보니 출연진에게 더 각별한 주의를 준다. 대본도 파일로 주고받지 않고 무조건 오프라인으로 전달한다. 작년에 해킹으로 대본이 털렸었다(웃음). 예고도 마찬가지다. 시청자를 끌어오기 위해 많은 것을 보여주는 예고는 그만큼 본편의 재미를 반감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고 때문에 본편을 재미없게 하진 말자 주의다. 그래서 예고에 중요한 내용은 포함시키지 않는다.
▼ 추억 코드를 통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가?
따뜻한 이야기다. 고향 이야기, 친구 이야기 등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따뜻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따뜻한 휴먼 코미디다.
▼ 쓰레기(정우)와 암 환자의 대화, 삼천포(김성균) 할머니의 사랑, 성동일의 첫사랑, 빙그레(바로)의 진로 고민 같은 것들을 말하나?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러브 라인을 하나의 부가적 요소로 집어넣은 거다. 그래야 시청자들이 봐주니까. 어떻게 보면 러브 라인은 다른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기 위한 방편일 수 있다. 물론 스무 살의 풋풋한 첫사랑은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 중 큰 줄기지만, 러브 라인에 함몰돼 있는 드라마는 아니다. 워낙 손발 오그라드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웃음). 그래서 ‘따뜻한 이야기’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는 않을 거다. 그것이 1994년 세대가 아닌 시청자를 이끄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실 러브 라인의 판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다(웃음).
Code 02 사랑의 응답
주인공의 삼각관계는 드라마의 필요충분조건이다. 어디에도 1:1 공정한 사랑 게임은 없다. 밀고 당기는 주인공들의 사랑놀이에 시청자들은 결과를 예측하며 흥미진진해하니까.
하지만 ‘응사’처럼 이러한 사랑 게임에 노골적으로 시청자를 참여시키는 드라마는 처음이다. ‘여기 남편 후보 5명이 있는데, 이 중 누가 여주인공 성나정과 결혼하게 될까?’라며 아예 대 놓고 묻고 있다. 일종의 시청자를 상대로 한 ‘퀴즈’다. 작품 속에 제작진이 정성스럽게 마련한 힌트나 복선·함정이 숨어 있고, 시청자들은 상상과 예측·추리를 넘나들며 보물찾기 하듯 암시를 찾기 바쁘다.
5명의 남편 후보를 이름이 아닌 쓰레기, 칠봉, 해태(손호준), 빙그레, 삼천포로 불렀던 이유도 다 거기에 있었다. 회를 거듭할수록 밑밥이 하나씩 떨어진다. 남편의 이름이 김재준이고 한국이 한일 월드컵에서 4강에 진출하던 2002년 6월 22일에 결혼한다는 설정. 과거와 교차되는 2013년 현재 장면에서 나정의 집들이에 온 남자 5명의 행동과 대사를 통해 진짜 남편이 누구인지를 추측할 뿐이다.
지금까지 빙그레가 동성애일 가능성이 엿보였고, 삼천포는 아예 이름이 공개돼 윤진의 배우자로 낙점된 상태. 쓰레기가 김씨, 칠봉의 이름에 ‘준’자가 들어간다는 설정으로 나정과 삼각 구도를 그리고 있다. 해태 또한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지만 쓰레기와 나정의 합성어 ‘나레기파’와 ‘칠봉이파’로 나뉜 시청자들의 응원 열기도 뜨겁다. 어제 보니 칠봉 같던데 오늘 보니 쓰레기 같고, 드라마가 시청자를 들었다 놨다 하는 요물처럼 얄밉다.
▼ 은근히 해태와 삼천포, 윤진의 삼각 러브 라인을 기대했다. 윤진과 삼천포의 결론이 너무 일찍 밝혀진 것 아닌가?
처음부터 삼천포와 윤진을 짝으로 정해놓고 시작했다. 해태, 삼천포, 윤진의 삼각관계는 의도한 적도 없다. 그냥 시청자들이 그렇게 생각했던 거다.
▼ 그렇다면 제작진이 만들지도 않은 함정에 빠진 셈이다. 지금까지 일부러 함정을 만들어 넣지 않았나? 삼천포가 나정의 남편일 수도 있다는 설정이 결국 함정이 됐다.
처음부터 10:0으로 이기게 돼 있는 경기를 보는 것처럼 재미없는 일도 없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이 제작진도, 시청자도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건 장사꾼의 스킬이 아니라, 이야기꾼의 기술 같은 거다. 그래서 헷갈릴 수 있는 장치도 많이 넣었다. 그런 장치가 많다는 걸 알고 보니까 이것도 장치 같고, 저것도 장치 같다고 하더라. 제작진이 의도하지 않은 장면을 두고 장치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참 많다. ‘아, 이 장면이 저렇게도 해석되는구나’ 하며 놀랄 때도 있다. 하지만 그건 제작진이 참견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만드는 건 우리가 담당하지만 그다음은 시청자들의 장난감이기 때문이다. 평론가들이 영화를 이러쿵저러쿵 해석해놓아도 감독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맞다, 틀리다’ 할 수 없는 처지다.
▼ 이미 내정된 남편이 있지만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도 했다. ‘나레기파’와 ‘칠봉이파’의 응원 경쟁이 아주 치열해서 누구와 이어져도 원망을 듣게 생겼다.
무조건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이어지지 않다니, 말도 안 돼’ 하는 것까지 수용할 수는 없지 않나. 드라마는 다수결로 완성되는 게 아니니까 지지도와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결국 개연적으로 타당한 스토리가 가능하냐의 문제다. 지금도 그 개연성을 쌓아가고 있는 거라고 보면 된다.
▼ 그렇다면 쓰레기와 칠봉, 나정의 삼각관계는 확실한 건가?
아니다. 드라마를 보면 알게 될 거다. 그걸 예측하는 재미를 내가 뺏고 싶지는 않다(웃음).
▼ 이 ‘성나정 남편 찾기’는 몇 회까지 이어갈 ‘퀴즈’인가?
거의 막바지까지 가지 않겠나. 모든 이야기들은 ‘그래서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로 결론 맺는다. 그 결론을 맺는 과정에서 우리는 중간 중간에 ‘그런데 누구랑 누가 잘될 것 같으냐?’ 같은 추임새만 넣고 있을 뿐이다. 내가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던 사람이라 그런 것 같다. 예능은 ‘퀘스천’으로 끌고 가는 거다. 오늘 출연한 게스트가 과연 도전에 성공할까? 이 질문을 던지면 어떤 대답을 할까? 두 사람이 가위바위보를 하는데 과연 누가 이길까? 그렇게 ‘과연?’이라는 자막을 드라마에 넣고 있다고 보면 된다.
Code 03 드라마의 응답
‘응사’가 인기를 끌자 출연자들의 인기도 동반 상승했다. 10년 무명의 정우, 기존의 인형 같은 이미지를 벗어던진 고아라, 부드러움 속에 남성성을 갖춘 칠봉 유연석, ‘범죄와의 전쟁’ 속 야비한 캐릭터로 각인됐던 삼천포 김성균까지 배우의 재발견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거기에 아이돌 색을 찾아보기 힘든 B1A4의 바로는 빙그레로, 보면 볼수록 ‘잘생겼다’는 생각이 드는 손호준은 해태로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이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1박 2일’ 출신 이우정 작가, 이야기를 꾸려가는 신원호 PD, 그리고 이야기를 표현하는 배우들의 궁합은 찰떡이다.
▼ 배우들이 이렇게 잘할 줄 예상했나? 궁합이 상당히 잘 맞는다.
우리가 감이 좋았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직접 만나보면 정말 ‘케미’(화학적 반응을 뜻하는 말로 여기서는 배역과 연기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경우를 가리킴)라는 게 보이기도 한다. 각자의 작품에서 각자 연기했던 모습을 통해 절대적으로 평가해보면 전혀 계산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게 있다. 그래서 배우들을 여러 번 만나 대본도 읽어보면서 잘 맞겠다 싶은 사람을 찾는 거다.
▼ 준비 과정에서 구토가 나올 만큼 오디션을 많이 봤다는 말을 들었다.
오디션도 보고 그냥 미팅식으로 만나보기도 했다. 손호준과 바로는 제작진이 요청해서 만났다. 배우는 공산품이 아니라서 뜯어서 확인하고 설명서대로 사용하면 예상했던 품질이 나오는 게 아니다. 대본에 잘 맞는가, 대본을 확실히 이해했나, 제작진과 케미가 맞나 하는 것들을 다 따져봐야 한다. 제작진 쪽에서, 혹은 배우 쪽에서 안 맞는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서로 느낌이 맞아야 함께 간다.
▼ 가장 선택하기 힘들었던 배역이 있었나?
다 비슷한데, 특히 성나정 역이 가장 어려웠다. ‘응칠’에서 은지가 너무 잘해줬기 때문에 어떤 배우가 맡아도 100% 비교당할 수밖에 없는 자리였다. (은지 같은) 그런 배우를 어디서 찾아야 하나 싶어서 가장 힘들었다. 고아라도 그렇고, 모든 배우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다.
▼ 10년 무명 배우였던 정우는 대세남이 됐다.
정우는 기본적으로 ‘요즘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고 할 수 있다. 연기의 형식도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인데, 정우는 바로 현대가 추구하는 생활 연기를 한다. 틀에 박힌, 카메라 워킹에 얽매이는 연기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니까 시청자들도 알아봐주는 거다.
▼ 쓰레기 캐릭터에서 벗어나기 힘들 거란 평도 있다.
사실 정우가 진지한 멜로를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걱정도 있었다. 그런 쪽의 연기를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작품으로 그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배우다.
▼ 요즘 쓰레기가 쓰레기가 아니다. 나쁜 남자 캐릭터였는데 지금은 부드러운 남자에 다정한 선배다. 캐릭터의 반전이랄까?
‘응사’는 하나의 소설적 설정으로 가는 드라마가 아니다. 복수에 불타오르는 캐릭터, 한없이 착하기만 한 캐릭터, 절대악인 캐릭터가 아닌 거다. 생활 드라마다 보니 그렇다. 사람이라는 게 그렇지 않나? 엄마랑 있을 때 다르고, 친구랑 있을 때 다르다. 그렇게 사람이 가지고 있는 면면들을 보여주는 거다. 그래서 배우들이 더 연기하기가 힘들 수 있다. 앞으로도 또 다른 성격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 드라마의 부제가 ‘팔도청춘 in 서울’이다. 그중 강원, 제주가 빠져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다.
정말 미안한 부분 중 하나다. 솔직히 말하면 구현할 자신이 없었다. 작가가 경상·전라·충청·서울 출신이 골고루 있는데, 강원과 제주 출신은 없다. 디테일을 알고 써야 재미가 사는데, 우리가 그럴 깜냥이 못 됐다. 그 지역 출신과 인터뷰도 하면서 알아봤는데, 섣불리 했다가 오히려 그 지역 출신들에게 원망을 듣겠다 싶더라. 또 사투리를 제대로 구사해줄 배우도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아쉬운 부분이다.
▼ 신원호 PD의 청춘은 어땠나?
방황하던 시절은 빙그레를 닮아 있고, 놀기도 좋아했으니 그런 부분은 해태를 닮아 있기도 하다. 집에서는 다들 쓰레기 같지 않나? 집에서도 각 잡고 있지는 않으니까. 모든 젊음이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작품이 갖는 대략적인 뼈대는 다른 드라마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당당하고 상큼한 스무 살 여주인공, 성나정(고아라) 가족이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서 운영하는 하숙집이 드라마의 배경. 신촌하숙에서 생활하는 젊은 청춘 7명의 사랑과 우정, 꿈을 그렸다.
드라마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1994년에 대한 추억으로 시청자의 가슴을 아련하게 만들더니 이제는 ‘성나정의 남편 찾기’로 그들의 심장을 쫄깃하게 한다. 시청자는 드라마가 제시하는 시대적 배경에 자신의 추억으로 응답하고, 작품 곳곳에 포진된 퀴즈 힌트를 열성적으로 찾아내고 있다.
‘여성동아’는 12월호 마감 직전 ‘응사’의 연출을 맡고 있는 신원호 PD와 ‘1994년 돋는’ 아날로그 접속을 시도했다. 그토록 기다리던 삐삐 음성 사서함에 남겨진 메시지처럼 가슴 졸이며 듣는 ‘응사’ 뒷이야기.
신원호 PD는 흥미진진한 ‘남편 찾기’ 게임과 함께 따뜻한 이야기의 감동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교재도 잘 빌려주지 않던 삼천포가 친구들에게 마음을 열고, 방황하던 빙그레가 쓰레기의 관심에 귀 기울이기 시작하는 것처럼 말이다.
예능적 구조를 차용한 드라마. 신원호 PD가 연출한 첫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이하 ‘응칠’)은 그래서 신선했다. 박진감 넘치는 리얼 드라마 같았다고나 할까. 2012년은 ‘응칠’의 열풍으로 뜨거웠다. KBS2 ‘남자의 자격’을 연출한 예능 프로그램 PD가 드라마 PD로 대성공을 거둔 셈이다.
그가 ‘응칠’의 속편으로 ‘응사’를 만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반신반의했다. 전작의 배경이 됐던 1997년과 고작 3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과연 소재가 신선할까? 하지만 3년을 사이에 둔 이야기가 이토록 다를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만큼 오히려 ‘응사’는 흡입력 있는 소재와 스토리로 드라마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작품 초반, 단연 눈에 띈 것은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한 추억 코드. 30, 40대들의 향수를 자극할 만한 수많은 장치들이 등장하면서 시청자들에게 드라마 속 인물이 된 듯한 느낌을 선사했다. “나도 그땐 그랬는데” 하며 경험담을 털어놓게 만들었으니까. 더욱이 ‘서태지와 아이들’ ‘농구대잔치’ ‘삐삐’ ‘별이 빛나는 밤에’ ‘사랑을 그대 품안에’ ‘M’ ‘마지막 승부’ ‘월드컵 스페인전’ 같은 그 시절 추억 코드가 소품이 아닌 소재가 되면서 탄탄한 개연성과 설득력까지 갖췄다.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실제 94학번인 신원호 PD는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이야기”라고 했다. 그때의 젊은이가 그리는 그 시절 젊은이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 활기 있고 박진감 넘치는지도 모르겠다.
▼ 드라마 초반에는 추억 코드가 훨씬 더 많이 배치돼 있었던 것 같다. 조금씩 추억의 색이 옅어지고 사랑 코드에 집중되고 있다. 지금은 ‘연세대 농구부 빠순이’ 성나정의 모습이 거의 사라졌다.
처음부터 ‘추억’은 소재였을 뿐 주제는 아니었다. 그것은 ‘응칠’ 때도 마찬가지였고. 초반기에는 캐릭터 정립도 안 돼 있는 상황이었고, 소재로 재미를 이끌어야 할 때여서 그쪽에 더 집중했다. 캐릭터가 정리되면서 러브 라인이 강화돼 그쪽에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다. 시대적 소재가 반복되다 보니 무뎌지기도 했을 거다. 하지만 여전히 지속적인 시대적 미장센을 집어넣고 있는데, 최근에는 사천과 삼천포 통합이나 서태지 악마 소통, 매직 아이 같은 것들이 있다.
▼ 극 중 ‘서태지 빠순이’ 윤진(도희)이 서태지 악마 소동으로 삼천포와 가까워지고, 매직 아이를 통해 칠봉(유연석)이 나정에게 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시대적 미장센을 스토리 구성과 적절하게 사용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강박적으로 소재와 이야기를 연결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하려고 한다. 흔히들 ‘응사’가 추억 팔이를 하는 게 아니냐고 하는데, 물론 ‘응사’에 추억이 큰 요소이긴 하지만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데 스토리보다 앞서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 시대적 소재에 이야기를 입히는가, 아니면 이야기 구성에 맞는 시대적 소재를 찾는 건가?
뭐가 먼저라고 말할 수 없다. 우리에게는 그 시절의 자료가 수북하게 준비돼 있고, 스토리라인은 따로 수많은 회의를 거치며 탄생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딱 맞닿아 있는 부분을 발견하게 되는 거다. 볼 수 있는 사람만 보고, 보이지 않는 사람은 볼 수 없는 매직 아이라는 소재가 칠봉의 짝사랑과 딱 맞아떨어졌던 것처럼 말이다.
▼ 반드시 등장할 것 같았던 ‘성수대교 붕괴’는 뛰어넘고 1995년을 맞았다. 총 20부작인데 절반 만에 제목을 바꿔야 할 판이다. 이제 ‘응답하라 1995’가 되는 건가?
우리가 역사 도감을 만드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웃음) 굵직한 시대 배경을 꼭 넣어야 한다는 생각은 없다. 실제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다 보니 역사 자체가 스포일러다. 그때의 사건을 되짚어보면서 어떤 사건이 어떻게 연출될지 예상해보는 것도 ‘응사’를 보는 또 다른 재미일 수 있다.
▼ 스포일러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관리가 참 잘되고 있는 것 같다. 결과가 예측 불허라고 해야 할까?
어느 작품이든 스포일러를 좋아하지는 않을 거다. 우리는 질문을 던지는 구조다 보니 출연진에게 더 각별한 주의를 준다. 대본도 파일로 주고받지 않고 무조건 오프라인으로 전달한다. 작년에 해킹으로 대본이 털렸었다(웃음). 예고도 마찬가지다. 시청자를 끌어오기 위해 많은 것을 보여주는 예고는 그만큼 본편의 재미를 반감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고 때문에 본편을 재미없게 하진 말자 주의다. 그래서 예고에 중요한 내용은 포함시키지 않는다.
▼ 추억 코드를 통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가?
따뜻한 이야기다. 고향 이야기, 친구 이야기 등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따뜻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따뜻한 휴먼 코미디다.
▼ 쓰레기(정우)와 암 환자의 대화, 삼천포(김성균) 할머니의 사랑, 성동일의 첫사랑, 빙그레(바로)의 진로 고민 같은 것들을 말하나?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러브 라인을 하나의 부가적 요소로 집어넣은 거다. 그래야 시청자들이 봐주니까. 어떻게 보면 러브 라인은 다른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기 위한 방편일 수 있다. 물론 스무 살의 풋풋한 첫사랑은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 중 큰 줄기지만, 러브 라인에 함몰돼 있는 드라마는 아니다. 워낙 손발 오그라드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웃음). 그래서 ‘따뜻한 이야기’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는 않을 거다. 그것이 1994년 세대가 아닌 시청자를 이끄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실 러브 라인의 판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다(웃음).
1 어릴 때부터 친남매처럼 지내온 쓰레기와 나정. 어느 순간 서로를 이성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는데…. 2 야구밖에 모르던 연세대 야구부 칠봉이의 뜨거운 첫사랑. 3 4 보기만 하면 아웅다웅하던 윤진과 삼천포는 결혼에 골인한다.
Code 02 사랑의 응답
주인공의 삼각관계는 드라마의 필요충분조건이다. 어디에도 1:1 공정한 사랑 게임은 없다. 밀고 당기는 주인공들의 사랑놀이에 시청자들은 결과를 예측하며 흥미진진해하니까.
하지만 ‘응사’처럼 이러한 사랑 게임에 노골적으로 시청자를 참여시키는 드라마는 처음이다. ‘여기 남편 후보 5명이 있는데, 이 중 누가 여주인공 성나정과 결혼하게 될까?’라며 아예 대 놓고 묻고 있다. 일종의 시청자를 상대로 한 ‘퀴즈’다. 작품 속에 제작진이 정성스럽게 마련한 힌트나 복선·함정이 숨어 있고, 시청자들은 상상과 예측·추리를 넘나들며 보물찾기 하듯 암시를 찾기 바쁘다.
5명의 남편 후보를 이름이 아닌 쓰레기, 칠봉, 해태(손호준), 빙그레, 삼천포로 불렀던 이유도 다 거기에 있었다. 회를 거듭할수록 밑밥이 하나씩 떨어진다. 남편의 이름이 김재준이고 한국이 한일 월드컵에서 4강에 진출하던 2002년 6월 22일에 결혼한다는 설정. 과거와 교차되는 2013년 현재 장면에서 나정의 집들이에 온 남자 5명의 행동과 대사를 통해 진짜 남편이 누구인지를 추측할 뿐이다.
지금까지 빙그레가 동성애일 가능성이 엿보였고, 삼천포는 아예 이름이 공개돼 윤진의 배우자로 낙점된 상태. 쓰레기가 김씨, 칠봉의 이름에 ‘준’자가 들어간다는 설정으로 나정과 삼각 구도를 그리고 있다. 해태 또한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지만 쓰레기와 나정의 합성어 ‘나레기파’와 ‘칠봉이파’로 나뉜 시청자들의 응원 열기도 뜨겁다. 어제 보니 칠봉 같던데 오늘 보니 쓰레기 같고, 드라마가 시청자를 들었다 놨다 하는 요물처럼 얄밉다.
▼ 은근히 해태와 삼천포, 윤진의 삼각 러브 라인을 기대했다. 윤진과 삼천포의 결론이 너무 일찍 밝혀진 것 아닌가?
처음부터 삼천포와 윤진을 짝으로 정해놓고 시작했다. 해태, 삼천포, 윤진의 삼각관계는 의도한 적도 없다. 그냥 시청자들이 그렇게 생각했던 거다.
▼ 그렇다면 제작진이 만들지도 않은 함정에 빠진 셈이다. 지금까지 일부러 함정을 만들어 넣지 않았나? 삼천포가 나정의 남편일 수도 있다는 설정이 결국 함정이 됐다.
처음부터 10:0으로 이기게 돼 있는 경기를 보는 것처럼 재미없는 일도 없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이 제작진도, 시청자도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건 장사꾼의 스킬이 아니라, 이야기꾼의 기술 같은 거다. 그래서 헷갈릴 수 있는 장치도 많이 넣었다. 그런 장치가 많다는 걸 알고 보니까 이것도 장치 같고, 저것도 장치 같다고 하더라. 제작진이 의도하지 않은 장면을 두고 장치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참 많다. ‘아, 이 장면이 저렇게도 해석되는구나’ 하며 놀랄 때도 있다. 하지만 그건 제작진이 참견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만드는 건 우리가 담당하지만 그다음은 시청자들의 장난감이기 때문이다. 평론가들이 영화를 이러쿵저러쿵 해석해놓아도 감독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맞다, 틀리다’ 할 수 없는 처지다.
▼ 이미 내정된 남편이 있지만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도 했다. ‘나레기파’와 ‘칠봉이파’의 응원 경쟁이 아주 치열해서 누구와 이어져도 원망을 듣게 생겼다.
무조건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이어지지 않다니, 말도 안 돼’ 하는 것까지 수용할 수는 없지 않나. 드라마는 다수결로 완성되는 게 아니니까 지지도와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결국 개연적으로 타당한 스토리가 가능하냐의 문제다. 지금도 그 개연성을 쌓아가고 있는 거라고 보면 된다.
▼ 그렇다면 쓰레기와 칠봉, 나정의 삼각관계는 확실한 건가?
아니다. 드라마를 보면 알게 될 거다. 그걸 예측하는 재미를 내가 뺏고 싶지는 않다(웃음).
▼ 이 ‘성나정 남편 찾기’는 몇 회까지 이어갈 ‘퀴즈’인가?
거의 막바지까지 가지 않겠나. 모든 이야기들은 ‘그래서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로 결론 맺는다. 그 결론을 맺는 과정에서 우리는 중간 중간에 ‘그런데 누구랑 누가 잘될 것 같으냐?’ 같은 추임새만 넣고 있을 뿐이다. 내가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던 사람이라 그런 것 같다. 예능은 ‘퀘스천’으로 끌고 가는 거다. 오늘 출연한 게스트가 과연 도전에 성공할까? 이 질문을 던지면 어떤 대답을 할까? 두 사람이 가위바위보를 하는데 과연 누가 이길까? 그렇게 ‘과연?’이라는 자막을 드라마에 넣고 있다고 보면 된다.
각자의 필모그래피로는 예측할 수 없었던 배우들의 환상적인 궁합. 고아라의 망가지는 연기와 나쁜 남자 정우, 김성균의 연기 변신이 극의 몰입도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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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03 드라마의 응답
‘응사’가 인기를 끌자 출연자들의 인기도 동반 상승했다. 10년 무명의 정우, 기존의 인형 같은 이미지를 벗어던진 고아라, 부드러움 속에 남성성을 갖춘 칠봉 유연석, ‘범죄와의 전쟁’ 속 야비한 캐릭터로 각인됐던 삼천포 김성균까지 배우의 재발견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거기에 아이돌 색을 찾아보기 힘든 B1A4의 바로는 빙그레로, 보면 볼수록 ‘잘생겼다’는 생각이 드는 손호준은 해태로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이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1박 2일’ 출신 이우정 작가, 이야기를 꾸려가는 신원호 PD, 그리고 이야기를 표현하는 배우들의 궁합은 찰떡이다.
▼ 배우들이 이렇게 잘할 줄 예상했나? 궁합이 상당히 잘 맞는다.
우리가 감이 좋았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직접 만나보면 정말 ‘케미’(화학적 반응을 뜻하는 말로 여기서는 배역과 연기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경우를 가리킴)라는 게 보이기도 한다. 각자의 작품에서 각자 연기했던 모습을 통해 절대적으로 평가해보면 전혀 계산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게 있다. 그래서 배우들을 여러 번 만나 대본도 읽어보면서 잘 맞겠다 싶은 사람을 찾는 거다.
▼ 준비 과정에서 구토가 나올 만큼 오디션을 많이 봤다는 말을 들었다.
오디션도 보고 그냥 미팅식으로 만나보기도 했다. 손호준과 바로는 제작진이 요청해서 만났다. 배우는 공산품이 아니라서 뜯어서 확인하고 설명서대로 사용하면 예상했던 품질이 나오는 게 아니다. 대본에 잘 맞는가, 대본을 확실히 이해했나, 제작진과 케미가 맞나 하는 것들을 다 따져봐야 한다. 제작진 쪽에서, 혹은 배우 쪽에서 안 맞는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서로 느낌이 맞아야 함께 간다.
▼ 가장 선택하기 힘들었던 배역이 있었나?
다 비슷한데, 특히 성나정 역이 가장 어려웠다. ‘응칠’에서 은지가 너무 잘해줬기 때문에 어떤 배우가 맡아도 100% 비교당할 수밖에 없는 자리였다. (은지 같은) 그런 배우를 어디서 찾아야 하나 싶어서 가장 힘들었다. 고아라도 그렇고, 모든 배우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다.
▼ 10년 무명 배우였던 정우는 대세남이 됐다.
정우는 기본적으로 ‘요즘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고 할 수 있다. 연기의 형식도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인데, 정우는 바로 현대가 추구하는 생활 연기를 한다. 틀에 박힌, 카메라 워킹에 얽매이는 연기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니까 시청자들도 알아봐주는 거다.
▼ 쓰레기 캐릭터에서 벗어나기 힘들 거란 평도 있다.
사실 정우가 진지한 멜로를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걱정도 있었다. 그런 쪽의 연기를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작품으로 그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배우다.
▼ 요즘 쓰레기가 쓰레기가 아니다. 나쁜 남자 캐릭터였는데 지금은 부드러운 남자에 다정한 선배다. 캐릭터의 반전이랄까?
‘응사’는 하나의 소설적 설정으로 가는 드라마가 아니다. 복수에 불타오르는 캐릭터, 한없이 착하기만 한 캐릭터, 절대악인 캐릭터가 아닌 거다. 생활 드라마다 보니 그렇다. 사람이라는 게 그렇지 않나? 엄마랑 있을 때 다르고, 친구랑 있을 때 다르다. 그렇게 사람이 가지고 있는 면면들을 보여주는 거다. 그래서 배우들이 더 연기하기가 힘들 수 있다. 앞으로도 또 다른 성격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 드라마의 부제가 ‘팔도청춘 in 서울’이다. 그중 강원, 제주가 빠져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다.
정말 미안한 부분 중 하나다. 솔직히 말하면 구현할 자신이 없었다. 작가가 경상·전라·충청·서울 출신이 골고루 있는데, 강원과 제주 출신은 없다. 디테일을 알고 써야 재미가 사는데, 우리가 그럴 깜냥이 못 됐다. 그 지역 출신과 인터뷰도 하면서 알아봤는데, 섣불리 했다가 오히려 그 지역 출신들에게 원망을 듣겠다 싶더라. 또 사투리를 제대로 구사해줄 배우도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아쉬운 부분이다.
▼ 신원호 PD의 청춘은 어땠나?
방황하던 시절은 빙그레를 닮아 있고, 놀기도 좋아했으니 그런 부분은 해태를 닮아 있기도 하다. 집에서는 다들 쓰레기 같지 않나? 집에서도 각 잡고 있지는 않으니까. 모든 젊음이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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