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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세계의 교육 현장을 가다 | 중국

전자 책가방이 아이들을 스마트하게 만들까

글&사진·이수진 중국 통신원

2013. 05. 31

6월 1일 중국의 어린이날 선물로 최고 인기 품목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같은 스마트 기기다. 최근 중국의 전자 책가방(電子書包) 사업이 시범 영역을 넓혀가며 보급에 속도를 내고 있다. 갈수록 스마트 기기에 노출되는 연령대가 낮아지는 가운데 일찌감치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 등을 친구 삼아 자란 ‘디지털 키드’들이 이젠 학교에서도 전자 책가방으로 수업을 받게 되는 것이다.

전자 책가방이 아이들을 스마트하게 만들까


중국 정부 교육 정보화 사업의 핵심 아이템으로 꼽히는 전자 책가방은 태블릿PC나 노트북과 비슷한 형태로 전자 교과서나 전자 도서를 읽고 쓰는 기기다. 중국의 전자 책가방 보급은 짧지 않은 역사를 갖고 있다. 2003년 상하이 시 진탕(金棠) 초등학교에서 최초로 전통적인 교과서를 대체하는 전자 책가방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어 베이징과 다롄, 선전에서 PDA 형태의 전자 책가방 시범 사업이 실시됐다.
최근에는 ‘전자 책가방 디지털 교육 시범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전국 각지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2011년 닝보 시 5개 학교와 충칭 시의 6개 초등학교 및 중학교에서 진행됐고, 2012년 가을 학기부터는 우한 시의 3개 학교와 헝양 시 이푸 중학 등에서 실시됐다. 지금까지는 주로 대도시의 초·중등학교 위주로 시범 사업이 시행돼왔지만 점차 고등학교와 중·소도시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2012년 현재 중국의 초·중·고교 재학생은 3억2천만 명. 학생당 평균 교과서 권수는 20권으로 중국 매 학기 교과서 총 인쇄 부수를 계산해보면 60억 부, 연간으로 따지면 1백20억 부다. 매년 사용되는 숙제 노트는 교과서의 두 배만 잡아도 2백40억 권에 달한다. 한 해에 쓰이는 교과서와 숙제 노트만 3백60억 권 이상이라는 계산이다.
이를 대체할 전자 책가방 보급 사업은 IT업계에서 21세기의 새로운 노다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중국의 전자 책가방 시장은 주로 외국 IT기업과 중국 기업이 합작해 만든 제품들이 장악하고 있다. 가장 인기 있는 브랜드는 ‘한왕(漢王)’으로, 이 회사의 2011년 순이익은 5억3천3백만 위안(한화 약 9백67억원)에 이른다. 최근 들어서는 애플사 아이패드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한왕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다.

전자 책가방 속에 들어 있는 것들

전자 책가방이 아이들을 스마트하게 만들까


전자 책가방은 기본적으로 무선 네트워크가 가능하다. 학생들은 인터넷에 접속한 뒤 자신의 계정으로 로그인해 수업에 사용되는 모든 교육 자료를 사용할 수 있다. 또 교사용 컴퓨터와 네트워크로 연결, 원하는 교과 내용을 학생의 전자 책가방 스크린에 표시할 수 있다. 필기도구 기능을 갖추고 있어 4백만 자의 문자와 3천5백여 개 그림도 이용 가능하다. 말 그대로 전자 책가방 하나면 교과서, 공책, 연필이 전부 필요 없어지는 것이다.
이 밖에 학급 배정, 학급 담임 교사 배정, 진급 등의 학급관리 기능과 숙제 내주기 및 검사, 학생들의 숙제 현황 확인 기능까지 갖추고 있다. 또 학생들의 등·하교 시간을 자동으로 기록해 학부모와 교사가 학생의 출결 기록을 공유하는 출결 관리 기능, 성적 공지 기능, 학습 우수자 명단 관리와 같은 다양한 부가 기능을 포함한다. 전자 책가방의 장점은 이처럼 엄청난 저장 및 정보처리 능력과 시청각 자료를 통한 생동감 있는 교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편 최근 ‘국가급 문화·과학기술 융합 시범 기지’로 선정된 선양 시는 기존의 전자 책가방에서 한 발 더 나아가 4D 전자 책가방을 개발 중이다. 4D 전자 책가방은 4D 입체 개인 교육 디스플레이 시스템으로 기본 전자 책가방의 기능뿐 아니라 무안경 4D 입체 기능과 기타 부가 기능을 겸비한 신형 전자 교육 기기를 표방하고 있다. 이 같은 4D 기술이 학생들의 주의력과 이해력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오히려 아이들 뇌 발달 저해할 우려도 있어

전자 책가방이 아이들을 스마트하게 만들까

인구가 많은 중국은 전자 책가방 도입에 적극적이지만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하지만 전자 책가방을 둘러싼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우선 전통 종이 교과서가 아닌 전자 책가방의 스크린을 보고 학습을 하기 때문에 어린 학생들의 시력과 건강이 저하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전자 기기에 둘러싸인 요즘 학생들 가운데 근시가 크게 늘어난 것은 물론 직장인들이 겪는 ‘일자목’이나 ‘손목터널 증후군’ 등의 증상을 일찌감치 겪기도 한다. 이런 우려에 따라 닝보 시에서 실시된 시범 사업에서는 전자 책가방 사용 시간을 15분 이내로 제한했다.
또 수업 외의 시간에 학생들의 과다한 인터넷 사용을 감독하고 제어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있다. 대부분의 전자 책가방은 이 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 게임이나 성인물 등의 청소년 유해 사이트는 접속이 불가능하도록 필터링 기능을 갖추고 있다. 이 밖에 기기 관리와 관련된 보다 현실적인 우려도 있다. 일부 학교에서는 교육 정보화 사업으로 각종 스마트 기기를 구비해놓고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보다는 도난이나 분실이 염려된다며 학생의 접근을 통제하는 상황도 발생하는 실정이다.
가장 근본적인 우려는 이런 스마트 기기가 ‘신기한 장난감’ 이상으로 과연 교육을 스마트하게 만들어줄 것인가 하는 점이다. 빠른 속도의 전자 제품은 아이들이 특유의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를 주지 않아 오히려 사고 과정을 단축시키고 뇌 발육을 방해한다는 지적이있다. 특히 스마트 기기를 많이 사용하는 어린이일수록 ADHD를 보일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알려지면서 학부모들의 근심이 더해지고 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되 전자 기기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고, 아날로그의 감수성과 여유를 지켜낼 수 있는 중용의 새로운 ‘디지로그 교육’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수진 씨는…
문화일보 기자 출신으로 중국 국무원 산하 외문국의 외국전문가를 거쳐 CJ 중국법인 대외협력부장으로 근무 중이다. 중 2, 중 1 아들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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