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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X-FILE

먹고 버린 테이크아웃 잔이 재사용된다?

글 · 김진 채널A 〈먹거리 X파일〉 진행자 | 사진 · REX | 사진 제공 · 채널A | 디자인 · 조윤제

2016. 07. 12

조회수 3만 건 이상. 댓글 1천여 건. 사람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이끌어낸 채널A 〈먹거리 X파일〉 페이스북 게시물의 정체는 한 커피 전문점 내부의 모습이 담긴 짤막한 영상이었다. 화면 속 직원은 손님이 다 마시고 버린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수거해 대충 씻어서 다시 커피를 담아 다른 손님에게 내주고 있었다.

점심시간, 오피스 빌딩이 밀집돼 있는 서울 광화문 거리에선 유명 커피 전문점들마다 직장인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요즘처럼 더운 날씨에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외치는 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시원한 아이스커피 한 모금이 식도를 타고 위로 내려갈 때의 쾌감은 짜릿함 그 이상이다. 이처럼 우리가 열렬히 사랑해 마지않는 아이스커피. 그런데 몇 달 전 필자에게 한 통의 제보 전화가 왔다. 커피 전문점에서 일하고 있는 ‘내부자’로부터였다.

“손님들이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매장에 반납하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 있잖아요. 그걸 씻어서 재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사실 그게 씻는다고 해도 깨끗하지 않아요. 컵 안에다가 쓰레기도 버리고 다른 사람 침도 있을 거고요.”

점주가 비밀 발설 시에는 불이익을 주겠다고 엄포를 놓은 탓에 몇 달을 고민하다 조심스럽게 〈먹거리 X파일〉을 찾은 제보자가 털어놓은 내용은 놀라움을 넘어 경악스러웠다. 더군다나 제보자는 이 커피 전문점이 플라스틱 컵을 재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도대체 언제부터인지 가늠키 어렵다고 말했다. 일회용 플라스틱 컵은 한 번 쓰고 버리면 재활용 업체로 보내져야 정상이다. 그게 상식이라 독자들도 당연히 그렇게 믿고 마셨을 것이다. 제보자의 증언대로 이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 매장에서 몇 번이고 다시 쓰일 줄 상상도 못 했다. 너무나 충격적인 내용이었기에 정확한 사실 확인이 필요했다.

실제로 일회용 커피 컵을 다시 쓰는지 확인하기 위해 제보자가 일하고 있는 커피 전문점을 찾아가 반납대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얼음과 커피 찌꺼기가 남아 있는 플라스틱 컵이 반납대에 쌓이자 직원이 주위를 살피며 재빠르게 반납대로 다가왔다. 그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반납대를 정리하는 척하더니 손님이 버린 일회용 플라스틱 컵만 분류해 계산대 뒤편으로 가지고 들어가버렸다. 그 모든 과정은 순식간에 진행됐고, 종이컵들만 반납대에 남겨져 있었다. 심증은 확실한데 더 결정적인 증거가 필요했다. 이번에는 계산대 뒤편이 훤히 보이는 자리로 옮겨 앉았다. 테이블 너머로 아까 플라스틱 컵을 회수해간 직원이 싱크대에서 설거지를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씻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손님이 버린 일회용 플라스틱 컵. 그는 컵들을 세제도 쓰지 않고 손으로만 대충 씻은 후 차곡차곡 겹쳐서 세워놓고 있었다. 마치 탑이라도 쌓는 듯. 꽤 높게 쌓인 플라스틱 컵들을 양손으로 들어 한두 번 물기를 털어내더니 커피 머신 옆에 새 컵들과 함께 세워두는 대목에선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제보자가 말한 내용은 모두 사실이었다. 다만 쓰레기통에 버린 커피 컵을 꺼내 다시 쓰는 장면은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제보자가 제보한 곳 이외에도 유명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에서 같은 방식으로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재사용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캐러멜 시럽이 담긴 플라스틱 컵도 재사용했으며 생과일 음료를 담았던 컵을 재사용하는 곳도 있었다.

일회용 플라스틱 커피 컵에는 재활용이 가능하다는 표시가 새겨져 있다. 환경보호와 자원 낭비를 막기 위해 재활용은 반드시 잘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취재를 하던 중 직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일부 점주들은 “플라스틱 컵은 재활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깨끗이 세척해서 다시 써도 괜찮다”고 직원들을 교육시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긴가민가하는 직원들에게 점주가 직접 플라스틱 컵의 재활용 마크를 보여주며 설명했다는 것이다. 이 점주들의 말이 사실일까. 그럴듯한 점주의 설명을 그대로 믿은 직원들도 꽤 많았다고 한다.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다시 사용하는 것이 확인된 커피 전문점의 본사에 점주의 설명에 대해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 며칠 뒤 본사에선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담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은 재사용이 금지돼 있습니다. 일회용품이기 때문에 다시 사용하는 것은 안 됩니다. 플라스틱 컵은 3일 이내로 보관하고 있다가 재활용 수거 업체로 보내는 것이 본사의 방침입니다.”



플라스틱 컵은 재활용품이라 다시 써도 괜찮다?

유명 커피 전문점의 본사에서는 손님들이 버린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다시 쓰는 것을 본사 방침으로 금지하고 있었고, 일부 점주들이 컵을 재사용하고 있는 실태도 알지 못하는 듯했다. 결국 가맹점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물론 본사의 관리 미흡도 책임이 크다. 재활용과 재사용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재활용은 재활용 업체에서 플라스틱 자원을 다시 사용하는 것이고, 재사용은 가맹점 차원에서 손님이 버린 컵을 다시 사용하는 비양심적 행위임을 분명히 밝혀둔다.

또 다른 유명 커피 전문 매장을 찾았다. 이곳은 크림이 풍부한 아이스커피를 개발해 판매하는 곳으로 유명하고, 플라스틱 컵도 다른 곳들과는 달리 길고 독특한 형태의 일회용을 쓰고 있다. 전국에 수많은 가맹점을 둔 이 커피 전문점에서도 과연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재사용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한 가지 흥미로운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먼저 이곳의 유명한 아이스커피 두 잔을 테이크아웃 컵에 주문해 컵 밑바닥에 유성 매직으로 작게 원을 그려 넣었다. 커피를 다 마시고 반납대에 컵 두개를 반납한 후 세척과 건조 시간을 고려해 2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다시 같은 커피 두 잔을 주문했다. 플라스틱 컵의 바닥을 확인한 결과 두 잔 중 한 잔에 우리가 2시간 전 그려 넣은 검은 원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2시간 만에 우리가 먹고 버린 컵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이번에는 추가로 컵 4개에 검은 원을 그린 후 반납했다. 2시간 전에 표시해놨지만 미처 돌아오지 못한 컵 하나를 포함해 총 5개에 검은 원이 그려진 셈이다. 역시 2시간을 기다린 후 이번엔 12잔의 아이스커피를 주문해보았다. 12개의 컵 밑바닥을 모두 확인해 본 결과 3개에서 검은색 원이 발견됐다. 이 커피 브랜드의 본사 역시 플라스틱 컵의 재사용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우리에게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들 중 일부는 ‘한 번 쓰고 버리기 아까운데 깨끗하게 세척만 하면 문제없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전문가에게 문의해보았다.

“카페에서 사용되는 얇은 소재의 일회용 플라스틱 컵은 물리적 특성상 약하기 때문에 수세미로 닦는 과정에서 흠집이 나기 쉽고 그 사이로 미생물이 번식할 위험성이 있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전염병 감염의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커피 전문점에서 사용하는 플라스틱 컵의 단가는 뚜껑까지 합해서 채 1백원이 되지 않는다. 5천원에 가까운 비싼 아이스커피 가격 중 단돈 1백원을 아끼기 위해 비양심적인 행위를 하고 있는 셈이다. 먹고 버린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 향할 곳은 손님들의 테이블이 아닌 재활용 쓰레기통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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