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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박한 쓰레기 사냥꾼 트래쉬버스터즈 곽재원 대표

글 두경아

2021. 08. 17

영화 속에서 유령을 잡던 ‘고스트 버스터즈’처럼 다회용기를 통해 일회용품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곽재원 대표를 만나 쓰레기 사냥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연극이 끝나면 무대에는 어둠과 정적만이 남는다지만 축제는 어떨까. SNS 업데이트용 인증 숏, 축제에서 만난 인연, 여전히 가슴 뛰는 여운, 지난밤 숙취…. 축제가 끝난 뒤 남는 건 그런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관객들이 떠난 자리에는 엄청난 양의 쓰레기도 남는다. 온갖 종류의 쓰레기가 분리배출이 되지 않은 채 뒤섞인 처참한 현장은 행사 관계자만이 목격하는 축제의 민낯일 터. 공식적으로 축제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평균 2.5개에서 3.5개의 일회용품을 사용한다는 통계가 있으니, 1만 명이 다녀가는 축제라면 버려지는 일회용품도 2만5천 개에서 3만5천 개에 달하는 셈이다.

일회용품 대체 서비스를 제공하는 ‘트래쉬버스터즈’의 곽재원(41) 대표 역시 과거 쓰레기 처리에 골머리를 앓던 행사 관계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2019년까지 서울의 대표 관광지인 남산한옥마을에서 축제기획팀장으로 일했는데, 매 축제 때마다 발생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는 늘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의기투합해 만든 것이 바로 트래쉬버스터즈다. 1980년대 흥행했던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를 오마주한 이름으로, 유쾌하게 유령을 잡으러 다니던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일회용품 쓰레기를 잡으러 다니자는 마음을 담았다. 이 회사는 축제, 행사, 영화관, 야구장, 심지어 장례식까지 일회용품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출동해 다회용기를 제공하고, 사용한 용기를 수거해 세척 과정을 거친 뒤 또 다른 장소에 제공하며 쓰레기 줄이기에 앞장서고 있다.

트래쉬버스터즈는 2019년 8월 10일, 서울에서 열린 뮤직 페스티벌 ‘일회용품 없는 축제’에서 비롯됐다. 9월 공식적인 창업에 앞서 이 행사에서 베타 서비스(시범 사업)를 펼쳤는데, 그 효과는 놀라웠다. 축제는 매해 3천여 명이 참가해 3백50개 정도(2018년 기준)의 쓰레기봉투에 해당하는 쓰레기를 배출해왔는데, 8개로 대폭 준 것이다. 전년도 대비 관객 수는 늘어났지만 일회용품 쓰레기는 98%나 감소했고, 나머지 2%는 푸드 트럭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축제에 대한 반응도 뜨거웠다. 당시 축제 참가자들은 “굴러다니는 쓰레기 하나 없이 잔디 위를 맨발로 걸어 다녔다” “일회용품 안 쓰기, 가능하네” “귀엽고 힙하고 착하다”며 SNS에 인증 숏을 올렸다. ‘일회용품 없는 축제’는 단숨에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창업과 동시에 여러 업체와의 계약도 척척 진행됐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축제는 취소됐고, 계약도 파기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곽 대표와 트래쉬버스터즈 멤버들은 이런 상황에 굴하지 않고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했고, 일회용품을 일상처럼 쓰는 곳은 이제 모두 사업 대상이 됐다. 코로나19로 인해 쓰레기를 비롯한 환경문제가 더욱더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요즘, 일회용품 쓰레기 퇴치에 앞장서고 있는 곽 대표를 직접 만나보았다.

예쁜 디자인이 매력적인 트래쉬버스터즈의 다회용기들.

예쁜 디자인이 매력적인 트래쉬버스터즈의 다회용기들.

누구나 일회용품 쓰레기가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이미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와 있어 대안이 없다고 여기기 쉬워요. 트래쉬버스터즈의 시발점이 된 ‘일회용품 없는 축제’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저는 오랫동안 축제기획팀장을 맡아왔는데, 축제가 끝나면 행사장은 쓰레기로 인해 지저분했고 치우는 건 저희 일이었어요. 매번 수백 개에서 수천 개에 달하는 쓰레기봉투가 나왔죠. 서울시에서는 일회용품 가이드라인이 내려오지만, 축제 행사장에는 그런 게 없었어요. 환경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면서 다회용기 서비스를 도입하는 일이 의미 있을 듯했고, 사람들이 많이 찾을 것도 같았어요. 당시 저는 회사를 다니며 스터디 그룹에 참여해 지속 가능한 마을 만들기 기획 회의를 계속하는 상황이었는데, 처음에는 저희 아이디어가 사업적으로 가능할지 고민이었어요. 그래서 축제 네트워크를 통해 축제가 열릴 때마다 감독님들에게 “다회용기 서비스가 있으면 쓰시겠어요?”라고 물어봤지요. 대부분 “있으면 당연히 쓰지”라고 답하더라고요. 본격적으로 사업에 돌입하기 위해 스터디 그룹 구성원 중 4명에게 같이하자고 얘기했어요. 이 와중에 저희 아이디어가 사회문제를 해결한 청년 단체의 혁신적인 프로젝트에 임팩트 투자하는 서울시의 ‘2019년 청년프로젝트 투자사업’에 선정됐죠. 2년간 10억원 정도를 지원해주는 큰 사업이었습니다. 친구들도 하던 일을 정리한 뒤 본격적으로 합류했어요.



다회용기 렌털 서비스가 세상에 나오자마자 주목받았지만, 바로 코로나19 팬데믹이 왔어요.

한창 사업 진행 중에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했다면 더 힘들었을 거예요. 처음 한 신문에서 저희를 소개하며 ‘정말 세상에 필요한 서비스’라는 기사를 내보냈는데, 그 덕분에 전국에서 전화가 엄청나게 왔어요. 지난해에만 3백~4백 건이 예약됐을 정도였죠. 저는 전국적으로 미팅만 다녔고, 예약 매출도 무척 늘었죠. 그러다가 이후 3개월은 전부 취소 전화만 받은 것 같아요.

처음에는 축제와 행사만 생각했었는데 사업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판단됐어요. 코로나19로 배달 일회용품이 늘어나는 상황이라 피봇(사업 전환)을 해서 배달 다회용기를 준비하게 됐지요. 또 기업 내에 자리한 사내 카페들은 코로나 상황에서도 계속 운영을 하잖아요. 그래서 기존에 만들어놨던 제품들을 카페에 맞게끔 종류별로 다시 개발해 카페 내 다회용 컵 렌털 서비스도 선보였고요. 지난 4월부터는 KT 광화문 지사 2개 건물의 사내 카페에서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어요. 사내 카페 서비스는 호응이 무척 높아 서비스를 오픈하자마자 한 달 만에 재계 순위 10위 안에 드는 기업은 거의 연락을 해올 정도였어요. 다들 그만큼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던 거죠. 다만 컵 제작 기간이 필요해 아직은 대기하는 상태입니다.

일회용품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곽재원 대표.

일회용품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곽재원 대표.

기업 입장에서 다회용 컵 사용이 환경보호와 더불어 어떤 이로운 점이 있을까요.

매장 내 사용되는 다회용 컵은 직접 세척하기도 힘들고, 생산하는 데 비용도 많이 들지요. 그래서 사용하는 게 텀블러 정도인데, 그건 좀 실효성이 떨어지잖아요. 저희 서비스는 컵을 구입하지 않아도 되고, 서비스 비용도 일회용 컵 가격과 거의 비슷해요. 게다가 수거해서 세척한 뒤 돌려주니 안 쓸 이유가 없죠. 또한 쓰레기 처리 비용도 발생하지 않아요. 그래도 사용자들이 불편하면 소용이 없는데, KT 광화문 지사에는 층별로 수거함이 있어서 그곳에 분리배출 하듯 넣으면 돼요.

위생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인데, 다회용 컵이 얼마나 깨끗하게 세척되는지 궁금해요.

일단 6~7단계의 세척 과정을 통해 바이러스를 99%까지 박멸하고 있어요. 초음파 세척, 불림 애벌 세척, 고압온 고압수 세척, 열풍 건조, UV-C 살균 소독, 정밀검수, 진공포장까지요. 일회용 컵도 깨끗하게 나오지만 이 정도는 아니더라고요. 일회용품에 남아 있는 미생물과 저희 제품을 비교했을 때 30배 정도 차이가 날 정도로 저희가 깨끗했어요.

시기가 시기인 만큼 다회용기에 대한 인식을 극복하는 것도 과제였을 것 같아요.

코로나19로 위생 개념이 더욱 강화되면서 다회용기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 자체가 어려웠어요. 1년 전까지만 해도 다회용기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었고요. 하지만 근래 들어 코로나로 인해 쓰레기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비닐봉투 대신 용기를 챙겨 장을 보거나, 다회용기 사용에 대한 참여가 부쩍 늘어나는 분위기예요. 아이러니하게 코로나 덕분에 전화위복이 된 셈이랄까요. 기업들 역시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의 머리글자를 딴 단어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하는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 경영이 중요해졌으니 실질적으로 동참하려는 움직임도 많아졌고요.

다회용기를 사용하면 쓰레기 처리 비용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줄어드나요.

코로나19 이전으로 살펴보면, 영화관 28곳에서 쓰레기 처리 비용만 1년에 15억원 정도 아낄 수 있더라고요. 쓰레기봉투도 필요 없고, 쓰레기를 치울 인력이 많지 않아도 되고요.

트래쉬버스터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비슷한 업체도 많이 생기는 분위기예요.

최근 스타벅스가 SK텔레콤과 손잡고 동일한 서비스를 시작했고, 앞으로도 계속 생겨날 것 같아요. 사업에서 비용이 가장 많이 들어가는 건 세척, 수거와 관련된 부분이에요. 그 2가지를 효율화해 비용을 낮춰야 하는데, 저희는 그 과정을 기술개발을 통해 자동화하고 있어요. 지금은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거의 마이너스만 나지 않게 사업을 유지하고 있는데, 기술개발을 통해서 자동화가 이뤄진다면 경쟁력이 있을 듯합니다.

트래쉬버스터즈에서 서비스하는 컵은 몇 번이나 재사용할 수 있나요.

2백~3백 번 정도 사용한다고 보면 돼요. 사실 평생 사용할 수도 있는데, 스크래치가 나는 제품은 고객들이 원하지 않으니까요.

다회용기는 어떤 재질로 만들어지나요.

PP라는 플라스틱 소재로, 나중에 재활용하기 좋은 걸로 골랐어요. 사용을 끝낸 뒤 가루를 내서 다시 컵으로 만들 수도 있어요. 플라스틱이라고 무조건 다 나쁜 건 아니에요. 한 번 쓰고 버려지는 게 잘못된 거죠.

오렌지색의 다회용기가 참 예뻐요. 디자인에도 신경을 많이 쓴 느낌이에요.

가치도 중요하지만 디자인이 예뻐야 선뜻 손이 가고 자주 사용하게 되잖아요. 예쁜 디자인 덕분에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고 그만큼 호응도도 높았어요. 실제로 처음 베타 서비스로 ‘일회용품 없는 축제’에 참여하고 난 후 저희 다회용기 사진이 SNS에 도배됐을 정도예요. 보통 축제가 끝나면 페스티벌 콘텐츠에 대한 피드백들이 많이 올라오는데, 용기 포스팅이 오히려 많았어요.

다회용기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사내 카페에 다회용기 서비스를 도입하기 전 담당자가 책상 위에 컵을 올려놨는데 직원들이 “이거 뭐야? 너무 예쁘다”라고 했대요. 보통 다회용 컵이라면 ‘지구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고, 디자인도 기대하지 않잖아요(웃음). 저희는 패션 브랜드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디자인으로 승부를 봐야 하고, 기본적으로 예뻐야 한다고요.

컵이 예뻐 집에 가져갈 수도 있을 듯한데, 보증금 없이 회수율을 높이기 위한 방안이 있나요.

앞으로는 컵에 NFC(근거리 무선통신) 칩을 넣을 거예요. 분실 관리보다는, 나중에 반납했을 때 보증금이 반환된 컵인지 안 된 컵인지 알 수 있게요. 또한 컵에 QR코드를 넣어서 커피 마시며 듣기 좋은 음악 같은 문화 콘텐츠를 제작할 계획도 있어요.

2019년 열렸던 ‘일회용품 없는 축제’ 모습.

2019년 열렸던 ‘일회용품 없는 축제’ 모습.

배달 일회용품을 다회용기로 대체하는 서비스도 준비 중이라고 알고 있어요.

배달 시장은 소규모가 많아 좀 어려워요. 기업 카페 같은 경우 한 건물에 있으니 하루에 한 번 수천 개의 컵을 수거해올 수 있지만, 배달은 그런 비용 자체가 나오지 않아요. 메뉴가 다양하다 보니 용기 종류도 훨씬 많아야 하고요. 이 사업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이 있어야 가능할 것 같아요. 그래서 배달 시장은 트래쉬버스터즈 사업의 끝판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롤 모델로 삼거나 참고했던 사업 모델이 있었나요.

창업 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레퍼런스를 찾다 보니 저희와 비슷한 서비스가 있더라고요. 특히 유럽 쪽에 많았어요. 독일 프라이부르크라는 도시에는 ‘프라이부르크 컵’이라는 게 있어요. 커피를 다회용 컵에 테이크아웃해서 마신 뒤 그 용기를 어느 카페에든 반납할 수 있는 제도지요. 거기에 착안해 저희도 서울시와 함께 ‘서울 시티컵’을 준비하고 있어요. 서울시 어느 카페에서 다회용 컵을 빌리더라도 다른 카페에 반납할 수 있는 모델이에요. 아마 올해 하반기에 시범 사업을 시작할 거예요.

트래쉬버스터즈는 앞으로 얼마나 쓰레기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나요.

2017년 기준, 우리나라 플라스틱 컵 배출량은 연간 33억 개라고 해요. 현재 다회용 컵이 1만5천 개 정도 나가고 있는데 올해 하반기에는 10만 개를 목표로 잡고 있습니다. 최근 스타벅스가 2025년까지 다회용 컵을 사용한다고 선포했고, 아마 그렇게 되면 다른 프랜차이즈들도 따라 하지 않을까요.

가장 보람 있던 순간은요.

업체에서 전화가 올 때죠(웃음). 업체와 미팅을 하면 거의 성사가 되는데 그게 가장 임팩트가 커요. 대기업 같은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고요. 저는 대학에서 연극영화학을 전공한 뒤 연극 연출을 하고, 극단도 운영하고, 배우 활동도 했었어요. 그러면서 예술은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모토가 있었는데, 어찌 보면 지금 그걸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현재 제가 하는 일이 너무 좋고 만족스러워요.

에코백이나 텀블러 등 환경을 위해 제작되는 제품들이 오히려 재활용이 어렵고 환경을 해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어요. 에코 용품들을 잘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오래 쓸 수 있는 것을 사야 해요. 텀블러라고 해도 여러 개 구입하는 건 진짜 안 좋아요. 생산 과정에서 탄소 배출량이 너무 많거든요. 그리고 구입했다면 몇 번 사용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중요할 듯해요.

트래쉬버스터즈의 미래도 기대됩니다.

트래쉬버스터즈는 쓰레기를 줄이는 데 특화된 기업이니 지금까지 해온 일들을 앞으로도 잘해나가고, 아울러 여기서 더 확장하고 싶어요. 일회용품이 사용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또 주변에 버려지는 물건들이 많으니 하반기에는 그런 것들을 재활용해서 가구를 만드는 식으로 시범 사업을 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사진 홍태식
사진제공 트래쉬버스터즈

환경 플랫폼 ‘우그그(UGG)’는 ‘우리가 그린 그린’의 줄임말로, 환경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실천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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