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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어떤 대책도 내놓지 마라” 쏟아진 부동산 정책에 3040 주부들이 분노한 진짜 이유

글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2020. 07. 24

한 달 사이 고강도 부동산 대책이 두 차례 쏟아졌다. 과열된 부동산 시장을 식혀 주리라는 기대와 달리 그야말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부동산 시장이 펼쳐지고 있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급기야 7월 25일 대규모 촛불집회까지 예고했다.

강남·서초 신고가 속출, 매매 3.3㎡ 9천만 원 육박

정부의 잇따른 부동산 정책에도 매매 및 전세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다. 사진은 강남의 아파트 단지. [뉴시스]

정부의 잇따른 부동산 정책에도 매매 및 전세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다. 사진은 강남의 아파트 단지. [뉴시스]

6월 17일 정부는 경기, 인천, 대전, 청주 등 부동산 규제 지역을 추가로 지정하고, 갭 투자를 차단하기 위해 규제지역 내 전세대출과 처분 및 전입 의무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대책을 발표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책 발표 이후 집값은 물론 전셋값까지 상승 기류가 이어졌다. 한국감정원이 발표한 6월 4주 전국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서 매매가는 0.22%, 전세가는 0.14% 올랐다. 

이에 정부는 한 달도 채 안된 지난 7월 10일 또 다시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이번에는 다주택자·단기거래에 대한 부동산 세제 강화, 공급물량 확대 및 기준 완화, 등록임대사업자 폐지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어 서울 시내 공급물량 확대를 위해 ‘그린벨트 해제’ 카드를 꺼냈다가 철회하고 국방부 소유의 노원구 태릉골프장에 2만 세대 입주안을 발표했다. 또한 여권에서는 “세종시로 행정수도 이전을 진지하게 검토해야한다”는 발언까지 나왔다. 이런 정부 대책이 불 붙은 부동산 시장에 기름을 부은 모양새다. 7월 셋째주 한국감정원이 발표한 전국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서 매매가는 0.12%, 전세가는 0.14% 각각 상승했다. 특히 전세가는 지난해 7월부터 계속 올라 52주 연속 상승세를 기록했다. 

문재인 정부의 22번째 부동산 대책 발표에 사람들의 피로감은 극에 달했다. 특히 ‘앞으로 집을 살 수 없다’는 심리가 팽배해져 집을 사려는 이가 늘었고, 곳곳에서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의 신고가도 속출했다. 서초구 반포동 반포자이 전용 84㎡ 28억5천만 원(6월 24일), 강남구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1단지 전용 60㎡는 25억 원(6월 20일), 도곡동 도곡렉슬 전용 84㎡는 26억5천5백만 원(7월 3일)을 찍었다. 

지난해 강남·서초의 입주 5년 내 신축 아파트 가운데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아파트가 3.3㎡당 1억 원에 육박한 가격에 거래돼 세간을 놀라게 한 바 있다. 최근에는 신축이 아닌 입주 15년 안팎의 입지가 좋은 대단지 아파트도 시세를 바짝 쫓는 모양새다. 이제라도 집을 사려고 마음을 먹은 무주택자들은 2년 전보다 더 심해진 ‘미친 집값’에 망연자실한 분위기다. 서울 서초구에 거주하는 30대 주부 김모 씨는 우울감까지 호소했다. 

“연말 전세 만기를 앞두고 집을 사기위해 부동산을 돌아봤는데 정말 말이 안 나와요. 2년 전 같은 단지 저층 매물을 봐뒀거든요. 그때는 정부를 믿었으니까 9·13 대책에 3기 신도시 개발계획까지 나오면 집값이 떨어질 줄 알고 전세를 계약했죠. 지금 그때보다 집값이 3억 원 이상 오르고, 주택담보대출도 막혀서 살 수가 없어요. 2년 전에 정부 말만 믿고 전세 들어간 제 잘못이죠. 옆 동네로 이사하려고 봐도 대출 안 되는 건 마찬가지예요. 매매를 포기해야하는 상황이라 자꾸만 우울해져요.” 



더 심각한 건 전세시장이다. 정부가 투기 수요를 근절하겠다며 6·17대책에서 ‘재건축 조합원 2년 이상 실거주’를 분양 요건으로 제시하자 세입자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또 1주택자의 경우 2년 이상 실거주 요건을 채워야 양도소득세 기본세율을 적용받기 때문에 이 역시 전세 시장을 불안하게 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더불어 전·월세 상한선 등 전세시장을 인위적으로 규제하는 임대차 3법 시행이 예고돼 상승폭이 커졌다. 집주인들이 앞으로 인상하지 못할 전셋값 시세 상승분을 미리 반영해 수억 원씩 올려서 내놓는 것. 세입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하는 실정이다. 국토부 실거래가를 보면 서초구 잠원동 래미안신반포팰리스 전용 84㎡ 전세가는 16억 원(7월 16일), 같은 동 신반포자이 전용 97㎡ 전세가는 16억5천만 원(7월 11일)에 계약됐다. 불과 3년 전 7월, 래미안신반포팰리스 전용 84㎡ 매매가가 16억3천만 원이었다.

다주택자 때리고 서민만 챙겨…3040 중산층은 소외감

정부가 서울시내 주택 공급 방안의 일환으로 내놓은 국방부 소유 노원구 태릉골프장. [뉴시스]

정부가 서울시내 주택 공급 방안의 일환으로 내놓은 국방부 소유 노원구 태릉골프장. [뉴시스]

재건축 조합원 및 다주택자 실거주 요건 강화, 임대차 3법 시행, 재산세 및 종부세 강화 등 정부가 내놓은 각종 부동산 관련 대책들은 집주인뿐만 아니라 세입자들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자녀 교육 때문에 강남구 대치동에 전세로 거주하는 40대 주부 최모 씨 역시 밤잠을 설칠 정도로 걱정이 늘었다. 

“내년 봄 전세 만기인데 그 전에 집주인이 들어오겠다고 할까봐 걱정이에요. 원래 대치동에서 전세 구하기가 힘든데 요즘은 더해요. 세금 부담 때문에 전세를 반전세로 돌리겠다는 집주인도 많거든요. 정부가 공급을 늘리겠다지만 학령기 자녀를 둔 부모들이 가고 싶어 하는 지역은 그런 데가 아니잖아요. 자사고, 외고도 없어지는 판국에 서울 시내 교육하기 좋은 곳은 전세가 씨가 마르니 속이 타들어가요. 제발 더 이상 정책을 내놓지 않길 바랄 뿐이에요.” 

정부가 무주택 실수요자들을 위한 대책을 내놓고 있긴 하지만 조건이 애매한 중산층은 기대를 접은 지 오래다. 특히 청약의 경우 아무리 노력해도 ‘무주택 기간’에서 50대 이상에게 30~40대가 밀릴 수밖에 없어 연거푸 쓴 잔을 들이킨 이가 수두룩하다. 정부가 생애최초 특별공급을 확대하고, 소득요건에서 월평균 소득을 130%(맞벌이 140%)까지 확대하기로 했으나 경쟁자가 그만큼 늘어나니 마냥 기뻐하기 어렵다. 

청약 점수가 아까워 계속 기다릴까 하다가도 집값이 3~4년 사이 급등하는 걸 지켜만 볼 수 없어 집을 샀다가 낭패를 본 경우도 있다. 마포구에 거주하는 40대 워킹맘 박모 씨는 “지난해 집을 샀는데 못난이 매물이라 적당한 때 팔고 갈아타려고 했다가 완전 발목 잡혔다. 1주택자라 청약은 꿈도 꿀 수 없고, 집값은 고공행진인데 주택담보 대출 최대 금액은 줄었다. 애들 키우기 좋은 곳으로 크기를 넓혀 이사하고 싶었는데 답이 없다. 주거 계층의 사다리를 걷어 차였다는 걸 절감한다”고 말했다. 


23일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질문에서 답변하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뉴시스]

23일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질문에서 답변하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뉴시스]

7월 23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집값이 오름으로 인해 젊은 세대와 시장의 많은 분이 걱정하는 것에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며 취임 후 처음으로 사과의 뜻을 표했다. 그러면서 “이런 걱정이 해결되기 위해서는 주택과 관련된 투기 수익이 환수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완비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갖가지 전망을 쏟아내는 가운데 정부 대책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는 이가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부동산 대책이 계속 쏟아지니 관련 법규와 세제를 제대로 외우기 어려울 지경이다. 이런 부동산 규제는 시장에서 결과가 느리게 나타나는데 지금의 초고강도 정책이 2~3년 후 부동산 침체를 야기할 수 있다. 과유불급라고 정부가 더 이상 대책을 내놓기보다는 3기 신도시 및 교통대책 등 약속한 공급안을 신속히 이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정책에 분노한 시민들은 7월 25일 서울 도심 곳곳에서 대규모 집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10개 단체가 중구 을지로 일대와 서초구 대법원 부근 서초대로에서 집회를 한 뒤 행진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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