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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EBS 스타 영어 강사 정승익 “상위권에 들려면 사교육보다 목적의식이 중요해요”

오홍석 기자

2023. 02. 23

남들 다 하니까 안 하면 뒤처질 것 같아 도무지 안 할 수 없는 것. 바로 사교육이다. 불안감을 원료로 타오르는 교육열은 마치 ‘군비경쟁’을 연상시킨다. 17년간 고등 교사로 활동한 정승익은 학부모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단언컨대, 사교육 줄이셔야 합니다.”



1월 ‘어머님, 사교육을 줄이셔야 합니다’를 출간한 정승익 강사.

1월 ‘어머님, 사교육을 줄이셔야 합니다’를 출간한 정승익 강사.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의 머리글자를 따 만든 이 유행어는 ‘놓치거나 제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남들보다 뒤처진다고 생각할 때 느끼는 두려움’ 등을 뜻한다. 원산지인 영미권에서는 주로 다른 사람의 SNS를 보며 느끼는 소외감을 표현할 때 쓴다. 한국 사회에서는 사교육을 표현할 때,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단어가 있을까 싶다.

지난해 5월 발표된 한국교육개발원의 ‘국민에게 듣다-교육에 대한 국민 인식과 미래교육정책의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학부모들이 사교육을 시키는 이유로 ‘남들이 하니까 심리적으로 불안하기 때문에’(24.3%)와 ‘남들보다 앞서나가게 하기 위해서’(23.4%)가 1, 2위를 차지했다. 사회적으로 학벌을 중시하고 이를 쟁취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학생과 학부모 처지에 사교육을 시키지 않는 건 자칫 경쟁에서의 도태를 의미할 수 있다. 뒤처진다는 두려움은 한국 사교육계를 지탱하는 주요 원료인 셈이다.

17년간 공립학교 교사로, 10년 넘게 EBS와 ‘강남구청 인터넷수능방송(강남인강)’에서 영어를 가르쳐온 스타 강사 정승익은 사교육 열풍에 제동을 거는 인물 중 하나다. ‘영포자(영어 과목을 포기한 사람) 탈출 전문가’로 이름이 높은 그는 1월 ‘어머님, 사교육을 줄이셔야 합니다’를 펴낸 뒤 2월 교사직을 내려놨다. “사교육을 줄여야한다”는 그의 주장은 곧 “덜 불안해해도 된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사교육 안 해도 불안할 필요 없다

정승익 강사가 EBS에서 영어 독해를 강의하고 있는 모습.

정승익 강사가 EBS에서 영어 독해를 강의하고 있는 모습.

17년간 몸담았던 교직을 떠난 이유부터 여쭙고 싶습니다.

평소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의 절반은 운명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지난해 여름부터 책을 쓰면서 ‘좋은 부모는 무엇일까’ ‘좋은 아빠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등의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동안 사람들에게 그렇게 ‘좋은 부모가 돼라’고 했으면서 정작 저는 좋은 아빠가 아니었더라고요. 너무 바쁜 나머지 집에도 일찍 못 들어가고 아이들과도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젠 좀 더 좋은 아빠로 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교사인 동시에 인터넷 강의도 열심이셨는데, 학교 안팎 풍경은 좀 다를 것 같습니다.

제게 학교 안팎은 정말 다릅니다. 가령 똑같은 아이더라도 학교에 있는 학생과 학원에 있는 학생의 모습은 완전히 다른 것처럼요. 경계에 있다는 건 장단점을 동시에 지닙니다. 우선 다른 교사들과는 다른 경험을 하고 더 많이 생각할 수 있다는 건 장점이에요. 반면 단점은 두 군데를 왔다 갔다 하며 고민이 2배로 늘어났다는 거죠(웃음). 분명한 건 경계에 있는 덕분에 학생과 학부모님들께 다양한 경험을 많이 전달해드릴 수 있다는 거예요.

17년, 적지 않은 시간 공교육 현장에 계셨는데 퇴직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요.

제가 자주 드리는 말씀인데, 학교가 학부모님들이 다니던 시절과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아이들은 공부를 놓고 경쟁하고 힘들어해요. 제가 교직을 마칠 때까지도 크게 분위기가 바뀌지 않아 그 점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책 제목이 도발적입니다.

전반적으로 사교육을 시작하는 시기가 굉장히 빨라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에는 고등학교 가서야 정신 좀 차리고 공부한다고 생각했는데, 요새는 중학생이 공부하는 거는 너무 당연해졌고 초등학교 저학년도 학원을 서너 군데씩 다닙니다. 물론 아이가 좋아하고 원한다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학원을 다니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한다면 걱정되는 결과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교육에 대해 분명히 한 번은 좀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한 것 같아 책을 출간하게 됐습니다.

어떤 독자층을 염두에 두고 책을 쓰셨나요.

제 강연에 오시거나 질문을 하는 분은 대체로 공부 잘하는 아이를 둔 학부모님이기보다는 아이 교육이 맘대로 되지 않는 분이실 겁니다. 사교육을 시키면서도 불안해하시는 분들, 누가 옆에서 조언을 해줬으면 하는 분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커요.


타의로 상위 7% 안에 들 수 있을까

정승익 강사는 학부모들에게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같이 시간을 보내며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탐구하도록 도우라”고 조언했다.

정승익 강사는 학부모들에게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같이 시간을 보내며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탐구하도록 도우라”고 조언했다.

현 교육 시스템은 경쟁에서 승리해야 목표를 이룰 수 있는, 그야말로 줄 세우기식이다. 학부모의 불안을 부추겨 마케팅을 펼치는 학원도 적지 않다. 하지만 정승익 강사는 조금 다르게 접근한다. 그는 “사교육에 대한 투자는 곧바로 결과로 이어지지 않고, 사교육의 효과를 제대로 누리려면 그 이상의 특별한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말했다. 과연 그가 말하는 특별한 전제 조건은 무엇일까.

사교육을 줄여야 하는 이유는 뭔가요.

책에도 썼지만, 무작정 사교육을 줄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되, 더불어 공부에서도 원하는 성취를 얻을 수 있게끔 돕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제가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말은 사교육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겁니다. 아이들이 헤쳐나가야 하는 경쟁이 결코 만만치 않기 때문이죠. 아이들이 이름 있는 대학에 ‘인서울’ 하려면 100명 중 7명 안에 들어야 합니다. 상위 7% 안에 드는 건 결코 사교육만으로 되지 않아요. 그런데도 절대적으로 사교육을 맹신하는 분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따라서 책에는 아이가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교육 외에 뭐가 필요한지를 서술해놓았습니다.

구체적으로 그게 뭔가요.

먼저 학생은 상위 7% 안에 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뚜렷한 목적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좋아하는 것을 참고 시간을 아껴가며 공부해야 하니까요. 이런 고통을 참아내면서까지 이루겠다는 뚜렷한 목적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고통을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공부를 안 하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공부하라’는 말은 잔소리죠. 잔소리는 잘 안 통합니다. 그래서 제가 강조하는 게 어려서부터 아이들이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스스로 묻고 탐구하는 시간을 갖게 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현실은 반대인 경우가 많아요. 아이들이 커갈수록 부모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점점 줄어듭니다. 고등학생에겐 격려밖에 해줄 게 없어요. 어려서부터 학원 서너 군데 보낼 게 아니라 거실에서 같이 책도 보고, 같이 공부도 하면서 아이 스스로 목표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 스스로 목표와 성취욕을 갖게 돼요.

부모라면 ‘공부하라’는 말을 안 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아이들이 원치 않는데 부모가 강요하면 비극이 시작됩니다. 가정에서 불화의 요소가 싹트고 결국 아이들은 힘들어지죠. 그렇기에 아이 스스로 목표를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학생이 가볍게 “그럼 난 공부 안 해”라고 하는 것도 곤란하죠. 공부가 인생에 끼치는 영향은 막대하거든요. 나중에 성인이 돼서 ‘나는 공부가 아니라 다른 길이 맞았던 것 같아’라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우리 사회에서 그런 기회가 많이 주어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학생들 스스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본인이 잘하는 게 무엇인지 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봤으면 합니다.

수능 영어가 목표라면, 중학교도 늦지 않다

정승익 강사는 “수능을 목표로 영어 공부를 한다면 중학교 때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조언했다.

정승익 강사는 “수능을 목표로 영어 공부를 한다면 중학교 때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조언했다.

최근 업계 최고를 뜻하는 ‘일타강사’라 불리는 유명 강사들이 수능 붕괴론을 제기해 화제를 모았다. 이들은 더 이상 수능으로 인재를 선발하는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한 강사는 대학 서열 또한 무너져내릴 것이라 예측했다. 주로 수능 강의를 통해 몸값을 올리고 이름을 알린 이들의 주장이라 더욱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에 대해 정승익 강사는 “언젠가 대학 간판이 중요하지 않은 날이 오겠지만 그것이 언제가 될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현재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바를 열심히 하는 게 맞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자녀들 교육은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많은 분이 교육 전문가는 자기 자식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궁금해하시더라고(웃음). 제 원칙은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겁니다. 저희 아이들이 초등학교 1학년과 4학년인데, 저희 가족은 거실에 있는 긴 테이블에서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같이 종이접기도 하고 보드게임도 하죠. 제가 책을 보면 아이들도 따라서 책을 보기도 하고요. 이렇게 애착 관계를 형성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런 기억들은 훗날 아이들이 어른이 돼서도 오래 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교육은 따로 안 시키나요.

네. 학원을 보내고 있지는 않습니다. 저희 아이들이 지금 열심히 학원 다니는 아이들과 같은 시험을 보면 문제는 훨씬 덜 맞힐 겁니다. 대신 저는 아이들이 어떤 일을 할 때 실패해도 다시 시도하도록 격려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불안해하기보다는 원칙을 지켰기 때문에 과정이 맞으면 결과에 대한 책임도 제가 지는 것이고, 저는 과정이 맞으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영어 조기교육 열풍은 여전한 것 같습니다. 영어 강사로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이가 영어를 좋아하는데 뒷받침해줄 여력이 있다면 어렸을 때부터 조기 유학이건, 영어유치원이건 지원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아이가 영어를 좋아하면 더 그렇죠. 하지만 아이가 원치 않는데도 부모가 강요해서 영어 공부를 시키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원어민처럼 영어를 하지 않더라도 학교에 들어가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수능을 목표로 한다면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영어 공부를 해야 할까요.

요새는 초등학생 때부터 문법과 독해를 공부하기도 하던데, 제 경험상 중학교 때부터 준비해도 늦지 않습니다. 어릴 때 영어 교육 투자가 수능 영어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건 아니에요. 중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해도 아이들에게 분명히 기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물론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아이가 공부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학부모님들도 알고 계시겠지만 현재 수능 영어는 90점만 넘으면 1등급을 받는 절대평가입니다. 그런데도 1등급이 7~8%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 경쟁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학생의 의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정승익 강사는 책의 가장 첫 페이지에 교육학자 존 듀이의 말을 배치했다. “교육의 참된 목적은 각자가 평생 자기의 교육을 계속할 수 있게 하는 데 있다.” 현직에서 아이들의 입시 경쟁을 돕기 위해 뛰어왔지만, 그의 교육관은 늘 학생을 최우선으로 둔다. 그런 그에게 묻고 싶었다. 아이들이 입시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학교는 학생들에게 뭘 가르쳐야 할까.

“제가 미래 교육 전문가는 아니지만, 교직 생활 중 아이들이 가장 행복해 보일 때는 학생들 스스로 과제를 설정하고 문제를 해결할 때였어요. 프로젝트 주제를 토론을 통해 정하고, 국내외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하곤 하는 모습에 여러 번 감탄했습니다. 따로 교사의 역할이 필요 없더라고요.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상대평가라든가 등급제 같은 틀은 아이들의 다양한 능력을 억눌러 무색무취한 사람으로 만듭니다. 앞으로 미래에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는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이들 스스로 이런 능력을 기르게끔 돕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정승익 #어머니사교육을줄이셔야합니다 #입시 #여성동아

사진 지호영 기자
일러스트 게티이미지 사진출처 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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