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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삼프로TV’ 김동환 소장 세 차례 금융 위기를 이긴 힘

글 정혜연 기자

입력 2021.03.29 10:30:02

스타급 인기를 누리며 공중파와 케이블, 유튜브를 망라하는 경제 전문가 김동환 소장. 유튜브 ‘삼프로TV’ 진행자이자 대안금융경제연구소 소장, 이브로드캐스팅 이사회 의장을 겸하며 재테크 인사이트를 심어주고 있는 그를 만났다.


동학개미라면 유튜브 구독 목록에 ‘삼프로TV_경제의신과함께(이하 삼프로TV)’가 분명 올라가 있을 것이다. 1백26만 팔로어를 보유한 삼프로TV는 김동환, 이진우, 정영진 3명의 경제 전문가가 주식 시황 중계부터 전문가 대담까지 폭넓은 경제 정보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2018년 팟캐스트 ‘경제의 신과 함께’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2019년 1월 유튜브로 진출했고, 지난해 1백만 팔로어를 돌파하며 경제 전문 채널로서는 독보적인 입지를 다졌다. 

3명의 전문가 가운데 가장 연장자이자 삼프로TV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사람은 김동환(54) 대안금융경제연구소 소장 겸 이브로드캐스팅 이사회 의장이다. 그는 삼프로TV에서도 어려운 경제 용어나 개념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고, 프로그램의 중심을 잡아주는 ‘1프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MBC 주식 예능 ‘개미의 꿈’, SBS 신년특집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 카카오TV ‘개미는 오늘도 뚠뚠’ 등에 출연해 대중적으로도 친숙하다. 

젊은 시절의 김동환은 언론인을 꿈꿨다. 방송국 취업에 번번이 고배를 마시자 돈을 벌면서 언론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증권사에 취직한 것이 그의 인생을 180도로 바꿔놓았다. 증권사에서 트레이딩 업무를 맡으며 남다른 실적을 쌓아 승승장구한 것. 20대 후반 젊은 나이에 채권 거래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997년 영국 버밍엄대학교에서 금융을 전공한 뒤 귀국해 2000년 하나IB투자 과장으로 입사했고, 2년 뒤에는 이사대우로 승진했다. 불과 서른여섯 살에 이룬 성과였다. 

밤낮 없이 일에만 몰두하던 김 소장은 잠시 휴식을 가지기로 하고 2005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우연한 기회에 신발 비즈니스를 하면서 사업가로서도 성공을 맛봤다. 그러던 중 2008년 귀국해 리딩투자증권에서 전무로 일하며 채권 투자로 경이적인 수익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4년 뒤 일선에서 물러난 김 소장은 저술 작업을 하며 ‘작은 부자로 사는 법’ ‘인플레이션의 시대’ ‘빅히트’ 등을 펴냈고, 강연 활동도 했다. 



최근 1년 사이 국내 주식시장은 변화를 맞았다. 기관과 외국인이 주도했던 주식시장에서 개인 투자자를 뜻하는 동학개미가 하나의 큰 축으로 자리 잡은 것. 그만큼 주식 투자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다는 걸 체감하는 요즘, 김 소장을 만나 굵직한 경제 위기가 터질 때마다 헤쳐온 인생 스토리와 주식의 시대에 가져야 할 투자 자세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30대 증권사 임원, 남다른 인생 여정

매일 유튜브 콘텐츠를 업로드하고, 각종 경제 관련 방송에 출연하며 정신없이 보내시는 것 같아요. 

공중파 경제 프로그램은 단발성으로 출연했고, 여러 유튜브 채널에서 인터뷰한 건 10개 정도밖에 되지 않아요. 삼프로TV에서는 원래 오전 시황과 저녁 심야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는데 회사 일이 바빠져 저녁 진행에선 빠졌어요. 스케줄을 적절히 조절하고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시간에 쫓기진 않아요.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하기 전이 훨씬 바빴어요. 각종 강연과 사회로 전국을 돌아다녔죠. 지금은 삼프로TV에 출연하는 것 외엔 고정으로 맡고 있는 건 없어요. 

유튜브에 경제 관련 방송이 굉장히 많은데, 삼프로TV만의 존재 의미가 있다면.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나라 국민의 경제적 민도를 높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교육이라고요. 고등학교 입학 무렵 성문기본영어를 볼지 종합영어를 볼지 선택해야 했어요. 주변에서 그냥 종합영어를 바로 보라고 해서 그걸 먼저 공부했더니 기본영어는 너무 쉽더라고요. 마찬가지예요. 경제적 민도를 높이는 데 가장 어려운 과목이 주식이라고 생각해요. 잘 배우면 기업을 아는 것은 물론 재무제표를 보는 법부터 금리, 환율 등 거시적 안목으로 경제 전반을 알게 되죠. 과거에는 불완전 판매가 횡행해 금융 사고가 정말 많이 일어났어요. 주식을 공부한다면 금융 사고에 휘말리는 일도 줄어들 거예요. 

요즘에는 경제적 민도가 상당히 높아진 것 같은데요. 

지난해부터 많은 분들이 탁월한 선택을 했어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주가가 빠졌을 때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저점에서 투자를 시작했거든요. 제가 30년 가까이 현업에서 투자한 관점으로 보면 이렇게 기회가 왔을 때 투자한 것은 나중에 엄청난 결과를 가져다줄 거예요. 나아가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서학개미도 많은데 장기적으로 해외에서도 상당한 국부를 만들어 국내로 송금받게 될 날이 올 테고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건전한 투자, 바른 투자를 할 수 있도록 좋은 취지로 하는 방송에는 대체로 나가고 있어요. 여성동아와의 인터뷰도 요즘 여성분들의 주식 투자 퍼포먼스가 정말 좋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응했습니다. 

삼프로TV가 구독자 1백26만을 기록했어요. 2년 만에 이렇게 성공하리라 예상하셨나요. 

어느 정도까지는 될 수 있겠다고 봤어요. 2018년부터 팟캐스트에 ‘경제의 신과 함께’라는 경제 콘텐츠를 쌓아왔거든요. 유튜브를 시작할 때만 해도 기대를 했는데 오픈 1개월 만에 1만 팔로어를 찍고 나서부터는 잘 안 늘더라고요. 그러다 2019년 말 알고리즘에 걸렸는지 구글신에 접신됐는지 구독자가 폭발했어요(웃음). 또 2020년 3월 국내 주식시장에 주가가 엄청 빠졌을 때 개인 투자자들이 어디라도 의지하고 싶었던지 구독자가 다시 늘기 시작했고요. 당시 일종의 사명감이 생겨 심야에 제도권 센터장과 함께 특별 방송을 했더니 지난해 3월에만 13만 명이 늘더라고요. 이후로 주식 투자 붐이 일면서 하루 3천 명씩 늘어 지금에 이르렀어요. 

최근 1년 사이 구독자들의 분위기가 많이 바뀐 것을 체감하나요. 

많이 느껴요. 삼프로TV 진행자들은 각자 역할이 있어요. 게스트가 출연하면 3프로 정영진 MC는 주린이 출신으로 초급 단계의 질문을 던지고, 2프로 이진우 기자는 중급 단계 질문을, 1프로인 저는 고급 단계의 질문을 던지죠. 그러면서 제가 부연 설명도 항상 곁들여요. 불과 지난해까지만 해도 ‘친절한 설명 고맙다’는 댓글이 달렸는데 지금은 ‘알고 있어요 김 프로님’이란 댓글이 달려요(웃음). 그만큼 경제 지식이 쌓였다는 얘기죠. 최근에 장이 좀 빠졌을 때 예전 같으면 ‘지금 한강 갑니다’라는 댓글도 달렸는데 지금은 ‘삼프로 덕에 버티고 있다’는 댓글이 많아요. 그만큼 개인 투자자들의 주식 투자 태도와 주식에 대한 기초 지식이 상당히 좋아졌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분들일수록 수익률이 좋을 수밖에 없어요. 

소장님은 어릴 때부터 돈이나 경제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스스로 이재에 밝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어떻게든 사회발전에 기여하고자 했던 사람이에요. 그런 면에서 학창 시절 줄곧 방송 기자를 꿈꿨어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존재감이 없는 내성적인 학생이었는데 대학 들어가 군대 장교를 하면서 성향이 바뀌었죠. 경제에 감이 있다는 건 금융회사에 입사하면서 발견했죠. 크게 투자에 성공을 한 건 아니지만 경제 위기 때마다 운이 좋았고 그때마다 준비가 돼 있었던 것 같아요. 1997년 IMF가 터지기 직전 주식을 정리하고 유학을 갔다 와서 시드머니를 잘 투자했고, 2008년 금융위기 직전에 미국에서 하던 사업을 정리하고 들어왔어요. 금융 위기 이후 2010년까지는 채권 투자로 수익을 내는 등 성과를 얻었죠. 또 지난해 3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하락장은 예측할 수 없었지만 삼프로TV를 준비해온 덕에 제게도 기회가 됐고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개인 투자자분들은 절대 조급할 필요가 없어요. 준비가 돼 있으면 기회가 찾아오니까요.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는데 증권사 펀드 매니저 일이 적성에 잘 맞았나요. 

막상 입사하고 보니 기자 일보다 재미있겠더라고요. 스물일곱 살에 입사해 처음에는 채권 트레이딩 룸에 배치받아 보조를 했어요. 6개월 뒤 운 좋게 프런트 라인에 앉는 거래자가 됐어요. 워낙 제가 저음이라 목소리 덕을 좀 봤죠. 당시 채권 거래를 전화로 했는데 제 목소리만 듣고 40대 초반으로 생각하시더라고요(웃음). 채권 부서는 채권만 다루는데 전 운 좋게 펀드 매니저 기회가 주어졌어요. 채권과 주식을 같이 다뤄본 몇 안 되는 사람일 거예요. 

1997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는데 이후 IMF가 터졌어요. 

7월에 유학을 갔는데 11월에 한국 정부가 IMF에 도움을 요청했죠. 정확하게는 9~10월에 이미 위기가 왔다고 봐야 해요. 유학을 준비할 무렵 한보, 기아 등 대기업들이 하나씩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당좌거래 정지라고 부도가 나는 기업들이 줄줄이 발생했을 때 ‘뭔가 기업 크레딧에 문제가 생겼구나’ 정도로 생각했어요. 당시 가지고 있던 주식을 정리할지 아니면 유학 가서도 투자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정리하고 부채 상환 후 남은 자금 7천만원을 보관하고 떠났어요. 그 결단이 신의 한 수였어요. 돌아와서 미분양된 아파트 분양권을 하나 사고, 금리 30%짜리 우량 채권을 샀는데 그게 시드머니가 됐죠. 

귀국 후 하나IB증권에 입사해 30대 중반에 임원이 됐어요. 요즘 기업 임원들이 나이가 젊어졌다고는 하지만 30대 임원은 지금도 흔치 않은데요. 

2000년에 과장으로 입사했는데 2년 만에 이사대우가 됐어요. 그때도 성공했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일을 열심히 하는 타입이라 성과를 내는 데에만 집중 했거든요. 기업금융 딜을 했는데 그때도 실적이 좋았어요. 당시 ELS를 처음 만들었고, 채권도 해외 거래 위주로 했어요. 그저 일하느라 정신없었죠.


우리나라 경제 미래는 긍정적

그러다 2005년 돌연 미국으로 건너가셨어요. 

안전한 길로만 가는 것이 바람직한 인생인가, 하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비교적 젊은 나이에 부서 여러 개를 관장하다 보니 힘에 부치기도 했고요. 과연 내가 리더십이 있나, 하는 생각에 다다르니 떠나고 싶어졌어요. 마침 처가가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어서 6개월 쉬러 갔어요. 그런데 쉬는 건 천성에 맞지 않더라고요. 모자 사업을 하는 지인을 만나러 뉴욕에 갔다가 창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디에 오픈할지 보려고 지도 한 장 들고 뉴욕 뒷골목을 샅샅이 다니다가 인파로 가득한 곳을 찾아 자리를 잡았어요. 그런데 시골에서 장사를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 남대문 시장에 가게를 낸 것과 다를 바 없더라고요. 거기는 세계 각국에서 온 백전노장들이 경쟁하는 곳이었던 터라 6개월 만에 망했어요. 하루는 가깝게 지내던 흑인, 히스패닉 친구들이 나이키 한정판 신발이 나오는데 가져오면 잘 팔릴 것이라고 귀띔을 해주더라고요. 다른 주의 신발 체인을 수소문해 대량 매입해 와서 나이키의 소비자 가격보다 비싸게 팔았어요. 시장경제니까 비싸도 줄을 서더라고요. 그게 저의 첫 신발 비즈니스였어요. 그 성공 하나로 비즈니스에 관한 모든 걸 배웠죠. 그때는 정보의 비대칭이 심했기 때문에 가능한 사업이었어요. 가수, 농구선수, 야구선수를 비롯해 뉴욕의 갱단 두목들, 마약 딜러들이 저의 손님이었죠. 당시 제 꿈이 ‘미국의 신발왕’이 되는 거였는데 어머님이 췌장암으로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아서 다 정리하고 귀국했어요. 

2008년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기 직전 귀국해서 증권사 임원으로 복귀하셨어요. 

리딩투자증권을 창립한 오너가 런던에서 채권을 하던 분인데 지인의 추천을 받고 저를 스카우트하러 오셨어요. 처음엔 고민했는데 계약 조건이 상당히 좋아서 7월 말에 귀국해 8월부터 출근했어요. 그런데 정말 한 달만 늦게 사인했으면 불발됐을 거예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져 하버드를 나와 홍콩 금융가에서 일하던 사람들도 해고될 때였거든요. 신발 비즈니스를 더 하려고 미국에 남았다면 다 망했을 거예요. 그 당시 채권이 엄청나게 싸게 나와서 대거 사들였어요. LG디스플레이, KCC 등 지금 내로라하는 기업들의 채권 연 수익이 30%였고, 우리나라 장기 채권도 20%대여서 엄청 사들였어요. 2년 동안 사는 것마다 돈을 벌었죠. 물론 개인 돈은 아니었으나 회사에 막대한 부를 가져다줬어요. 

그런데 또 4년 뒤 회사를 그만두셨어요. 경제적 자유를 이뤘기 때문인가요. 

자산운용사를 운영해보고 싶었어요. 기존 회사에서 출자를 받아 자산운용사인 리딩투자자문을 설립해 초대 사장으로 갔죠. 잘하고 있었는데 모 회사인 저축은행이 부실화돼 접었고, 증권사로 다시 들어오라는 제의를 받았어요. 거기에는 뜻이 없어서 사의를 밝히고 증권업에서는 손을 뗐어요. 그렇게 은퇴하고 MBC 라디오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 패널 출연을 시작으로 ‘김동환의 세계는 우리는’ 등을 진행했어요. 

주식시장이 활황이다 보니 기존 투자자 외에 주부, 청년 등 뉴 페이스들이 많이 진입했는데, 이들의 투자 자세는 어때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요즘 친구 와이프들도 주식 투자를 하는데 그렇게 재미있다며 “갱년기에 주식 투자보다 좋은 게 없다”고 하더라고요. 거기까지는 좋아요. 그런데 주객이 전도되면 안 됩니다. 밸런스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해요. 요즘 방송이나 유튜브에 출연하면 반복적으로 하는 말이 “본진(本陣)이 털리면 안 된다”는 거예요. 주식보다 좋은 투자는 없어요. 그런데 최근 1년 사이 상승장을 맛본 투자자들이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 투자를 꿈꾸기도 하고, 학업을 중단할 생각까지 해요. 본업을 등한시하고 투자에 빠져서는 안 되죠. 저도 주말에 가족과 있을 때는 주식 이야기를 일절 하지 않아요. 가정이 편해야 주식 투자도 잘되는 거거든요. 

최근 1년 사이 유동성 장세로 주식시장이 과열됐다고 보는 사람도 많은데 소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예측하는 건 제 일이 아니에요. 다만 제가 세 차례 큰 경제 위기를 겪어본 바로는 지금 위기를 논할 때는 아니라고 봐요. 위기는 우리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전 세계 주가가 동시에 빠지는 걸 말해요. 요사이 국내 주식이 힘을 못 썼지만 미국 다우지수는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어요. 2021년 미국 경제성장률이 6~7% 정도로 전망되고 있어요. 우리나라 경제성장률도 3.3%로 예상되고 있죠. 저 역시 우리나라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봐요. 하나씩 보자면 증권시장에 투자자들이 기관에서 개인으로 변하고 있고 기업은 삼성전자, 현대차, LG전자, 하이닉스 등 나빠지는 데가 보이지 않아요. 네이버, 카카오, LG화학 등 우리나라 간판 비즈니스도 좋아지고 있어요. 해외 언론에서 우리나라 기업에 대해 언급하는 비율이 상당히 늘었고요. 과거에는 상상도 못 할 일이죠. 또 주주를 대하는 태도도 좋아졌고, 정부도 잘해주고 있기 때문에 근거 없는 위기설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봐요. 

50대 중반인데 다 이루신 걸로 보여요. 아직 꿈이 있으신가요. 

인생을 단선적으로 살 필요는 없어요. 저는 3부작을 생각하고 있어요. 40세까지는 나와 가족을 위해 일하고, 60세까지는 나와 이웃을 위해 일하고, 그 이후에는 나와 세계를 위해 일하는 거죠. 지금 하고 있는 삼프로TV는 나와 이웃을 위해 하는 일인데 적당한 시기에 좋은 동료들과 후배들에게 넘겨주고 싶어요. 이후 삼프로TV에서 성과가 나면 아시아 최고의 경영대학원을 만드는 게 꿈이에요. 자꾸 말을 해야 실행에 옮길 것 같아서 일단 말하고 있어요(웃음). 국민들이 경제를 잘 알면 기업이 좋아지고, 기업이 좋아지면 투자가 일어나게 돼 있죠. 그런 선순환 구조에 이바지하는 경영자들을 키우고 싶습니다.

사진 박해윤 기자



여성동아 2021년 4월 6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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