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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interview

여성을 위한 콘돔 만드는 박진아 인스팅터스 대표

글 문영훈 기자

입력 2020.07.06 09:53:23

여성의 건강에 중점을 맞춘 기술이나 상품을 아우르는 팸테크 시장이 날로 성장하고 있다. 팸테크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인스팅터스 박진아 공동대표를 만났다.
펨테크(Femtech)는 여성(Female)과 기술(Tech)의 합성어로 여성의 건강과 삶의 질 향상에 초점을 맞춘 기술 및 상품을 포괄하는 용어다. 국내 펨테크의 시초로는 섹슈얼 헬스 케어 브랜드 ‘이브(EVE)’를 만든 인스팅터스가 꼽힌다. 이들은 콘돔에 대한 시각을 바꿨다. 콘돔은 남성이 착용하는 것이지만 여성의 건강에 직결된다는 사실에 주목한 것. 천연 라텍스를 사용해 생식기 건강을 도모하고 특유의 역한 냄새도 줄였다. 여성 건강을 생각한 콘돔 외에 자연에서 추출한 성분으로만 만든 젤, 유기농 원단으로 제작한 생리팬티 등을 출시해 건강을 생각하는 여성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2014년에 문을 연 인스팅터스의 성장세는 두드러진다. 연 매출 5천만원으로 시작한 뒤 지난해에는 매출 49억원을 달성했고, 일본과 베트남으로 시장도 넓혔다. 여성을 위한 사회적 활동도 계속 진행하고 있다. 코로나19와 싸우는 여성의료진을 위해 생리컵 3천개, N번방 사건 이후 디지털 성범죄 법제화 연구 단체에 1천만원을 기부했다. 인스팅터스가 지향하는 바는 여성을 포함해 청소년과 성소수자 등 성 문화에서 주체로 나서지 못했던 사람들을 위한 제품을 만들고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 동물 실험을 최소화한 제작 과정도 인스팅터스가 추구하는 바다. 

인스팅터스는 2014년 ‘부끄럽지 않아요’라는 이름의 콘돔 쇼핑몰로 시작했다. 박진아(29) 대표와 고등학교 동창인 성민현, 김석중 대표가 함께 만들었다. 하루에 주문이 다섯 건만 들어와도 행복했지만 수익이 나지 않는 사업을 지속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콘돔을 직접 만들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당시 콘돔이 제작과정에서 3등급 발암물질인 니트로사민이 나온다는 문제점을 파악한 박 대표는 몸에 유해하지 않은 성분과 방법으로 콘돔을 제작하기로 결심했다.

Q 대표 상품인 이브 콘돔은 어떻게 탄생했나 

2014년 창업을 준비하며 주변 여자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콘돔 가격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콘돔 이야기를 하는 것조차 민망하게 생각했다. 그만큼 콘돔이 우리 사회에서 ‘성’을 음성화하는 문화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 콘돔은 남성 중심적인 시각에서 겉보기에 화려하거나 자극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건강’의 한 영역으로 접근하고자 했다. 여성의 몸을 위해 무해한 원료를 사용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섹스를 떠올리면 누군가는 어떤 행위나 야한 동영상을 떠올리겠지만 삶의 일부분으로 바라보게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Q 소비자들의 반응은 어떤가. 

초반에는 “내 몸을 위해서 먹거리는 세심하게 챙기는데 콘돔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 남성 구매자로부터는 “아내나 여자 친구를 위해 좋은 걸 쓰는 게 맞는 것 같다”라는 반응도 많았다. 이후 이브에서 젤, 생리컵, 생리 팬티 등을 출시했을 때 이 브랜드라면 믿고 쓸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Q 생리컵은 건강에 좋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용이 불편하다던데. 

우리나라에서 생리컵이 대중적인 상품으로 자리 잡는 데는 시간이 걸릴 거라 예상한다. 탐폰이 들어온 지 40년이 넘었는데 점유율은 20~30% 선이다. 몸에 넣어야 하고 소독하는 과정도 동반되므로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의료용 실리콘으로 만든 생리컵이 건강에도 좋고 환경도 생각할 수 있어 만들고 싶었다.

Q 인스팅터스가 국내 펨테크 시장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펨테크라는 단어를 지난해 우리 제품을 수입하는 일본업체로부터 처음 들었다. 우리가 ‘펨테크’인가 하는 것에 의문이 들었다. 분명 이브는 여성의 건강에 초점을 맞춘 제품들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펨테크가 여성 삶의 질 향상에 목적을 두고 있다면 인스팅터스는 겸손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여성 생리용품을 만드는 것보다 오히려 여성의 취업, 대출과 같은 실질적인 문제에 도움을 주는 것, 임신 중절 약을 수입하는 것 등이 훨씬 더 여성의 삶을 바꿀 수 있다.

Q 다양한 연령‧성적 취향을 가진 사람이 등장하는 홈페이지 사진이 인상적이다. 

섹슈얼한 제품을 판매하다보니 성적인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홍보 사진이 필요했다. 한 인물을 쓰면 어떤 집단을 배제한다는 인식을 줄 수 있어 주로 자연과 제품을 연결하는 이미지를 사용해왔다. 지난해 말 인스팅터스가 추구하는 건강과 다양성이라는 키워드를 새롭게 시각화하고 싶었다. 연령과 성이라는 이분법에서 탈피해 다양한 사람들을 조명하려 했다. 모델 중에는 직업 모델, 일반인, 유튜버로 활동하는 게이 커플 등 다양하다. 우리만의 방식으로 다양성에 대해 드러내고자 했다.

Q 아직 다양성이 존중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처음 회사를 만들고 청소년을 위한 콘돔 자판기 설치, 퀴어 퍼레이드 참여 등을 할 때는 보수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우리가 바뀌지 않을 것을 알기에 더 이상 관련 항의는 들어오지 않는다. 요즘엔 비슷한 지향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부터 비판받기도 한다. 최근 브랜드전략팀의 한 여성 직원이 ‘생리 중 섹스’에 대한 취향을 갖고 있고, 그런 취향이 나쁜 것이 아니라는 취지의 칼럼을 썼다. 이 칼럼에 대해 몇몇 커뮤니티에서 “한남이다” “여성이 작성한 것이 맞나. 여성이 월경 중 섹스를 좋아할 리가 없다”는 식으로 논란이 됐었다. 생리 중 섹스에 대한 위험성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사과를 하면서도 취향이 매도당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 관련 성명서를 냈었다. 인스팅터스는 성적 주체가 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을 포용하고자 한다.

Q 조명되지 않은 성적 주체가 또 있을까. 

노인이다. 우리 사회에는 나이가 들면 성에 대한 욕구가 없는 사람 취급하는 문화가 있다. 현재 웹으로 구매하는 것이 어려운 분들은 전화를 통해 제품을 구입하기도 한다. 한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건강을 위해 다른 성인용품을 찾다가 우리 회사를 알게 됐는데 실제로 좋은 상품이냐고 물어보시기도 했다. 어르신들이 손잡고 가는 건 애틋하게 보지만, 그들이 키스하고 섹스하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하는 시선이 있다. 아직은 내가 아는 영역이 아니라 브레인스토밍 정도에 그치지만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노인센터 등과 연계해볼까 생각하고 있다.

Q MZ세대 가치소비 성향이 인스팅터스 성장에 영향을 줬을까. 

가치소비라는 말이 많이 쓰이고 있는데 사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크게 공감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어떤 브랜드를 좋아하는 것과 그 브랜드의 물건을 사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이브의 충성도 높은 고객에게 왜 제품을 사냐고 물어보면 비거니즘, 다양성 존중이라는 가치는 후순위로 밀린다. 오히려 건강한 성분을 사용하는 것이 항상 1순위다. 가령 파타고니아가 우리나라에서 큰 매출 성장을 이룬 것도 중고등학생들 사이에서 트렌드가 됐기 때문이다. 기업이 지향하는 가치는 오히려 위기에 처했을 때 평판과 신뢰를 관리할 수 있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 같다.

Q 그렇다면 성장세의 비결은 무엇인가. 

운칠기삼(運七技三)이다. 어렸을 때부터 “왜 할머니는 나에게는 용돈을 1만원 주고, 오빠에게는 3만원을 줄까”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는데 그게 시대에 맞는 사고였던 것이다. 시기도 좋았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터지면서 옥시 계열사였던 업계 1위 듀렉스가 주춤했고, 일본회사인 오카모토도 전범기업으로 알려지며 대안적인 브랜드를 찾는 사람들이 많이 생긴 것도 성장에 영향을 줬다. 사업을 시작할 때 주변에 능력이 뛰어난 동료가 있었다는 점도 운이다. 물론 주말도 없이 일을 한다. 어제도 새로 론칭한 사업 모니터링으로 새벽 3시에 잠들었다. 하지만 주위에서 보면 죽어라 노력해도 안 되는 경우도 있더라. 운칠기삼은 사업에서 성공과 실패가 노력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Q 사업을 운영하며 힘들었던 점은 없었나. 

역시 사람을 대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처음엔 직원들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못했다. 마음이 불편했고, 개인적으로 수평적인 관계를 지향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일을 하다 보니 지적할 것은 지적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과정을 통해 직원이 실수를 줄이고 더 넓은 관점을 갖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결국 회사의 모든 의사결정에 대한 책임은 대표가 책임져야 한다. 직책이 높을수록 더 많은 책임감을 가지되, 소통만큼은 수평적으로 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Q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조언한다면. 

시장조사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 세법이나 상법에 대한 기본적인 공부도 필요하다. 창업심사에도 많이 참여해봤는데 생각보다 터무니없는 상품을 갖고 오는 경우도 많더라. 계산을 확실히 한 뒤에 창업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아니라면 아이템에 대한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한다. 인스팅터스를 만들 때는 콘돔이라는 제품에 대한 시장성이 없었지만 그래도 이게 맞는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Q 앞으로 무엇을 더 해보고 싶나. 

이브에서는 핑거돔, 실리콘 성분의 윤활제 등 신제품을 만들고 있다. 레즈비언들이 섹스할 때 사용하는 핑거돔이 우리나라에서 정식 출시 된 적이 없다. 실리콘 성분의 윤활제도 외국에서는 흔한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정착되지 않았다. 실리콘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실제로 실리콘은 완성도가 높은 성분이라 유해성이 적다. 사업의 다각화를 위해 이브에서 벗어나 새로운 브랜드도 준비하고 있다.

사진 지호영 기자



여성동아 2020년 8월 6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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