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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trend

#플렉스해버렸지뭐야

유튜브 소비 놀이

EDITOR 윤혜진

2020. 01. 28

여기저기서 ‘플렉스(Flex)’란 단어를 사용한다. 도대체 플렉스가 뭐기에 10대부터 30대까지 너나 할 것 없이 빠졌을까. 어른들은 모르는 신조어 플렉스를 셀렙들을 통해 알아봤다.

‘탕진잼’(소소하게 탕진하는 재미)과 ‘욜로’(현재의 행복을 중시하고 소비하는 태도)는 이미 옛말이다. 미래 전문가들이 제시한 올해 대표 키워드 중 지금 가장 핫한 용어를 꼽으라면 단연 ‘플렉스(Flex)’다. 방송가에서도 자주 사용하며 최근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도 오르내렸다. 주로 ‘오늘의 플렉스 인증’, ‘옷 사고 플렉스했다’라는 식으로 쓰인다. 

플렉스는 원래 ‘구부리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운동으로 다져진 근육을 구부리며 몸매를 자랑할 때도 쓰이면서 ‘과시하다’라는 의미가 더해졌고, 1990년대 들어서는 ‘재력, 귀중품 등을 과시하다’란 뜻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 힙합 래퍼들 사이 누가 더 성공했나 과시하는 문화가 유행했는데, 이 같은 경쟁을 플렉스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몇 해 전부터 주로 래퍼들이 가사에 사용하다가 지금의 대중적 유행어로 확산됐다. 

플렉스 유행에 불을 지핀 이는 래퍼 염따다. 2006년 데뷔한 염따는 지난해 초 유튜브 활동을 시작하며 중고 캐딜락 차량 대금 4천만원을 현금 지불하는 등의 기행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러다 8월 Mnet ‘쇼미더머니8’ 출연 당시 고가의 물건을 자랑하며 “플렉스해버렸지 뭐야”라는 말을 했는데, 이 말이 현재 유행 중인 플렉스 문화의 시초다. 염따와 구독자 사이에서 플렉스는 다 같이 즐기는 일종의 ‘소비 놀이’다. 예를 들어 자신의 차로 동료 래퍼 더 콰이엇의 벤틀리 차량을 박은 염따가 수리비를 벌기 위해 티셔츠를 팔면 구독자들이 이를 구입, 3일 만에 20억원을 벌게 해주되 ‘또 플렉스해보라’는 식이다. 염따와 구독자들의 합작 플렉스는 지난 1월 그 벤틀리 차량을 염따가 1억원에 구입하면서 일단락됐다.

수천만원 ‘명품 하울’이 주는 대리 만족

유명 유튜버들은 수천만원어치 명품이나 물품을 구입해 플렉스 인증을 남긴다.

유명 유튜버들은 수천만원어치 명품이나 물품을 구입해 플렉스 인증을 남긴다.

유튜브에서 플렉스를 검색하면 래퍼들이 운영하는 채널 영상과 ‘명품 하울’이란 제목의 게시물이 줄을 잇는다. 명품 하울은 ‘명품’과 물고기가 가득한 그물을 끌어올린다는 의미의 ‘하울(Haul)’이 결합된 신조어다. 기존의 ‘명품 언박싱’(명품 개봉기)과 차이가 있다면, 명품을 적게는 몇 백만원부터 많게는 수천만원어치 대량 구매한 뒤 한꺼번에 개봉해 품평한다는 점이다. ‘헤이즐 Heizle’ ‘아옳이’ ‘한별Hanbyul’ 등 유명 뷰티·패션 인플루언서의 채널마다 명품 하울 영상이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슈스스TV’를 운영 중인 유명 스타일리스트 한혜연도 명품 하울에 가세했다. 조회 수 64만 회(1월 15일 기준)를 기록 중인 ‘슈스스의 루이비통 FLEX’ 영상에서는 루이비통 공식 온라인 몰에서 약 2천2백만원을 지출하는 모습이 나온다. 팔찌, 키홀더, 티셔츠, 이어폰, 핸드백 등 총 20개 포장 상자를 열 때마다 한혜연은 돌고래 목소리로 연신 “너무 예쁘지”를 외친다. 일일이 코디 팁을 알려주다 보니 댓글 반응도 좋다. ‘가격을 떠나 정말 예쁘다. 대리 만족 행복해’ ‘공짜로 명품 코디 받는 느낌’ 등 칭찬 일색이다. 



전혀 다른 차원에서 돈을 물 쓰듯 쓰는 유튜버도 있다. 구독자 3백53만 명의 인기 크리에이터 허팝은 ‘초통령’이란 닉네임에 걸맞게 엉뚱하면서도 남다른 실험 스케일을 자랑한다. 학교 교실을 23만 개의 볼풀공으로 채우거나 지프차 뚜껑을 뜯어서 오픈카로 만들기는 애교 수준. 지난해 8월에는 아랍에미리트의 수도 아부다비로 휴가를 떠나면서 편도 2만 달러, 우리 돈으로 2천3백여만원에 달하는 에티하드항공의 초호화 좌석 ‘더 레지던스 클래스’를 현금 구매해 탑승했다. 거실, 침실, 샤워실을 갖춘 비행기 내부 소개와 일대일 전담 서비스를 본 시청자들은 “우리가 조회 수를 높여준다면 더 신기한 영상을 볼 수 있다”며 뜨겁게 호응했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허팝은 최근 마트에서 5천6백만원가량 장을 봐 보육원과 양로원에 기부하는 깜짝 이벤트를 벌였다.

내가 만족하면 그게 바로 플렉스

애초 플렉스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기꺼이 돈을 더 지불하는 ‘가심비’에서 출발했다. 가심비만 충족해준다면 플렉스할 대상은 무궁무진하다. 다만 어디에 어떻게 돈을 쓰든 금액에 연연하지 않는 쿨한 애티튜드, 그것이 바로 플렉스의 기본이다. 

지난해 8월 MBC PD 출신 최병길 애쉬번 시네마틱 아츠 대표와 결혼한 성우 서유리는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얼마 전 직구한 5백만원가량의 식기들을 공개했다. ‘나 서유리 혼수 장만으로 플렉스해버렸지 뭐야?!’란 제목의 13분 분량 영상에는 프랑스 도자기 브랜드 ‘베르나르도’ 제품 3백만원어치와 2백만원에 구입한 프랑스 ‘크리스토플’ 24피스 커트러리 세트가 나온다. 뚜껑 있는 밥그릇 1백39유로, 과일 접시 1백48유로, 차이니즈 스푼 65유로 등 하나같이 높은 가격대 제품이었지만 그녀의 라이브 방송을 시청하던 남자 팬들은 ‘재떨이냐?’, ‘전시해놓으면 되겠다’는 반응이었다는 게 이 영상의 웃음 포인트다. 

플렉스한 취미를 즐기는 스타도 있다. 기계치로 유명한 ‘아날로그 래퍼’ 블락비의 피오는 또래 남자들이 최신식 스마트폰, 태블릿 PC, 외제 차 등에 관심 가질 때 오로지 카메라 한 우물만 판다. tvN 드라마 ‘호텔 델루나’ 팀 포상 휴가 때 아이유를 만족시킨 인생 사진도 1천만원대 중형 미러리스 ‘핫셀블라드 X1D’로 찍은 것이다. 가격은 보디 1천만원, 렌즈 8백만원 정도로 알려졌으며 피오는 여기에 풍경 사진용 렌즈를 하나 더 소장하고 있다. 웬만한 국산 중고차 한 대 값이지만 피오는 tvN ‘강식당2’에서 장을 볼 때 목에 대롱대롱 매고 나오는 등 데일리용으로 사용했다. 물론 핫셀블라드 X1D 외에도 일명 ‘피오 카메라’로 불리는 필름 카메라 ‘캐논 오토보이 텔레’ ‘라이카 C3’, 즉석 카메라 ‘라이카 소포트’ ‘폴라로이드 원스텝2’ 등 다양한 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플렉스 칭찬해

감자 30톤 구입,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 

평소 SNS를 통해 여타 재벌 2세와는 다른 행보를 보여온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 SBS ‘맛남의 광장’에 출연 중인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방송 중 상품성이 떨어지는 못난이 감자 30톤을 사줄 것을 부탁하자 정용진 부회장은 “안 팔리면 제가 다 먹죠 뭐”라며 흔쾌히 승낙했다. 그리고 진짜로 방송 다음 날 전국 이마트에 못난이 감자가 등장해 하루 반나절 만에 완판됐다. 

백댄서에게 명품 백 선물한 화사 

걸 그룹 마마무의 화사가 백댄서들에게 통 큰 선물을 했다. 지난 1월 8일 제9회 가온차트 뮤직 어워즈 시상식을 마친 후 약 1년간 함께 호흡을 맞춰온 백댄서들에게 명품 백과 용돈을 건넨 것. 특히 선물마다 각각 다른 브랜드의 제품으로 화사가 직접 고르고 손 편지를 동봉해 감동이 배가됐다는 후문이다. 

3천만원 기부 플렉스 김이나 

지난해 말 작사가 김이나는 유기 동물을 위한 동물보호센터 건립 기금으로 3천만원을 기부했다. 가슴을 울리는 노래 가사로 수많은 히트곡을 낸 스타 작사가답게 기부를 하면서도 인상적인 말을 남겼다. “기부가 일종의 플렉스 문화가 되어 칭찬하고 즐길 수 있는 분위기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영화관 빌려 팬들과 관람한 옥주현 

지난해 8월, 가수 겸 뮤지컬 배우 옥주현은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영화 티켓 2백16장을 직접 현장에서 구입해 팬들과 단체 관람했다. 그 영화는 바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김복동’이었다. 김복동 할머니를 잊지 않고 영화가 더 널리 알려지길 바라는 순수한 마음에서 벌인 깜짝 이벤트였다고.

기획 정혜연 기자 디자인 최정미 사진제공 유튜브 캡처 동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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