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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진실게임

TV 맛집은 가짜다? 영화 ‘트루맛쇼’ 김재환 감독

“미디어가 만들어낸 가짜 현실에 속지 마!”

글·김민지 기자 사진·조영철 기자, B2E 제공

2011. 06. 16

모락모락 김이 나고 윤기가 자르르한 음식들, 단박 군침이 돈다. 맛있게 먹는 모습과 ‘최고!’를 연발하는 감탄사 속에 사람들은 ‘TV 속 맛집=최고의 식당’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그 맛집 방송이 드라마나 영화처럼 연출된 것이었다면? 김재환 감독은 다큐멘터리 영화 ‘트루맛쇼’에서 이 모든 게 ‘맛’을 위한 ‘쇼’였다고 폭로했다.

TV 맛집은 가짜다? 영화 ‘트루맛쇼’ 김재환 감독


“30년 전통의 손맛” “3대째 이어오는 최고의 식당”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르는 이 맛!”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문구다. ‘맛집’ 소개에 빠지지 않는 수식어들이다. 맛도 보기 전에 TV 화면 속에서 줄줄이 튀어나오는 이런 미사여구에 현혹돼 맛집 정보를 검색한 적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매일 수도 없이 나오는 맛집 소개 코너들을 보다 보면 대한민국은 정말 ‘맛집 공화국’이란 생각까지 든다.
그런데 과연 이 맛집들은 진짜 ‘맛’이 있을까. TV에 나왔는데 ‘설마, 맛없겠어?’란 생각이 스쳐가겠지만 김재환 감독(41)의 이야기는 달랐다. 그는 “TV에서 맛은 맛이 갔다”며 “더 이상 TV 맛집 프로그램의 뿌리 깊은 거짓말에 속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가 하고 싶은 말들은 3년간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트루맛쇼’에 담겨 있었다.
“이런 걸 ‘왜 만들었냐’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주변에서도 ‘재환아, 인생이 무료했냐. 네가 배불러서 별짓 다 하는구나’란 얘기까지 하더군요(웃음). 오랫동안 제작자로 일하면서 누군가는 이런 얘길 해줄 거라고 기다렸는데 아무도 말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아니면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996년 MBC 시사교양 PD로 TV와 인연을 맺은 그는 ‘MBC 스페셜’ ‘네버엔딩 스토리’ 등 밝고 희망찬 교양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러다 창업의 꿈을 이루기 위해 2002년 퇴사해 외주제작사를 차렸다. 그렇게 방송과 관련된 영상 콘텐츠를 만들면서 남들처럼 재미있게 잘 살아오던 그였다. 하지만 그는 말도 안 되는 현실을 믿게 만드는 미디어의 잘못된 모습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었다. ‘입장 바꾸기 게임’이라 명명한 역지사지 퍼포먼스와 미디어 이면을 알리는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트루맛쇼’는 이 두 가지 기획을 포괄한 그의 첫 결실이었다. 5월6일에 폐막한 전주국제영화제(JIFF)에서 단 두 번의 상영 만에 장편경쟁부문 ‘JIFF 관객상’을 수상할 정도로 그 진가를 발휘했다.
영화는 한 편의 고발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제작진이 직접 TV 맛집의 가짜 손님으로 출연하기도 하고, 급기야 일산에 직접 음식점을 차려 지난 1월 SBS ‘생방송 투데이’에 방영되는 과정까지 낱낱이 보여준다.
“처음 기획할 때 이렇게까지 맛집 프로그램이 잘못돼 있으리라곤 상상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취재하면 할수록 생각지도 못한 면들이 발견됐죠. TV 속 가짜 맛집들에는 하나로 통하는 시놉시스가 있었어요.”
영화에 거론된 프로그램은 KBS ‘VJ특공대’, MBC ‘찾아라! 맛있는 TV’를 비롯해 10여 편. 그의 말처럼 TV 속 맛집은 한결같은 공통점이 있다. 맛집 주인들은 음식 비법을 알려줄 수 없다면서 손사래 치며 TV 출연을 꺼리다 못 이기는 척 촬영에 응한다. 캐비아 삼겹살, 아귀찜 초밥, 청양고추 돈까스처럼 생전 처음 보는 음식들이 버젓이 이색 인기 메뉴로 소개되고, 손님들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을 먹는 양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속된 말로 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현실 고발 위해 직접 식당 차리고 맛집 출연

TV 맛집은 가짜다? 영화 ‘트루맛쇼’ 김재환 감독


“TV 맛집에 출연하고 싶다면 맛집 브로커와 홍보대행사에 수백만 혹은 수천만원의 협찬금만 건네면 돼요. 방송사들이 외주제작사에 적은 제작비를 지원하다 보니 대신 협찬 형식으로 돈을 받을 수 있게 공식 루트를 열어둔 거죠. 그때부터 맛집을 소개하기 위한 각본 있는 드라마가 펼쳐져요. 냄새도 맡을 수 없고 맛도 볼 수 없는 음식을 맛있게 소개하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신메뉴를 개발하고, 가짜 손님들에겐 맛깔스런 대사를 외우게 한 뒤 방영하는 거예요. 여기에 또 하나 문제점은 외주제작사만 관여하는 협찬금을 방송사가 나눠 가졌단 사실이죠.”
스타가 소개하는 맛집 코너 역시 마찬가지였다. 돈만 있다면 맛집 출연에 불가능이란 없었다. 인터넷 동호회에는 방송 출연을 하고 싶거나 공짜로 음식을 먹고 싶은 사람을 버젓이 가짜 손님으로 모집하고, 식당과 방송 프로그램을 연결해주는 브로커들은 새로 생긴 식당을 찾아 수시로 방송 견적을 냈다. 그러나 진짜 충격은 고발 프로그램에 나온 비위생적인 식당이 TV 속 맛집으로 둔갑할 때였다.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맛집 방송 제작 현실에서 나온 촌극이었다.
“영화가 제작되던 지난해 3월 둘째 주, 일주일간 방송된 맛집만 세어보니 1백77개였어요. 그러니까 1년간 9천여 개 맛집이 방송되는 셈이죠. 이렇게 수많은 맛집이 나오는데 이런 거 고려하면서 만들겠어요? 그러니 이쪽에선 불량 식당으로 나온 곳이 저쪽에선 최고의 식당으로 나오는 거죠.”
김 감독은 애초 이 영화를 만들 때 영화 ‘트루먼쇼’에서 아이디어를 땄다. 모든 게 가짜인 공간에서 30여 년을 산 한 남자의 이야기가 결국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을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또 그가 좋아하는 소설가 로알드 달의 ‘맛’이라는 단편소설의 영향도 받았다.
“아마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나면 황당하고 웃길 거예요.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할 거고요. 하지만 먼저 왜 이런 작품이 만들어졌는지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단순히 가짜 맛집을 고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렇게 만들 수밖에 없는 제작 현실을 알리고 싶었거든요.”
김 감독은 맛집 가짜 손님 체험을 위해 일부러 PD 지망생인 대학생들을 섭외했다. 한 프로그램이 철저하게 돈에 의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경험한 이 대학생들은 “이렇게 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냐”고 되물었다. 또 진짜 맛집이어서 순수하게 촬영된 맛집 주인으로부터 “요즘 하도 가짜 맛집이 판을 쳐서 손님들이 이렇게 방송 탄 맛집을 피해서 다닌다더라”는 말까지 들었다.
“결국 이 모든 이야기들을 들었을 때 가짜 맛집 방송 때문에 수많은 선의의 피해자들이 생기는 거죠. 분명 방송된 맛집 중엔 진짜 맛있어서 촬영된 곳도 있겠죠. 그런데 그런 곳은 아주 드물다는 얘기예요. 이 영화가 개봉된다면 정말 TV 맛집들이 의심을 받을 수도 있겠죠. 그러나 진짜 맛있다면 맛의 진실은 변치 않는다는 겁니다.”
김 감독은 인터뷰 내내 자신이 절대 ‘투사’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의 외주제작사 일의 70~80%가 MBC 프로그램인 점을 볼 때, 이런 고발은 웬만한 용기로는 하기 어렵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며 “5월 말이나 6월 초 개봉될 ‘트루맛쇼’는 이제 그 시작일 뿐”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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