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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이 남자가 사는 법

핑크빛 사랑 노래하던 노도철 PD 아빠 되고 달라진 것들

글·김유림 기자 사진·이기욱 기자

2011. 03. 16

막무가내 뱀파이어 일당과 혈혈단신 노총각의 기막힌 동거를 그린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 가슴 먹먹해지는 운명적인 사랑을 노래한 ‘소울메이트’ 등으로 마니아층의 사랑을 받는 노도철 PD. 그가 새 주말드라마를 들고 돌아왔다. 최근 몇 년간 활동이 뜸하다 싶었는데, 그 사이 그는 핑크빛 러브스토리를 노래하던 대표 싱글남에서 아내에 아들까지 둔 어엿한 유부남으로 변해 있었다. 그의 인생 드라마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핑크빛 사랑 노래하던 노도철 PD 아빠 되고 달라진 것들

새로 시작한 MBC 주말드라마 ‘반짝반짝 빛나는’ 제작발표회에서 출연자들과 함께.



시청자든 방송사든, 스타 PD에게 거는 기대는 남다르다. 감각적인 연출과 스토리 전개, 시청자를 빨아들이는 흡입력 등 스타 PD만의 저력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드라마 시장에서 침체기를 보이는 MBC는 주말드라마의 시청률 회복을 위한 급처방으로 ‘노도철 카드’를 빼들었다. 노도철 PD(40)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 드라마 ‘소울메이트’ 연출가로 작품 속에 유쾌함과 휴머니즘을 동시에 담아내 호평 받았다.
그가 이번에 선택한 작품은 주말연속극 ‘반짝반짝 빛나는’. 주말드라마 연출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 연속극은 극의 흐름상 미니시리즈나 시트콤과 같은 감각미를 기대하기 어려운데, 이와 관련해 노 PD는 기존 자신의 연출 스타일을 고수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주말드라마는 스튜디오 촬영이 많은데, 다소 밋밋할 수 있는 화면을 좀 더 역동적인 앵글로 커버하려고 해요. 카메라 대수도 늘리고 스튜디오에서는 흔히 쓰지 않는 지미집(크레인 같은 구조 끝에 카메라를 설치한 것)도 쓰고요. 특히 세트장에 많은 공을 들였어요. 기존 평면적인 느낌의 세트장이 아니라 입체감이 있고 리얼리즘이 가미된 세트를 기대하실 수 있을 거예요.”
‘반짝반짝 빛나는’은 타인의 실수로 한순간에 인생이 뒤바뀐 한 여자(김현주)의 밝고 경쾌한 성공스토리를 그린다. 재벌집 딸에서 하루아침에 가난한 식당집 딸로 추락하지만 실망하지 않고 자신의 노력으로 일과 사랑에 성공하는 현대판 캔디 스토리다. 출생의 비밀이라는 소재 자체만 보면 ‘막장’ 내지 ‘진부함’이 떠오르지만 노 PD는 이와 관련해 느긋한 입장이다.
“출생의 비밀이 드라마 전개에 핵심은 아니에요. 극 초반에 이미 비밀이 다 밝혀지죠. 무엇보다 배유미 작가의 대본은 ‘막장’과는 거리가 멀어요. 배 작가 특유의 유쾌함과 젊은 감각이 돋보이는 연속극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더불어 노 PD는 영하 20℃의 혹한 속에서도 성실하게 촬영에 임해준 연기자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특히 중견 탤런트 길용우는 코믹 연기를 위해 실제로 눈썹을 밀었고, 이유리는 대역 없이 2m 깊이 구덩이에 뛰어들었으며, 특별출연한 정태우는 생니 위에 보철을 끼우는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매회 출연자들에게 감동받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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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잘하는 배우는 정말 매력적이죠. 고두심씨의 경우 집중력이 대단한데 옆에서 모니터만 봐도 눈시울이 뜨거워질 정도로 진심어린 연기를 하죠. 연기자들의 ‘투혼’을 지켜볼 때마다 제가 참 연기자 복이 많다는 생각이 들곤 해요. 예전에 시트콤을 할 때만 해도 연기지도를 많이 하는 편이었어요. 워낙 신인연기자들이 많다보니 연출자로서 빨리 톤을 잡아주어야 했거든요. 하지만 요즘 같아서는 제가 굳이 나설 필요도 없더라고요(웃음).”
물론 이번 드라마에도 신인은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가수 박유천의 동생 박유환을 들 수 있다. 캐스팅과 관련해 그는 안정적인 기성배우들을 중심으로, 젊은 신인을 발굴해 시청자들에게 신선함을 안겨줘야 한다는 주의다. 박유환은 오디션을 거쳐 캐스팅 했는데, 오디션 과정에서 눈물을 흘리며 감정연기를 해내는 모습을 보고 ‘잘 다듬으면 좋은 연기자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나이 마흔에 깨달은 가족애, 드라마에도 적극 투영
노도철 PD는 요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이면서도 다 제각각인 ‘가족 이야기’에 관심을 쏟고 있다.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관심이기도 하지만 나이 마흔에 아빠가 된 ‘늦깎이 가장’으로서 관심사이기도 하다. 총각 시절 오랜 자취 생활로 인한 외로움에 ‘내게도 가족 같은 사람이 찾아오면 좋겠다’는 생각 끝에 ‘안녕, 프란체스카’를 탄생시켰듯, 결혼 후 그는 아내와 아이를 통해 맛본 뜨거운 가족애를 이번 드라마에 투영하고 있다.
“운명의 장난으로 아이가 뒤바뀌었다고 생각하면 부모로서 정말 가슴 찢어지는 일이잖아요. 만약 아직도 제가 총각이었다면 그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사실 예전에는 낳은 정과 기른 정 중에서 낳은 정, 즉 핏줄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제가 막상 아이를 돌보고 말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사랑을 쏟아보니까 기른 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겠더라고요. 이러한 생각의 변화가 분명 작품에도 반영될 거라 생각해요.”



핑크빛 사랑 노래하던 노도철 PD 아빠 되고 달라진 것들

평소 신부감으로 띠동갑 연하를 외쳤던 노 PD는 실제로는 한 살 연하의 ‘소울메이트’와 결혼했다.



전작 ‘소울메이트’에서 온 세상을 핑크빛으로 물들인 운명적인 사랑을 그린 노도철 PD는 실생활에서도 운명 같은 인연을 만났다. 평소 배우자감으로 ‘띠동갑’을 외쳤던 그였지만, 실제 그의 아내는 그보다 한 살 아래. 지난해 첫 만남에서부터 서로를 운명이라 직감한 두 사람은 3개월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불꽃 같은 연애를 하고 “마흔 되기 전, 아홉수 되기 전”인 서른아홉, 서른여덟살에 결혼했다.
물론 과거지사이긴 하지만 오랫동안 띠동갑을 꿈꿨던 연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대해 노 PD는 “PD라는 직업 특성상 젊은 감각을 유지해야 하고, 나 역시 유치한 면이 다분해 어린 여자와 더 잘 맞을 거라 생각했다”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의 아내를 소울메이트로 받아들인 건 그야말로 정신적 교감이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학에서 미학을 전공한 아내는 드라마·영화 평론에도 조예가 깊고 대중문화에 관심이 깊어 그와 통하는 부분이 많다고. 노PD는 아내를 소개하며 “리스펙트한다(존경한다)”는 표현을 여러 번 썼다.
“제가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에요. 영미 로맨스 소설 1백편을 분석하기도 했는데, 연출가인 저보다 감수성도 뛰어나고 박식하거든요. 사실 처음 아내를 소개받았을 때는 나이가 한 살 차라 해서 거의 기대 안했어요. 또 누군가를 통해 인위적으로 만난다는 것 자체가 썩 내키지 않았고요. 그동안 ‘사’자 붙은 분들도 여럿 만나봤는데, 조건으로 인연을 맺으려는 경향이 강해서 별로더라고요. 그런데 아내는 처음부터 말이 잘 통하고 얘기를 하면 할수록 정말 즐거웠어요. 결국 그 자리에서 불이 붙어 급속도로 결혼까지 갔죠. 아내는 제가 순진해보이고 재미있어서 좋았대요(웃음).”

불꽃같은 연애와 결혼, 아내는 진정한 ‘소울메이트’

핑크빛 사랑 노래하던 노도철 PD 아빠 되고 달라진 것들


노 PD는 결혼하고 1년도 채 안 돼 아빠가 됐다. 허니문베이비로 아들 규민이를 얻은 것. 마흔의 나이에 얻은 아이는 그야말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경이로운 존재라고 한다. 그는 자신의 미니홈피에도 규민이의 백일사진 폴더를 따로 만들어뒀는데, 사진 속에서 아들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행복해 보인다. 그는 요즘 드라마 촬영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쉬는 날에는 ‘베이비시터’로 완벽하게 변신한다고 한다.
“집에 있을 때는 무조건 아기를 돌보려고 해요. 아기가 아빠의 냄새와 얼굴을 기억하게끔 해주려고요. 무엇보다 아내가 혼자 갓난아이를 보느라 고생이 많거든요. 예전에는 육아가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는데, 막상 아이가 태어나니 엄마가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지 알겠어요. 밤에 잠도 제대로 못자고 우는 아이를 달래는 걸 보면 대견하고 고맙죠. 주위 선배들을 봐도 촬영장에서는 카리스마 넘치고 터프한 분들이 집에만 가면 청소며 육아에 그렇게 열심일 수 없더라고요. 예전부터 ‘이혼 당하기 싫으면 알아서 잘 하라’는 조언을 하도 많이 들어서 최선을 다해 아내를 도우려고 해요(웃음).”
아이가 태어난 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TV 시청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라고 한다. 결혼 전 거실 벽면 한켠에 최신식 오디오 장비를 설치해 놓고, 쩌렁쩌렁한 사운드로 음악과 영화 감상을 즐겼던 그로선 TV를 보지 않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그럼에도 그는 오로지 아이를 위한 마음으로 TV 시청을 자제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처음엔 그것 때문에 아내와 트러블이 있었어요. 제 직업상 TV를 안 본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하지만 아이한테 TV를 보여주면 시력이 나빠질 뿐 아니라 두뇌 발달에도 좋지 않다고 해서 되도록 TV를 켜지 않으려고 해요. 결혼을 해도 기존에 누리던 싱글라이프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완전히 착각이었더라고요.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서는 가족을 위한 자신의 희생이 반드시 필요하고, 일정 부분 포기할 줄도 알아야 편하다는 걸 요즘 부쩍 깨닫고 있어요(웃음).”
지난해 10월부터 이번 드라마 작업을 시작한 노도철 PD는 올 가을까지는 시청률에 울고 웃는 드라마 연출가로 살아야 한다. 그렇기에 그는 벌써부터 작품을 끝낸 뒤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 비장한 표정으로 “드라마가 끝나면 가장 먼저 외국 드라마에 나오는 멋쟁이 아빠처럼 유모차를 끌고 공원을 산책하고 싶다”고 말하는 그를 보니 ‘천하의 스타PD도 아빠는 아빠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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