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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이들의 인기 비결

이 땅에 펑크와 힙합 뿌리내린 그룹 크라잉넛 & DJ DOC

나쁜 아이들, 팬과 함께 어른 되다

글·임진모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11. 02. 17

이 땅에 펑크와 힙합 뿌리내린 그룹 크라잉넛 & DJ DOC


지난해 12월 크라잉넛(Crying Nut)이 ‘어떻게 살 것인가’(동아일보사)라는 책을 내고 서울 홍대 앞 상상마당에서 팬들과 만남을 가졌을 때 스스로 30대 후반이라고 밝힌 한 여성 관객이 일어나 이렇게 말했다. “15년이 됐다는 게 믿기질 않아요. 크라잉넛과 함께 저도 나이 먹고 결혼해서 아이 키우는 주부가 됐습니다! 아직도 크라잉넛이 맹렬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에 감사드려요. 저도 크라잉넛처럼 자신 있게 살고 있습니다.”
1995년 홍대 앞 ‘드럭’이라는 이름의 비좁고 허름한 라이브 카페에서 연주하다가 2년 후 공식 데뷔한 크라잉넛이 어느덧 15년 이상의 역사를 쌓았다. ‘어떻게 살 것인가’도 크라잉넛 활동 15주년을 기념해서 발간된 책이다. 크라잉넛의 보컬 박윤식은 “노래하고 술 마시고 춤추며 고민하지 않고 살았더니 후다닥 세월이 흘렀다. 처음 시작할 때는 15년을 버틸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DJ DOC는 크라잉넛보다 데뷔가 빠르다. DJ DOC는 1994년 ‘슈퍼맨의 비애’로 데뷔하자마자 큰 성공을 거두었고, 크라잉넛은 1998년 ‘말 달리자’로 호응을 얻은 것을 감안하면 스타덤의 측면에서 4년 정도 선배라고 할 수 있다. 나이를 봐도 박윤식을 비롯한 크라잉넛의 주요 멤버들이 1976년생들인데 비해, DJ DOC의 이하늘은 1971년생이다.
DJ DOC의 활동 17년은 영광과 부진으로 점철된 파노라마의 세월이었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도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당시 떵떵거리던 H.O.T.가 5년 만에 해체하고 지금 이름은 남아 있어도 움직임이 미미한 당대 톱스타들과 비교하면 이들의 장수는 경이롭다. DJ DOC는 ‘나 이런 사람이야’로 컴백을 알리면서 2010년 히트곡 리스트의 상위에 올려놓았다.
DJ DOC 팬들은 어느덧 주부 혹은 직장의 중견사원이 됐지만 가사와 직무의 고달픔을 즐겁게 극복하고 능동적으로 자기 삶을 꾸려갈 줄 안다. 즐거움과 재미는 부분적으로 DJ DOC와 공유하는 정서다. 이하늘은 지난해 음악활동을 재개하면서 “유행을 떠나 사람들이 가장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음악, DJ DOC에게 가장 잘 맞는 음악을 하고자 했다”며 신보를 설명했다.

좋아한다면 부딪쳐, 까짓 거 부딪쳐!
DJ DOC와 크라잉넛의 음악을 들으며 10대와 20대를 보낸 사람들은 이제 30대 중반에서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이들이 그간 많은 대중가수들을 접했지만 정서적 영향 측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DJ DOC와 크라잉넛일 것이다. 두 그룹 하면 떠오르는 수식어가 ‘아웃사이더’ 또는 ‘악동’이다. 이 말은 주류에 있든 비주류에 속하든 두 그룹이 일정한 틀에서 벗어나 자기 색깔을 강렬하게 밀고 나간 존재임을 가리킨다. 조금은 대놓고 까칠하고, 가끔 말썽을 피우며 반항적으로 행동하는 이미지다. 이것은 바로 젊음과 직결된다. 반항은 청춘의 전유물 아닌가.
크라잉넛과 DJ DOC 세대는 고분고분한 순응이 아니라 때론 할 말 하고 스스로 즐거움을 찾는 당당한 도전을 미덕으로 삼는다. 크라잉넛의 노래 ‘착한 아이’를 보자. ‘착한 아이 잘나간다/ 자랑 마라 이것들아/ 나쁜 아이 나가신다/ 우리들은 크라잉넛…’
책 ‘어떻게 살 것인가’의 부제는 이렇게 말한다. ‘좋아한다면 부딪쳐, 까짓 거 부딪쳐!’
DJ DOC는 ‘나 이런 사람이야’의 가사가 웅변한다.
‘괜찮아 나니까/ 하나를 배우면 열을 깨달아버리는 나니까/ 손발 다 써도 안 되면 깨물어버리는 나니까/ 대박 나든 쪽박 차든 쏠리는 대로 사니까/ 아닌 걸 보고 아니라고 하니까/ 나 이런 사람이야 알아서 기어/ 아니면 쉬어 알았으면 뛰어/ 그래 내가 원래 그래/ 그래서 뭐 어쩔래…’

이 땅에 펑크와 힙합 뿌리내린 그룹 크라잉넛 & DJ DOC

1 2 ‘철없는 미중년’과 ‘환갑의 로커’를 꿈꾸는 크라잉넛. 나이 오십 육십에도 언제나 ‘말 달리자’와 같은 사나운 펑크를 노래하고 싶다고 말한다. 3 가요계 ‘악동’ DJ DOC는 그동안 그들이 일으킨 무례한 행동에 대해 무조건 나쁘다고 매도할 수 없게 하는 묘한 힘을 가졌다.



노랫말만 젊은 것이 아니라 음악도 젊다. 10년이 흐르면 세태와 유행이 변하기 때문에 당연히 음악도 부분 조정과 변화를 취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들은 처음 등장했을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에너지 넘치는 젊디젊은 음악을 들려준다. 이하늘이 우리 나이로 마흔하나, 김창렬과 정재용이 서른아홉이고 초등학교 동창생인 크라잉넛(박윤식, 이상혁, 이상면, 한경록)은 모두 서른여섯 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가볍게 지나칠 문제는 아니다.
명백한 어른이지만 음악에 관한 한 푸른 청춘이다. 나름 ‘노장’인 DJ DOC가 지난해 성공적으로 컴백한 것도 요즘 젊은 세대가 동화될 수 있는 젊은 음악을 가지고 나왔기 때문이다. 군복무 중인 20대 초반의 한 청년은 말한다.
“‘나 이런 사람이야’의 가사는 내 심정을 대변한다. DJ DOC가 젊은 사람들의 마음을 잘 포착하는 것은 실제로 그들이 육체적 연령과 무관하게 정신적 연령이 젊기 때문인 것 같다.”
크라잉넛은 지금도 ‘철없는 미중년’과 ‘환갑의 로커’를 꿈꾼다. 한경록은 30대 중반인데 미래가 불안하지 않냐는 질문에 “불안함은 사라졌고 대신 욕심이 생긴다. 로커라는 직업 자체가 철들지 않게 해주는 면도 있어서 그런 것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답한다. 박윤식 또한 “나이 오십 육십에도 언제나 ‘말 달리자’와 같은 사나운 펑크를 노래하고 싶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기분 좋은 트러블메이커들
젊다는 것, 부딪친다는 것은 기성의 가치, 질서와 충돌할 위험이 있다. 악동이란 말이 괜히 붙었겠는가. DJ DOC는 2000년에 내놓은 5집 앨범에서 ‘L.i.e’와 ‘포조리’라는 곡을 통해 자신들을 비하하고 옥죄는 기자와 경찰을 향해 퍼붓는 비속어와 욕설 때문에 앨범이 연소자 청취 불가를 넘어 판매금지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폭행사건도 끊이지 않았다.
이하늘은 섹시 콘셉트를 취한 당대 최고 인기 걸그룹 ‘베이비복스’를 두고 ‘미아리복스’ ‘섹스가수’라는 막말을 서슴지 않아 법정 소송을 당할 뻔했고, 지난해에는 한 음악 프로에서 상을 받은 보아에게 화풀이하듯 꽃다발을 짓밟는 소동을 일으켜 팬들에게 사과했다. 연예스타에게 당연히 주어지는 공인의 모습은 아니다. 이러니 악동이라는 표현을 들먹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DJ DOC의 팬들은 물의를 일으키는 이러한 언행을 무조건 죄악시하지 않고 거기서 일상의 자제와 억압을 털어내는 작은 솔직함을 읽는다. 옳은 것은 아니지만 무조건 나쁘다고 매도할 수 없으며, 아무도 함부로 말할 수 없고 마구 행동하기 어려운 것을 그들이 용감하게 해주는 데서 오는 쾌감을 맛본다는 것이다. 트러블메이커에 대한 일종의 로망으로 볼 수도 있다.
진실에 한 발짝 더 가까운 이러한 상투에 대한 도전은 크라잉넛도 마찬가지다. 한 페스티벌에서 크라잉넛이 무대 전체를 누비며 격한 노랫말과 소란스런 사운드를 들려주자 구경 나온 한 어른이 흥분한 나머지 사람들을 붙잡고 “이건 악마의 음악, 사탄의 음악이야!”라고 고함을 친 일도 있다. 이런 광경은 그들의 콘서트에서 흔히 볼 수 있다.
2006년 발표한 크라잉넛의 ‘룩셈부르크’는 앨범 가운데 가장 빼어난 곡이었지만 한 방송사에서 금지처분을 내려 제대로 홍보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감수해야 했다. 가사 ‘룩 룩 룩셈부르크/ 아 아 아르헨티나/ 석유가 넘쳐나는 사우디/ 이거 사람이 너무 많은 차이나/ 월드컵 2연패에 브라질/ 전쟁을 많이 하는 아메리카…’의 뒷부분이 반미(反美)적 요소가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들의 노래제목은 ‘다 죽자’처럼 지독한 것들이 많다. 어른들은 우려할지 몰라도 젊은 세대는 크라잉넛의 공격적인 노래들을 들으며 힘을 보충한다.
크라잉넛은 인디밴드지만 ‘말 달리자’의 성공 이후 주류밴드로 변질됐다는 비주류 음악계의 세찬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돈 벌어가며 희희낙락하는 밴드가 무슨 인디냐는 것이다. 크라잉넛 멤버들은 반박한다. “인디 음악은 무조건 상업적으로 성공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클럽 공연을 꾸준히 하고 작사 작곡 연주도 직접 하니까 여전히 인디다. 떠도 인디는 인디인 거다. 인디밴드라고 해서 항상 가난하게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두 그룹의 음악은 재미있다. 흥이 철철 넘쳐난다. 절제되고 숙성시킨 언어가 아니라 그들 눈에 비친 주변의 일상사를 여과 없이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솔직한 언어이기 때문일 것이다. DJ DOC의 가사는 유쾌하고 진솔한 언어의 꼭짓점이다. 우리는 그들이 마구 묘사한 것 같은 노랫말이 허구 아닌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사실이라는 것을 안다.

이 땅에 펑크와 힙합 뿌리내린 그룹 크라잉넛 & DJ DOC


‘친구들과 미팅을 갔었지/ 뚱뚱하고 못생긴 애 있길래 와 쟤만 빼고 다른 애는 다 괜찮아/ 그러면 꼭 걔랑 나랑 짝이 되지/ 내가 맘에 들어하는 여자들은 꼭 내 친구 여자 친구이거나/ 우리 형 애인, 형 친구 애인, 아니면 꼭 동성동본…’(‘머피의 법칙’)
‘청바지 입고서 회사에 가도/ 깔끔하기만 하면 괜찮을 텐데/ 여름교복이 반바지라면/ 깔끔하고 시원해 괜찮을 텐데/ 사람들 눈 의식하지 말아요/ 즐기면서 살아갈 수 있어요/ 내 개성에 사는 이 세상이에요/ 자신을 만들어 봐요…’(‘DOC와 춤을’)

재미 그리고 메시지
크라잉넛도 다르지 않다. DJ DOC처럼 느낀 대로,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인다. 그러면서도 세상을 향한 일갈, 우리의 치부를 들춰내는 것 같은 진실한 토로를 잃지 않는다.
‘이러다가 늙는 거지 그땔 위해 일해야 해/ 모든 것은 막혀 있어 우리에겐 힘이 없지 닥쳐/ 사랑은 어려운 거야 복잡하고 예쁜 거지/ 잊으려면 잊혀질까 상처받기 쉬운 거야 닥쳐/ 닥쳐 닥쳐 닥쳐 닥치고 가만있어…’(‘말 달리자’)
‘나무가 사라져간 산길 주인 없는 바다/ 그래도 좋지 아니한가 내 마음대로 되는 세상/ 밤이 오면 싸워왔던 기억/ 일기를 쓸 만한 노트와 연필이 생기지 않았나/ 내 마음대로 그린 세상…’(‘좋지 아니한가’)
두 그룹의 음악이 쉬 망각되지 않는 것은 유쾌하지만 그 속에 의미가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말했다. “크라잉넛과 DJ DOC의 장수 비결은 재미와 메시지의 동거에 있다”고. 크라잉넛의 ‘말 달리자’와 DJ DOC의 ‘머피의 법칙’은 2007년 웹진 ‘이즘’에서 음악 전문가들이 뽑은 ‘우리를 흔든 노랫말’ 설문에서 각각 2위와 20위를 차지했다.
재미를 찾으면서도 의미를 놓치지 않는 이러한 접근은 크라잉넛과 DJ DOC와 함께 어른이 된 사람들의 자세와 궤도를 함께한다. 어느새 아줌마 아저씨가 됐지만 이 세대는 막연히 재미만 추구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메시지의 노예들도 아니다. 재미와 메시지가 ‘믹스’돼야 한다. 선배 세대처럼 의미만 따지지 않으며, 후배 세대처럼 오로지 재미에만 매달리지도 않는다. 어쩌면 크라잉넛과 DJ DOC 세대가 진짜 ‘낀 세대’일지 모른다. 바람직한 낀 세대.
DJ DOC와 크라잉넛의 음악적 성공은 푸짐한 포상을 받아야 한다. 이들이 있었기에 한국에서 쉽게 정착하지 못했을 두 음악 장르가 시장에서 연착륙했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그 두 장르는 힙합과 펑크다. 힙합 장르에서는 DJ DOC 이전에 ‘서태지와 아이들’과 ‘듀스’가 있지만, DJ DOC의 리얼하고 재미있는 음악에 이르러 대중친화의 단계를 맞이했다. ‘슈퍼맨의 비애’ ‘그녀의 속눈썹은 길다’ ‘미녀와 야수’ ‘런 투 유’ 같은 재미난 곡들이 없었다면 힙합은 마니아 음악에 머물렀을 수도 있다.
‘한국에 마지막으로 상륙한 서구 장르’로 정의되는 펑크(Punk)는 크라잉넛의 ‘말 달리자’ ‘서커스 매직 유랑단’ ‘퀵 서비스 맨’ ‘이소룡을 찾아랏!’과 같은 코믹 터치를 가미한 노래들 덕분에 이 땅에 뿌리내릴 수 있었다. 안 그랬으면 펑크는 인디에 갇혀 폭넓은 대중과의 소통이 버거웠을 것이다. 펑크의 대중화는 크라잉넛의 업적이다.
두 그룹은 점잖은 넥타이부대를 흔들고 외치게 만들었으며 30대 후반 여성이 격의 없이 20대와 더불어 흔들고 춤추는 분위기를 이끌었다. 알게 모르게 세대를 움직이고 자신감을 불어넣는 데 일조한 것이다. 나이 듦이 초조해지는 시기이지만 이들과 더불어 나이를 잊고 앞으로 진격할 수 있게 된 것 아닐까. 설령 아니더라도 이 세대는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DJ DOC의 지난 연말 수상소감은 이런 측면을 압축한다.
“우리는 사실 나이가 있는 그룹이다. 언제까지 할지 모르겠지만 우리 음악은 나이와 상관없을 것이다.”
크라잉넛의 주장도 듣는다.
“심장 속에 뜨거운 피가 남아 있느냐 아니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가끔 직장인 밴드 하는 어른들 보면 멋있어요. 살아 있는 느낌이 충만하거든요. 하고 싶은 열정에 몸을 사를 줄 아는 사람의 에너지란 상상 이상이에요. 나이하고는 상관이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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