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EOPLE

행복 내음이 폴폴~

두 아들, 입양한 막내딸 키우며 행복 일구는 이옥주 가족 미국 생활

글·김유림 기자 / 사진·여성동아 사진파트, 이옥주 제공

2008. 01. 23

2년 전 이옥주·토머스 거슬러 부부의 품에 안겨 미국으로 건너간 재클린은 요즘 어떤 모습으로 자라고 있을까. 현재 생후 28개월에 접어든 아이는 열 살, 여섯 살배기 두 오빠 사이에서 밝고 명랑하게 자라고 있다고 한다. 새해를 맞아 이옥주 가족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미국 생활을 전해왔다.

두 아들, 입양한 막내딸 키우며 행복 일구는 이옥주 가족 미국 생활

“이곳 시간으로 저녁 9시에 다시 전화 주실래요? 아니면 아이들 때문에 전화통화가 거의 불가능할걸요(웃음).”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이옥주(39)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생기 있었다. 안정된 가정생활에서 오는 여유 때문인지 예전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던 통통 튀는 말투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가 남편 토머스 거슬러씨(42)와 함께 미국 뉴멕시코주 앨버커키로 떠난 지도 어느덧 8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그는 미국에서 둘째 아들 토미(6)를 낳았고, 2006년 여름에는 한국에서 막내딸 재클린을 입양해 잔잔한 감동을 자아내기도 했다.
현재 생후 28개월에 접어든 재클린은 밝고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고 한다. 두 오빠 사이에서 자라서인지 성격이 괄괄하고 활동적이라 친구들과도 잘 어울린다고. 또한 요즘 들어 인형과 소꿉놀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머리를 만져줄 때도 자신이 원하는 핀을 꽂아달라고 하고, 거울을 들여다보는 재미를 알기 시작했다고 한다. 애교도 많아 아빠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는데 가끔은 과한 부정(?)으로 인해 부부싸움이 일어난다고.
“처음 재키(재클린의 애칭)가 왔을 때 과체중이어서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식습관을 바로 잡아주려고 신경을 많이 썼죠. 정해놓은 양만 먹게 하고, 야채나 고기 등 아이가 싫어하는 음식도 다 먹을 때까지 식탁 의자에서 내려주지 않을 정도로 엄격하게 대했어요. 그런데 가끔 남편이 그 원칙을 깨고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주려고 해 말다툼이 벌어지기도 하죠. 아이가 더 먹겠다고 칭얼대는 모습이 귀엽다면서 자신의 음식까지 덜어주는 경우가 있거든요. 다른 아이들한테는 안 그러는데 유독 재키 앞에서만 쉽게 무너지더라고요(웃음).”

두 오빠 사이에서 자라서인지 괄괄하고 활동적인 재클린
재키는 요즘 일주일에 두 번,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집 근처 놀이방에 다니고 있다. 두 돌이 지나면서부터 보내기 시작했는데 엄마 품 안에서만 자라는 것보다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이 사회성을 키우는 데 더욱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아이 역시 놀이방을 다니고부터 한결 의젓해지고 성격도 밝아졌다고 한다.
현재 세 아이를 뒷바라지하느라 몸이 두 개여도 모자랄 정도로 바쁜 이옥주는 재키가 놀이방에 있는 동안 잠시나마 개인 생활을 즐긴다고 한다. 혼자 운동도 하고 모처럼 멋을 내고 쇼핑도 하는 것. 그는 “쇼핑하는 날 비로소 하이힐을 신어본다”며 평범한 가정주부로서의 일상을 들려줬다.
“아이들한테만 옭매여 있다보니 가끔은 저만의 시간이 필요해요. 쇼핑을 하더라도 재키를 데리고 가면 간식거리 챙기는 것부터 화장실 데리고 다니는 것 등 신경 쓸 일이 많거든요. 모처럼 예쁘게 꾸미고 아이 없이 혼자 외출을 하면 기분전환도 되고 좋은 것 같아요.”

두 아들, 입양한 막내딸 키우며 행복 일구는 이옥주 가족 미국 생활

친정어머니가 미국에 머무는 동안 그의 집에서 추석 차례상을 차렸다. 그 앞에서 나란히 절하는 삼남매.(맨위) 2006년 이옥주 부부에게 처음 안겨 울던 재키가 어느덧 혼자 놀이방에 다니고 거울보기를 좋아하는 꼬마숙녀가 됐다.


이옥주·거슬러 부부는 입양에 더 이상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아이가 잘못을 하면 따끔히 야단도 치고 아이의 행동 하나 하나에 가슴 벅차하는 모습이 대니(10), 토미를 키울 때와 전혀 다르지 않기 때문. 또한 부부는 처음부터 재키가 입양아라는 이유로 다른 아이들에 비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지 않으려 애썼다고 한다.
“미국의 입양 역사는 50년이 넘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입양에 대해 매우 관대해요. 학교에서도 한 반에 입양된 아이가 두세 명 있을 정도로 입양이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죠. 아이들도 어려서부터 입양에 대한 교육을 받아 자신과 피부색이 다른 아이를 동생으로 맞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없어요. 대니도 어느 날 같은 반 친구를 소개하면서 ‘린은 중국에서 왔대. 하지만 엄마 아빠는 둘 다 미국인이야’ 하고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더라고요. 재키에 대해서도 ‘재키는 왜 우리집에서 살아? 재키의 친엄마, 아빠는 어디에서 살아?’라고 일절 묻지 않죠.”
부부는 입양 관련 모임에도 별 관심이 없다고 한다. 재키가 아무런 갈등 없이 잘 자라고 있기 때문. 게다가 엄마와 아이의 인종이 같다 보니 좋은 점이 많다고 한다. 먼저 아이가 다른 가족들과 피부색이 다른 것에서 오는 이질감을 느끼지 않고, 자신이 태어난 나라의 문화와 역사 등을 그로부터 생생하게 전달받을 수 있는 것. 이옥주는 “아이가 좀 더 크면 자신이 입양될 수밖에 없던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입양아들이 사춘기가 되면 결국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묻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아이가 친엄마를 만나기를 원하면 아이 뜻대로 해줄 생각이에요. 물론 아이가 자신을 낳아준 친엄마를 원망하기보다 같은 여자로서 이해하고 용서하길 바라죠.”
남편 거슬러씨는 아이들에게 ‘만점아빠’. 모든 것을 아이들 위주로 생각하고 육아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고 한다. 아이들과 온몸으로 놀아주는 것은 물론 운동도 직접 가르치고 학교 숙제도 도와준다고.
“이곳에서는 남녀 역할이 철저하게 구분돼 있어요. 일례로 남자아이는 아빠한테 처음으로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고, 여자아이는 엄마한테 처음 쿠키 굽는 방법을 배우죠. 그렇다 보니 이곳 주부들은 ‘우리 남편은 얼마나 무심한 사람인지, 글쎄 아이 자전거를 내가 가르쳤어요’라고 하면서 남편 흉을 봐요(웃음). 그런 면에서 남편은 아이들에게 부족함 없는 아빠인 것 같아요.”
거슬러씨는 아이의 피아노 연주를 들을 때도 ‘이 부분은 박자가 정말 좋구나. 예전에 비해 느낌이 훨씬 풍부해졌어’라고 하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아이의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기보다 잘한 부분을 부각시켜 자신감을 키워주는 것. 또한 큰 아이에게는 이웃집 할머니가 집을 비웠을 때 우편물을 수거해오는 심부름을 시킨다고 한다. 그 대가로 용돈을 주고 있는데 ‘아이에게도 돈을 번 것에 대한 기쁨을 맛보게 해줘야 한다’는 남편의 의견에 따라 절반만 저금하게 하고 절반은 아이가 마음대로 쓰게끔 하고 있다.
아이들을 야단치고 타이르는 것 또한 남편의 몫이다. 무조건 소리를 지르고 윽박지르는 그와 달리 남편은 아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설명한다고 한다. 체벌의 종류는 주로 푸시업과 장작 패기, 통조림 통 들고 서 있기 등인데, 아이가 육체적 고통을 느낌으로써 잘못을 깨닫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게다가 아이가 벌을 서면서 운동도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고 한다.
“남편이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걸 보면서 저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한편으로는 미국의 가정교육이 한국의 가정교육에 비해 합리적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언젠가 한번은 남편에게 ‘나는 당신처럼 세련된 가정교육을 받지 못해서 아이들 교육에 부족한 점이 많다’라고 솔직히 말했어요. 아이들도 제가 소리 지르며 야단을 치는 것보다 아빠가 한마디하는 걸 더 무서워하죠. 며칠 전에는 큰아이가 학교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아빠’를 꼽았다고 해서 저와 남편 모두 매우 뿌듯해했어요.”

두 아들, 입양한 막내딸 키우며 행복 일구는 이옥주 가족 미국 생활

어려서부터 ‘입양문화’를 접해온 대니와 토미는 재키를 전혀 이질적인 존재로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96년 지인의 소개로 만나 98년 결혼한 이옥주·거슬러 부부는 해가 거듭될수록 서로에 대한 믿음이 더욱 쌓인다고 한다. 사실 두 사람은 결혼하고 1년 반 동안 거의 매일 부부싸움을 했을 정도로 갈등이 심했다. 당시 코미디언으로 활동하던 이옥주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해 늦은 시간까지 술자리에 있다 집에 들어가는 날이 많았고 남편은 그런 아내의 모습을 못마땅하게 여겨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고. 큰아들 대니를 낳은 뒤에도 갈등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는데 이옥주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큰아이한테 너무 미안하다”고 털어놓았다.
“당시에는 아이 키우는 것보다 일에 대한 욕심이 더 많았어요. 빨리 살을 빼서 방송에 복귀할 욕심밖에 없었죠. 결국 아이 낳고 4개월 만에 방송에 복귀하느라 아이를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길 수밖에 없었어요. 첫아이라 그런지 모성애도 크게 느끼지 못했고 엄마로서의 준비가 미흡했던 것 같아요.”
이처럼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아슬아슬했던 부부관계는 미국으로 가면서 180도 달라졌다. 한국을 떠나오자 두 사람을 괴롭히던 외부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차단되면서 온전한 가족 중심의 생활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생활한 지 6개월이 될 무렵 이들 가족에게 한 차례 큰 시련이 다가왔다. 한국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미국으로 온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해고통지를 받은 것.
“남편이 울면서 집으로 들어오는데 정말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어요. 남편이 너무 안쓰러워서 저라도 식당에 나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6개월치 월급을 퇴직금으로 받긴 했지만 집을 살 때 빌린 대출금도 갚아야 했고 언제 다시 남편이 취업할지 몰라 막막한 상황이었어요. 결국 6개월은 남편의 퇴직금으로 버텼고 나머지 6개월은 시부모님께 빌려 쓰면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갔어요.”

“남편의 실직으로 1년간 어려움 겪었지만 덕분에 서로에 대한 사랑 더욱 강해졌어요”
당시 그는 친정은 물론 주위 사람들에게조차 남편의 상황을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티자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며 최후의 보루로 한국행까지 염두에 뒀다고. 두 사람 모두 경제적 어려움을 처음 겪다 보니 좌절도 많이 했다고 한다. 심지어 맥도날드에 갈 돈이 없을 때도 있었고 기저귀나 분유 등을 사기 위해 집안의 동전을 탈탈 끌어모아야 했던 적도 있다고. 그런 상황에서 둘째를 임신한 그는 잠시 아이를 낳지 말까 고민도 했는데 ‘돈 때문에 아이를 포기하는 건 말도 안 된다’는 남편의 의견에 따라 둘째를 낳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가장 힘든 시기였으면서 동시에 가장 소중한 순간이기도 해요.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강해졌으니까요. 인생이 계속 평탄대로만 달렸다면 정말 소중한 걸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다행히 남편은 실직 후 1년 만에 자신이 원하는 직장을 얻었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다고 한다. 현재 거슬러씨는 성형레이저기구 수출회사의 아시아·오세아니아권 회장직을 맡고 있다. 이옥주는 “5년 동안 죽도록 일하는 남편을 보면서 언젠가는 꿈을 이루리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연말인 요즘 이옥주는 1년 중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집에서 크리스마스 파티와 연말파티를 해야 하기 때문인데 파티를 하기 며칠 전부터 음식재료를 장만하고 테이블 세팅을 구상하느라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라고. 또한 아이들 크리스마스 선물 고르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다행히 아이들이 산타클로스에게 보내는 편지에 자신들이 갖고 싶은 선물을 적어 그 편지를 보고 힌트를 얻는다고.
“크리스마스 2주 전 아이들에게 북극에 있는 산타클로스에게 보낼 편지를 쓰라고 해요. 하지만 편지는 해마다 시부모님 집으로 보내지죠(웃음). 시부모님도 아이들이 삐뚤빼뚤 적은 편지를 보면서 무척 즐거워하세요. 올해 큰아이는 책을, 둘째는 영화 ‘트랜스포머’에 나온 로봇을 선물로 달라고 썼더군요. 막내는 아직 의사를 밝힐 수 없으니 아이 키만 한 인형을 준비했어요(웃음).”
아이들을 키우면서 느끼는 행복이야말로 세상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이라고 말하는 이옥주. 그는 새해 소망으로 ‘가족의 건강’을 꼽으며 한국에 있는 식구들에 대한 그리운 마음도 함께 전했다.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