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집은 동네의 가운데쯤에 있습니다. 나즈막한 뒷산에는 밤나무가 있고 솔숲이 있습니다. 그 집 앞에 있는 고추밭, 무밭, 그리고 고추밭에 강냉이 잎은 여름과 가을을 정확하게 알려줍니다. 달이 뜬 여름밤 강냉이 잎에 바람이 불면 넓적한 강냉이 잎에 떨어진 달빛이 은가루처럼 잎을 흘러내립니다. 집 앞 고추밭을 지나면 큰길이 있고, 그 아래 강변, 다음에 강입니다. 강 언덕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두 그루 있습니다. 그 집 마루에서는 앉거나 눕거나 서거나 간에 강물이 보입니다. 그 마루에서는 안 보이는 게 없습니다. 산도 물도 강물로 떨어지는 눈송이도, 강물로 날려오는 앞산 꽃잎이나 단풍 물든 낙엽들도 다 보입니다. 강변에는 꽃들이 피고 눈들이 쌓이고 아이들이 놉니다.
그 집에는 방이 셋, 부엌, 키 작은 내가 세로로 누우면 내 키하고 딱 맞는 마루와 엉덩이 폭만 한 툇마루가 있습니다. 툇마루는 일터에서 돌아오신 아버지께서 잠깐 앉아 땀을 식히며 앞산의 단풍과 꽃과 강물을 바라보던 곳입니다. 툇마루에서도 흘러가는 강 물결이 보인다는 뜻입니다. 어머니는 부엌문을 열고 허드렛물을 버리시며, 앞산의 단풍과 봄과 눈 오는 것을 알리곤 하셨습니다. “하따나, 저 새잎 피는 것 좀 봐라. 꽃보다 더 이쁘다인” 하시거나 “하이고, 눈도 곱게도 오신다” 하시곤 했습니다. 그러면 나는 얼른 방문을 열고 꽃보다 고운 앞산의 새잎이나 강물로 사라지는 꽃잎 같은 눈송이들을 보다가 문을 닫곤 했습니다.
그 집 방 중에 한 칸은 내 방이었습니다. 내 방엔 창호지 문이 여섯 짝이나 있었습니다. 추석이나 설에 새로 문을 바르고 누워 있으면 참으로 방이 환했습니다. 나는 그 방에서 평생을 보냈습니다. 나의 어떤 시 구절처럼 나는 그 방에서 “기뻤고 슬펐고 사랑의 외로움에 두 어깨를 들먹였습니다.” 세월이 가며 그 방에는 책들이 쌓여가고 내 생각이 자라나 밖으로 나갔습니다. 달이 뜬 밤에는 불을 끄고 창호지 문으로 들어온 달빛에 괴로워했고 잠 못 들어했고 그리워했고 간절하게 무엇인가를 원했습니다. 달빛에 견디지 못하면 툇마루에 나가 앉아 달을 보거나 강변에 나가 헤매거나 징검다리를 건너며 물소리를 들었습니다. 어떨 때 소쩍새까지 울어대면 참으로 혼자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숱한 밤을 그렇게 나는 그 방에서 지냈습니다. 달빛으로 시를 쓰고 겨울 밤 앞산 뒷산 밤바람 소리로 나는 자랐습니다.
내 방에서도 문을 열면 아침 강물이 보였고 봄과 여름 햇빛과 가을바람과 겨울 흰 눈이 다 보였습니다. 그 좁은 방은 알이었습니다. 내가 세상의 햇살을 눈부시게 바라볼 수 있는 세상 밖으로 나올 때까지 그 방은 내게 두꺼운 껍질로 둘러싸여 있는 알이었습니다. 나는 어느 날 그 알을 깨고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 방에서 문을 열어도 앞산과 강물의 여울이 보입니다. 벗들이 그 방 앞에다가 ‘觀瀾軒(관란헌)’이란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작고 보잘것없어 보여도 우리 가족에겐 세상 어느 곳보다 소중한 보금자리
내가 세상에 나가자 사람들이 그 집에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그 집을 소중하고 귀하게 여겼으므로 많은 사람들도 그 집을 모두 좋아하고 아꼈습니다. 동생들이 다 커서 객지로 가고 아버지는 그 집 아버지의 방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셨던 그 방, 내가 어쩌다 새벽까지 자지 않고 책을 보고 있으면 새벽에 깨신 아버지 어머니는 도란도란 이 이야기 저 이야기로 날을 밝히시곤 했습니다. 자식 걱정, 강 건너 밭의 곡식 걱정, 때론 웃으시고 어떨 땐 근심어린 목소리가 내 방을 찾아오기도 했지요.
어느 해 봄 그 집에 한 여자가 찾아왔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딱 일년이 되던 날이었습니다. 그 여자는 그 집에서 살기로 작정을 했는지 그 집으로 자기의 인생을 옮겼습니다. 그녀는 그 집 가난한 방과 부엌에서 살았습니다. 부엌에서는 불을 때서 밥을 했습니다. 부엌에 연기가 캄캄하게 날 때면 그 여자는 눈물을 흘리며 밖으로 나와 바람을 쏘였습니다. 날이 가물면 나는 강가에 있는 샘에서 물을 길어왔습니다. 퇴근 길 아내가 강에서 빨래를 하고 있으면 나는 얼른 달려가 빨아놓은 빨래를 내 머리에 이고 돌아와 빨랫줄에 널었습니다. 그 여자는 내 아내가 돼갔고 촌사람이 돼갔습니다. 촌사람이 돼가면서 아내는 그가 살아온 그 어떤 것들을 버리고 튼튼한 그 어떤 것들을 새로 터득하고 몸에 익히며 배워갔습니다. 아내는 점점 건강한 생활을 하며 동네 어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갔습니다. 그 특유의 침착함과 낙천성은 더욱더 힘을 얻어갔습니다. 아내는 동네 나이 든 할머니들의 며느리였습니다.
어느 해 민세가 태어났고, 또 몇 년 있다가 민해가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무척 행복해했습니다. 손자를 얻어 날마다 안아주고 업어줄 수 있었으니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지금도 그렇지만 시골 어머니들은 손자를 안고 업고 키우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으니까요. 들에 갔다 오시면 어머니는 얼른 민해를 업고 다른 일을 하거나 마실을 다니곤 하셨습니다. 겨울철이면 늘 어머니는 아이들을 보셨고 아이들은 할머니 방에서 할머니의 쭈굴쭈굴한 젖을 만지며 잤습니다. 이따금 “너그 아부지가 다 뜯어 먹어서 이렇게 생겼다” 그러시면 민세나 민해의 “뜯어먹어” 하는 소리와 함께 웃음소리가 새어나오곤 했습니다.
나는 그 집에서 가까운 조그마한 초등학교 선생이었기 때문에 도시락을 싸 들고 학교에 다녔습니다. 자전거를 가지고 학교에 다닐 때는 자전거 뒤에서 밥이 어찌나 흔들리던지 반찬이 엉망이 될 때도 있었고 빈 도시락을 싣고 집에 올 때는 시끄러운 소리가 집에까지 따라왔습니다. 어쩌다 아내가 민해를 업고 민세 손을 잡고 마을에서 훨씬 벗어나 들 가에 있는 느티나무 아래까지 마중을 나올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나는 민세를 업고 들길을 걷곤 했습니다. 어쩌다가는 민세와 민해가 코를 이만큼 코에 물고 훌쩍훌쩍 울며 마중을 나올 때도 있었습니다.
비가 오면 아내는 꼭 우산을 가지고 마중을 나왔습니다. 집에 오면 나는 아이 둘을 보았습니다. 민해는 업고 민세는 손잡고 강변에 나가 강변 꽃밭에서 뒹굴며 놀거나 물가에서 놀다가 집에 와서 씻겨서 밥 먹여 잠을 재웠습니다. 민세는 업어 재우곤 했습니다. 민세를 업고 들에서 늦게 돌아오시는 어머니 마중을 나가면 어머니는 민세를 받아 업으시기도 했습니다. 민세는 업고 길을 걸으며 “호랑이 온다. 호랑이와” 그러면 내 등에 딱 붙으며 잠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을 씻겨 밥 먹여 재우고 나서 아내와 나는 빨래도 개고 책도 보고 오래오래 이야기도 하다가 어머니가 마실에서 돌아오시면 아내는 또 얼른 어머니와 이야기를 오래오래 어머니 방에서 하곤 했습니다. 그러면 나는 또 아내가 얼른 우리 방에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내가 신문을 보거나 내가 글을 써야 할 눈치를 보이면 아내는 얼른 아이들을 데리고 자리를 피해주곤 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그 집에서 살았습니다. 내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 내가 돌아가 몸과 마음을 뉘고 순결하고 순수했던 초심을 찾아 다시 세상으로 나가는 곳, 내 영혼의 쉼터인 그 집이 지금도 강 언덕에 그대로 있습니다. 아, 지금 티 없이 고운 하늘 아래 단풍 물든 산 속에 묻힌 집, 아름다운 그 집, 우리 집. 그 집은 나무와 풀과 흙으로 된 아주 작은 집입니다.
그 집에는 방이 셋, 부엌, 키 작은 내가 세로로 누우면 내 키하고 딱 맞는 마루와 엉덩이 폭만 한 툇마루가 있습니다. 툇마루는 일터에서 돌아오신 아버지께서 잠깐 앉아 땀을 식히며 앞산의 단풍과 꽃과 강물을 바라보던 곳입니다. 툇마루에서도 흘러가는 강 물결이 보인다는 뜻입니다. 어머니는 부엌문을 열고 허드렛물을 버리시며, 앞산의 단풍과 봄과 눈 오는 것을 알리곤 하셨습니다. “하따나, 저 새잎 피는 것 좀 봐라. 꽃보다 더 이쁘다인” 하시거나 “하이고, 눈도 곱게도 오신다” 하시곤 했습니다. 그러면 나는 얼른 방문을 열고 꽃보다 고운 앞산의 새잎이나 강물로 사라지는 꽃잎 같은 눈송이들을 보다가 문을 닫곤 했습니다.
그 집 방 중에 한 칸은 내 방이었습니다. 내 방엔 창호지 문이 여섯 짝이나 있었습니다. 추석이나 설에 새로 문을 바르고 누워 있으면 참으로 방이 환했습니다. 나는 그 방에서 평생을 보냈습니다. 나의 어떤 시 구절처럼 나는 그 방에서 “기뻤고 슬펐고 사랑의 외로움에 두 어깨를 들먹였습니다.” 세월이 가며 그 방에는 책들이 쌓여가고 내 생각이 자라나 밖으로 나갔습니다. 달이 뜬 밤에는 불을 끄고 창호지 문으로 들어온 달빛에 괴로워했고 잠 못 들어했고 그리워했고 간절하게 무엇인가를 원했습니다. 달빛에 견디지 못하면 툇마루에 나가 앉아 달을 보거나 강변에 나가 헤매거나 징검다리를 건너며 물소리를 들었습니다. 어떨 때 소쩍새까지 울어대면 참으로 혼자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숱한 밤을 그렇게 나는 그 방에서 지냈습니다. 달빛으로 시를 쓰고 겨울 밤 앞산 뒷산 밤바람 소리로 나는 자랐습니다.
내 방에서도 문을 열면 아침 강물이 보였고 봄과 여름 햇빛과 가을바람과 겨울 흰 눈이 다 보였습니다. 그 좁은 방은 알이었습니다. 내가 세상의 햇살을 눈부시게 바라볼 수 있는 세상 밖으로 나올 때까지 그 방은 내게 두꺼운 껍질로 둘러싸여 있는 알이었습니다. 나는 어느 날 그 알을 깨고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 방에서 문을 열어도 앞산과 강물의 여울이 보입니다. 벗들이 그 방 앞에다가 ‘觀瀾軒(관란헌)’이란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작고 보잘것없어 보여도 우리 가족에겐 세상 어느 곳보다 소중한 보금자리
내가 세상에 나가자 사람들이 그 집에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그 집을 소중하고 귀하게 여겼으므로 많은 사람들도 그 집을 모두 좋아하고 아꼈습니다. 동생들이 다 커서 객지로 가고 아버지는 그 집 아버지의 방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셨던 그 방, 내가 어쩌다 새벽까지 자지 않고 책을 보고 있으면 새벽에 깨신 아버지 어머니는 도란도란 이 이야기 저 이야기로 날을 밝히시곤 했습니다. 자식 걱정, 강 건너 밭의 곡식 걱정, 때론 웃으시고 어떨 땐 근심어린 목소리가 내 방을 찾아오기도 했지요.
어느 해 봄 그 집에 한 여자가 찾아왔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딱 일년이 되던 날이었습니다. 그 여자는 그 집에서 살기로 작정을 했는지 그 집으로 자기의 인생을 옮겼습니다. 그녀는 그 집 가난한 방과 부엌에서 살았습니다. 부엌에서는 불을 때서 밥을 했습니다. 부엌에 연기가 캄캄하게 날 때면 그 여자는 눈물을 흘리며 밖으로 나와 바람을 쏘였습니다. 날이 가물면 나는 강가에 있는 샘에서 물을 길어왔습니다. 퇴근 길 아내가 강에서 빨래를 하고 있으면 나는 얼른 달려가 빨아놓은 빨래를 내 머리에 이고 돌아와 빨랫줄에 널었습니다. 그 여자는 내 아내가 돼갔고 촌사람이 돼갔습니다. 촌사람이 돼가면서 아내는 그가 살아온 그 어떤 것들을 버리고 튼튼한 그 어떤 것들을 새로 터득하고 몸에 익히며 배워갔습니다. 아내는 점점 건강한 생활을 하며 동네 어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갔습니다. 그 특유의 침착함과 낙천성은 더욱더 힘을 얻어갔습니다. 아내는 동네 나이 든 할머니들의 며느리였습니다.
어느 해 민세가 태어났고, 또 몇 년 있다가 민해가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무척 행복해했습니다. 손자를 얻어 날마다 안아주고 업어줄 수 있었으니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지금도 그렇지만 시골 어머니들은 손자를 안고 업고 키우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으니까요. 들에 갔다 오시면 어머니는 얼른 민해를 업고 다른 일을 하거나 마실을 다니곤 하셨습니다. 겨울철이면 늘 어머니는 아이들을 보셨고 아이들은 할머니 방에서 할머니의 쭈굴쭈굴한 젖을 만지며 잤습니다. 이따금 “너그 아부지가 다 뜯어 먹어서 이렇게 생겼다” 그러시면 민세나 민해의 “뜯어먹어” 하는 소리와 함께 웃음소리가 새어나오곤 했습니다.
나는 그 집에서 가까운 조그마한 초등학교 선생이었기 때문에 도시락을 싸 들고 학교에 다녔습니다. 자전거를 가지고 학교에 다닐 때는 자전거 뒤에서 밥이 어찌나 흔들리던지 반찬이 엉망이 될 때도 있었고 빈 도시락을 싣고 집에 올 때는 시끄러운 소리가 집에까지 따라왔습니다. 어쩌다 아내가 민해를 업고 민세 손을 잡고 마을에서 훨씬 벗어나 들 가에 있는 느티나무 아래까지 마중을 나올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나는 민세를 업고 들길을 걷곤 했습니다. 어쩌다가는 민세와 민해가 코를 이만큼 코에 물고 훌쩍훌쩍 울며 마중을 나올 때도 있었습니다.
비가 오면 아내는 꼭 우산을 가지고 마중을 나왔습니다. 집에 오면 나는 아이 둘을 보았습니다. 민해는 업고 민세는 손잡고 강변에 나가 강변 꽃밭에서 뒹굴며 놀거나 물가에서 놀다가 집에 와서 씻겨서 밥 먹여 잠을 재웠습니다. 민세는 업어 재우곤 했습니다. 민세를 업고 들에서 늦게 돌아오시는 어머니 마중을 나가면 어머니는 민세를 받아 업으시기도 했습니다. 민세는 업고 길을 걸으며 “호랑이 온다. 호랑이와” 그러면 내 등에 딱 붙으며 잠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을 씻겨 밥 먹여 재우고 나서 아내와 나는 빨래도 개고 책도 보고 오래오래 이야기도 하다가 어머니가 마실에서 돌아오시면 아내는 또 얼른 어머니와 이야기를 오래오래 어머니 방에서 하곤 했습니다. 그러면 나는 또 아내가 얼른 우리 방에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내가 신문을 보거나 내가 글을 써야 할 눈치를 보이면 아내는 얼른 아이들을 데리고 자리를 피해주곤 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그 집에서 살았습니다. 내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 내가 돌아가 몸과 마음을 뉘고 순결하고 순수했던 초심을 찾아 다시 세상으로 나가는 곳, 내 영혼의 쉼터인 그 집이 지금도 강 언덕에 그대로 있습니다. 아, 지금 티 없이 고운 하늘 아래 단풍 물든 산 속에 묻힌 집, 아름다운 그 집, 우리 집. 그 집은 나무와 풀과 흙으로 된 아주 작은 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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