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옹과 입맞춤 등 스킨십을 통해 사랑을 쌓아가고 있는 박홍규·안순임 가족.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는 ‘프리 허그(free hug)’ 운동이 화제를 모았다. 거리에 ‘프리 허그’라는 피켓을 세워두고 원하는 사람을 안아주는 이 운동은 지난 2004년 호주 시드니에서 한 청년이 시작한 것. 사람은 다른 사람과 포옹하며 체온을 나누는 순간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얻는 데서 착안한 것이다.
박홍규(42)·안순임씨(39) 부부는 바로 이 포옹의 힘으로 가정의 위기를 극복하고 행복을 되찾은 이들이다. 이들이 처음 만난 건 지난 92년. 두 사람은 3년간의 열애 끝에 결혼식을 올렸고, 97년 기다리던 첫딸까지 얻었다. 남편 박씨는 성실히 일하며 집안을 돌봤고, 아내 안씨 역시 밝고 유쾌한 성격으로 집안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2000년 1월 이들에게 큰 불행이 찾아왔다. 네 살 된 딸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것이다. 희귀병이었다. 아이는 병원에 입원한 지 사흘 만에 손써볼 겨를도 없이 눈을 감았다고 한다.
“그때 심정을 어떻게 말로 표현하겠어요. 아프다, 쓰리다 같은 말로는 제가 겪은 상처의 깊이를 다 설명할 수가 없어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하던 우리 딸의 그 크고 착한 눈망울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무너져내렸어요.”
안씨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아픔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아픔은 이들 부부에게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고 한다. 그해 11월 건강한 아들이 태어났지만, 아이의 재롱도 두 사람의 상처를 치유해주지 못했다. 마음 한켠에 늘 ‘내 아이도 지키지 못한 부모’라는 죄책감이 쌓여 있었고, 아들이 자라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알 수 없는 불안감도 커져갔다. 남편 박씨는 “원래 아내는 언제나 잘 웃어서 ‘소녀 같다’는 얘기를 듣는 사람이었는데, 그 일 이후 아내가 웃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 역시 속으로는 언제나 통곡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내에게 변변한 위로를 해주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는 동안 이들 부부는 점점 ‘남남’이 돼갔다고.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힘들어지더군요. 둘 사이에 대화가 없어지고, 벽이 생기는 것도 저를 괴롭게 했어요. 그 사이 남편은 남을 돕는 일을 시작했는데, 자기 아내의 상처도 보듬고 어루만져주지 못하는 사람이 다른 이들을 돕는 일을 한다는 게 위선적으로 느껴지더라고요. 마음 속 슬픔이 이유 없는 분노로 변해간 거죠. 이성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그 무렵부터 ‘이 모든 건 남편 탓’이라는 원망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몇 년 만에 아내를 포옹한 순간의 느낌 지금도 잊을 수 없어
이들 부부가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은 지난해 가을이었다고 한다. “이대로 방치하다가는 가정이 유지될 수 없겠다”는 위기의식을 느낀 박씨가 아내에게 부부문제 해결 프로그램에 등록해보자고 제안했고, 안씨 역시 거기에 동의했다고.
“하이패밀리 가정사역 평생교육원이라는 곳에 ‘이제 다시 행복을 말하자’라는 부부관계 회복 프로그램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지난해 11월3일부터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한 연수원에 들어가 2박3일 동안 합숙 교육을 받았죠.”
모두 10쌍의 부부가 참여한 이 프로그램은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진행됐다고 한다. 첫째 날은 하이패밀리 가정사역 평생교육원 김향숙 원장으로부터 ‘부부 갈등 극복과 해결방안, 부부 사이 좋게 만드는 행동과 대화법’ 등에 대한 강의를 듣고, 10쌍의 부부가 남자팀과 여자팀으로 나뉘어 ‘남자와 여자는 왜 다툴까’ ‘부부 갈등은 왜 생기나’ 등을 놓고 토론을 벌였다고.
둘째 날은 남녀 차이와 서로의 역할에 대한 강의를 들은 뒤 네 개의 알파벳으로 사람의 성격을 분석하는 MBTI 성격유형검사를 받았다. 이 검사에서 박씨는 ‘ISTJ’ 유형, 안씨는 ‘ESTP’ 유형이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박씨는 꼼꼼하고 침착하지만 융통성이 없고 자기 고집이 강해 상대를 피곤하게 할 수 있는 타입, 즉 치약을 짤 때 맨 밑부분부터 차근차근 짜는 타입인 반면 안씨는 문제해결 능력이 뛰어나고 적응력이 높은 대신 덜렁거리고 치밀하지 못한 성격, 즉 치약을 중간부터 집히는 대로 짜 쓰는 성격으로 분석된 것이다. 이런 검사 결과는 평소 서로가 느끼고 있던 상대방의 성격과 놀랍도록 들어맞았다고. 두 사람은 이 검사 뒤 전문 상담사의 분석과 조언을 통해 서로를 좀 더 깊이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포옹하는 시간이 주어졌어요. 강사가 다양한 포옹법을 설명하더니 서로를 안아보라고 하더군요. 어색할 줄 알았는데 남편과 서로 끌어안으며 따뜻한 체온을 느끼는 순간 가슴이 뭉클해지며 눈물이 핑 돌았죠. 사실 남편을 그렇게 깊이 안은 건 신혼 때 이후 처음이었거든요.”
이들 부부 옆에는 이혼 법정에까지 다녀왔을 만큼 위기에 놓인 부부가 있었는데, 서로를 끌어안은 뒤 갑자기 아내가 남편을 안은 채 통곡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소리를 들은 다른 부부도 따라 울기 시작했고, 박씨 부부 역시 눈물을 흘렸다고.
“그렇게 울고 나니 그동안 쌓이고 곪았던 남편에 대한 미움과 분노가 사라지는 것 같았어요. 또 제 잘못이 떠오르며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이 생기더군요.”
박씨 또한 이 프로그램을 통해 몇 년 만에 아내를 포옹한 순간의 느낌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셋째 날 이들은 서로의 바람과 의견을 작성해 함께 토론하는 시간을 가진 뒤 손을 맞잡고 포크댄스를 췄다고 한다. 프로그램 시작하는 날 서먹하게 따로 걸어 들어갔던 두 사람은 마지막 날엔 손을 잡고 함께 연수원을 나섰다고. 습관이 안된 탓에 걷는 도중 슬그머니 손을 놓아버렸지만, 감정적으로는 며칠 사이에 서로 수백 걸음 가까워진 느낌이었다고 한다.
“큰아이가 세상을 떠난 뒤 사실 저희는 쭉 아들과 한방에서 잤어요. 제가 아이와 같은 이불을 덮고, 남편은 옆에 따로 잠자리를 폈죠. 그런데 상담 도중 김 박사님이 부부는 한 이불에서 자야 감정적으로 가까워진다고 하시더라고요. 부모가 서로에게 친밀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여야 아이도 부부관계에 대해 올바른 가치관을 갖게 된다고요.”
그래서 두 사람은 교육을 마친 뒤부터 함께 잠자리에 든다고 한다. 또 하루에 2~3번씩 서로를 포옹한 뒤 그때의 감정을 일기처럼 적어 돌려 읽는 ‘포옹일기’도 쓰고 있다.
“앞으로 행복한 날만 있을 거라고 믿지는 않아요. 세상을 살다 보면 또다시 어려움에 부딪힐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젠 등을 보이고 돌아앉지는 않을 겁니다. 다시 행복을 찾기 위해 둘 다 노력하겠죠. 그런 믿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저희는 이미 충분히 행복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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