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EOPLE

남자의 항변

중년 가장의 비애 담은 에세이 펴낸 소설가 박범신

“삶의 무게에 짓눌려 홀로 담배 피우는 남자의 삶도 쓸쓸하고 외로워요”

기획·이남희 기자 / 글·최호열‘신동아 기자’ / 사진ㆍ홍중식 기자

2006. 02. 10

올해 환갑을 맞은 소설가 박범신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땅의 아내들에게 전하는 중년 가장들의 쓸쓸함과 고뇌.

중년 가장의 비애 담은 에세이 펴낸 소설가 박범신

‘돌아누워 잠든 당신의 남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라. 한때 권력자로 길러졌고 권력자로 행세했던 그 남자는 지금 어디 있는가. 거대 자본주의의 피 어린 경쟁에 내몰리고 페미니즘의 폭발적 확장과 신문명의 서슬 푸른 변화에 기가 죽은 한 남자가 새우처럼 등을 구부리고 당신의 침대에 누워 있다. 아침이 오면 그는 불안하게 신틀메를 고쳐 신고 밥벌이를 위해 세상 속으로 나갈 것이다. 그의 권력은 해체됐으나 의무와 책임은 오히려 무한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습관적인 헛기침을 날리면서, 그것으로 불안한 앞날을 짐짓 가리면서, 오늘 아침에도 저기 가열차고 불확실한 골목을 걸어나가고 있다.’
소설가 박범신씨(60)가 최근 펴낸 에세이 ‘남자들, 쓸쓸하다’를 통해 ‘권위는 상실한 채 가족 부양 의무만 더욱 가중된’ 이 시대 가장들의 고뇌를 대변하고 나섰다. 감각적인 문체와 감수성 예민한 소설로 여성 독자들에게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왔고, 호주제 폐지 등 여성문제에도 앞장서 목소리를 높여왔던 그였기에 이런 주장은 뜻밖이어서 뒷얘기가 궁금했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그의 집을 찾았을 때 혼자 집을 지키고 있던 박씨는 “밖에 볼 일이 없으면 사물놀이와 전통 춤에 바람이 나 수시로 집을 비우는 아내를 대신해 집을 지키고, 설거지와 청소도 한다”며 웃었다.
“재작년, 명지대 문예창작과 교수직을 그만둔 후 백수가 됐어요. 처음엔 그래도 신문연재를 하니까 아내가 ‘화백(화려한 백수)’이라고 부르더니 연재 끝나자 바로 ‘삼식이(집에서 하루 세 끼를 다 먹는 남편)’라고 부르더라고요. 요즘은 ‘장로(장기간 노는 사람)’라고 부르기도 하고, 하루 종일 소파에서 뒹군다고 ‘소파동이’라고도 해요(웃음).”

동남아 떠도는 실직 중년 가장들 보고 충격 받아
부부금실이 좋기로 문단에서도 소문이 자자하고, 현역작가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니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소외된 가장’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그가 ‘중년 가장’의 속울음을 대변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IMF를 겪으면서였다고 한다. 많은 실직 가장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이혼당하는 모습을 보며 ‘이건 아닌데…’ 싶었다는 것.
“제가 잘 아는 분도 IMF 때 실직했어요. 많은 실직 가장들이 그랬던 것처럼 사업에 손을 댔다 실패해 퇴직금 일부를 날린 그는 남은 돈으로 시골에 내려가 농사지으며 여생을 보내고 싶어했죠. 그런데 아내가 원치 않아 혼자 시골로 내려갔다 농약을 먹고 자살했어요.”
중년 가장의 비애 담은 에세이 펴낸 소설가 박범신

또한 지난해 봄 동남아 배낭여행을 하며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고 한다.
“태국엔 1~2달러면 하루 숙박이 가능한 허름한 여관들이 있어요. 주로 가난한 배낭여행객들이 이용하는데, 거기 오는 한국인들이 대부분 중년 남자들이에요. 집 떠난 지 6개월, 1년이 넘었다는 사람도 많았어요. 그렇게 많은 중년이 열악한 숙소에서 자면서 배낭여행을 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나라밖에 없을 거예요. 그들이 왜 동남아를 떠도는 걸까요. 실직으로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가정으로부터도 버림받았기 때문이죠. 특히 먹물(고학력자)들은 한국에서 노숙하기도 힘들잖아요. 그러니까 한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떠도는 거예요. 태국에선 이렇게 살면 30만원으로 한 달을 버틸 수 있으니까요.”
많은 가장들이 경제력을 상실하면 가족들로부터도 버림받는 게 우리의 아픈 현실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실직을 하지 않았더라도 경제적 의무만 강요받으며 아내와 자식들로부터 소외당하는 게 오늘날 가장들의 현주소라고 그는 말한다.

중년 가장의 비애 담은 에세이 펴낸 소설가 박범신

지난해 12월 박범신씨는 케냐의 킬리만자로를 등정했다. 산악인 엄홍길씨(오른쪽)와 함께 킬리만자로산의 정상에 선 박범신씨(왼쪽). 그는 공허감과 쓸쓸함을 달래려고 오른 킬리만자로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물론 아내와 자식들도 가장에게 할 말이 많죠. 회사 일을 핑계로 가정에 소홀하기 일쑤고, 아내에게 가계부 검사를 하겠다고 나서는가 하면 아이에게 잔소리만 늘어놓으니까요. 저는 그런 불만을 가진 아내와 자식들에게 ‘그렇게 조잔해지는 아버지의 심정을 생각해본 적이 있냐’고 반문하고 싶어요.”
그는 이 시대 가장들의 삶은 히말라야 당나귀의 삶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지난해 봄에 히말라야 트레킹을 했어요. 당나귀에 짐을 싣고 가는데, 평지에서는 괜찮던 당나귀가 가파른 협곡을 지날 때는 너무 힘이 들어 삐질삐질 똥까지 싸더군요. 그렇게 평생을 등이 해지도록 짐을 메고 살다 죽어요. 당나귀를 보며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나 많이 울었어요. 아버지도 히말라야의 당나귀처럼 가족을 위해 일만 하다 돌아가셨거든요.”
“아직도 현실은 남성보다 여성이 더 고통을 받고 있다. 그런데 남자들이 힘들다고 하는 건 엄살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법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인다.
“엄살이라고 해도 좋아요. 그런데 죽기 직전의 사람만 엄살을 부려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죽을 정도는 아니더라도 아프면 엄살을 부릴 수 있는 거예요. 여자들만 고통스럽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도 남자에 대한 차별이에요. 지금까지 많은 자식들이 어머니의 헌신과 사랑을 이야기했어요. 비록 어머니보다 헌신과 고통의 정도가 덜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많은 희생을 한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식은 없었어요. 무시받고 천대받아온 여성의 삶도 슬프지만 삶의 무게에 짓눌려 돌아앉아 남몰래 혼자 담배 피우는 남성의 삶도 쓸쓸하고 외로워요.”

가족을 굶지 않게 하려고 ‘팔리는’글 썼던 가장으로서의 아픔
그는 남자들이 쓸쓸하고 외로운 것은 가부장제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내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와 가정으로부터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되는 권력자’로 교육받으며 자랐다는 것.
“제 어머니는 딸 셋을 낳은 후 얻은 아들이 몇 달을 못 넘기고 죽었어요. 그리고 다시 딸을 낳았죠. 마흔 살에 마지막으로 임신을 했을 때는 ‘이번에도 딸이면 무조건 엎어놓아 죽이고 당신도 죽겠다’며 양잿물을 옆에 놓고 아이를 낳았대요. 그렇게 해서 태어난 게 저였어요. 그러니 얼마나 ‘남자’로 키워졌는지 아시겠죠?”
그는 가정과 세상은 남자가 권력이고 대들보이길 원하지만 실상 남자는 여자보다 훨씬 유약한 존재라고 했다. 유아 사망률도 여아보다 남아가 훨씬 높을 뿐 아니라 20~30대의 자살률도 남자가 여자보다 압도적으로 높다고(2003년 통계청 발표).
이렇듯 유약한 존재인 남자들이 ‘가부장제 아래서 권력자로서의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더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나이가 들수록 ‘책임과 의무’의 사회적 억압에 더욱 짓눌린다고 한다.
“남자가 남자다워야 한다는 게 사실은 헛것이거든요. 저는 진정한 남자다움은 남자가 꿈(이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데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우리 사회와 가정은 남자다움을 요구하면서 계속 꿈을 꺾고 돈을 벌어오라고 해요. 그게 남자의 운명이에요. 결국 남자는 참된 의미의 남자다움을 포기해야 하는 거예요. 누가 가정을 외면하고 자기 꿈을 좇겠어요. 물론 여성들도 자기 꿈을 포기하고 헌신의 삶을 살았죠. 여성들이 가부장제의 희생자였듯이 남자도 희생자라는 거예요. 더 억울한 건 젊어서는 남자로 하여금 꿈을 포기하게 해놓고는 말년이 되면 되레 ‘꿈도 없는 남자’라고 힐난하는 거예요. 중년 가장의 쓸쓸함이 여기서 오는 거죠.”
“가족들 때문에 꿈을 포기한 것이 있냐”고 묻자 “가장은 누구나 가족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꿈이 있을 거예요” 하며 쓸쓸히 담배를 피워 문다.
“우리 집은 문제가 거의 없죠. 하지만 그래도 ‘가족들이 아니었다면 문학적으로 못다 이룬 꿈들이 지금보다 적지 않을까’ 생각해요. 30대에 서울에 올라와 가족을 굶지 않게 하려고 작가로서 쓰고 싶은 글보다는 팔리는 쪽에 무게를 둬야 했죠. 부분적 타협을 했던 셈인데, 그게 지금도 가슴이 아픕니다.”

그는 문단의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일부 평론가로부터 ‘대중 소설가’라는 소리를 들었던 때를 상처로 간직하고 있었다. ‘문학에 목매달고 죽을’ 각오로 글을 썼던 그가 가족의 생계 때문에 상업주의와 타협할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남자를 향해 절대 ‘우리 가정의 기둥이다’라고 말하지 말라
중년 가장의 비애 담은 에세이 펴낸 소설가 박범신

3년여 동안 절필선언을 했을 정도로 40대 후반이 가장 힘들었다는 그는 “대부분 남자들이 쓸쓸함을 많이 느끼는 나이가 40대 후반인 것 같다”고 했다.
“여자들만 갱년기가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남자들도 40대 후반이 되면 신체적인 변화가 오고, 가족이고 뭐고 쓸쓸하다는 생각이 들고…. 남자는 근본적으로 쓸쓸한 존재예요. 여자들은 날 때부터 자궁을 갖고 있어요. 기본적인 자기정체성이 있는 거죠. 반면 남자들은 자궁이 없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죠.”
그는 50대 후반에도 공허감과 쓸쓸함으로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최근 2년 동안 자주 여행을 했다고.
“지난해 봄에 히말라야를 다녀온 데 이어 지난 12월엔 아프리카 케냐의 킬리만자로에 다녀왔어요. 그 사이에 제주도와 남해를 다녀오기도 하고요. 히말라야에서는 정상에 오르니까 온통 하얀 산들만 보였는데, 킬리만자로는 단일 봉이라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백리 밖 도시 불빛이 보여요. 산 정상에서 도시 불빛을 바라보고 있는데 어떤 깨달음이 왔어요. 내가 찾아 헤매는 것이 아직은 뭔지 모르지만 저 불빛 속으로 들어가 사람들과 부대끼는 가운데서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는 자신의 주장이 결코 가부장제의 권력을 부활시키자는 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권력이 줄어드는 만큼 덜어지기는커녕 더 늘어나는 의무의 짐을 가족이 나눠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땅의 아내들에게 남편을 ‘가장’이 아닌 하나의 인간으로 바라보라고 충고했다.
“글을 쓰다 가끔 밤늦게 마누라의 잠든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랄 때가 있어요. 옛날엔 참 예쁜 처녀였는데 이젠 늙고 고단한 얼굴이 되었으니까요. ‘아, 나에게 시집와서 나 때문에 가족 때문에 많은 자기 꿈들을 상실했구나’ 하는 걸 느껴요. 마찬가지로 아내들도 피곤하고 지쳐 돌아누운 남편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좋겠어요. 지금 누워 자고 있는 남편이 행복한지,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괜히 남자인 척 사소한 일에 똥 뀌고 성낸 남자가 구부리고 돌아누워 잠든 그 등을 한번 오래오래 내려다보라. 씩씩하게 내 몸속에 들어왔다가 어느덧 곯아떨어진 남자의 눈 밑 잔주름이나 앙다문 입술이나 어느덧 군살이 오른 아랫배를 눈물겹게 바라보라. 침대에 들어와 있을망정 그는 잠든 다음에도 모든 남자의 발기를 훼방 놓고 있는 잔인하고 리얼한 세계의 구조와 만나고 있다. 남자를 향해 절대 우리 가정의 기둥이다라고도 말하지 말라. 전투복을 벗고 누운 모든 남자는 쓸쓸하다. 애틋하지 않은가.’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