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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하면 사람 노린다… 날로 진화하는 ‘동물판 N번방’

이경은 기자

2022. 10. 04

2021년 4월 ‘동물판 N번방’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나흘 만에 2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엄벌을 요청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동의할 만큼 분노를 샀다. 1년 반이 흐른 지금, 많은 동물의 억울한 죽음은 사라졌을까. 

“(부동액을 스프레이로) 햇반 용기 기준 15번. 흥건하게 타면 눈치채.”(쭈비니)

“시도해본다.”(익명의 ‘세션방’ 구성원)

익명 기반 채팅 애플리케이션(앱), ‘세션’의 동물학대방에서 오간 학대 사주의 일부다. 방장 ‘쭈비니’는 길고양이 사료에 치명적인 부동액 살포 방법을 설명하고 실행을 강요했다. 해당 세션방은 쭈비니가 기존 운영하던 카카오톡 고양이 학대 오픈채팅방 멤버 30여 명 중 일부를 추려 만들어졌다. 폐쇄적인 채팅 앱, 세션에서 보다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학대를 사주하기 위해서다. 세션은 ID 생성에 전화번호나 이메일이 필요 없어 높은 익명성을 보장한다. 사이버 동물 학대는 잔혹하고 비밀스럽게 진화하고 있었다.

‘동물판 N번방’이 발각된 지 1년 반이 지났지만 사이버 동물 학대 문제는 끊이지 않고 있다. 동물판 N번방은 동물 학대 사진을 공유하고 오프라인에서 만나 사체를 교환하기도 하던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이다. 이에 이어 올해 4월 고양이 50여 마리를 찜솥, 망치 등을 이용해 죽인 ‘동탄 학대범’ 같은 제2의 동물 집단 학대 사례가 나타났다. 그들은 검거됐지만, 사이버 동물 학대는 그새 카카오톡, 텔레그램을 넘어 세션과 웹 커뮤니티로 퍼졌다. 전문가들은 “동물 학대 범죄의 방향이 언제라도 사람을 향할 수 있어 위험성을 인지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여성동아’는 시민단체 ‘팀캣’을 통해 고양이 학대 범죄 사례를 수집했다. 올해 3월 결성된 ‘팀캣’은 sns제보를 바탕으로 고양이 학대범을 직접 추적하고 검거하기 위해 10명 내외의 시민들이 모인 단체다.

더 잔인하게, 더 은밀하게

2019년 12월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내 ‘우울증갤러리’에 올라온 길고양이 살해 인증 사진

2019년 12월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내 ‘우울증갤러리’에 올라온 길고양이 살해 인증 사진

카카오톡 학대 오픈채팅방에서 새로 만들어지는 ‘세션방’ 구성원을 모집하는 기준은 학대에 대한 적극성이었다. 방장의 눈에 들기 위해 멤버들은 자극적이고 적나라한 학대 행위를 보인다. 오픈채팅 방장 쭈비니도 미성년자 A에게 학대 영상 공유를 강요했고, A는 세션방 멤버에 포함됐다.



이들은 커뮤니티 유지를 위해 서로 소속감을 부여한다. 쭈비니가 운영한 세션방의 경우, 학대 영상이 올라오지 않으면 그는 “신작은 없냐”고 재촉했고, 구성원은 “계속 팰 거라 키운다”는 말과 함께 반려묘 학대 영상을 공유했다. 반려묘가 목이 세게 졸려 경직되거나 복부를 가격당하는 내용이다. 방장은 자극적일수록 ‘삼일한(여자와 북어는 삼 일에 한 번씩 패야 맛이 좋아진다)’ 등 강한 혐오 표현으로 반응하고, 학대를 하지 않는 이들에겐 부동액 구매를 강요하며 학대를 강제하기도 했다.

김상균 백석대 경찰학과 교수이자 전 한국범죄심리학회장은 ‘집단 야만화 현상’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는 “집단 단위로 범죄를 저지를 경우 행위의 폭력성은 강해지고 개인이 느낄 죄책감은 줄어 위험하다”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이 사례를 “방장은 본인이 학대할 때보다 더 큰 심리적 통제감을 갖기 위해 학대를 사주하고, 일부 구성원은 소수 집단에 속했다는 우월의식과 그 소속감을 유지하려 따르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야옹이 갤러리’(야옹이 갤러리)의 ‘바리깡 동물 학대범’ 사건에서도 드러난다. 7월 22일 글쓴이 B는 게시판 야옹이 갤러리에 수염을 포함해 모든 털이 밀리고 목이 여러 개의 케이블 타이로 조여진 어린 고양이 사진을 올렸다. 경찰에 검거된 그는 “귀여워서 찍어 올린 고양이를 (타 이용자들이) 못생겼다 욕을 해 고양이를 혐오하는 분위기에 맞춰 자극적인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범죄 동기를 밝혔다. 이 사건은 현재 전북 전주덕진경찰서 경제범죄수사팀이 조사 중이다. 피의자를 추적한 시민 단체, 팀캣은 “처음엔 호기심으로 시작한 사이버 학대자들이 (타 이용자들의) 응원을 받으며 인정받기 위한 행동을 지속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하지만 범행이 발각되면 아무도 범죄를 저지른 당사자를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불특정 대상 사이버 학대, 처벌 어려워

몸 전체의 털이 밀리고 목에 케이블타이가 묶인 학대 피해 고양이.

몸 전체의 털이 밀리고 목에 케이블타이가 묶인 학대 피해 고양이.

야옹이 갤러리는 익명성을 기반으로 점차 기형적으로 변형됐다. 디시인사이드는 인터넷 사용자 누구나 별도의 가입 절차 없이 글을 작성할 수 있다. 5년 전만 해도 ‘야옹이 병원 찾는 법’ 등 반려인을 위한 정보가 많았지만, 9월 15일 기준 ‘털바퀴(털 달린 바퀴벌레)’ ‘캣맘충(캣맘+맘충)’ 등 혐오 표현이 게시물을 뒤덮었다. 이렇듯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동물 학대가 빈번하게 발생하지만 처벌로 이어지기까지는 여러 난관이 존재한다.

1월 28일 야옹이 갤러리에 ‘VPN 테스트’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포획 틀에 가둔 고양이를 산 채로 불태우는 내용이다. 잔인한 범행 수법이지만 피의자의 IP를 특정하지 못했다. VPN(가상 사설망)을 활용해서 우회 접속해 해외 IP 주소로 글을 작성했기 때문이다. 장윤식 한림대 AI범죄수사융합전공 교수는 “VPN 서비스 운영자로부터 실사용자 정보를 받는 것은 국제공조 등 현실적으로 많은 기술적·법제도적 제약이 따른다”며 “영상 속에 등장한 지형지물을 조사해 피의자를 특정하는 등 다른 수사 요소를 활용해 추적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피의자가 특정되더라도 범죄 혐의를 적용하는 것부터가 과제다. 부동액 살해를 실행·사주한 세션방 사건도 경찰이 수사를 자체 종결했다. 세션방 대화 내용에서 범행 사실을 확인할 수 있지만 실제로 부동액으로 인해 죽은 고양이 사체를 확보하기 어려워 인과관계를 증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반려동물 사건 전문 조찬형 법무법인 청음 변호사는 “동물보호법엔 예비 음모 조항이 없어 범죄 결과가 확보되지 않을 시 처벌받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예비 음모는 범죄를 계획하거나 준비하는 범죄 형태로, 이 규정이 있는 경우 범죄 계획을 실행했으나 결과가 발생하지 않아도 미수범이 된다. 이어 동물 혐오에서 기인한 불특정 다수 대상의 학대가 가진 사각지대도 언급했다. 조 변호사는 “예비 음모 조항이 있더라도 학대 대상이 특정되지 않으면 처벌이 어려워질 소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작은 무질서가 큰 무질서로

“죽일 만한 게 눈앞에 나타나면 좋겠다.” “동물은 사회적 약자의 상징.” “남 고통스럽게 하는 것도 좋지만 여자를 괴롭히고 강간하고 싶은 더러운 성욕도 있다.”

지난해 발각된 동물판 N번방 대화 일부다. 이들은 동물 학대를 자행한 뒤 방사하는 행위를 하나의 놀이로 소비할 뿐 아니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범죄 의사도 함께 내비쳤다. 김상균 교수는 “모든 사람에게 통제 욕구가 있지만 이들은 그 욕구가 비정상적으로 강하고, 사회적 지위나 일상에서 이를 얻지 못해 약자를 공격하면서 충족하려 한다”며 “동물 학대 범죄는 사회적 약자, 즉 사람으로 공격 대상이 대체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도 2016년부터 동물 학대를 반사회 범죄로 분류하고, “동물 범죄는 더 큰 범죄에 대한 하나의 경고”라는 미국 범죄통계관리과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며 미국 전역 동물 관련 범죄 통계를 국가 데이터로 수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물판 N번방의 주동자 이 모 씨는 지난해 11월 11일 열린 1심 공판에서 징역 4개월에 벌금 100만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검찰은 그에게 동물보호법 법정 최고형인 3년을 구형했지만 판사의 재량으로 감경된 것이다. 현행 동물보호법에는 양형 기준이 없어 판사의 재량을 통제할 방법이 없다. 조찬형 변호사는 “형을 높이는 것보다 정확한 양형 기준을 마련해 형을 실효적으로 집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8월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법무부와 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7년부터 2022년 3월까지)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재판이 열린 피고인 346명 중 단 19명만이 실형을 받았다. 조 변호사는 다시 한번 동물 학대 범죄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처음부터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은 쉽지 않아요. 작은 생명체에 대한 존중의 부재가 쌓여 일어나는 것이죠. 동물에 대한 공격의 방향이 언제라도 사람을 향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길고양이 #동물학대 #동물판N번방 #익명범죄 #여성동아

사진 뉴스1 
사진제공 시민단체 팀캣 
사진출처 디시인사이드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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