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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she is

35년 동안 정상 지킨 배우 김혜수의 고통과 희열

글 정혜연 기자

입력 2020.11.24 10:43:17

사람을 꽃에 비유하자면, 배우 김혜수는 1만 리 넘어 진한 향을 퍼뜨리는 꽃이 아닐까. 자기만의 색깔로 30여 년간 톱스타의 자리를 지켜온 그녀의 이야기.
짙은 스모키 화장 아래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레드 카펫 위를 우아하게 걸어 무대에 오르는 영화제의 꽃.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로 두세 시간 동안 시상식을 이끌어가는 그녀를 보노라면 넋을 놓고 집중할 수밖에 없다. 배우 김혜수(50)를 떠올리면 항상 청룡영화상의 그 모습이 오버랩된다. 10여 년 동안 유서 깊은 영화제의 진행자 자리를 계속 지켜온 걸 보면 확실히 김혜수에겐 대중을 매혹하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사실 김혜수는 데뷔부터 남달랐다. 열여섯 살이던 1986년, 우연히 TV 광고 모델로 데뷔한 그녀는 영화 ‘깜보’의 감독 눈에 띄어 톱스타이던 박중훈의 상대로 출연했다. 그야말로 혜성같이 등장한 김혜수는 이 작품으로 제23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부문 여자 신인연기상을 받아 외모는 물론 연기력까지 인정받았다. 이후 그녀는 영화계뿐 아니라 드라마, 쇼 프로그램 등에서 섭외가 밀려들 정도로 1990년대를 대표하는 연예인으로서 독보적인 인기를 누렸다. 김혜수는 외모만 눈에 띄는 여배우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신인상 수상 이후 6년 만인 1993년, 이명세 감독과 함께한 영화 ‘첫사랑’으로 제14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실력파 연기자임을 또 한 번 입증했다. 당시 그녀는 스물세 살에 불과해 최연소 여우주연상 수상 기록을 세웠는데, 아직까지도 그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이후 1995년 ‘닥터 봉’과 2006년 ‘타짜’로 청룡영화상에서만 3번의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지금까지 윤정희와 함께 최다 여우주연상 기록을 갖고 있다. 

대표작을 꼽자면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다. 1996년 MBC 드라마 ‘짝’(연기대상), 2003년 KBS 드라마 ‘장희빈’(연기대상), 2004년 영화 ‘얼굴 없는 미녀’(제42회 대종상 여우주연상, 제41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2013년 KBS 드라마 ‘직장의 신’(연기대상), 2015년 영화 ‘차이나타운’(제35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2016년 tvN 드라마 ‘시그널’(제52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등이다. 올해 초에는 SBS 드라마 ‘하이에나’에서 흙수저 출신 악바리 변호사 정금자 역을 맡아 매회 속이 후련해지는 연기를 선보여 건재함을 보여주었다. 

그가 제목부터 궁금증을 자아내는 영화 한 편을 들고 관객들 앞에 섰다. 11월 중순 개봉한 영화 ‘내가 죽던 날’에서 주연을 맡아 배우 이정은, 노정의, 김선영 등 실력파 조연들과 호연을 펼친 것. 영화 속에서 김혜수는 예기치 못한 남편의 외도로 충격을 받아 삶의 의지를 잃고 방황하는 형사 ‘현수’로 등장한다. 그녀는 아버지의 금융 범죄에 개입된 한 소녀의 실종 사건을 맡게 되고, 외딴섬 벼랑 끝에서 유서 한 장만 남기고 사라진 소녀에게 동질감을 느끼며 수사에 몰입한다. 

영화가 시작되고 등장한, 헝클어진 머리에 지친 기색이 역력한 김혜수의 모습은 매우 생경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삶을 포기할지 말지 고민하는, 그 힘든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 극 중 현수를 보는 내내 그저 연기를 하는 김혜수인지, 진짜 김혜수의 본모습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특별한 작품으로 대중 앞에 선 김혜수를 11월 초,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작품과 출연 배우들에 대한 애정뿐 아니라 연기관, 자기 삶에 대한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그녀를 보며 누구보다 배우라는 직업에 진심인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죽던 날’이란 제목부터가 범상치 않은데요.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러 시나리오 가운데 영화같이 ‘내가 죽던 날’이라는 제목이 눈에 줌인돼 들어왔어요. 장르가 무엇인지, 어떤 역할인지 보기도 전에 왠지 이 영화를 해야 할 것만 같은 그런 운명적인 느낌이 들었죠. 대본을 읽어가면서 만나지 않은 사람들 간에 연대감 같은 것이 느껴졌고, 어떤 위로도 느껴졌어요. 이런 감정을 스크린에 담아내려면 배우뿐 아니라 연출도 쉽지 않겠다 싶었어요. 제가 대본을 보면서 느낀 감정을 관객분들께도 고스란히 전하고 싶었어요. 

영화 속에서 헝클어진 머릿결과 푸석한 피부가 여과 없이 드러나서 놀랐어요. 불면증에 시달리고, 자해를 하는 모습도 충격적이었고요. 그런 부분들은 어떻게 준비한 건가요. 

촬영 전부터 감독님, 스태프와 많이 고민했어요. 현수는 상처를 받고,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진 경찰인데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에 긴장을 느끼거든요. 촬영하다 보니 그런 정황이나 주변 상황을 보여주는 것보다 직접적인 감정을 개입하면 어떨까 생각했죠. 그렇게 만들어진 게 첫 장면이에요. 불면증에 시달리며 밤새 뛰다가 차 안에서 잠이 들고, 아침에 경적 소리에 잠을 깨는 모습에서 현수의 괴로움이 그대로 드러나도록 하고 싶었어요. 그 장면은 원래 없었는데 나중에 추가로 찍어서 넣은 거예요. 외모적인 부분은 ‘차이나타운’ 때도 비슷한 질문을 받았는데, 내가 어떻게 보이느냐 하는 부분보다 얼마나 역할을 잘 그려내느냐에 집중하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현수가 악몽을 꾸는데, 죽은 자신의 몸을 보며 ‘저거 좀 누가 치워주지’라는 대사가 독특하게 느껴졌어요. 그게 김혜수 배우 본인의 이야기라고 해서 정말 놀랐습니다. 

영화를 촬영할 때 아이디어를 많이 내는 편이에요. 그 장면은 제 아이디어 중 하나였어요. 짐이 가득한 원룸 오피스텔에서 친구 민정(김선영)의 걱정 섞인 훈계에 자신의 마음과 상황이 얼마나 힘든지 고백하는 장면이었죠. 죽어 있는 자신의 몸을 보는 악몽은 실제로 제가 몇 해 전 1년 내내 꾼 꿈이었어요. 꿈속에서 죽은 제 몸을 이렇게 내려다보는데 아무도 내가 죽은 걸 모르는 것 같더라고요. 속으로 ‘저걸 빨리 치워야 하는데, 누가 좀 치워주지. 제발 치워라도 주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의 제 상황과 현수의 상황이 맥락을 같이하는 것 같아서 그대로 연기했고, 그 장면은 관객에게 현수를 이해시키는 과정의 하나였다고 생각해요. 

당시 왜 그런 악몽을 꿨나요. 

괴로웠던 시기가 있었어요. 다들 아실 거예요. 2012년 즈음 가족 관련 일(모친이 사업 투자를 목적으로 지인 등에게 약 13억원을 빌렸다가 갚지 않은 사건)로 힘든 상황을 맞았죠. 그때 주변에서 정말 몰랐냐고 하는데, 정말 (그런 일이 있는 줄) 몰랐어요. 내가 한 일은 아니지만 나로 인해 비롯된 일이란 생각 때문에 고통스러웠어요. 그때 1년 내내, 꿈만 꾸면 영화의 몇 컷처럼 죽은 제 모습을 바라보는 장면이 나왔어요. ‘내가 정말 마음이 죽어 있나 보다’ ‘심리적으로 죽어 있는 상태구나’ 싶었죠. 그렇다고 막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조차 갖지 못했어요. 전 힘들면 현실적으로 해야 할 일들은 하되 전체적으로 내버려두는 편이거든요. 조바심? 마음속에 그런 게 들어올 공간이 전혀 없었어요. 

지금은 완벽히 해결이 됐나요. 

세상에 ‘완벽히’ 해결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지금도 내상은 남아 있죠. 

개인적으로 여운이 많이 남는 작품일 거 같아요.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나요. 

제가 나온 장면은 아니지만 순천댁(이정은)이 세진(노정의)에게 진심을 전하는 장면에서 “니가 남았다” “인생이 생각보다 길어”라고 말해준 게 기억에 남아요. 현수의 대사 가운데서는, 민정과의 오피스텔 장면에서 말한 “정말 내가 원하는 건, 다 없던 일이 되는 거야”예요. 어쩌다 이런 일이 생긴 건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시간을 되돌려 없던 일이 되면 안 되는 건지 그런 마음들을 함축하는 말이니까요. 극 중 순천댁이나 배우들의 대사를 들으면서 ‘나도 저랬는데’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홀로 타이틀 롤을 맡은 덕분에 비교적 최근작인 ‘국가부도의 날’ ‘굿바이 싱글’ ‘관상’ 등에 비해 부담이 컸을 것 같아요. 

제가 어쩌다 선배가 돼 이 어려운 시기에 여성 연기자로서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러나 부담이나 책임감을 가져가지는 않아요. 제가 할 역할에 충실할 뿐이죠. 그런데 그게 매번 너무 벅차요. 어릴 때 우연히 일을 시작하게 돼 정신없이 10대를 지나 20대가 됐어요. 그때 뒤늦게 사춘기가 오듯, 일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게 됐죠. 

어느 순간 잠자리에 누웠는데 ‘왜 이 일을 하는 거지’라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해지기도 했고요. 청춘을 일만 하며 보낸 게 아까워서, 누군가 나를 평가하는 것보다 창의적이고 즐거운 일을 하고 싶기도 했죠. 막상 뭔가 해보려 했지만 벽에 부딪혀 좌절감도 느꼈고요. 그렇게 30대를 보내고 여러 시도를 하며 수많은 영향을 주고받았고, 속으로 ‘만 40세가 되면 그만두리라’ 생각하기도 했어요. 왜냐면 내 삶과 연예인으로서의 삶을 분리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게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미 내 삶과 배우라는 직업은 분리할 수 없는 상태가 됐더라고요. 이 일을 하면서 취향이라는 게 생기고, 나라는 사람이 형성됐고, 거기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니 그만둘 수가 없었어요. 


많은 여성들이 배우 김혜수를 보고 위안을 얻고,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해요. 그런 시대의 아이콘이 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겉으로 그렇게 보여도 속은 혼란스러워요.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제 힘만으로 온 것 같지 않아요.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없었으면 저도 없었겠죠. 뒤돌아보면 영화 속 순천댁 같은 구세주가 늘 있었고, 그런 면에서 전 운이 좋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요. 세상에 연기 경력이 빼어난 좋은 배우가 많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하자면) 제 경우는 행운 같은 게 끊임없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저도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인간이에요. 늘 두렵고, 늘 버거운 그런 여성이죠. 부족하고 자책하면서도 때론 별거 아닌 것에 기뻐하는 그런 사람요. 

그러면 인생의 즐거움은 어디에서 찾나요. 

사람, 음악, 시, 글, 아이들, 자연…. 그런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에서 충전이 되니까 사는 것 같아요. 

요즘엔 SNS도 꾸준히 하던데 그런 모습이 신선하고 반가워요. 

사실 과거에도 여러 SNS가 있었지만 하지 않았어요. 시작하면 피곤할까 봐요. 그러다 올해 초 드라마 ‘하이에나’를 찍으며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는데 재미가 있더라고요. 현장에서 봤던 친구들이 여기에 다 들어와 있고, 그 공간에서 서로 농담 비슷한 이야기도 하는 게 흥미로웠죠. 또 아예 모르는 사람들인데 댓글을 남기고 가면 거기에서 뭔가 ‘훅~’ 들어오는 게 있더라고요. 그런 짧은 문장에 괜스레 고맙고 그럴 때가 있어요. 생각해보면 그런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더라고요. 물론 역기능과 순기능이 다 있지만 지금은 재미있어요. 

소소한 일상 사진도 올라와 있는데, 바닷가에서 친구들과 쓰레기를 줍는다든가 환경문제에 대한 생각을 밝히는 등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습이 멋져 보여요. 

제가 엄청난 의식을 갖고 하는 건 아니라서 쑥스러워요. 10여 년 전, 태안 앞바다에 기름이 유출됐을 때 친구들과 봉사를 하러 갔어요. 그 이후로도 종종 바다에 가면 널려 있는 쓰레기를 주워 오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요. 전 해보니까 좋아서 계속하는 거고, 다른 분들은 하셔도 좋고 안 하셔도 좋은 거죠. 

데뷔한 지 34년이 흘렀어요. 감회가 어떤가요. 

숫자에 전혀 연연하지 않아요. 나이가 많아질수록 연기적으로 어떤 변화나 성과를 얻을 수 있다면 저는 정말 최선을 다해 나이를 먹을 거예요. 그러나 그런 게 아니잖아요. 데뷔한 지 몇 년, 내 나이 그런 건 기사를 통해 ‘그렇구나’ 느끼는 정도지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아요. 

인터뷰를 보면 유독 자신의 연기에 대해서만큼은 점수를 짜게 주는 것 같아요. 

배우들 중에 자기 연기에 만족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걸요. 많은 배우들이 작품을 시작하고 마칠 때 공통적으로 갖는 마음이 있어요. ‘두려움’이죠. 연예인이 예민해서 공황장애에 많이 걸리는 걸까요? 아니에요. 얼마나 힘들고 기묘한 일인지 경험하지 않으면 몰라요. 두려움이 전제되지 않은 현장은 없거든요. 배우라는 한자의 어원을 보면, ‘배(俳)’ 자는 사람 인(人)에 아닐 비(非)를 쓰고 우(優)는 넉넉하다는 뜻을 갖고 있어요. 직역하자면 사람이 아닌 걸 넉넉하게 잘해야 한다는 뜻인데, 굉장히 모순되는 단어예요. 그걸 해낸다는 건 굉장히 경이롭고 신비롭고 두려운 일이죠. 

그래도 연기를 한다는 건 행복한 일이지 않나요. 

하나도 즐겁지 않아요. 물론 사람마다 다를 수 있어요. 저의 경우 고통스럽지만 즐기는 태도로 하는 거예요. 연기하는 것은 그 자체로 고통이고, 일을 한다는 그 자체도 힘들기는 해요. 다만 현장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소통하는 것은 즐거울 수 있어요. 이번 영화처럼 서로 공감하는 좋은 배우들을 만날 수도 있죠.

사진제공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사진작가



여성동아 2020년 12월 6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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