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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interview

아이들이 살아갈 정의로운 세상 위하여, 워킹맘 검사 서아람&박민희

글 이현준 기자

입력 2021.04.20 14:23:53

하루 종일 일에 파묻혀 살고 중고 거래로 물건을 ‘득템’할 때 희열을 느끼며 베이비시터를 구하지 못해 한숨을 내쉰다. 워킹맘 검사들의 진짜 ‘여자 사람 검사’ 이야기.
뜨거운 열정 하나로 거대한 악(惡)과 싸우며 정의를 실현하거나 은밀한 만남으로 그와 결탁해 막후에서 세상을 좌지우지하거나. 드라마, 영화 등 콘텐츠에서 다뤄지는 검사(檢事)는 극과 극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강력한 공권력을 손에 쥔 엘리트라니, 이처럼 대중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소재가 또 있을까. 하지만 서아람(35) 수원지검 검사, 박민희(35) 수원지검 안양지청 검사, 김은수 검사(36  ·  필명)가 말하는 ‘진짜 검사’는 조금 다르다. 제2회 변호사시험 동기로 2013년 검사로 임관한 이들 3인은 3월 25일 여성 평검사 첫 에세이집 ‘여자 사람 검사’(라곰)를 펴냈다. 대개 부장급 이상의 고위 검사가 책을 내왔던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일.

서 검사와 박 검사는 두 아이, 김 검사는 세 아이의 엄마다. 지난해 여름 셋 모두 육아휴직 중임을 기회로 밤을 새워 원고를 썼다. 책에 수록된 이들의 이야기는 평범한 ‘워킹맘’의 일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 ‘기본값’이 된 야근으로 어떻게 하면 아이와 시간을 더 보낼 수 있을지 골몰하고 단돈 1만원이라도 싸게 아이용품을 사기 위해 중고 거래 시장을 헤매며, 자주 이사를 해야 하는 탓에 집을 구할 때마다 머리를 싸매고 베이비시터를 찾기 힘들어 발을 동동 구르는 시간을 보낸다.

검사들이 다 드라마 캐릭터 같으면
대체 일은 누가 하지?

‌“나쁜 사람을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하고 싶어요” _박민희

‌“나쁜 사람을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하고 싶어요” _박민희

이들의 이야기는 기존의 검사 이미지에 익숙했던 사람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갔다. 출간 전 2월부터 카카오페이지에 연재된 ‘여자 사람 검사’는 구독자 14만 명을 모으며 인기를 끌었다. 4월 8일 서아람 검사와 박민희 검사를 만났다. 김 검사는 개인 사정으로 불참했다. 이들은 “연재 내용 중 3분의 1은 책에 싣지 못했는데, 그중 재미있는 게 많아서 우리끼린 이미 확장판을 내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며 웃어 보였다. 조곤조곤 말하면서도 중고 거래 이야기에선 만면에 웃음을 보이고 육아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은 검사이기 전에 여자이고 사람인, 진정 ‘여자 사람 검사’였다.

평검사의 출간은 이례적인데, ‘우리가 책을 내도 될까’ 하는 고민은 없었나요.

박민희(이하 박) 엄청 많았죠. 출간 직전까지 고민했어요. 그래도 젊은 날의 검사 생활을 책으로 엮어낼 수 있는 기회를 또 언제 잡을 수 있을까 싶어 두려움을 내려놓을 수 있었죠.



책 내용이 검사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달라 신선했어요. 지인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외부의 시선으로 보면 검사들은 베일에 싸여 대단한 일을 하는 존재처럼 그려지는데, 책을 통해 ‘진짜’ 검사를 보여줘서 고맙다는 반응이 많아요. 이런 반응에 힘이 나고요.

검사는 미디어에서 많이 다뤄지잖아요. 현직 검사로서 실제와 가장 비슷하다거나 ‘저건 정말 아니다’ 싶은 모습이 있었나요.

서아람(이하 서)
가장 고증이 잘된 작품은 JTBC 드라마 ‘검사내전’이라고 생각해요. 저자(김웅 의원)가 검사 출신이라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대개의 검사 드라마는 공감할 수 없는 장면이 많은 편이에요. 현장을 뛰어다니며 격투로 피의자를 제압하고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는 검사를 보고 있자면 ‘저 검사가 담당해야 할 수많은 사건은 대체 누가 처리하지?’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실제 검사가 현장에 잘 안 나가는 이유는 신속하게 마무리해야 할 사건이 많기 때문이에요. 1시간만 자리를 비워도 처리해야 할 영장이 수북이 쌓이는걸요. 검사는 사실 사무직에 가까워요.

노동 강도는 어떤 편인가요.

주 52시간 근무제는 해당되지 않고요, 야근 수당도 없어요. 사건이 계속 터지니까 일은 끝이 없고 항상 시간에 쫓기며 살죠.
서: 야근은 기본이라, 얼마나 더 길게 하는지가 관건이에요. 주말 근무도 해야 하고 당직도 서야죠. 중요 수사를 하는 팀들의 경우 몇 주, 심지어 몇 달간 집에 못 들어가는 경우도 있어요.
박 ‘(검찰)청 인테리어(항상 그 자리에 있다고 해서 생긴 별칭)’가 많죠(웃음).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검사들을 안 좋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도 많아요.

사실과 다른, 검사 전체를 매도하는 악의적인 댓글을 보면 상처가 되죠.
성실히 일하고 있는데, 미디어에서 잘못 비치는 검사들의 모습만 보고 그런 비난을 쏟아내면 속상해요. 검사들의 실제 모습에 대해 잘 몰라서 그런 것 같아요. ‘여자 사람 검사’를 보면 검사들도 열심히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란 걸 알 수 있을 거예요(웃음).

책에 밝힌 검사가 된 이유 중 ‘변호사보다 워라밸이 좋고 출산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쓸 수 있어서’가 있었는데, 매우 현실적인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좋은 육아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제도가 계속 발전해왔잖아요. 검찰은 일반 사기업보다 이를 보장해주려 노력하죠. 물론 워라밸이 좋은 직업은 아니에요(웃음).
대형 로펌의 여성 변호사에 비하면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정도예요.


하루 종일 사건을 들여다보며 시시비비를 가리고 정의 구현을 위해 열일하는 이들이지만 일상은 여느 워킹맘들과 다르지 않다.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민트급(물건을 사놓고 거의 사용 안 한 상태)’ 상품을 찾기 위해 주말 내내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쿨거래(이것저것 따지지도 묻지도 않고 거래하는 것) 시 에누리 되나요?”를 외친다. 박 검사는 조금이라도 더 싸게 카시트를 구입하려다 사기를 당할 뻔했다. 남편으로부터 “사기꾼한테 속은 검사”라고 놀림을 받은 사실은 웃음을 자아낸다.


중고 거래를 즐겨 하신다고요. 사기당하지 않는 비결이 있을까요.

판매자의 거래 내역을 확인하는 게 중요해요. 원래부터 성실히 거래를 해오던 사람인지, 또 이 판매자가 구매 내역이 있는지도 봐야 해요. 실제 거래자는 팔기만 하는 게 아니라 사기도 해요. 또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주지 않으면 사기일 확률이 높죠. 조금이라도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안전 거래를 추천해요.
거래 내역도 최근에 집중돼 있으면 안 돼요. 아이디를 산 경우가 있거든요. 사람들의 구매 후기도 눈여겨봐야 하고요. 또 거리가 멀더라도 직거래가 안전해요.

중고 거래로 구매한 것 중 정말 잘 산 것 같은 물건은 뭔가요.

해먹이요. 원래 20만원인데 9만원에 샀어요(웃음). 해먹을 실내에 두는 건 파격적이긴한데 두 아이에게 정말 좋은 놀이터가 됐어요. 둘째가 잠을 잘 안 자는데 그 위에선 잘 자고요. 육아하다 힘들면 저도 그곳에서 쉬고요. 육아에 해먹을 적극 추천합니다. 해먹을 집에 들이세요!

범퍼 침대를 원래 가격의 반값에 샀어요. ‘득템’의 세계는 넓고도 넓어요. 중고 거래를 끊을 수가 없어요(웃음).


국민들로부터 ‘여사검’ ‘남사검’이라 불리는 날 오길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귀가 열려 있는 검사가 되고 싶어요”  _서아람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귀가 열려 있는 검사가 되고 싶어요” _서아람

박 검사는 책에 초임 검사 시절 검찰총장과 가졌던 면담을 기록했다. 이에 따르면 당시 총장은 “너희들의 인권은 포기해라. 너희들의 인권은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했다고. 박 검사는 방대한 업무량, 끊임없는 야근, 잦은 이사, 여론의 질타 등에 스스로의 인권을 챙길 틈이 없으며 가족들의 인권도 함께 포기돼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가족들의 인권도 포기돼야 했다는 내용이 인상 깊었어요. 배우자와 자녀에게 미안함을 느끼나요.

미안하죠. 남편은 저를 따라 이직을 세 번이나 했어요. 아이도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계속 옮겼고요. 환경 변화에 스트레스가 클 텐데 다 견뎌주고 있어서 정말 고마워요. 저희 남편은 저와 결혼할 때만 해도 이 정도일 줄 몰랐을 거예요(웃음). 지금은 잘 이해해줘서 제가 일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우리 아이들은 아직 어려서 잘 모르긴 해요(웃음). 저는 양가 부모님 중 어느 한쪽에겐 의지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흰 친정 부모님이 아이를 돌봐주시곤 하거든요. 정말 죄송하지만 어쩔 수 없더라고요.

두 분 모두 육아휴직을 마치고 올 2월에 복직했는데 육아에 있어 가장 힘든 점은 뭔가요. 제도적으로 개선됐으면 하는 점이 있다거나.

복직할 때 가장 고민 되는 건 베이비시터 구하기예요. 베이비시터의 자격 요건, 서비스의 질, 비용 등을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게끔 사회적으로 시스템이 구축돼야 할 텐데, 지금은 좋은 베이비시터를 구하는 게 오롯이 워킹맘의 몫이에요. 이런 부분이 개선돼야 지속적으로 양육이 가능한 사회 아닐까요. 현재 워킹맘을 위한 정책은 주로 출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 집의 경우 한 달에 베이비시터 5명이 연달아 그만두는 일도 있었어요. 물론 아이들이 연년생인 데다가 어리고, 제가 야근이 잦아 집안일을 못 하는 데다 친정 엄마가 자주 들여다보는, 소위 베이비시터들이 말하는 최악의 조건이긴 하죠(웃음). 육체적으로 워낙 힘든 일이니 시급도 원하시는 대로 맞춰드리고 싶은데, 통장 사정이 허락해주지 않으니 저도 안타까워요.

어려움이 많네요. 만약 자녀가 검사가 되길 희망한다면 어떨 것 같나요.

뿌듯하죠. 자식이 부모를 보고 존경심이 들지 않는다면 부모의 직업을 희망하지 않는다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단순히 미디어에서 보이는 이미지만 놓고 검사를 희망하는 건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저희를 가장 가까이서 보는 수사관들은 “우리 딸은 검사 안 시켜야지”라고 하거든요(웃음).

저희 아들은 장래 희망이 불도저 운전사래요(웃음). 저는 남편과 약속했어요. 현행법상 어긋나는 일만 아니면 하고 싶은 거 시키자고. 다만 주변의 가족 법조인들을 보면 서로 일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 좋더라고요. 제가 검사, 남편이 변호사니까 자녀 중에 판사가 나오면 법조 가족으로 딱이네요(웃음).

수많은 피의자들을 보잖아요. 그중엔 소년범도 있고요. 그들을 보며 교육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게 될 것 같아요.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하길 바라나요.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아이가 됐으면 좋겠어요. 피의자들을 보면 세상을 바르게 이기지 못해서 그렇게 됐다는 생각이 들곤 해요. 나쁜 상황을 이기지 못하거나 그른 생각을 이기지 못하는 그런. 판단력, 강인함, 정의감 등 종합적인 소양이 필요할 듯해요. 올바른 정신으로 어려움을 잘 이겨낼 수 있는 그런 아이가 되길 바라요.

전 ‘강약약강’의 피의자들을 보면 분노가 치밀거든요. 피해자 앞에선 큰소리치다 제 앞에 오면 몸을 낮추는 피의자를 보면 인간에 대한 환멸이 느껴지죠. 아이들도 그래요. 놀이터나 키즈 카페에 가면 작고 약한 아이들한테 상냥하게 대하는 아이가 있는 반면 함부로 대하는 아이도 있어요. 우리 아이는 전자였으면 해요. 약한 사람을 배려하고 강한 사람한텐 맞서서 목소리를 내는 그런 사람이요.

검사가 된 걸 후회하거나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었나요.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저는 지금 상황이 제 삶에 있어 최선이라는 자부심으로 검사 생활을 해왔어요. 전 기소할 때보다 불기소할 때가 더 뿌듯해요. 나쁜 사람을 처벌하는 것보다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게 하는 거죠. 예전에 청소년 복지 사업을 하다 시로부터 횡령 혐의로 고발당한 목사가 있었는데, 제대로 된 회계 지식이 없었을 뿐 정말 억울한 사람이었거든요. 계좌 6개를 받아 통합 분석했어요. 일일이 수작업을 해야 하는 고된 일이었지만 결국 억울함을 밝혀서 불기소 처분했죠. 그때가 4년 차였는데 이런 일들을 하기 위해 검사가 됐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돌아봐도 정말 뿌듯해요.

저도 후회한 적 없어요(웃음). 피의자, 피해자로부터 감사 편지를 받을 때 가장 행복해요. 자필로 꾹꾹 눌러쓴 그 편지를 읽을 때의 느낌이란. 사실 저흰 굉장히 사소한 배려를 하는 거예요. 커피 타주기, 부모와 전화 통화하게 해주기 등이요. 그런 일들이 태어나 처음 받아보는 친절이었다는 편지도 있어요. 그것만으로 마음이 울리고 찡하죠.

책을 쓰면서 검사라는 직업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게 되신 것 같아요. 두 분은 어떤 검사가 되고 싶은가요.

전 원래 친절한 검사는 아니었거든요. 하지만 책을 내고 나서 ‘나를 보고 검사에 대해 판단하는 사람이 있겠다’ 생각하니 상냥하게 바뀌더라고요. 긍정적인 변화죠. 앞으로 저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귀가 열려 있는 검사가 되고 싶어요(웃음).

긴 고민 끝에 ‘여자 사람 검사’를 책 제목으로 지었어요. ‘여사친’ ‘남사친’을 편하게 부르듯 전 국민이 ‘여사검’ ‘남사검’이라 말할 수 있길 바랐거든요(웃음). 그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게 하는 다정하고 따뜻한 검사가 되는 게 목표예요.


사진 홍태식



여성동아 2021년 5월 6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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