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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wannabe

이하늬의 전성기는 이제부터

EDITOR 김지영 기자

입력 2019.12.01 10:00:01

2019년은 ‘이하늬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미스코리아 출신 배우라는 화려한 이미지를 벗고 영화 ‘극한직업’과 드라마 ‘열혈사제’에 이어 또 한 편의 작품으로 스크린에서 인기몰이 중인 그의 성공 뒤에는 남다른 고민과 열정이 있었다.
이하늬의 전성기는 이제부터
세계가 인정하는 외모에 서울대 국악과 출신, 남다른 집안 환경, 잘생기고 잘나가는 남자친구까지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다. 배우 이하늬(36) 얘기다. 그는 올해 들어 출연하는 작품마다 대박을 터뜨리는 행운까지 거머쥐었다. 올해 가장 먼저 1천만 고지에 오른 영화 ‘극한직업’과 지난 4월 22%가 넘는 시청률로 종영한 드라마 ‘열혈사제’에 이어 11월 13일 극장에 걸린 ‘블랙머니’도 개봉 닷새 만에 1백만 관객을 돌파해 화제를 뿌리고 있다. 

세 작품이 모두 흥행 궤도에 오른 데는 이하늬의 공이 작지 않다. 기존의 화려한 이미지와는 다른 반전 매력과 그만의 색깔이 묻어나는 자연스러운 연기로 보는 이들을 사로잡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기 때문이다. 특히 정지영 감독의 신작 ‘블랙머니’에서는 두 전작들에선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매력으로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블랙머니’는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사태의 여파가 남아 있던 2003년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헐값에 인수한 후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떠난 실화를 토대로 했다. 론스타는 2012년 2월 외환은행 지분을 하나금융에 3조9천1백억원에 매각했다. 하지만 론스타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한국 정부의 승인이 늦어져 금전적인 손해를 봤다며 2012년 11월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우리 정부를 상대로 하는 5조원대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제기했다. 

이 사건에서 몇 가지 단서를 엮어 극화한 ‘블랙머니’는 수사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양민혁(조진웅) 검사가 자신이 조사를 담당한 피의자의 자살로 인해 곤경에 처하고, 누명을 벗기 위해 사건의 내막을 파헤치다 거대한 금융 비리의 실체와 마주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극 중 이하늬는 태어나면서부터 엘리트 길을 걸어온, 국내 최대 로펌의 국제 통상 전문 변호사이자 대한은행의 법률 대리인인 김나리로 등장해 비리의 실체를 좇는 양민혁 검사와 공조에 나선다. 

2019년을 형사, 검사, 변호사로 살아내느라 숨 돌릴 겨를이 없었던 이하늬를 ‘블랙머니’ 개봉을 앞두고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났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편한 옷차림으로 나타난 그는 인터뷰 내내 기자를 놀라게 했다. ‘이 미모가 실화인가’ 싶을 정도로 격하게 아름다워서, 그리고 겉모습 못지않게 내면도 멋진 개념 배우라서.




이하늬의 전성기는 이제부터
정지영 감독과 어떤 인연으로 작품을 함께하게 됐나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뒤풀이 자리에서 감독님을 처음 만났어요. 함께 온 프로듀서와 저만 바라보시더라고요. 되게 따뜻한 시선이었어요. 알고 보니 주변 사람들이 저를 김나리 역으로 추천해 적임자인지 판가름하려고 오신 거였는데 그때는 감독님 눈에 차지 않았나 봐요. 그러다 제가 고래를 엄청 좋아해서 사라져가는 동물들을 조명한 ‘은밀하고 위대한 동물의 사생활’이라는 예능 다큐멘터리에 출연했는데 그걸 보고 캐스팅 의지를 굳히셨대요.(정지영 감독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이하늬가 지적이며 당찬 연기가 가능한 배우임을 확신했다고 한다.) 

‘블랙머니’를 본 소감은 어땠나요. 

처음 시나리오를 받을 때부터 완성도가 상당히 높았어요. 영화로 나왔을 때 그에 미치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될 정도로요. 그런데 영화가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어서 다행이었어요. 영화를 많은 분들이 보게 하려면 얼마나 재미있느냐가 중요한 문제거든요. 제가 제 영화를 보면서 우는 건 창피한 일인데, 기술 시사회에서 처음 영화를 봤을 때 양민혁이 비리의 실체를 고발하는 장면부터 속에서 묵직한 것이 올라오더라고요. 억울함, 속상함이 뒤섞인 복합적인 감정이었어요. 그 느낌이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해지길 바라요. 

이 영화에서 다룬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양민혁의 마지막 외침에 담겨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더는 미룰 수 없는 화두죠. 지금도 국제중재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이니까요. 내년에 그 재판에서 국가가 패소할 확률이 99%라고 해요. 그러면 피해보상액인 5조원을 누가 물겠어요. 이전 세대가 저지른 문제의 책임을 현세대 혹은 후세대에 전가하는 걸 누가 허락했느냔 말이에요. 정말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선 안 돼요. 요즘은 누구나 사회의 안녕이 개인의 안녕과 직결돼 있다는 걸 절실히 느끼기 때문에 영화를 통해 외치는 거예요. 양민혁의 마지막 외침처럼 ‘누구든 범죄가 있다고 사료될 때는 고발할 수 있고, 고발해야 한다’는 형법 제234조에 입각해 우리 사회를 위험하게 하는 사안에 대해 우리 스스로 소리를 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누가 내 코를 배어갔는지도 모르고 살 게 아니라 “누가 내 코를 배어갔느냐”고 소리 내 찾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서로가 서로에게 ‘워치 아웃’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김나리는 비리의 배후 세력이 누군지를 알고 나서 사회의 안녕을 바라는 양민혁 검사의 기대를 저버려요. 그래서 악역으로 보는 시선도 있더군요. 

양민혁이 비리 세력을 추적하게 된 동기는 개인의 누명을 벗기 위해서였어요. 김나리는 불법을 용납할 수 없어 정의의 편에 설 것처럼 행동하지만 결과는 그러지 못했고요. 두 사람 모두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김나리는 과정이 선하지 않을지언정 그 선택으로 국제 통상 로펌을 만들겠다는 자신의 꿈을 이루면 사회의 안녕에 보탬이 되는 선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인 거죠. 과정도, 결과도 선하면 좋겠는데 과정이 악해도 결과가 선한 경우가 있잖아요. 

실생활에서 과정과 결과 중 어느 쪽을 더 중시하는 편인가요. 

예전에는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었어요. 결과가 좋으면 과정은 어떻든 상관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거든요. 우리 업계에서도 ‘네가 다 따먹어야 해. 못돼 처먹었어도 연기만 잘하면 돼’ 같은 이야기가 아무렇지 않게 통용됐고요. 그게 다 구시대적인 생각에서 나온 말이에요. 이제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배우와 함께 작업하고 싶지 않아요. ‘극한직업’을 통해 과정이 선하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걸 제 눈으로 직접 확인했으니까요. ‘극한직업’을 촬영할 때 배우들끼리 바보스러울 정도로 서로 배려하고 좋은 케미를 낼 수 있도록 도와서 분위기가 정말 화기애애했어요. 그 영화가 흥행 돌풍을 일으키는 걸 보면서 충무로에도 이제 그런 상생의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극한직업’의 흥행을 예상했나요.

개봉 전에는 오히려 걱정이 앞섰어요. 남들은 아무도 안 웃는데 우리끼리만 자위하는 영화가 될까 봐서요. 그런데 공개한 첫날부터 반응이 폭발적이어서 ‘형들’(‘극한직업’에 함께 출연한 배우들)이랑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나요.(이하늬는 그때를 떠올리며 감정이 복받쳤는지 눈물샘이 열리고 목이 메어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촬영하면서 마음고생이 심했나 봐요.

이병헌이라는 천재적인 감독이 있지만, 배우 입장에선 한 치 앞도 모르는 작업이잖아요. 매 순간 예민하게 접근하다 보니 그 영화를 찍으면서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꿈을 매일 꿨어요. 어떤 날은 ‘이것도 소화를 못 시키는 배우였나? 내가 똥배우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저희끼리 분위기가 좋아 저만 그렇게 마음을 졸이는 줄 알았는데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래서 영화가 개봉된 후 조롱거리가 되지 않도록 미련 없이 열심히 해보자고 서로 용기를 북돋우며 모든 신을 굉장히 치열하게 촬영했던 기억이 나요. 그런 절실함이 영화 흥행의 자양분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웃음을 유발하는 포인트를 잘 아는 것 같아요.

이런 말하면 대부분 안 믿는데, 어릴 때는 코미디언이 되고 싶은 생각도 있었어요. 흔히 개그우먼이라고 지칭하는 여자 희극배우들을 정말 좋아해요. “(박)나래야, 너를 너무 사랑해!” 하고 갑자기 사랑 고백을 할 정도로요. (이)국주는 그렇게 했더니 부담스러워하더라고요(웃음). 여자는 누구나 아름다워지고 싶은 본능이 있잖아요. 그런데 희극배우는 누군가를 웃기기 위해 자기를 내려놔야 하는 부분이 분명 있어요. 그런 면이 숭고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집에서 ‘코미디 빅리그’라는 개그 프로그램을 꼭 챙겨 보는데 그때마다 여자 희극배우는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희극배우라면 그 정도의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싶어요.


이하늬의 전성기는 이제부터
‘블랙머니’에서 영어 대사를 현지인처럼 구사하더군요. 외국에서 생활한 적이 있나요. 

2008년에 연기를 하다가 벽에 부딪힌 느낌이 들었어요. 배우로 계속 먹고살려면 다 내려놓고 연기 트레이닝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어요. 그해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뉴욕으로 가서 1년 반 정도 연기 스튜디오를 다녔죠. 어떤 감독님은 그런 제 결정을 꾸짖으셨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쓸데없이 연기를 영어로 배웠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어요. 근데 연기는 다채로운 삶의 경험과 감정의 스펙트럼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뉴욕에 있는 동안 고생도 무진장 하고 속앓이도 많이 했지만 그 모든 경험과 영어로 연기를 열심히 배운 것이 다 저의 자산이 된 것 같아요. 

뉴욕에서 보낸 시간이 이번 영화를 찍을 때 도움이 됐나요. 

물론이죠. 영어 대사가 적지 않고, 김나리가 뉴욕에서 공부를 하고 온 설정이니까요. 또 제가 만난 한인들이 뉴욕에서 일했기 때문에 당시 미국 동부 사람들의 옷차림은 어땠는지, 에티켓은 어땠는지를 떠올리며 월가 특유의 스타일을 구현하는 데도 도움이 됐고요. 

영화 속에서 김나리는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는 학교 선배나 양민혁 검사와 가치관이 상충하는 상황에 직면하곤 해요. 이하늬 씨는 그런 문제를 어떻게 해소하는지 궁금해요. 

결국은 얼마나 유연하게 다른 사람의 생각을 포용하느냐가 관건인 것 같아요. 저는 정과 반이 모여 합이 만들어진다고 믿어요. 그래서 가치관이 달라 의견이 충돌할 때는 항상 정과 반의 조화를 생각해요. 누군가와 부딪힐 때도 “내 생각이 한쪽으로 치우쳤나? 너무 옹졸한가? 지금 굉장히 화가 나는데 내가 오버했나?”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요. 직업이 배우다 보니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았을까 싶어서요. 그렇게 제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기 힘들 때는 지인들에게 많은 조언을 구해요. 

‘극한직업’의 장 형사, ‘열혈사제’의 박경선 검사, ‘블랙머니’의 김나리 변호사 중에서 연기하기가 가장 편했던 캐릭터를 꼽는다면. 

‘장 형사’요. 힐도 안 신고 몸에 딱 붙는 옷을 안 입어도 돼서 몸도, 마음도 너무 편했어요. 평소에도 캐주얼한 차림을 즐기거든요. 의상팀에서 제 옷과 촬영용 의상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요. 저와 남자 형제처럼 지낸 (이)동휘나 (공)명에게 여배우의 고충을 알려줬어요. “너흰 더 열심히 해야 해. 나는 만날 발 꺾고 연기해” 하고요. 하하. 

원래 털털한 성격이군요. 

그런가 봐요. 그걸 털털하다고 표현하더라고요. 

2006년 미스코리아 진에 이어 2007년 세계 최고 미인을 뽑는 미스유니버스 선발대회에서 4위를 차지했어요. 지금도 변함없는 미모를 유지하고 있고요.
그 비결이 뭔가요.

몸과 정신에 모두 건강한 에너지를 불어넣으려고 노력해요. 좋은 에너지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도록 몸과 마음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제가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기록하기도 해요. 배우들은 폭발적인 힘을 써야 할 때가 있으니 근력을 강화하려고 운동을 빡세게 할 때도 있어요. 몸의 긴장과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요가로 심신을 완전히 이완시키기도 하고요. 또 지난 10년간 연예 활동을 하면서 발생한 문제는 시간을 끌지 않고 그때그때 풀었는데 제 무의식이 저항해 해결이 안 되는 부분들이 생기더라고요. 보이지 않는 그런 데미지가 눈처럼 쌓이다 보면 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러 ‘우지끈!’ 하는 순간이 와요. 평소 그런 데미지를 자꾸 청소해줘야 제가 좋아하는 일을 건강하게 오랫동안 할 수 있겠더라고요. 멘탈 관리를 하려면 무의식 중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면서 미처 몰랐던 내 안의 상처를 찾아 없애야 하는데 제 경험으로는 성경 통독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어요. 성경 통독을 하면서 멘탈이 정말 많이 건강해졌어요.

힘들 때 지침이 돼주는 인생의 나침반 같은 구절이 있나요.

몇 주 전 심정적으로 어려움이 있었어요. 본래 저 같으면 대수롭지 않게 넘길 일인데 털어지지가 않더라고요. 자족감 부족이 큰 문제였던 것 같아요. 그럴 땐 시편에 나오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구절을 떠올리면서 위안을 얻어요. 배우로서 저는 자족하는 삶을 지향해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스스로 먹고 싶은 걸 사 먹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면서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언젠가 인정받게 된다고 믿고 있고요. 배우는 대중에게 평가받는 직업인데 그 평가가 늘 좋을 순 없어요. 그 때문에 기쁜 날도 있고 억울한 순간도 있어요. 그런 감정에 초연하려고 오늘을 성실하게 살고 하루를 마감할 때는 제 자신을 크게 칭찬해줘요. 삶의 태도가 바뀌지 않았다면 저는 아마 불행하고 형편없는 사람이 됐을 거예요. ‘극한직업’이라는 선물도 받지 못했을 거고요.

예전에는 삶의 태도가 어땠는데요.

저를 많이 괴롭히는 스타일이었어요. 자학도 많이 하고, 제게 주어진 일을 잘하려고 지나치게 애쓰는 측면이 있었어요. 그런데 한도 초과한 1~2%의 애씀이 데미지가 돼 쌓이더라고요. 애쓰는 건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열심히는 하되 애는 쓰지 말자’ 주의예요.

그런 생각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지난 8월 발리로 요가 트레이닝을 갔을 때 깨달음처럼 제 마음에 크게 와 닿은 메시지가 ‘애쓰지 않기’예요, 왜냐면 제가 마음먹은 대로 안 되면 될 때까지 하는 스타일이었거든요. 그 때문에 팔이 부러질 정도로요. 그런 제 모습을 보고 요가 선생님이 푸하하 웃으시면서 “네가 어떻게 사는지 알겠다, 얘. 너 되게 애쓰면서 살지?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돼. 오늘 그렇게 애쓴다고 한 번에 안 돼. 그냥 할 수 있는 만큼 해. 오늘도, 내일도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 다 돼”라고 하셨는데 그 말이 큰 위로가 됐어요.


이하늬의 전성기는 이제부터
배우 생활을 건강하게 오래 하고 싶다는 의지가 강한 것 같아요. 

술 마시며 노는 에너지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연기에 쓸 에너지도 부족한걸요.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면 몰라도 놀기 위한 잉여 에너지는 없어요. 남는 게 있으면 다 작품에 쏟고 싶어요. 

작품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20대 때와 다를 듯해요. 

20대에는 빨리 뭔가를 이루려 하지 말자는 생각이 강했어요. 20대에 하는 다양한 경험이 배우로서의 삶에 자산이 될 거란 확신이 있었어요. 멀리 내다보고 오랫동안 이 일을 하기 위해 과감하게 뉴욕행을 선택했던 거고요. ‘20대가 1년밖에 안 남았는데 가긴 어딜 가?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인정받아야 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면 그런 결정을 하진 못했을 거예요. 출연 결정을 할 때도 작품 속 비중이나 캐릭터에 연연하지 않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생각했어요. 드라마가 안 들어올 때는 뮤지컬에 도전했어요. 매일 트레이닝하며 배우 훈련을 하기에 뮤지컬만 한 것이 없거든요. 뮤지컬을 무척 좋아하기도 하고요. 그 모든 경험이 제 연기 생활에 자양분이 되는 것 같아요. 심지어 국악을 전공하고, 미스코리아로 활동한 경험도요. 지금도 저는 많은 가능성을 열어놓고 살아요. 좀 더 다양한 경험을 쌓기 위해 틀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해요. 

해외 진출에 뜻을 두고 있는 걸로 알아요. 글로벌 활동을 꿈꾸게 된 계기가 있나요. 

네 살 때부터 국악을 하고 한국 음악을 하는 어머니(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 산조 및 병창 보유자 문재숙 명인) 밑에서 자라다 보니 한국의 전통문화를 이어가는 인간문화재 선생님들의 여운을 받아 가야금이나 소리를 내려놓을 수 없었어요. 배우가 된 뒤에도 한국음악과 한국 문화를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고요. 제가 미스코리아 출신이라 ‘한국의 미’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아요. 2007년 한국 대표로 미스유니버스 선발대회에 나갔을 때도 ‘나는 한국의 어떤 미를 이야기해야 할까’라는 고민을 했어요. 그런 족적들이 글로벌 시장에 대한 안테나를 켜게 한 원동력인 것 같아요. 우리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갖다 보면 세계에 소개하고 싶은 것들이 정말 많아요. 앞으로 제가 그런 역할을 하는 매개체가 되면 좋겠어요. 

구체적인 글로벌 활동 계획과 바람이 있다면요. 

할리우드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를 연출한 마이크 피기스 감독과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에요. 그분이 한국으로 올 수도 있고 제가 발리우드나 아프리카로 갈 수도 있어요. 그리고 이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글로벌 활동을 모색할 거예요. 미국에서 함께 일할 에이전시와 매니저는 찾았는데 구체적인 작업 스케줄을 아직 잡지 못한 상태예요. 한국 작업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어서 그동안 스케줄 협의를 미뤘거든요. 한국 사람이니 비단 한국 작품에만 출연하는 시기는 지났다고 생각해요. K팝 열풍으로 한국 가요가 글로벌화한 것처럼, 배우들도 이제는 한국 문화와 한국 언어를 가지고 해외에서 연기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길 바랍니다.


디자인 김영화 사진제공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여성동아 2019년 12월 6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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