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EOPLE

데뷔작으로 아카데미 후보된 셀린 송

문영훈 기자

2024. 02. 27

아카데미 작품상·각본상 후보에 오른 ‘패스트 라이브즈’가 한국 관객을 만나기 전 셀린 송 감독을 화상으로 만났다. 셀린 송 감독은 ”믿기 힘든 영광“이라며 ”첫 영화에 이런 반응을 얻게 돼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셀린 송(36) 감독은 데뷔작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1월 23일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가 제96회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셀린 송은 각본상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여성 감독의 데뷔작이 작품상 후보에 오른 것은 1986년 랜다 헤인즈 감독의 ‘작은 신의 아이들’ 이후 두 번째다. 2020년 ‘기생충’, 2021년 ‘미나리’에 이어 한국계 감독이 만든 영화가 오스카 작품상 후보에 오른 것은 세 번째다. 3월 6일 한국 개봉을 앞두고 송 감독을 화상으로 만났다.

‘인연’을 거슬러

‘패스트 라이브즈’의 오프닝은 세 사람이 바에서 술을 마시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나영’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엔 미국인 남편 ‘아서’가, 왼쪽에는 24년 만에 만난 친구 ‘해성’이 앉아 있다. 나영과 해성은 어릴 적 서로의 첫사랑이었지만 나영이 서울에서 캐나다로 이민 오면서 멀어졌다. 그리고 12년 후 나영과 해성은 스카이프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지만 물리적인 거리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리고 또다시 12년 후 해성이 나영을 만나기 위해 미국 뉴욕으로 날아온다. 영화는 세 남녀의 관계를 세밀하게 포착한다.

송 감독은 영화의 첫 장면을 자신의 경험에서 만들었다. 어릴 적 캐나다로 이민 온 그는 뉴욕에서 남편과 한국으로부터 온 친구와 함께 술을 마셨다. 송 감독은 “친구는 저의 과거만 아는 사람이고 남편은 제가 어른일 때만 아는 사람”이라며 “둘 사이에서 언어와 문화 차이를 통역할 뿐만 아니라 내 과거와 현재라는 개인적 역사를 해석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국어로 ‘인연’이라는 말이 있어. 섭리, 운명 이런 뜻이야.”
극 중 나영은 아서에게 이렇게 말한다. 송 감독은 인연(因緣)이라는 단어로 나영과 해성, 혹은 아서를 포함한 셋의 관계를 해석한다. 인연은 불교 용어로 원인과 그 원인을 발생하게 하는 조건을 의미한다. ‘타생지연(他生之緣)’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옷깃만 스치는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전생의 깊은 인연에서 비롯됐다는 말이다. 우리에게 인연이라는 단어는 친숙하지만 영화가 앞서 개봉한 서구권에선 특정 단어로 번역하기 어려운 말이기도 하다. 송 감독은 먼저 관객들을 만난 외국에서 인연이라는 단어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점을 신기하고 인상적인 경험으로 소개했다.

“관객들은 영화를 통해 인연이라는 단어를 알게 됐지만 모두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해줬어요.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악센트로 발음되는 ‘인연(in-yun)’을 들었습니다. 많은 관객이 인연이라는 단어를 이해하고 느끼는 모습을 보면 정말 행복합니다. 감동적이었습니다.”



한국계 이민자들의 세계

‘패스트 라이브즈’는 3월 6일 한국 관객을 만난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3월 6일 한국 관객을 만난다.

”누구나 어딘가에 두고 오는 삶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영화의 주인공은 한국 서울에서 미국 뉴욕이라는, 태평양을 건너는 정도로 멀리 오지만 누군가는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사 갈 수도 있잖아요.“

열두 살 시절 캐나다로 이민 간 셀린 송 감독은 퀸스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송 감독은 이민의 경험에 대해, “언어나 문화에 있어서 다양한 걸 쉽게 받아들이게 됐다”며 “‘너는 누구니?’라고 물으면 다양한 대답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민자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그의 아티스트 여정과 함께했다. 캐나다에서 대학을 졸업한 송 감독은 극작가가 되기 위해 뉴욕으로 이주했다. 그리고 2020년 오프브로드웨이 공연 ‘엔들링스(Endlings)’의 각본을 썼다. 극작가로서 자신의 이민자 정체성을 고민하는 ‘하영’과 만재도의 해녀 이야기가 연결돼 있다. ‘패스트 라이브즈’의 주인공 나영(영어 이름 ‘노라’) 역시 작가로 등장한다. 송 감독은 “노라는 저로부터 출발했지만 시나리오로 만들어지고, 배우가 연기를 하고, 제작진과 함께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객관화됐다”며 “영화 속에서 그 캐릭터로 살아가는 과정이 로맨틱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계 이민자가 만든 자전적 이야기가 할리우드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시작은 3년 전 윤여정 배우에게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트로피를 안겼던 영화 ‘미나리’였다. 올해 골든글로브상과 에미상을 휩쓴 ‘성난 사람들(비프)’도 한국계 미국인으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한국계 미국인 배우 스티븐 연이 두 작품에서 호연했다면, ‘패스트 라이브즈’에는 그레타 리와 유태오 배우가 등장한다. 인터뷰에서 셀린 송은 자신을 발전시킨 캐릭터 나영을 연기한 그레타 리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레타 리 역시 한국계 미국인으로 넷플릭스 시리즈 ‘러시아 인형처럼’에 출연해 한국인 시청자들에게도 익숙하다. 송 감독은 그레타 리를 정말 좋은 배우라고 말하며 “첫 영화다 보니 매일매일 두려움을 이겨내야 했는데 그럴 때마다 그레타가 좋은 파트너가 돼줬다”며 “그래서 전생에 우리는 부부가 아닐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유태오 역시 이주의 경험을 가진 배우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아들인 그는 독일 쾰른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쳤다. 한국에서 배우 활동을 하던 그는 주연으로 출연한 러시아 영화 ‘레토’가 칸영화제에 진출하며 국내에서도 주목받게 된다. 송 감독은 “오디션 테이프를 본 뒤에 줌으로 만나서 3시간 30분 정도 대화하며 서로 나영과 해성의 대사를 주고받기도 했다”면서 “‘유태오 배우가 해성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순간에 대화를 마무리했다”고 섭외 과정을 회고했다.

셀린 송 감독의 아버지는 송능한 감독으로 1997년 ‘넘버 3’로 데뷔해 이창동 감독과 함께 1990년대 말 주목받는 감독으로 꼽혔다. 그는 1999년 영화 ‘세기말’을 차기작으로 낸 후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다. 송 감독은 “아카데미상 후보 지명에 아버지를 비롯한 온 가족이 정말로 기뻐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송 감독은 데뷔작으로 감독들의 감독에게도 극찬을 받았다. 기예르모 델 토로는 “지난 20년간 최고의 데뷔작”이라고 말했고, 크리스토퍼 놀란은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본 작품 중 가장 좋은 작품으로 ‘애프터썬’과 함께 ‘패스트 라이브즈’를 꼽았다. 그의 놀라운 데뷔작은 3월 6일 한국 관객을 만난다.

“한국 관객에게 (제 영화를) 보여드리는 게 정말 떨리고 긴장됩니다. 한국에 가서 직접 관객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셀린송 #패스트라이브즈 #아카데미상 #여성동아

사진 Matthew Dunivan 
사진제공 CJENM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