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끝나는 시각을 체크해 예비 신랑에게 전하는 서동주에게 “왜 같이 오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집에서 반려동물들을 돌보느라 못 왔다. 내가 언제 끝나는지 궁금해한다”고 답했다. 신혼집에서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특별할 것 없는 하루가 서동주에게는 소중하다. 서동주는 알려졌다시피 고(故) 서세원과 방송인 서정희의 딸로 살며 많은 일을 겪어왔다. 유명인의 딸이 아닌 서동주로서의 삶도 스펙터클했다. 중학교 1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미술, 순수수학, 마케팅, 법학 등 전공을 옮기며 “보수가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이유로 201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변호사가 됐다. 2020년 한국으로 건너온 서동주는 방송 활동과 미국 변호사 일을 겸하며 종종 강단에도 서고 있다.
여전히 다양한 일을 하며 촘촘한 삶을 살고 있지만, 이제는 바싹 더 당기기보단 좀 느슨하게 오늘의 행복을 충분히 느끼고 싶다고 말한다. 요즘 그는 웃을 일이 많다. 몇 해 전 유방암 수술을 받은 엄마 서정희도 건강을 되찾고 건축가 김태현 씨를 만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무엇보다 서동주의 곁에는 든든한 예비 신랑이 늘 함께한다. 이미 ‘신랑’이란 호칭도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다. 현재 그는 다시 찾은 사랑과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을 자신의 유튜브 채널 ‘동동주주’에 꼼꼼히 기록 중이다.
구옥 경매로 낙찰받아 리모델링한 신혼집
이제 모든 준비를 거의 마쳤겠어요.거의 마쳤다가 다시 리셋됐어요. 원래 야외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정한 날짜가 하필 장마 한가운데에 껴서 부랴부랴 실내 예식장으로 옮겼어요. 제가 자유로운 영혼이라 하우스 웨딩 느낌으로 밴드도 부르고 재미있게 하고 싶었거든요. 식장이 바뀌다 보니 모든 것을 다시 정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초록 정원에 맞춰 골라놨던 드레스도 화이트 톤의 예식장에 맞춰 다시 골라야 하고요.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요.
결혼 준비하면서 예비 신랑과 의견이 엇갈린 적은 없나요.
이번에 알게 됐는데, 제가 결정하는 걸 좋아하는 타입이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신랑이 의견을 많이 내되 최종적으로는 제 마음대로 하라고 존중해줬어요. 그러다 보니 정해진 예산에서 뭐가 최선인지만 따져보고 결정하면 되니까 싸울 일이 별로 없었어요.
경매를 통해 서울 창동의 한 구옥을 낙찰받았다고요.
많은 분이 제가 부자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거든요. 어렸을 때 경제적 독립을 했기 때문에 그동안 모은 돈으로 어떻게든 집을 마련해야 했어요. 그런 저한테 경매는 매우 효율적인 옵션이었죠. 경매 방법을 알려주는 학원에 다니며 주말에는 임장 데이트를 했어요. 집을 경매로 낙찰받는다면 그 동네에서 실제로 살 생각이니까 직접 가서 맛집 들러 밥도 먹어보고, 강아지 산책도 시켜보고 그랬어요. 그 과정이 재미있더라고요.
오래된 주택이라 수리와 인테리어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정말 고생했어요. 지어진 지 49년 된 단독주택이라 여러 허가받는 기간까지 합쳐 거의 반년 동안 인테리어 공사를 했어요.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보면 ‘짜잔! 이랬는데 이렇게 변했습니다~’ 이런 영상이 많잖아요. 쉬운 줄 알고 덤볐다가 실제로 해보니 엄청 고생스럽더라고요. 결혼 준비만 해도 결정해야 하는 게 수백 가지인데, 집 공사는 결정할 것이 더 많아요. 그런 세세한 결정을 하는 데 에너지를 많이 쏟았죠.

엄마가 인테리어 감각이 좋으니까 아예 공사를 맡기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내 스타일로 꾸며보고 싶더라고요. 아무래도 우리보다 훨씬 지식이 많은 분들이랑 일을 하게 되면 그분들의 의견을 따르게 되잖아요. 나랑 신랑이 살 집이니까 우리 의견을 최대한 반영한 집을 만들어보고 싶어서 직접 업체를 알아보고 진행했어요. 그런데 공사를 하다 보면 이런저런 이슈가 생기잖아요. 우리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일 때는 엄마와 아저씨한테 아이디어 좀 달라고 SOS를 쳤어요. 아이디어를 무료로 제공해주셔서 감사하죠(웃음).
SNS를 보니 각각 턱시도와 드레스 고르는 날 서로 이벤트를 해줬더라고요.
남자도 여자가 웨딩드레스 고르는 것만큼 어렵고 설레는 일이잖아요. 뭔가 서프라이즈로 이벤트를 해주면 행복해하지 않을까 싶어서 꽃다발을 준비했죠. 그랬더니 드레스 고르는 날 신랑이 그런 준비를 해올 줄 몰랐어요. 저는 눈치가 꽝이라 프러포즈를 받은 날에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거든요. 드레스를 입은 후 신랑에게 보여주려고 나왔더니 자기 눈에 하트 종이를 붙이고 있는 거예요. 드레스 입고 나올 때마다 스케치북에 메시지가 바뀌고, 제가 너무 예뻐 눈부시다면서 선글라스를 끼고 있고, 진짜 행복했어요.
두 분 다 원래 표현을 잘하는 성격인가요.
신랑은 좀 섬세하고, 표현하려고 노력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저도 그런 모습을 보고 배워서 요즘에는 표현을 더 많이 하려고 노력해요. 둘이 싸워도 “야!”라고 언성 높이지 않고, 기분 나쁘다는 표현을 해도 손잡고 “자기야 내가 화가 난다”라고 조곤조곤 전달하고 그래요.
웨딩드레스 고르는 영상에 악플이 달렸더라고요. 속상했겠어요.
그날은 진짜 고른다기보단 여러 가지 입어보면서 어떤 스타일이 어울리는지 테스트를 해본 거예요. 그래서 영상도 친구가 편하게 찍은 건데, 조명이 노랗다 보니 흰 드레스도 약간 노랗게 보이더라고요. 그걸 보고 사람들이 “노란 드레스라 안 예쁘다”부터 시작해 좀 심한 말들이 많아 속상한 부분이 있었죠.
그 속상한 마음을 참지 않고 악플을 박제해 올린 게시물을 보며 내심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고민이 많았어요. 속상하지만 충분히 그냥 넘어갈 수 있거든요. 왜냐면 제가 방송하면서 악플을 많이 받아봤기 때문에 이번에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이렇게 짚고 가면 다음에는 이분들도 조금은 조심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굳이 제 개인 SNS까지 찾아와서 의미 있는 영상에 욕하고 갈 필요는 없잖아요. 저는 살면서 한 번도 누군가에게 악플을 달아본 적이 없어서 그런 사람들의 심리를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왜 그럴까요.

“T와 F의 대화법…서로 바꿔 말해요”
아무래도 두 분 다 연예계에 발을 담고 있어서 주변의 시선이 더 신경 쓰일 수 있었을 텐데요. 어떻게 연애를 시작하게 됐나요.안 그래도 초반에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친구처럼, 누나와 동생 사이로 지낸 시간이 꽤 길었어요. “우리 사귀자” 이런 말 없이 만나오다가 잠깐 안 만난 시기가 있었어요. 이 사람이랑 안 본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슬프더라고요. 마흔이 넘으면 엄청 슬픈 일도, 설레는 일도, 막 화나는 일도 없고 그렇잖아요. 그런데 ‘내가 이 나이에 이만큼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슬퍼하고 있다면 그건 소중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이런 사람을 다시는 못 만나겠단 생각을 했는데, 신랑도 저에 대해 똑같이 생각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아무도 우리 사이를 반대하질 않았는데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울면서 헤어졌다가 울면서 다시 만나고 그랬어요. 하하.
네 살이란 나이 차이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나요.
신랑은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상관없었어요. 워낙 제가 서구권에서 오래 공부하다 왔기 때문에요. 거기선 나이를 잘 안 물어보잖아요. 연봉, 능력, 외모 이런 부분보단 서로의 가치관과 취향이 얼마나 일치하는지가 중요하죠. 나이는 괜찮았어요. 연하라 좋죠(웃음).
연애와 결혼은 또 다르잖아요. 이 사람과 결혼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나요.
딱히 결혼을 결심한 계기가 있진 않아요. 다만 신랑은 한결같이 다정다감한 사람이에요. 같이 있으면 정말 안정감을 느껴요. 저나 신랑이나 서로 다른 세상을 40년 가까이 살다가 우리의 세상이 이렇게 만난 거잖아요. 그런데도 신랑과 있으면 ‘이렇게 서로 어우러져서 새롭게 만들어나가는 것들이 잘 유지되겠구나’ 그런 확신이 들더라고요. 신랑은 감정의 기복이 좀 있는 저와 달리 기복도 없고, 동물을 사랑해서 우리 아가들도 굉장히 예뻐해요. 그런 말이 있잖아요. 좋아하는 거 100개 해주는 것보다, 싫어하는 일 한두 번 안 하는 게 진짜 사랑이라고요. 이 사람은 제가 싫어하는 일은 절대로 안 해요. 그것도 억지로 안 하는 게 아니라 원래 안 하던 사람이에요. 다양한 면에서 거슬리는 부분이 없으면서 일치하는 면은 많아 좋아요.
엄마와 외할머니에게 결혼 이야기를 했을 때 어떤 반응이던가요.
처음에는 저 스스로가 결혼에 대해 걱정을 많이 했어요. ‘혼자 살아도 괜찮은데, 지금도 충분히 잘 살고 있는데 괜찮을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남자 친구를 만나고 둘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이니까,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면 좋겠다고 두 분이 많이 얘기해주셨어요. 워낙 신랑이 엄마와 외할머니에게 잘해요. 특히 할머니한테 진짜 잘해요. 안부 전화도 자주 하고, 제가 출장 가고 없을 때 할머니한테 가서 같이 밥 먹고 오고 그래요. 우리끼리 맛있는 음식을 먹다가도 “여기 나중에 할머니 모시고 오면 좋아하실 것 같다. 다음에 같이 오자”는 말을 자주 해요. “이건 어머님이 좋아하겠다” “이건 아저씨가 좋아하겠다” 등 자기 나름대로 엄마와 아저씨, 할머니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카테고리를 정해놨나 봐요. 그런 얘기를 자주 하니까 저도 어머님은 뭘 좋아하시는지, 혼자 계시니까 외롭진 않으신지 걱정하게 되고 서로 챙기게 되는 듯해요.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 정해놓은 규칙이 있나요.
서로라기보단 일단 저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두 번째는 잔소리하지 않기. 제가 잘못하고 실수하는 건 잘 안 보이지만, 신랑이 양말을 아무 곳에 둔다거나 사용한 물건이 제자리에 있지 않으면 눈에 거슬려요. 그래서 하나 발견할 때마다 말하고 싶은데, 속으로 ‘신랑도 나한테 10가지는 참고 말 안 했겠지’ 생각하면 화가 안 나요. ‘나는 더 많은 잘못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만 잘하면 된다. 그러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집을 리모델링하고 살림을 일찍 합치면서 예행연습이 됐겠어요.
맞아요. 처음 같이 지내기 시작했을 때는 매일매일 밤마다 대화의 장을 열었어요. 서로 생각하는 게 너무 다른 거예요. 말투도 다르고요. 저는 MBTI가 ‘T’이고 신랑은 ‘F’예요. 굉장히 섬세한 언어를 쓰는 사람과 직접적인 언어를 쓰는 저는 부딪힐 수밖에 없죠. 그래서 칭찬을 하건 불평을 하건 최대한 상대방의 언어로 표현하려는 노력을 하자고 합의를 봤어요. 신랑이 F지만 T처럼 저한테 얘기해주면 제가 이해가 잘돼요. 저도 신랑에게 F처럼 부드럽게 얘기하고 늘 칭찬해주면서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
두 분이 꿈꾸는 미래에 아이도 있나요.
아이가 생긴다면 정말 감사한 일이고 축복이죠. 노력은 해볼 건데, 제가 나이가 있다 보니 아무리 과학이 발달했다 하더라도 제 마음대로 되는 일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결혼하고 노력해보다가 안 되면 둘이 잘 살자고 합의했어요. 어머님도 “병원 다니면서 시도해보는 건 좋은데 만약 너무 힘들면 하지 말아라. 네 건강이 우선이다. 둘이 예쁘게 잘 사는 게 좋다”고 얘기해주세요. 더 푸시할 수도 있는 부분인데 저를 배려해주시는 마음이 감사하죠.

예전에 난자를 ‘드래곤볼’ 모으듯이 몇 개 모아놨어요(웃음). 신혼여행 다녀와서 시도를 해보려고요. 좋은 결과가 있든 아니든 마음먹기에 달린 것 같아요. 난자 채취할 때도 정말 힘들었어요. 그런데 제가 마음가짐을 고쳐먹으니까 좀 덜 힘들더라고요. 예전과 달리 과학의 발달로 기회가 생긴 거잖아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면서 아이 갖는 시도를 하는 건데 당연히 과정이 힘들고 아픈 게 아닐까’ 생각하니 위대한 일에는 고통이 따르고, 이 정도는 사실 큰 고통도 아니란 결론에 도달했어요.
힘든 상황을 이겨내는 그런 마인드가 지금의 동주 씨를 만든 것 같아요. 좋은 일이 올 때도, 나쁜 일이 생길 때도 한꺼번에 몰려오는 ‘몰빵형’ 삶을 살며 배운 점이 있다면요.
제 인생이 몰빵형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을 때 늘 안 좋은 일도 같이 일어나고 있었어요. 제가 말은 안 했지만 지금도 안 좋은 일들은 있어요. 그런데 반대로 안 좋은 일들이 일어날 때 가만 보면 좋은 일들도 생기고 있어요. 부피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 지나가면 괜찮고 서로 밸런스가 맞더라고요. 그러니까 슬픈 일이 일어나면 기쁜 일이 분명 다음에 일어날 거고, 내 분수에 맞지 않는 기쁜 일이 있다면 다음에는 ‘아, 힘들다’ 싶은 일이 일어날 수 있어요. 그래서 최대한 어떤 일이든 흔들리지 않고 현재에 최선을 다하며 살려고 노력해요. 살면서 오늘 당장 사고가 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한다 말하고 고마우면 고맙다, 속상하면 속상하다 말하며 살고 싶어요.

서동주의 예비 신랑은 방송인 장성규의 소속사 이사로 알려졌다.
“지금의 행복에 집중하고 싶어요”
마음이 단단한 사람 같아요.많이 단단해졌죠. 어렸을 때는 화가 나면 별것 아닌 일에도 죽을 듯이 아파하고 울고 소리지르고 그런 적이 많았어요. 제가 한 성깔 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내 감정 정도는 컨트롤할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속은 힘들어도 겉은 좀 정제시킬 수 있잖아요.
새로운 인생의 출발선에 서 있는데, 앞으로 달라지는 부분이 많을까요.
제가 최근에 생각해본 건데요. 저는 그래도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정말 행복해요. 진짜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니까 ‘그동안 내가 행복을 잘 모르고 살았나 보다’ 싶어요. 예전에는 어떻게든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며 살았거든요. 이제는 막 앞서서 미래를 설계하기보다는 언제 다시 누릴지 모를 지금의 행복에 집중하면서 현재를 좀 더 즐기려고 해요. 그러다 보니 오히려 더 좋은 일도 많이 생기는 것 같고요. 일적으로는 지금 거의 마무리 중인 자기 계발서가 올여름쯤 나올 듯해요. 또 개인 전시 제안이 몇 군데서 들어와 얘기 나누고 있어요. 내년 여름 정도에는 그림을 보여드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방송이나 변호사 일은 늘 하는 거니까 계속 열심히 하고요.
변호사 업무가 무척 바쁠 것 같은데요.
현재 스타트업에서 법률 자문 이사로 일하고 있어요. 제가 미국 캘리포니아 변호사이기 때문에 한국 서류는 볼 수 없고 미국 관련된 서류만 검토하고 있어요. 이 일을 비롯해 다양한 업무는 제 삶을 길게 보니까 할 수 있는 거예요. 작심삼일도 1000번 하면 작심삼일이 아닌 게 되잖아요. 3일마다 쉬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거죠. 미술을 예로 들면 제가 MIT에 편입했을 때 주변에서 미술을 관둔 게 아니냐고 했지만, 지금까지 하고 있고 전시 얘기도 나와요. 변호사도 제가 한국으로 돌아올 때 관두는 거 아니냐고 했는데 여전히 하고 있어요. 저는 뭐든지 한번 시작하면 쉬는 적은 있어도 꾸준히 끝까지 하긴 해요(웃음).
예전 소속사와의 계약이 끝난 타이밍이 절묘한데, 앞으로 남편과 함께 일하는 건가요.
그건 아니에요. 저는 한 번도 사내 연애를 해본 적이 없어요. 제가 일할 때 굉장히 날카롭고 직설적인 면이 많아서, 집에 가면 일할 때의 모드를 끄고 시작하거든요. 그런데 신랑과 같이 일을 하면, 집에서와 다른 제 모습을 보고 ‘지킬 박사와 하이드’로 생각할까 봐 같이 일하고 싶지 않아요. 대신 신랑은 제가 물어보면 많은 조언을 해줘요. 지금은 강의, 변호사, 책 등 방송보단 다른 할 일이 많은데 당분간 혼자 해보려고요. 오늘도 그렇고 같이 일하던 매니저가 도와줘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많은 신부가 결혼식 날 울잖아요. 동주 씨는 어떨 것 같나요.
상상이 잘 안 가요. 지난번에 ‘건축탐구 집’이란 방송을 찍었는데, 신랑이 저한테 떡볶이 해주는 장면을 촬영할 때였어요. 감독님이 서로 눈을 바라보라고 하는데 갑자기 울컥하면서 눈물이 핑 도는 거예요. 제가 눈물이 많은 사람이 아니거든요. 진짜 깜짝 놀랐어요. 어쩌면 결혼식 날에도 눈물이 날지 몰라요.
만약 눈물이 난다면 그 눈물은 어떤 의미의 눈물일까요.
행복해서, 저랑 결혼해준 게 고마워서 나는 눈물일 거예요. 솔직히 신랑은 성격이 좋아서 누구를 만났어도 그냥 행복하게 살았을 것 같아요. 저는 신랑을 만나서 진짜 행복하거든요. 제가 이 얘길 했더니 신랑이 저한테 “동주야, 나는 너랑 만났을 때가 제일 행복해”라고 말해주더라고요. 결혼식 날도 눈을 마주 보면 눈물이 날 수 있으니까 조심해야겠어요. 안 울고 싶어요. 행복한 날이니까.
#서동주 #서정희 #결혼 #여성동아
사진 홍태식 사진제공 서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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