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객관적 지표들을 통해 현재 한국 미식의 정점에 서 있다 할 수 있는 밍글스는 한식 파인 다이닝이다. 한국적 색채를 기반으로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넘나드는 창조적인 메뉴를 선보인다. 특히 장에 관심이 많은 강민구 셰프는 얼마 전 한식과 우리 장의 가치를 알리는 책 ‘장’을 선보였다. ‘장’은 그에게 책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음식 콘텐츠 제작자 나디아 조, 음식평론가 겸 작가 조슈아 데이비드 스타인과 4년여에 걸쳐 공동 집필한 노력의 산물이다. 지난해 ‘Jang: The Soul of Korean Cooking’이란 제목으로 영문판을 먼저 선보였고, 이번에 한글 번역본으로 출간했다. 영문판은 지난해 ‘뉴욕타임스’ 선정 ‘2024 최고의 쿡북’에 이름을 올렸으며, 최근 미식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제임스 비어드 어워드’에서 ‘올해의 쿡북’ 후보에도 올랐다.
강민구 셰프는 밍글스 외에도 한국에서 식료품점 ‘마마리마켓’과 한식당 ‘마마리다이닝’을, 홍콩에서 전통 한식 반상 차림의 ‘한식구’와 프랑스 파리에서 한식 닭 요리 전문 ‘세토파’를 운영한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강민구 셰프와 서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강민구 셰프는 출장길에 답변을 보내왔다.
좋은 소식들이 연이어 전해진 후 생긴 변화가 있나요.
미쉐린 3스타는 언젠가 내 생에 이루고 싶은 꿈이라 생각했지만, 올해 이런 일이 일어날지 몰랐어요. 솔직히 아직도 믿기지 않아요. 기쁨보다는 감사함이 컸고, 동시에 부담도 따랐습니다. 확실히 많은 분의 관심이 집중됐고, 미디어 인터뷰 요청도 굉장히 많이 받았거든요. 하지만 밍글스의 본질은 변하지 않기에, 언제나처럼 손님 한 분 한 분에게 최선을 다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밍글스를 응원해준 분들과 손님, 가족, 수고한 모든 팀원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고, 이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첫째는 요리나 식당 일에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친구들과 ‘미쉐린 가이드’ 이야기도 하는 것 같더라고요. 둘째는 아직 초등학교 2학년이에요. “우리 아빠가 3스타”라고 이야기는 하지만 제가 보기에 실제로 3스타가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밍글스 외 여러 업장 업무도 해야 하는데, 시간을 어떻게 나눠 쓰나요.
밍글스 서비스 시간에는 항상 레스토랑에 있기 때문에 루틴이 일정한 편이에요. 서비스 시간에는 항상 주방에서 함께하고 그 외의 시간을 잘 활용하려고 해요. 주로 오전엔 운동이나 미팅을 하고요. 브레이크타임에 다른 곳으로 이동할 일이 생기면 전화로 미팅하면서 시간을 아낍니다. 내부 팀과의 중요한 미팅은 밍글스 영업을 마치고 좋아하는 와인을 마시면서 하기도 하고, 해외에 근무 중인 셰프들과는 화상 미팅과 전화를 수시로 해요. 출장이 많아 비행기에서도 일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장과 사랑에 빠진 미쉐린 3스타
밍글스라는 이름에는 ‘서로 다른 것의 조화’라는 뜻이 담겼다. 경기대 외식조리학과를 나온 강민구 셰프는 23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마이애미 리츠칼튼 호텔 주방에서 일했다. 2010년 세계적인 일식당 노부(Nobu)의 미국 마이애미점에 입사해 바하마지점 총괄 셰프를 거쳐 2014년 밍글스를 열었다. 바하마에서 개발한 된장 푸아그라, 고추장으로 맛을 낸 생선구이 등 해외에서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정작 한식의 본고장 한국에 와서는 고민에 빠졌다. 한식을 더 깊게 알 필요가 있었다. 결국 스승을 찾아 기초인 장부터 다시 공부했다.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에서 ‘아시아 최고 여성 셰프’로 선정된 바 있는 조희숙 셰프와 넷플릭스 ‘셰프의 테이블’에 출연해 한국 사찰 음식을 널리 알린 정관 스님이 그의 스승이다.강민구 셰프는 “장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라고 표현한 이번 책을 준비하면서 전북 순창과 고창, 충북 보은 등 전국의 장 명인들을 찾아다녔다. 다양한 장맛을 보면서 장도 와인처럼 발효하는 방식과 장소가 맛에 많은 영향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밍글스 주방에 붙어 있는 ‘신속·정확’을 지키며 빠른 속도로 살아온 강민구 셰프가 숙성의 시간이 필요한 장에 빠진 건 운명과도 같다. 그렇기에 ‘장’ 책에서는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한식 요리사로서의 책임감과 그간의 고민을 매듭짓는 명쾌함이 느껴진다. 그는 “밍글스를 연 후로 ‘한국 음식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고민이 머리에서 떠난 적이 없었다”며 “다양한 장의 개성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추자 내 요리 방식은 더함의 개념에서 좀 더 한국적인, 정확히는 불교에 가까운 덜어냄의 개념으로 바뀌기 시작했다”고 털어놓았다.
외국인에게 낯선 장에 관한 책을 영문판으로 먼저 출간한 이유가 있나요.
장이 외국인들에게는 아직 어려운 존재라 생각해요. 그럼에도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는 코로나19를 거치면서예요. 그 기간에 레스토랑 문을 열어도 손님을 많이 받지 못하고, 해외 손님들도 오지 못하니 한식에 관한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밍글스 책이 아닌 한식에 대한 요리책이요. 이왕이면 ‘내가 장으로 여러 시도를 하니까 장을 주제로 써야겠다’ 싶었습니다.
책을 보니 취재부터 레시피, 글, 편집 등 손이 참 많이 가는 작업이었겠더라고요.
외국 저자와 매주 월요일 1시간 30분씩 미팅을 했어요. 책 관련해 한국 팀에 프로젝트 매니저와 메뉴 개발 셰프가 있었고, 해외 팀 조슈아와 나디아까지 꾸준하게 모두가 귀한 시간을 투자했죠. 이 책의 목적인 한국 음식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이자 맛을 내는 핵심인 장을 잘 소개하기 위해서요. 외국인의 눈높이에서도 어렵지 않게 전달하고 싶었어요. 또 신경 쓴 부분은 레시피였어요. 레시피의 정확성을 위해 수십 번 테이스팅하고, 현지의 레시피 테스터와도 긴밀하게 소통했어요. 한국 요리뿐 아니라 해외에서 그들의 요리에도 장을 활용할 수 있잖아요. 장의 확장 가능성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한국 발효 음식의 매력은 뭔가요.
한국 음식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자 큰 특징은 채소를 발효한 요소가 많다는 거예요. 사찰 음식을 보면 채소만 이용해 요리해야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주재료인 채소를 다양하게 연구하고 여러 조리법을 발전시킬 수밖에 없었죠. 그런 제약을 통해 오히려 채소의 매력을 끌어올리게 됐어요. 예를 들어 처음에는 저장을 목적으로 했다가 채소가 발효되면서 더 새롭고 맛있는 맛이 발견된 거죠. 저는 김치, 장아찌, 장 모두 한국 음식에서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요리할 때 좋은 장을 잘 활용하면 복잡한 기술의 사용을 줄일 수 있어요.

1 된장 넣은 크렘브륄레에 간장으로 캐러멜라이징한 피칸을 얹고, 고추장 물에 삶아 튀겨낸 흑미 튀밥과 바닐라아이스크림을 곁들인 장 트리오. 2 강민구 셰프가 좋아하는 밍글 팟. 3 식당의 수익은 테이블 수와 회전율에서 결정 난다. 하지만 강민구 셰프는 7년 전 현재 자리로 이전하면서 오히려 테이블 수를 줄였다. 서비스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모든 요리에 비싼 장을 쓸 필요는 없고, 시판 장을 쓰는 편이 나을 때도 있어요. 간장을 예로 들면, 간장은 용도에 맞게 사용하는 게 중요해요. 한식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가정에도 간장이 최소 3가지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판 한식간장(국간장)은 주로 국물 요리에 사용하고, 양조간장은 조림이나 볶음 등 다양한 요리에 사용해요. 조선간장, 재래간장이라고도 부르는 오래된 한식간장은 장인들이 전통 방식을 따라 만듭니다. 장맛이 깊어 특별한 요리에 사용하는 게 좋아요. 샐러드의 마지막 터치나 귀한 나물의 마지막 간을 할 때 넣어보세요.
장을 활용한 다양한 시도를 오래전부터 해오고 있어요. 밍글스에서 첫 성공작은 무엇인가요.
장 트리오예요. 밍글스 오픈 때부터 지금까지 사랑받는 시그니처 메뉴죠. 주방이 작아 디저트 주방이 따로 없고, 디저트 셰프도 없을 때 만들었어요. ‘요리에 활용하는 장을 디저트에 쓴다면 보통 디저트와는 다른 접근이 되지 않을까’ 해서 탄생하게 됐죠. 장은 서양 요리와 놀랍도록 잘 어울려요. 발사믹식초, 올리브유, 파르메산 치즈 등 이탤리언 재료가 특히 장과 페어링하기 좋아요.
한국인과 외국인에게 색다르면서 맛있는 한식의 기준이 서로 좀 다르지 않나요. 밍글스에서 내는 한식들은 변주의 정도를 어느 기준에 맞추나요.
밍글스는 좀 더 자유롭게 하고 싶은 창작 요리를 해요. 물론 한식의 맛을 이해하고 존중하려 노력하고요. 그래서 한식에 뿌리를 두되 오늘날의 기술과 감성을 곁들여 밍글스만의 한식을 표현하고 있어요. 단, 홍콩의 한식구는 해외에서 열었기 때문에 보다 한식 본연에 가깝게 표현하려 합니다. 우리에겐 전통 한식은 익숙하지만 외국인에겐 그렇지 않잖아요. 지역마다 그곳에 맞게 한식을 전하고 싶어요.
손님보다 직원 수가 더 많은 파인 다이닝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적 인지도를 지닌 셰프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강민구 셰프는 예능에서 보기 힘들다. “일단 ‘밍글스’를 운영해야 하고, 지금 하는 일도 충분히 바빠서 다른 일을 하기가 부담스럽다”는 이유에서다. 초등학생 때부터 오로지 요리만 바라봐온 그답다. 어려서부터 똑같은 걸 반복하기를 싫어한 강민구 셰프는 답이 늘 같은 국어·수학·영어 문제와 달리 재료에 따라 새로운 결과물이 나오는 요리를 좋아했다.단지 좋아한다는 이유로 해나가기에 파인 다이닝은 맛, 서비스, 가격 등 고려할 부분이 너무 많다. 특히 사람들은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에 거는 기대가 크다. 이 때문에 유명한 파인 다이닝 중에는 안정적인 경영을 위해 외부 투자를 받는 곳도 많지만, 밍글스는 외부 투자를 받은 적이 없다. 오히려 지금 밍글스는 요리사 20여 명을 비롯해 서빙 인력과 홀 매니저, 소믈리에, 사무직원 등 30명이 넘는 직원이 하루에 26명의 손님을 위해 일하는 다소 기형적인 구조다. 물론 밍글스만으로는 이익을 내기 어렵고, 여러 사업을 통해 균형을 맞추고 있다. 최근에는 파라다이스그룹과 MOU를 맺었다. 한식 식재료 연구부터 인재 양성까지 중장기 프로젝트를 함께 추진해나갈 계획이다.

밍글스에서는 직접 담근 장과 시판 장, 유명 장인의 장을 용도에 맞게 고루 사용한다.
요리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고,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기에 꾸준하게 해나갈 수 있었어요. 그리고 저는 목표가 있으면 시간이나 수고가 들더라도 길게 바라보고 성취하려고 노력하는 스타일이에요. 다짐한 건 꼭 이루려 하죠.
집에서도 요리를 자주 하나요. 좋아하는 집밥 메뉴는 무엇인가요.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적어서, 휴일에는 가족들에게 요리를 자주 해줍니다. 집에서는 스테이크와 파스타, 샐러드 등 양식 요리를 주로 해주죠. 한국 재료를 섞은 이탈리아 요리도 자주 해요. 이 요리들은 5년간 몸담았던 ‘페스타 바이 민구’를 처음 오픈했을 때 만들었던 메뉴들과 비슷해요.
현재 초등학생인 아이들은 요리하는 걸 좋아하나요.
첫째는 요리하는 것도 좋아하고, 먹는 것도 정말 좋아해요. 나중에 요리사가 되고 싶다고 한다면 제가 좀 더 도움을 줄 수 있어 좋겠지만, 아니어도 상관없어요. 저도 어릴 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부모님께서 지원해주셨어요. 저는 김치볶음밥을 시작으로 요리에 발을 들였어요. 어머니가 외출한다고 하셔서 저녁을 직접 준비해도 되는지 물었더니 흔쾌히 그러라고 하셨거든요. 그날 이후 요리하는 즐거움을 알게 됐고, 요리 다큐멘터리와 요리 만화책에 푹 빠져들기 시작했어요. 우리 아이들도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 좋겠어요.
‘장’을 통해 고민 하나를 매듭지었는데, 또 다른 인생 챕터에는 어떤 내용을 담고 싶으신가요.
기획 단계부터 이 책이 단기간에 인기를 얻으리라 생각하지 않았어요. 오래도록 한국 음식과 장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참고할 만한 영문 서적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제가 밍글스를 운영하는 이유도 같아요. 나만의 경험과 방식으로 우리 음식을 알리는 것, 바로 그것이거든요. 홍콩의 한식구도 마찬가지고요. 제가 하는 모든 도전이 많은 사람에게 잘 전달됐으면 좋겠어요.
#강민구셰프 #밍글스 #미쉐린 #여성동아
사진제공 밍글스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