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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사회적 약자와 동행 꿈꾸는 싱글 워킹맘 김미애 의원

글 이현준 기자

2020. 11. 18

15세에 모친을 여읜 후 생계를 위해 17세에 방직공장에서 일해야 했던 여공은 변호사를 거쳐 국회에 입성했다. 인생 역전의 아이콘으로 등극한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 이야기다. 약자와의 동행을 꿈꾸는 그를 만났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 아동을 위한 법안을 계속 발의해나가겠다고 말하는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

사회적 약자인 여성, 아동을 위한 법안을 계속 발의해나가겠다고 말하는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

지난 10월 중고 거래 모바일 앱 ‘당근마켓’에 20대 미혼모가 36주 된 아이를 20만원에 판매하겠다는 글을 올려 논란이 일었다. 이에 앞서 9월 14일 인천 미추홀구의 한 빌라에서 초등학생 형제가 라면을 끓여 먹으려다 불이 나 전신에 화상을 입고 결국 동생은 사망한 참변이 발생했다. 이후 사고 조사 과정에서 이들 형제에 대한 방임 학대 신고가 2018년부터 3차례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1대 총선에서 부산 해운대구을에 당선된 김미애(51) 국민의힘 의원은 10월 18일 페이스북을 통해 “변호사 시절, 만삭 여성이 남자는 외면한 상황에서 어찌할 바 몰라 상담하러 온 경우를 여러 번 경험했다. 출산 후 인지 청구, 친권자 및 양육자 지정과 양육비 청구, 이후 양육비 추심까지 모두 갓난아기를 키우는 여성의 몫으로 남겨졌다. 홀로 아이를 키우는 건 가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며 아이를 판매하려 했던 미혼모에게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는 상황에 문제를 제기하고, 제도 개선을 위해 힘쓰겠다고 약속했다. 10월 28일엔 ‘라면 형제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아동학대 범죄 신고 시 관계 당국의 조사 또는 수사를 의무화하고, 조사에 불응하는 아동학대 행위자에 법적 제재를 가하는 ‘아동학대처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그를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났다. 


공장 노동자, 보험설계사, 변호사 거쳐 국회 입성해 사회적 약자 삶에 깊이 공감

이러한 김미애 의원의 활동은 그가 살아온 여정과 맥이 닿아 있다. 김 의원은 요즘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는 가난한 살림 탓에 17세에 포항여고를 중퇴, 포항을 떠나 부산의 방직공장 여공(女工)으로 일했다. 20대엔 잡화점, 초밥집 운영부터 보험설계사까지 닥치는 대로 일했다. 삶의 무게가 버거웠지만 배움에 목말랐던 그는 29세에 동아대 법대(야간)에 진학해 늦깎이 대학생이 됐다. 그리고 34세에 사법고시에 합격, 변호사가 됐다. 

변호사가 된 후 그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가 15년간 변호사로 활동하며 빈곤가정의 소년, 미혼모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변호를 포함해 맡은 국선 변호만 7백62건에 이른다. 또 그는 미혼이지만 2명의 조카를 길러냈고 입양한 딸(10)이 있는 싱글 워킹맘이기도 하다. 근래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이 김 의원에게 남다르게 다가오는 이유다.

국회에 입성한 지 약 반년이 됐습니다. 여공부터 변호사, 교수 등 여러 직업을 거쳤는데 다른 일들과 비교해 국회의원이란 직업은 어떤가요. 

정말 힘들어요. 단 하루 잠도 많이 못 자고 무슨 일이 이렇게 많은지. 저는 일과 가정의 양립이 불가능한 사람인데, 국민의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힘쓰고 있는 모순적인 상황이죠(웃음). 딸(셋째)이 부산에 있어서 제가 수시로 비행기를 타고 부산을 왕복해요. 한 주에 4일 오간 적도 있고요. 보좌진들이 고생이 많죠. 제가 국회 입성한 이래 주말도 없이 매일 야근이에요. 저를 잘못 만나서 고생이 많은 것 같아 미안해요. 주변에선 제게 여유를 좀 가지라고 해요. 하지만 제 성격상 그렇겐 안 되거든요. 지금까지 한 번도 쉬엄쉬엄 살아본 적이 없는 데다 이제는 국민의 세금으로 일하니 밥값을 해야 하잖아요(웃음). 그래도 십수년간 변호사를 하면서 외치기만 했던 것들을 이젠 법안으로 발의하고 통과시킬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보람이에요. 



이번 ‘당근마켓 사건’ 관련해서 개인보다는 입양 제도의 허점을 문제로 꼽으셨습니다. 당선 당시에도 “모든 아이들이 가정에서 사랑받을 수 있도록 입양 제도를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지난해 입양 절차를 밟은 8백여 명 중 절반은 해외로 보내졌는데, 대부분은 장애가 있거나 친모가 정신질환이 있다는 등의 이유로 우리나라에서 입양되지 않는 아이들이에요. 전 이걸 우리 모두가 부끄러워해야 하는 문제라 생각해요. 자신은 (입양)하려 하지 않으면서 비난만 하면 나아질 게 없잖아요. 스스로부터 어땠는지 돌아봐야죠. 이웃에 미혼모가 있을 때 그들의 손을 잡아주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아이 낳으면 도와줄게”라거나 “무사히 입양시킬 수 있도록 도와줄게”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아요. 그러면서 이런 사건이 생기면 탓만 한단 말이에요. 라면 형제 사건도 마찬가지고요. 이번 사건들의 ‘엄마’들은 20대 어린 나이에 혼자 아이를 낳았어요. 미혼모들은 자신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일 때가 많아요. 아이를 돌봐줄 부모나 형제가 없는 경우도 허다하죠. 그런데 혼자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요? 당연히 못 키우죠. 변호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저조차 아이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데요. 아이가 갑자기 아프기라도 하면 눈물 흘리며 응급실에 아이를 업고 가서 밤을 새우고, 일주일씩 응급실과 변호사 사무실을 오가며 출퇴근하고… 정말 어려웠어요. 그런데 직업과 수입까지 변변치 않다면 얼마나 힘들까요. 저는 오롯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그러니 비난을 할 수 없었어요. 결국 제도를 손봐야 해요. 2012년 8월부터 시행된 입양특례법의 주요 내용 중에 입양을 보내기 위해선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는데, 이 법이 시행되면서부터 영아 유기율이 급격히 올라가고 입양률은 떨어졌어요. 아이의 친부모에 대해 알 권리를 지킨다는 이유로 ‘생명권’이 박탈당하는 문제가 생긴 거예요. 이번 국정감사 때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이 문제를 제기했어요. 우리나라의 입양정보시스템이 굉장히 잘돼 있거든요. 출생신고할 땐 성, 본적, 출생지 주소, 부모만 쓰게 돼 있는데 입양정보시스템엔 출생 일시, 혈액형, 유전자 정보 등 더 많은 자료가 담겨 있어요. 보건복지부 장관도 이 시스템을 신뢰할 수 있다고 말했고요. 그래서 저는 곧 ‘비밀출산제(산모의 신원을 밝히지 않고 출산한 아이의 출생신고를 할 수 있게 하는 제도)’를 곧 발의할 계획입니다. 

라면 형제 사건 재발 방지를 위한 법안도 발의하셨습니다. 

사실 제가 발의한 법안도 최소한의 장치일 뿐 실질적인 대안은 못 돼요. 가장 완벽한 대안은 ‘원스톱 지원’이죠.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오면 지방자치단체, 학교, 경찰,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의 협업을 통한 대처가 필요해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안 되죠. 해당 사건이 벌어진 곳이 인천 미추홀구인데, 아보전 하나가 6개 구나 군을 담당해요. 상담사 한 명이 40명 이상을 맡고 있어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에도 월 1회밖에 방문을 못 했다는데 관리가 제대로 되겠어요? 제도로 틀만 만들어놓으면 되는 게 아니에요. 인력을 어떻게 배치하고 처우를 어떻게 하는지가 관건이죠.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은 딸을 입양한 것”

김 의원과 자녀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 
하단 ‘엄마 사랑해요’는 막내딸이 직접 쓴 것.

김 의원과 자녀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 하단 ‘엄마 사랑해요’는 막내딸이 직접 쓴 것.

김미애 의원에 대해 설명할 때 빠질 수 없는 수식어 중 하나는 ‘싱글 워킹맘’이다. 그에게 자녀와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자, 사회적 현안과 제도에 대해 열변을 토하며 지었던 진지한 표정은 순식간에 누그러지고 어느새 그의 입가에 미소가 가득 번졌다. 김 의원은 “태어나서 제일 잘한 일은 딸을 입양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혼이지만 조카 둘 포함, 입양한 딸까지 세 아이를 기르셨어요. 

첫째(작은언니의 아들)는, 2011년 작은언니가 백혈병으로 사망해서 제가 아이의 미성년 후견인이 돼 데려왔어요. 사실 예상 못 했던 사건이었어요. 이때 저는 이미 딸(셋째)을 입양 신청하고 기다리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러던 중 언니가 그렇게 돼서 조카가 먼저 오게 됐죠. 둘째(큰언니의 딸)는, 2008년에 큰언니가 우울증에 걸려서 19개월이던 조카를 데려와 키웠어요. 

요즘은 결혼도 잘 안 하려 하고 아이도 안 낳으려는 풍조가 강한데요. 하나도 아니고 셋이나…. 

사실 셋을 다 키운 건 아니에요. 둘째는 제가 보조 양육자로서 잠시 맡아 키운 거죠. 지금 중1인데, 그 아이가 7세 무렵부턴 언니가 데려가서 다시 잘 키우고 있어요(웃음). 제가 아이들을 굉장히 좋아해요. 그래서 가능했던 일이죠. 

아이들을 좋아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그냥 아이들이 예뻐요. 아이들은 모두 사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또 저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었기 때문에 ‘엄마’의 소중함을 잘 알고, 엄마 없는 아이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커요. 

싱글 워킹맘으로서 가장 힘든 점은 뭔가요. 

아이들이 아플 때 가장 힘들었죠. 혼자 모두를 돌봐야 하니까 막막하고 두려웠어요. 또 큰아이의 사춘기 때도 너무 힘들었어요. 지금은 좀 철이 든 것 같지만(웃음). 요즘은 너무 바쁜 게 문제죠. 변호사 시절엔 참 행복했어요. 제가 여행 다니는 걸 좋아하고 아이들도 위할 겸 리조트 회원권을 샀었거든요. 딸은 저에게 변호사로 돌아오라고 투정이에요. 국회의원 너무 안 좋다고, 자기랑 같이 놀지도 못하고 여행도 못 다닌다고요. 딸 때문에 힘든 건 사실 없어요. 그저 절 행복하게 해주죠. 사람들이 말하길 제가 딸 이야기만 하면 입꼬리가 올라간대요(웃음).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이 아이를 입양한 거예요. 

그런 경험들이 의정 활동에 영향을 많이 미치는 듯합니다. 발의한 법안도 여성, 아동과 관련된 게 많아요. 

제가 경험했던 일들이다 보니 이런 부분에선 전문가들만큼 구체적으로 알고 있다 자부해요. 여성, 아동 관련 법안을 계속 발의해야죠. 제가 있는 상임위원회(보건복지위원회, 여성가족위원회)가 관련 상임위이기도 하고요. 


조국 전 장관, 고군분투하는 젊은이들의 꿈을 짓밟아

김 의원은 ‘국민의힘 약자와의 동행 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자기 자신부터 사회적 약자였고 이들을 위해 힘써온 김 의원의 삶을 감안하면 자연스럽지만, 그가 국민의힘(미래통합당)을 선택한 것 자체에 의문을 품은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약자를 위하는 마음이야말로 보수의 가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보수 정당은 진보 정당에 비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나 배려가 적다’ ‘차갑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전 정당이 아니라 사람의 문제였다고 생각해요. 당을 대표한 사람과 그를 따르던 사람들의 문제요. 당령과 당헌을 보면 우리 당도 따뜻한 세상을 목표로 하고 있거든요. 저는 그저 누구나 꿈꾸고 노력하면 이룰 수 있는 공정한 시스템을 만들길 원해요. 그런 사회 속에서 성공하면 성과를 다시 사회와 나누면서 선순환이 이뤄지고요. 정직하고 적법하다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박수를 받아야 마땅해요. 저 역시 치열하게 살았고요. 항상 밤늦게까지 일했고 주말에도 쉬지 않았어요. 그렇게 가난에서 벗어났죠. 누군가 저에게 “가난하게 살라”고 하면 더 열심히 일할지언정 그렇게 안 살아요. 전 누릴 거 누리고 싶고, 우리 아이도 누리게 해주고 싶거든요. 그렇다고 저만 잘살고 싶은 건 아니에요. 제 성공을 사회와 나누면서 타인도 잘살게 만들고 싶죠. 그래야 행복하니까요. 전 이게 진정한 보수의 가치라고 생각해요. 영국이나 미국의 보수도 그랬잖아요. ‘노블레스 오블리주’요. 어려운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희생해야죠. 물에 빠진 사람이 있다면 입은 옷을 벗어서라도 던져 구하는 거죠. 

하지만 순수했던 사람도 권력을 쥐고 나면 변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시기도 했는데, 결국 조 전 장관 문제도 기득권의 이중성 논란에서 비롯된 것 아닐까요. 

저는 조 전 장관을 보면서 정말 분노했어요. 조 전 장관이 “개천에서 개구리, 가재, 붕어로 살아도 행복할 수 있도록 예쁘고 따뜻한 개천을 만들자”고 했는데, 저는 개천 출신이잖아요. 웃기는 거예요. 그럼 본인은 용인가 싶고. 또 진정성 있게 그 가치를 실현하고 싶었다면 자신의 자식도 개천에서 ‘개가붕’으로 살게 해야지, 왜 그렇게 힘을 써서 용으로 만들려고 했냐는 말이죠. 그러면서 다른 집 자식은 개가붕으로 살라고 하는데…. 불쾌했죠. 용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을 멋진 말로 현혹해서 꿈까지 가둬버리는 건 기득권자가 할 일이 아니잖아요. 전 조 전 장관이 말만 하지 말고 진정 사회적 약자를 위해 얼마나 나눴는지 보고 싶어요. 실제 행동으로 뒷받침한 건 하나도 없잖아요. 

그만큼 계층 간 이동이 어려워졌기 때문 아닐까요. 의원님께서는 ‘개천의 용’이 되셨지만 이젠 ‘용’이 될 수 없다는 생각에 낙담한 젊은이들이 많아요.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하고 싶어요. 기득권자로서, 사회를 이렇게 만들어서 정말 미안해요. 제가 젊었을 땐 ‘노력해도 안 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지만, 지금 세대는 그것조차 어렵게 된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면 기회는 열린다고 말하고 싶어요. 절대 포기하지 말고요. 제가 학교 다닐 때 터널을 지나곤 했는데, 터널도 결국 끝이 있더라고요. 그런 생각으로 버텼어요. 세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영웅은 나타나잖아요. 세상살이가 고달픈 지금이 영웅 탄생을 위한 싹이 트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힘을 내셨으면 좋겠어요. 힘들 때마다 국회의원회관 1017호로 찾아오세요. 따뜻한 차와 함께 용기를 드릴게요.

사진 조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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