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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interview

가수 박혜경의 브라보 마이 라이프

EDITOR 김지은

2020. 05. 01

맑고 청아한 음색으로 인기를 모았던 가수 박혜경이 오랜만에 여성동아와 만났다. 가수로서는 사망 선고와도 같았던 성대결절 수술과 소속사와의 법정 분쟁 등 인생 난관을 극복한 그는 이제 한결 편안하고 여유로워진 모습이다.

‘음색 요정’이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특유의 맑은 목소리를 자랑했던 가수 박혜경(46)이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1997년 그룹 ‘더더’로 데뷔해 ‘내게 다시’ ‘It’s You’ 등의 히트곡을 선보였던 그는 솔로로 전향 후에도 ‘주문을 걸어’ ‘고백’ ‘레몬트리’ ‘너에게 주고 싶은 세 가지’ 등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노래를 잇따라 히트시킨 국민 가수였다. 

이런 그가 얼마 전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출연해 그간의 굴곡 많았던 인생 스토리를 털어놓아 화제가 됐다. 하지만 사실 박혜경이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오래전 겪은 소송에 관한 구구절절한 사연이나 성대결절로 더 이상 노래를 할 수 없었다는 등의 고구마 3백 개쯤 먹은 것 같은 속상한 스토리는 아닐 것이다. 얼마 전 어렵게 신곡 ‘레인보우’를 발표했고, 마음 맞는 남자친구와 아주 잘 지내고 있다는 행복한 얘기를 팬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 왔는지 누구보다 그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지 않을까. 그런데도 박혜경은 굳이 과거의 힘든 이야기를 꺼내고 또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가 진짜 말하고 싶은 속내는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돈이 없다는 건 노래를 부를 수 없다는 이야기와도 등치된다. 2003년 소속사와의 수억원대 소송으로 타격을 입었던 박혜경은 이후로도 또 한 번 소속사와 분쟁에 휩싸였다. 새로 낸 신곡은 빛을 보지 못했고 툭하면 분쟁에 휘말리는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곱지만은 않았다. 2011년에는 피부 관리숍을 운영하다 건물주로부터 피소를 당했다. 이듬해엔 성대결절이라는 시련이 찾아왔다. 

“연예인이면 이미지 생각해서 조용히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줄 거라 생각했던 거겠죠. 사실 많은 연예인이 그렇게 당하고만 살기도 했고요. 지금 생각하면 아닌 걸 참지 못하는 성격이 문제였구나, 싶기도 해요. 끝까지 싸워보려고 버티다 결국 스트레스로 성대결절까지 왔고, 모든 게 무너져내리기 시작했으니까요.” 

소송 비용을 대기 위해 재산을 처분했고, 방송 활동도 중단했다. 무죄 판결은 받았지만 스트레스로 망가진 성대의 3분의 2를 잘라내고 난 후였다. 수술한 성대는 제 소리를 내지 못했다.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 없다는 건 그의 인생 전부를 부정하는 것만큼 치명적이었다. 그에게는 더 이상 버틸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얼마 남지 않은 재산을 털어 도망치듯 외국으로 떠났다. 파리와 런던을 거쳐 중국으로 날아갔고 새로운 일을 찾았다. 가수 박혜경으로 살 수 없다면 차라리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가 낫겠다 싶었다. 그때 중국 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이가 jtbc 예능 프로그램 ‘투유 프로젝트-슈가맨(이하 슈가맨)’의 신여진 작가였다.
 
“인연이 되려니까 자꾸 마주치게 되더라고요. 서로 일정을 공유한 적도 없는데 중국에서만 우연히 네 번을 만났어요. 그러다 무엇에 홀린 듯 출연 약속을 했죠. 그땐 ‘슈가맨’이 뭐 하는 프로그램인지도 잘 몰랐어요.”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걸 안 건 덥석 출연 약속을 하고도 한참이 지나서였다. 부랴부랴 성대를 쥐어짜 보았지만 역시나 무리였다. 괜한 약속을 했나 후회가 밀려들었다. 

“남은 시간 동안 정말 피나는 노력을 했어요. 그때 노래를 부른 건 망가진 성대가 아니라 제 몸이었던 거 같아요. 오랜 습관처럼 몸이 기억하고 있었던 거죠.”
 
2016년 ‘슈가맨’ 출연으로 그는 다시 마음을 고쳐먹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소속사를 찾았고, 성대재활훈련도 시작했다. 욕심 부리지 않고, 조금씩 다시 시작하면 될 것도 같았다.

기나긴 소송과 성대결절… 찜질방에서 생활하기도

지난해 화장품법이 바뀌기 전까지 그는 핸드메이드 비누를 만들어 판매했다. 큰돈을 벌진 못했지만 손으로 무언가 만드는 것에 재주가 좋은 편이라 알음알음 알아보고 찾아주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시중에 핸드메이드라고 판매되는 제품 중에는 진짜 숙성 비누가 아닌 비누 베이스만 녹여서 향이랑 오일을 섞어 파는 것들이 많아요. 저는 제가 개발한 방법으로 숙성 기간을 줄이면서 품질 좋은 비누를 만들 수 있었죠. 비누에 넣는 아로마 오일은 최고급 제품을 선별해 허용치 최대 함량을 사용했고요. 그런데 화장품법이 바뀌면서 원래 하던 작업장에서 더 이상 비누를 만들 수 없게 됐어요. 설비를 다시 갖추면 계속할 수 있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어 접을 수밖에 없었어요.” 

폐업을 선언하기엔 너무 아까운 사업이었지만 비누 공장 설비를 갖추는 데 필요한 자금을 포기하면 신곡 하나쯤은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예전에 수술로 흠집 난 부분을 매끄럽게 메울 수 있다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들었고, 2019년에 성대 재수술을 받았다. 의사는 4개월 정도만 기다리면 다시 예전처럼 노래할 수 있을 거라 말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음반 제작을 도와주겠다던 소속사 대표가 계약금과 제작비를 몽땅 들고 사라져버렸다. 

박혜경은 소속사 사기로 돈이 없어 여성 전용 찜질방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듯 살아내면서도 차마 가족들에겐 말할 수 없었다. 자존심 때문이 아니었다. 더 이상 내 몫의 어려움을 가족들에게 짐 지우기 싫었던, 장녀로서의 책임감 같은 것이었다.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이전 소속사의 사기 사건으로 본의 아니게 박혜경의 채권자가 되었던 제작 매니지먼트 덕분이었다. 

“이번에 ‘레인보우’ 제작을 도와준 태완이란 친구는 그때 제 모든 상황을 알고 있던 유일한 사람이에요. 지난번 제작사가 돈을 들고 사라졌을 때도 제 곡을 매니지먼트해줬지요. 회사가 돈을 들고 도망가는 바람에 제가 대신 그 친구한테 빚을 갚아야 하는 상황이 됐어요. 10만원, 20만원씩 돈이 생길 때마다 찔끔찔끔 보냈어요. 사실 말도 안 되는 거죠. 1백만원 빌려놓고 5천원, 1만원 내놓는 거랑 다를 게 없으니까요. 그런데도 절대 저한테 싫은 소리 한 번 안 하고 오히려 곁에서 믿고 지켜봐줬어요. 매니저 없이 다니는 절 위해 이것저것 챙겨주고, ‘누나, 다시 노래해야죠. 여기서 멈추면 안 돼요’라며 힘을 줬죠. 정말 그 친구가 아니었다면 성대가 잘 회복됐다 해도 다시 노래할 용기를 내지 못했을 거예요. 제게는 평생의 은인과도 같은 사람입니다.” 

박혜경이 거친 인생의 굴곡을 살아내는 동안 음반 시장은 너무나 낯선 동네로 변해 있었다. 가수가 노래만 잘하고 열심히 해서 성공하던 시대는 지났다. ‘길을 가다 우연히 들은 노래’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사라졌다. 일부러 찾아 듣게 만들지 않으면 도무지 새 노래가 나왔다는 사실조차 알리기 힘들다. 이제는 음원이 팔리지 않으면 사람들이 자신의 노래를 듣는지 확인할 방법도 없다. 

“유튜브 조회 수는 그렇게 높은데 왜 음원 시장에서는 반응이 없을까요?” 

그는 어린아이처럼 물었다. 

사실 달라진 음반 시장에 힘겨워하는 건 박혜경 한 사람만이 아니다. ‘온라인 탑골공원’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옛 가수와 노래들을 아쉬워하고 그리워하다가도 막상 그 목소리가 신곡을 내놓으면 선뜻 관심을 갖거나 호평을 하지는 않는다. 아이돌의 노래는 10대들에게 독식되고, 3040은 레트로 그 이상의 새로운 것에 열광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저한테 왜 요즘엔 앨범 안 내고, 노래 안 하냐고 물어봐요. 새 노래를 냈는데도 모르는 거죠. 하지만 앨범 내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운가요. ‘레인보우’ 한 곡을 준비하는 데만도 거의 억 소리가 날 정도의 돈이 들었어요. 지난번에 김완선 선배도 TV에 나와서 그러더라고요. 앨범을 내려고 돈을 번다고요. 손해 볼 걸 알면서도 노래를 계속하고 싶어서요. 저도 그래요.” 

이런 힘든 와중에 재기할 수 있는 힘을 준 건 바로 팬들이었다. 

“이제는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해도 ‘가수 박혜경’이잖아요. 길을 가다 우연히 산 복권이 당첨돼도 ‘가수 박혜경이 복권에 당첨됐다’ 할 것이고, 결혼을 해도 ‘가수 박혜경이 결혼한다’ 할 거예요. 내가 죽어도 사람들은 ‘가수 박혜경이 죽었다’ 하겠죠. 팬들은 저를 그렇게 ‘가수 박혜경’으로 만들어준 사람들이에요.”

손해 볼 줄 알면서도 음원 내고 노래 부르는 이유

다행히 요즘 그의 일상은 언제나 ‘맑음’이다. 끝없이 몰아치던 폭풍우를 지나, 길을 알 수 없는 정글을 헤매며 살았던 시간을 뒤로하고 다시 따사로운 햇살을 맞았다. 노래를 부르고, 팬들과 만나고, 또 사랑을 하며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괜찮다. 그리고 행복하다고 말한다. 

“‘풀이며 나무, 우리를 둘러싼 생명 그 어떤 것도 목적의식을 갖고 살지는 않는다.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라는 법륜 스님의 말씀이 참 와 닿더라고요. 나이 마흔을 넘기고 보니 내가 너무 많은 책임감과 목적의식을 갖고 살았구나, 깨닫게 되었죠. 10대에는 꿈을 찾아 헤맸고, 20대와 30대에는 그 꿈을 향해 열심히 나아갔어요. 인생의 중반이 되니 지금 저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면 된다는 걸 알겠어요. 그래서 연애도 순조롭게 잘되고 있는 거 같아요. ‘이 사람이 나에게 무얼 해줄까, 왜 나한테 이런저런 표현을 안 해줄까, 내가 이만큼 했는데 이 사람은 왜 저럴까’라는 식의 생각을 하지 않다 보니 존재 자체만으로도 고맙고 위로가 되더라고요. 남자친구도 나이가 있다 보니 저와 생각하는 게 많이 비슷해요. 적당히 거리를 둘 줄 알고 그래서 더 잘 통하고요.” 

박혜경의 남자친구는 세 살 연상의 일반인으로 사귄 지 1년 5개월가량 됐다. 결혼에 대해서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만날 것”이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사랑의 목적이 ‘결혼’은 아니지만 두 사람 다 적지 않은 나이니 가볍게 만나고 있지는 않다는 것만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주말이면 함께 손잡고 산에 오르고, 소소하게 텃밭을 가꾸면서 맛있는 걸 나눠 먹을 수 있는 지금이 충분히 따뜻하고 행복하다. 

“오빠는 순 토종 입맛이에요. 김치국수와 된장찌개, 김치찌개 등 한식을 잘 먹고 기름진 음식은 안 좋아해요. 제가 손재주가 좋다 보니 조미료 없이도 꽤 괜찮은 맛을 내요. 둘이 같이 앉아 직접 만든 음식을 먹는 소소한 일상이 참 좋더라고요.” 

어릴 적 엄마가 차려줬던 소박한 시골 밥상은 그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가장 중요한 유전자다. 버스도 들어오지 않는 깊은 산골에서 남편도 없이 보따리 장사로 3남매를 키우고 부모를 봉양하면서도 그의 어머니는 단 한 번도 모진 말, 힘든 소리를 하지 않으셨다. 

“어릴 적 엄마가 일을 마치고 캄캄한 밤이 되어서야 돌아와서는 새벽까지 빨래를 하던 물소리가 아직도 기억이 나요. 그렇게 또 자식들에게 밥을 해 먹이고, 다시 이른 아침에 일을 나가셨어요. 다행히 나중에는 엄마가 잘되어서 가게도 내고, 향토요리 관련 협회 부회장도 하고, TV에도 종종 출연하셨어요. 엄마는 불교 신자신데, 저는 어릴 때 노래가 하고 싶어 성가대가 있는 교회를 다녔거든요. 그때 목사님이 우리 엄마를 보고 그러셨어요. 예수가 계시다면 엄마 같은 모습일 거라고요.”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마다 버팀목이 되어준 엄마, 바닥에서 더 이상 일어설 힘도 없던 그에게 “노래하자”고 말해준 동료, 그리고 묵묵히 어깨를 빌려준 연인과 팬들까지 그에게는 잘 살아내야 하는 이유가 너무나도 많다. 

“유튜브를 시작하면서 생각했어요. 언젠가는 유튜브를 통해 팬들을 모아 여기서 노래하고 이야기하고 그런 날이 올 거라고요. 돈 때문에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고 없게 되는 지긋지긋한 날들에서 벗어나, 그저 서로를 위로하고 울고 웃으며 노래할 수 있는 날이 꼭 올 거라고요. 제 노래를 듣고 팬들이 남기는 감사와 위로의 메시지가 저에게는 노래하고 힘을 내어 살아갈 이유입니다. 그래서 저는 늘 신인의 마음으로 노래할 수 있어요. 척박해진 음반 시장에 새롭게 적응하고 살아남아서, 끝까지 가수 박혜경으로 살고 싶으니까요.” 

오랜만에 유튜브에서 그가 불렀던 애니메이션 영화 ‘정글은 언제나 맑음 뒤 흐림’의 OST ‘카누를 타고 파라다이스에 갈 때’를 찾아 들었다. 제작 파트너 태완 씨가 이 노래는 꼭 다시 불러야 한다고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고맙게도 그의 오랜 노래를 기억해준 제작자와 팬들의 앙코르 요청이 “장난 아니게” 쏟아지고 있다. 어쩐지 그의 내일도 노래처럼 맑고 쾌청할 것만 같은 좋은 예감이 든다.

기획 강현숙 기자 사진 김상구 디자인 김영화 사진제공 마운트에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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