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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interview #star

‘SKY캐슬’ 인기 돌풍의 핵 김서형

EDITOR 김지영 기자

2019. 03. 07

한서진과 팽팽한 대립각을 세운 김주영이 없었다면 ‘SKY캐슬’이 이 정도로 인기를 모았을까. 입시 코디네이터로 등장한 김서형은 시청자들이 전적으로 그녀를 믿어야 하는 이유를 연기로 보여주었다.

“저를 전적으로 믿으셔야 합니다.” “저만 믿으시면 됩니다.”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드라마 ‘SKY캐슬’이 떠난 자리에 남은 유행어들이다. 그리고 이 모든 말은 극 중에서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으로 분한 배우 김서형(46)이 ‘예서 엄마’ 한서진(염정아)에게 던진 대사들이다. 김주영은 서울대 의대 합격률 100%를 미끼로 학부모와 수험생의 욕망을 자극하며 한 가정을 파탄으로 몰고 가는 마성의 캐릭터이자 캐슬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의 원인 제공자였다. 이런 그녀가 앙칼진 중저음의 목소리와 속내를 가늠하기 힘든 무표정으로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는 보는 이들의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 방영이 끝난 지금까지 다양한 콘텐츠의 소재로 재활용되고 있다. 

염정아의 표현을 빌리자면 “보고만 있어도 기가 빨릴 정도”로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펼친 덕분에 김서형은 최근 뷰티 브랜드의 모델로 발탁됐으며 광고계의 러브콜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 드라마와 영화는 물론 예능 프로그램에서까지 그녀를 출연시키기 위해 섭외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김서형이 이처럼 뜨거운 관심을 모은 건 2009년 드라마 ‘아내의 유혹’ 이후 10년 만이다. 

방영 당시 4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한 ‘아내의 유혹’에서 ‘욕망의 화신’ 신애리 역으로 열연하며 데뷔 15년 만에 화제의 중심에 섰던 그녀는 지난 10년간 따라다니던 신애리의 그림자를 ‘SKY캐슬’을 통해 떨쳐내는 데 성공했다.

비지상파 드라마 중 역대 최고 시청률(23.8%)을 기록했어요. 이런 반응을 예상했나요. 



기본은 할 거라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잘될 줄은 몰랐어요. 시청률이 10%만 나와도 대박이라고 생각했는데 1%대로 시작해 쭉쭉 올라갔죠. 김정난(영재 엄마 역) 선배가 아들의 서울대 의대 입학을 앞두고 한밤중 턱 밑에 총구를 겨눠 목숨을 끊는 충격적인 장면으로 이슈에 불씨를 지핀 게 배우들에게 좋은 자극이 됐던 것 같아요. 

대중의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캐릭터였는데. 

처음엔 출연을 고사했었어요. 지난 10년 동안 ‘기황후’ ‘자이언트’ ‘굿와이프’ ‘개과천선’ 등 숱한 드라마에 나왔는데도 대중이 기억하는 건 결국 ‘아내의 유혹’의 신애리더라고요. 심지어 어떤 분은 제가 ‘아내의 유혹’ 이후 아무것도 안 한 줄 알기도 했고요. 그렇게 강력한 신애리의 그림자를 떨쳐내야 한다는 강박이 제 발목을 잡았죠. 시놉시스만 가지고는 선명하게 이해되지 않는 김주영 역할을 신애리를 뛰어넘을 만큼 잘해낼 거라고 자신할 수 없었거든요. 무엇보다 신애리를 연기하면서 제 살 깎아먹는 고통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에 다시는 그런 경험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어요. 정신적으로 힘에 부쳐서요. 소속사에도 “이거 하면 많이 아플 것 같다.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하는 수준까지 갈지도 모른다. 너희를 원망하고 괴롭힐 거다.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다”라고 두 번이나 읍소했어요. 그런데 “내 촉을 믿어보라”는 소속사 대표의 말에 결국 설득당했죠. 그 촉을 믿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제 촉도 틀리지 않았어요. 김주영은 제 머리 꼭대기에 있는 여자라 연기하기가 정말 버거웠거든요. PD님에게도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신 것 같다고 했어요(웃음). 

왜 과대평가했다고 생각하는지요. 

김주영은 저와는 다르게 어떤 상황에서든 흔들림이 없고 모든 사람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조종하는, 지금까지 만난 캐릭터 중 최고의 강적이었죠. 저를 계속 시험에 들게 하면서 제가 가진 한계치에 도전하게 만드는 그런 여자요.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연기했나요. 

전문직이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캐릭터여서 외형적인 면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SKY캐슬’ 엄마들과 확연히 다른 면을 강조하기 위해 처음부터 올 블랙 슈트를 고수했고 감정이 없는 사이보그처럼 보이기 위해 모퉁이를 돌 때도 가방이 흔들리지 않게 딱딱한 느낌으로 걸었어요. 또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는 완벽주의 성향을 표현하려고 머리카락 한 올도 남기지 않고 올백 스타일로 묶었는데 그게 가장 후회돼요. 그 때문에 방영 초반에는 늘 화가 많이 나 있었어요. 머리가 너무 아파 옆에서 툭 건드려도 험한 소리가 나올 정도였어요. 차로 이동할 때도 헤어스타일이 망가질까 봐 뒤로 눕지도, 옆으로 기대지도 못했죠. 

김주영은 가장 좁은 감정의 스펙트럼 안에서 가장 많은 걸 표현해야 하는 고난도의 악역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손발을 묶어놓고 연기시키는 느낌이랄까요. 

저도 딱 그런 느낌이었어요. 영재로 키웠던 딸 케이를 바보로 만들고, 남편을 살해했을지도 모르는 엄청난 과거를 품고 있으면서도 늘 의연한 모습을 유지한 채로 온갖 복잡한 감정을 휘몰아치도록 끌어올려야 할 땐 괴롭다는 말로는 설명이 안 될 정도로 고통스러웠어요. 김주영의 아픈 과거가 조금도 드러나지 않은 상황임에도 케이를 먼발치에서 쳐다보며 숨죽여 오열할 때나 한서진의 말에 잠깐 감정이 흔들렸다가 다시 자기편으로 만들 때처럼요. 특히 예서 엄마가 혜나를 집에 들이게 만들면서 제가 ‘멘붕’이 됐었어요. 김주영의 감정선을 놓치지 않으려다 보니 집에서도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염정아 선배에게 한번 물어보고 싶더라고요. ‘언니가 만약 김주영 역할을 했어도 나처럼 힘들었을까?’ 싶거든요. 많이 울었어요. 쫑파티 때도 와락 눈물을 쏟아 다른 배우들에게 미안했어요. 다 각자 나름의 고민과 고충이 있었을 테고, 그런 감정 노동은 배우 스스로 감당해내야 할 몫인데 저 혼자만 티 낸 것 같아서요. 

그럼에도 그 현장에서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요. 

정난 언니의 명연기가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됐고, 배우들의 마음을 지혜롭게 보듬어주시는 PD님의 섬세한 배려가 큰 위로와 격려가 됐어요. 그리고 그동안 제가 여러 드라마에서 연기한 변호사·검사·정치인·로펌 대표 등 다양한 전문직과 사극·시대극 등을 통해 터득한 촬영 노하우와 경험치도 여러모로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SKY캐슬’을 통해 큰 사랑을 받은 건 김주영에게 연민을 느낀 사람이 많아서가 아닌가 싶어요. 

저는 김주영뿐만 아니라 어떤 역을 맡든 늘 그 사람에 대한 연민을 바탕에 깔고 연기해왔어요. ‘아내의 유혹’의 신애리도, ‘자이언트’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산 유경옥도, ‘샐러리맨 초한지’에서 명예를 탐한 모가비도, ‘굿와이프’에서 로펌을 이끈 서명희도 삶을 들여다보면 모두 나름의 아픔이 있거든요. 그래서 김주영도, 신애리도 질타만 받진 않은 것 같아요. 


14년간 키운 반려견을 SNS에 공개한 ‘쓰앵님’ 김서형.

14년간 키운 반려견을 SNS에 공개한 ‘쓰앵님’ 김서형.

김주영을 연기하면서 가장 마음에 남는 대사를 꼽는다면요.  

한서진이 처음으로 물을 끼얹었을 때 김주영이 이렇게 말해요. “영재가 아무리 집을 떠나 가을이에게 도망쳤어도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주는 게 부모 아닙니까?”라고요. 그 말을 하면서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뜨거움을 느꼈어요. 저는 아직 미혼이지만 제가 키우는 반려견(14년간 함께 산 요크셔테리어)의 부모 노릇을 하고 있거든요. 다른 한 마리를 떠나보내기도 했고요. 생명을 다루는 이야기를 할 땐 집에 있는 반려견이 생각나요. 그 대사를 할 때도 그래서 더 슬프고 안타까웠어요. 보호자로서, 책임자로서 제가 반려견에게 소홀한 점이 없었는지 생각하다 보면 인간과 동물의 경계가 굳이 필요할까 싶어요. 

앞으로 자식이 생기면 어떻게 교육할 생각인가요. 

반려견은 제가 혼낼수록 더 숨고 소심해지거나 반항을 해요. 아이들도 마찬가지예요. 40대인 저도 부모님이 뭘 억지로 시키려고 하시면 반감이 생겨요. 아이들에겐 따뜻한 관심과 사랑이 가장 중요한 자양분인 것 같아요. 그리고 이번 드라마를 보면서 부모가 자식 위에 군림하려고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모와 자식 간의 소통이 일방적이어선 안 된다는 것도요. 

다음 작품을 선택할 때도 소속사 대표의 촉을 믿을 건가요. 

글쎄요. 하하하. 김주영이라는 인물을 살고 나니 이제 어떤 역할을 맡아도 잘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제 이미지 때문인지 카리스마 있는 캐릭터를 제안받을 때가 많아요. 하지만 아무리 매력적이어도 저는 제 촉이 닿아야 할 마음이 생겨요. 전작과 같은 느낌의 캐릭터여도 제 스타일로 조금이라도 틀어볼 수 있고 저만의 색깔을 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드는 작품을 해왔거든요. 김주영도 그런 여지가 전혀 없었다면 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거예요. 

연기자로서든, 자연인으로서든 삶에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해주는 좌우명이 뭔가요. 

체력이 뒷받침되고 연기 경력이 쌓였어도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흐트러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땐 ‘내 자신에게 늘 정직하고 신뢰를 주는 사람이 되자’는 말을 떠올려요. 앞으로도 저는 CF보다는 작품을 먼저 생각하고, 어떤 캐릭터를 만나게 될까 설레면서 기다리고, 올라가려고 애쓰기보다 도태되는 것을 경계하고, 현상 유지를 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기는 지금의 김서형처럼 살기를 바라요.

디자인 김영화 사진제공 플라이업엔터테인먼트 김서형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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