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칭 장식 미니드레스, 레드 퍼 머프 박윤정. 그린 원석 뱅글, 스네이크 모티프 빅 뱅글, 골드 뱅글 금은보화. 글리터링 장식 펌프스 헬레나앤크리스티.
소녀시대, 카라, 손담비… 브라운관을 꽉 채우는 아이돌 가수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김완선(42)이다. 춤과 노래 실력은 물론 도발적이면서 강렬한 매력은 기획사에서 몇 년씩 훈련시켜 내놓은 요즘 아이돌 이상이었다. ‘인순이와 리듬터치’를 거쳐 86년 ‘오늘밤’으로 데뷔한 김완선은 ‘리듬 속의 그 춤을’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인기를 누렸다. 92년 한 차례 은퇴 선언 후 대만과 홍콩에서 활동했지만 인기는 예전만 못했고, 2002년과 2005년 발표한 음반도 과거의 명성을 되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렇다 해도 김완선이 가요계에서 사라진 과정은 냉정하다 못해 매몰찼다. 은퇴 선언은 고사하고 팬이나 지인들에게조차 아무런 언급 없이 연예계를 떠난 것이다. 더 이상 미련이 없거나 본인의 사정이 그만큼 절박했다는 얘기다. 지인을 통해 “그가 ‘너무 지쳤다. 가수활동을 그만두겠다’고 했다”는 이야기만 전해졌다. 2007년 하와이에서 미술 공부를 한다, 2009년 건강이 좋지 않아 귀국했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확인되지 않았다.
그 즈음 김완선이 유일하게 소식을 전하던 팬카페 ‘완선사랑’을 통해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김완선은 몇 차례 거절 끝에 2010년 여름 “번번이 인터뷰 제안을 거절해 미안하다”며 기사화하지 않는 조건으로 기자와 만났다. 그는 하와이에서 미술 공부를 한 것은 사실이며 현재 귀국해 세라믹아트를 배우고 있다, 아직은 배우는 단계지만 실력을 더 키워 전시도 할 생각이라고 근황을 알렸다. 행복해 보였지만 “아직은 어떤 말을 할 마음의 정리가 안 됐다. 준비가 되면 꼭 여성동아를 통해 알리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지난 연말 드디어 인터뷰를 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스타 메이커였던 이모 한백희씨와의 불화 그리고 용서
김완선과의 인터뷰는 그의 공방 근처인 서울 서초구 서래마을 한 카페에서 진행됐다. 작업을 하다가 나온 듯 머리를 질끈 동여맸지만 여전히 아름다웠고 연예인의 포스가 느껴졌다. 주변 사람들이 흘깃흘깃 쳐다봤지만 김완선은 별로 마음을 쓰지 않는 듯했다. 먼저 지난 2005년 갑작스럽게 연예계에서 사라진 이유를 물었다. 그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매니저였던 고(故) 한백희씨와의 갈등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말했다. 한백희씨는 김완선의 이모이자 밤무대 가수였던 인순이를 톱스타로 키운 스타메이커였다. 두 사람은 김완선이 연습생 시절이던 84년부터 고락을 함께 했다. 92년 김완선이 전격 은퇴를 선언하며 외유를 떠나 홍콩과 대만에 체류할 때도 한씨가 그림자처럼 곁에 있었다. 한씨는 김완선을 뒷바라지하려고 인순이와도 결별했다. 그랬기에 두 사람의 불화는 뜻밖이었다.
▼ 공식적인 언급 없이 2005년 돌연 연예계를 떠났다. 그래서 팬들의 궁금증이 더 컸는데.
“은퇴 선언이란 것도 일종의 쇼맨십인데 굳이 그런 절차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치고 혼란스러웠다. 혼자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지 했는데 예상 외로 길어진 것뿐이다.”
▼ 그럼 언론에 알려진 것처럼 은퇴를 생각하고 하와이로 떠난 게 아니었나.
“은퇴는 어렸을 때(92년) 한번 한 걸로 족하다. 그때는 진짜 은퇴라기보다 기획사에서 상품가치를 높이려고 계획한 일종의 ‘작전’ 같은 거였지만. 그때 내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은퇴 자체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 연예인 생활을 하면서 힘든 일을 많이 겪었나보다.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나.
“어렸을 때 어떤 일을 겪으면 기억에 오래 남는다고 한다. 나도 어렸을 때 데뷔해 어린 나이에는 감당하기 힘든 상처와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고 그 상처를 치유하고 앞으로 살아갈 힘으로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블라우스 벤소니. 드레스팬츠 제시뉴욕. 드레이프 저지머플러 엔쥬반. 딥 브라운 부티 레노마by금강제화.
▼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매니저가 이모(고 한백희씨)였는데, 다른 어떤 매니저와 견주어도 게임이 안 될 정도로 실력 있는 분이었다. 그 때문에 나는 연예계에 데뷔하면서 무조건 이모에게 복종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하면 나도 이모처럼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모는 일에서는 완벽했지만, 내게 일한 대가를 전혀 지불하지 않았다. 어릴 때는 돈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만으로 만족했지만 스무 살 무렵부터 하루 두세 시간도 못 자고 일을 하면서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한 번도 이모에게 ‘왜 돈을 안 주나’라고 따진 적은 없다. 이모는 그런 이야기를 꺼내기조차 두려운 존재였다. 그냥 속으로 끙끙 앓았다. 그때 차라리 이야기를 했더라면 어떻게든 결론이 났을 텐데…. 이모에게 불만이 생기기 시작하자 일이 힘들어졌다. 누가 나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하면 쉽게 상처를 받고 점점 자신감이 없어졌다. 일 외에는 취미도, 만나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해소할 만한 기회나 시간이 없어 나 혼자 고립됐다. 그때부터였던 거 같다. 내 자신을 찾고 중심을 잡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 것이. 그 이후 97년 즈음 이모와 결별했지만 나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기획사에 끌려다니다시피 일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2005년, 과감하게 내 시간을 갖자는 생각으로 활동을 접었다. 일을 중단하면서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렵기도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을 때 후회할 것 같았다.”
▼ 이모와는 나중에 화해했나.
“그걸 못했다. 5년 전 돌아가셨는데 그때 화해를 못해 방황이 길어졌다. 용서를 해야 하는지 용서를 받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제는 그 부분에 대해 더 이상 마음의 상처를 갖고 있지 않다. 어떤 사람이 고민이나 원망, 분노 없이 한평생을 살겠나. 내가 그런 삶을 기대했기에 이모에게 배신당했다고 느낀 적도 있지만 지금은 그게 내 인생의 한 부분이었다는 걸 받아들인다. 그러고 이모와 나쁜 일만 있었더라면 그 오랜 세월을 함께 하지 못했을 것이다. 행복하고 좋은 일도 있었고, 그 덕분에 지금의 김완선이 있다는 생각도 든다.”
▼ 그럼 다시 데뷔 때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데뷔 자체가 이모 덕이었는데.
“우리 집이 딸만 다섯인데, 어머니는 여자가 결혼해서 그렇게 사는 게 고달프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어릴 때 어머니가 점을 봤는데 ‘부모와 떨어져 살면 더 잘 될 아이’라고 했다고 한다. 마침 이모가 매니지먼트 일을 하니까 나를 이모에게 데리고 가셨다. 사실 나보다 언니들이 더 예뻐서 이모는 언니들을 점찍었다. 큰언니는 연습까지 하다가 본인이 스스로 재능이 없다고 판단해 그만뒀고, 둘째 언니는 그쪽 일을 처음부터 내켜하지 않았다. 반면 나는 외모도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를 정도로 평범했고 성격도 내성적이었다. 학교 선생님도 내 이름을 못 외울 정도였고 하도 말을 안 해 친구들도 내가 벙어리인 줄 알았다고 한다. 엄마가 그런 내 손을 잡고 이모에게 갔을 때 이모도 ‘쟤는 왜 왔나’ 했다. 그런데 춤을 배우면서 확 달라졌다. 여러 명이 함께 배우기 시작했는데 석 달 후 내가 가르치고 있었다. ‘내게 이런 면이 있었나 싶어’ 나도 놀랐다.”
블랙 니트 원피스, 스터드 장식 미니베스트 박윤정. 스틸장식 뱅글 세트 햄쿤.
▼ 데뷔 초부터 최고의 뮤지션들과 함께 했다. 그것도 이모의 후광이 아니었나.
“1, 2집은 산울림의 베이스 김창훈씨가, 3집은 이장희씨가, 5집은 손무현씨가 곡을 만들었다. 이모는 나와 잘 맞는 분들을 골라 곡을 뽑아주셨고, 그 덕분에 나만의 색깔을 낼 수 있었다. 올 봄 디지털 싱글 앨범을 낼 생각인데 이모가 기획하고 내가 프로듀싱했던 곡이다. 내게는 이번 앨범이 나름대로 이모와의 화해라는 의미가 있다.”
하와이 바람과 사랑에 빠져 지낸 3년
이모와 결별한 이듬해인 2006년, 김완선은 무작정 하와이로 떠났다. 알아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새 삶을 시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 번 해볼까’라는 호기심에서 시작한 미술에 재능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고 하와이대 디지털아트학과에 입학해 정식으로 공부했다. 생전 처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칭찬도 듬뿍 받았다. 그가 하와이에 있는 동안 여러 동료 연예인들의 자살 소식이 전해졌다. 김완선은 혹 지금 안 좋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따뜻한 나라에서 열흘만 지내볼 것을 ‘강추’한다고 했다. 따뜻한 햇볕과 바람을 쐬다보면 모든 걱정과 근심이 눈 녹듯 사라지고 세상 그 어떤 사람도 부럽지 않다는 것이다. 그 역시 그곳에서 지난 세월의 상처를 치유했다.
베이지 풀오버 제시뉴욕. 그레이 더블버튼 재킷 제시뉴욕. 인디고 블루 스키니 데님팬츠 터치. 앵클부츠 도니체티.
▼ 많고 많은 곳 중 하와이를 선택한 이유는.
“친한 친구가 하와이에 살고 있었고, 99년 이모와 헤어지고 나서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갔다가 하와이의 바람과 사랑에 빠졌다. 언젠가는 다시 오고 싶어 ‘하와이에서 살려면 돈이 얼마나 필요한지’ 조사도 했다. 그때 기억 때문에 다시 하와이를 찾은 것이다.”
▼ 바람과 사랑에 빠지다니, 낭만적이다. 그런데 좋은 남자는 만나지 못했나.
“만났을 수도 있겠지만…, (결혼까지) 잘됐으면 한 남자는 20대 때 만난 적이 있지만 잘 안 됐다. 30대 때는 한때 결혼해서 아이 낳고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그렇게 절실하지 않다.”
▼ 20대 때 만났다는 사람은 혹시 연예인인가.
“그쪽은 전혀 아니고, 다 지난 일이다(웃음). 연애라는 게 그런 것 같다. 내가 혼란스러운 상태에서는 혼란스러운 사람을 만나게 된다. 내가 정리되고 똑바로 서면 그런 사람을 만나는 거고.”
▼ 은퇴했을 때 김완선씨의 근황을 아는 지인이 없었다. 연예계 선후배들과 교류가 많지 않은 듯하다.
“탤런트나 배우는 일을 함께 하니까 친해질 기회가 있는데 가수들은 스케줄이 다 다르고 같은 무대에 서도 자기 차례가 끝나면 뿔뿔이 흩어진다. 그럼에도 어울리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매니저가 그럴 만한 스케줄의 여유를 두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과 만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분장실에서도 다른 가수들이 말도 못 붙이게 했다. 솔직히 나도 시간 나면 쉬고 싶지 누구와 만나서 이야기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고 그러다보니 친구 사귈 시기를 놓쳤다. 가장 후회하는 부분 중 하나다.”
▼ 미술은 어떻게 시작했나.
“하와이에서 영어를 배우면서 뭘 할까 생각하다가 디지털아트를 시작했다. 처음엔 재미로 시작했는데 배우면서 ‘살면서 이런 즐거움을 느낄 수 있구나’ 싶을 정도로 행복했다.”
▼ 노래와 미술을 비교하면 어느 쪽이 더 매력적인가.
“노래는 작곡가, 세션맨, 스타일리스트 등 수 없이 많은 사람이 함께 일을 한 다음 그 결과를 내가 보여주는 것이다. 반면 사진이나 미술은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 생각대로 다 할 수 있다. 어느 쪽이 더 매력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렸을 때 미술을 배웠더라면 100% 화가가 됐을 것이다.”
▼ 미술에 재능이 있나보다.
“대학에선 전부 A학점을 받았다. 선생님들도 칭찬을 많이 해주시고 내가 봐도 내 작품이 좋았다(웃음). 사실 칭찬받는 게 그렇게 행복한 일인지 몰랐다. 가수 할 때는 매일 혼만 났고 그 때문에 나는 늘 자신감이 없었다. 무대가 끝나면 혼날까봐 내려오기 싫을 정도였다. 다른 가수나 매니저들은 항상 ‘쟤 또 깨지는구나’라는 불쌍한 시선으로 나를 봤다.”
▼ 당대 최고 가수 김완선이 무대 뒤에서 늘 혼났다니 믿기지 않는다.
“지금 와 생각하면 이모의 전략이었던 것 같다(웃음). 무대에 나가기 전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나를 혼내면서 화를 돋운다. 그런 날은 다른 때보다 월등하게 잘 하는데 이모가 그걸 노린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해서 도움이 된 측면도 있다. 매번 한계를 뛰어넘고 정신력이 강해졌다. 그렇지만 나는 늘 불행하고 못난 아이란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아일릿, 시폰이 매치된 원피스 샐리즈로. 스터드 장식 펌프스 헬레나앤크리스티. 네크리스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러플 장식 실크블라우스 데코. 블랙 트위드 재킷 제시뉴욕. 하이웨이스트 미디스커트 박윤정. 코르사주 카프린햇 코치넬리. 진주, 골드체인장식 네크리스 케이트앤켈리. 진주, 블랙 코르사주가 매치된 롱 네크리스 악세서라이즈. 클러치 엠브루노말리.
▼ 건강이 좋지 않아 하와이에서 귀국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어디가 얼마나 안 좋았던 건가.
“허리 디스크, 목 디스크가 있었는데 악화돼서 이곳저곳이 저리고 밤에 잠도 잘 못 잤다. 하와이가 나에게 잘 맞고 좋았지만 스트레스도 컸다.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게 편하기도 했지만 갑자기 투명인간이 된 것 같은 불안함도 있었다. 그리고 생활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은행에서 돈을 찾고 주유소에서 기름 넣는 것 같은 사소한 일도 처음엔 너무 힘들었다. 나는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도 다른 연예인보다 스스로 많은 일을 하려 노력한 편이지만 그럼에도 생활인으로서의 기초가 많이 부족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너무 많이 받으면서 살았구나, 라는 반성도 많이 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그런 스트레스도 없고 물리치료도 꾸준히 받아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
돌고 돌아 제 자리, 그래도 공백 통해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었다
최근 춤과 노래를 병행하는 걸그룹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그들의 원조 격인 김완선에 대한 재평가가 활발하다. 한창 활동할 당시에는 가창력 논란에 시달리고, 댄스가수라고 홀대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시대를 앞서간 아티스트’라는 평이 대세다. 전성기가 한참 지나서야 후한 평을 받는 게 살짝 억울할 것도 같다고 하자 그가 빙긋 웃었다. 이어 “가끔 ‘왜 나는 이렇게 일찍 태어난 거야’라고 농담도 한다. 하지만 다시 태어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건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김완선은 오는 3월 디지털 싱글 앨범으로 다시 팬들 앞에 설 예정이다. 그때는 분노와 욕심을 덜어낸 자리를 담백한 열정으로 가득 채운 새로운 김완선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 그간 공백이 컸는데 경제적인 문제는 어떻게 해결했나. 연예인은 품위 유지에 돈이 많이 들지 않나.
“가수 생활 할 때 번 돈이 조금 남아 있다. 큰돈을 벌지 못했기 때문에 명품백이나 보석을 샀더라면 일 년도 안 돼 다 없어졌을 액수지만 워낙 사치하는 성격이 아니라 지금까지 쓰고 있다. 하와이에 있을 때도 티셔츠 두 벌, 청바지 두 벌로 2년을 살았다. 그래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물론 럭셔리한 생활을 좋아하지만 분수에 맞게 사는 게 마음이 편하다. 능력도 안 되면서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 두려워 화려하게 치장하는 건 내 스타일에 맞지 않다.”
▼ 이번 컴백에 경제적인 이유도 있나.
“그렇진 않다. 돈을 벌기 위해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건 아니다. 음반 제작 프로듀싱 모두 누구의 투자도 받지 않고 내 돈으로 한다.”
▼ 컴백을 앞둔 지금, 많이 긴장될 것 같다. 만약 반응이 시큰둥하다면 어떨 것 같은가.
“기대를 많이 했는데 반응이 좋지 않다면 물론 슬플 것이다. 가수란 직업이 사랑과 관심을 받아야 하는 일이지만, 반응이 나쁘다고 해서 절망하거나 ‘이제 다시는 못 하겠다’는 마음을 갖진 않을 거 같다. 한 두 사람이라도 내 노래를 좋아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것이다.”
▼ 이렇게 다시 컴백할 바에야 공백 없이 계속 활동하는 게 나을 뻔 했다는 생각은 안 하나.
“소설 ‘연금술사’를 보면 주인공이 돌고돌아 결국 제 자리에서 보물을 찾는다. 허송세월한 걸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동안 그 사람의 인생이 많이 바뀌었다. 나도 공백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조금은 알게 됐다. 한때 (활동을 안 하고 잊히는 것에 대해)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걸 잘 참아낸 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다시 활동을 시작하면서 ‘소녀시대’ 같은 폭발적인 인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제 비로소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게 나에게는 인기보다 더 중요하다. 예전에는 욕심이 앞서 남들이 어떻게 하는지, 비교하고 상처 받았지만 이젠 나의 만족과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됐다.”
■ 제품·소품협찬·금은보화(www.gebh.co.kr) 도니체티(02-546-7764) 엔쥬반(02-546-4270) 데코(02-3479-1899) 레노마by금강제화(02-3489-5792) 엠브루노말리(02-3489-5792) 박윤정(02-3445-5431) 벤소니(02-546-0105) 헬레나앤크리스티(02-465-1059) 샐리즈로(www.sallyslaw.com) 악세서라이즈(02-551-5685) 제시뉴욕(02-3406-2300) 코치넬리(02-3442-0220) 케이트앤켈리(02-337-1514) 터치(02-3783-5645) 햄쿤(www.hamkoon.com)
■ 헤어·지한(이경민 포레 청담점 02-549-7772)
■ 메이크업·이경민(이경민 포레 청담점)
■ 코디네이터·유민희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