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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밋빛 인생’으로 제 2의 전성기 맞은 최진실

“내 마음 속을 읽은 드라마…. 대본 보고 울고 촬영하며 울고 방송 보며 또 울었어요”

기획·최호열 기자 / 글·황호택‘동아일보 논설위원’ / 사진·조영철 기자

2005. 11. 01

이혼의 아픔과 광고주와의 소송 등 시련을 뒤로하고 방송에 복귀, 드라마 ‘장밋빛 인생’으로 재기에 성공한 탤런트 최진실. 그가 심야 인터뷰를 통해 그동안의 마음고생과 맹순이를 연기하며 느낀 감회, 싱글맘으로서의 심경 등을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장밋빛 인생’으로 제 2의 전성기 맞은 최진실

KBS드라마 ‘장밋빛 인생’은 최진실(37)의 라이프 스토리와 닮은꼴이다. 맹순이(최진실)는 세 살 연하의 남자와 결혼해 딸 둘을 두었다. 남편 반성문(손현주)은 다른 여자와 정분이 나 이혼을 요구한다. 맹순이가 엄마(김해숙)에게 “남편과 돌아설 수는 있지만 자식을 버릴 수는 없잖아요”라고 울부짖는 장면은 맹순이의 이야기인지 최진실의 이야기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지난해 프로야구선수 조성민(32)과 이혼전쟁을 벌이던 시기에 방영된 ‘장미의 전쟁’은 시청자에게 외면 당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이혼 때문에 CF를 찍은 건설사로부터 ‘기업 이미지에 상처를 주었다’는 이유로 소송까지 당했다. 최진실은 인터뷰에서 “‘장미의 전쟁’ 이후 지난 1년간이 인생에서 가장 슬펐던 시기”라고 했다.
그를 만나기 위해 서울 서초구 잠원동 한강변 빌라의 초인종을 누르자 어머니 정옥숙씨(58)가 문을 열어주었다. 나이보다 젊어 보였다. 젊은 시절에는 꽤 미인이었을 것 같다. 최진실은 어머니를 닮았다.
처음엔 어머니 뒤에 서 있는 최진실을 알아보지 못했다. ‘TV에서 친숙해진 탤런트는 이웃집 사람 같다’는 말이 실감났다. 그는 막 촬영을 마치고 돌아와 머리에 두건을 쓰고 있었다. 밤 9시45분경 그와 마주 앉아 자정을 넘기는 심야 인터뷰를 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밤늦게 끝나는 촬영 때문에 좀처럼 시간이 잡히지 않았다. 그는 촬영 중엔 휴대전화를 받지 않았다. 문자 메시지를 남겨놓으면 자정 무렵에 답장이 왔다.
첫 번째 메시지(밤 11시45분)= 전화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촬영 중이라 아직 확실한 시간이 안 나와서…. 대략 목요일 오후 늦은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낼 전화 드리겠습니다.
두 번째 메시지(밤 12시)= 넘 슬퍼. 나두 운다. 대본 보구 울고, 찍을 때 울고, 방송 보면서도 울고…. 보고 싶다. 드라마 끝나고 빨랑 보자.
첫 번째 메시지는 글자 수의 제한 속에서도 예의를 깍듯이 갖추었는데, 지방 촬영장에서 보낸 두 번째 메시지는 숫제 반말이었다. 문자 메시지 이야기를 꺼내자 가수 엄정화에게 보낼 메시지를 잘못 보낸 모양이라고 했다. ‘메시지 발송 사고’였던 셈. 엄정화가 드라마를 보다 전화를 걸어 “언니 너무 슬퍼”라고 말해 답신으로 보낸 문자였다며 “어쩐지 정화한테서 답장이 안 온다 했더니 그게 또 그쪽으로 갔군요. 기계에 약해 늘 그래요” 하며 웃었다.


미국에 머물 때 드라마 출연 제의받고 귀국, 첫 미팅에서 출연 결정
-연기를 안 하고 쉬는 1년 동안 어떻게 지냈습니까?
“두 아이들 데리고 여행 다녔어요. 아침에 일어나 둘째 기저귀와 두 아이 옷을 챙겨서 가까운 양수리에 가거나 가평·용평 등지로 돌아다녔죠. 떠돌아다녔다고 할까요. 가을에는 밤 줍고, 봄에는 아이들한테 민들레와 아카시아 이름을 가르쳐주는 것이 좋더라고요.”
그는 다섯 살 연하인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들 환희(5)와 딸 수민(3)을 두었다.
-‘장밋빛 인생’의 주연을 맡은 과정이 궁금하군요.
“미국의 친구 집에 가 있었는데 ‘장밋빛 인생’ 제작사인 팬엔터테인먼트 사장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그래서 저로 확정이 된 거냐고 물어봤더니 ‘거의 압축돼가는데 들어와서 작가와 감독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해요. 전화 받고 사흘 만에 귀국해 문영남 작가를 만났는데, 떨리더라고요. 첫 미팅에서 결정을 다 했어요. 작가와 감독이 저한테 힘을 주었죠. 작가가 ‘정말 두 아이의 엄마로 보여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촬영현장에 나왔을 때 다 몰라봤으면 좋겠다. 예전에 최진실이 갖고 있던 걸 다 버려라. 이 작품을 하는 동안은 철저히 망가졌으면 좋겠다. 그것만 약속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장밋빛 인생’으로 제 2의 전성기 맞은 최진실

최진실은 1년 만에 출연한 드라마 ‘장밋빛 인생’에서 외도한 남편을 둔 아내의 고통을 사실적으로 보여주었다.


-‘장밋빛 인생’의 시놉시스가 본인의 라이프 스토리하고 비슷해요. 작가가 미리 최진실씨를 여자 주인공으로 설정해놓고 쓴 건가요?
“그건 절대 아니고요. 작가가 몇 년 전부터 어느 정도 완성해서 가슴에 안고 계셨던 작품이라고 해요. 저 말고도 몇몇 주연 후보가 있었어요. 저 역시 제 이야기와 비슷해서 오해하고 기분 나빴던 적도 있었어요.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하고 생각했죠. 남편에게 이혼 요구를 당하는 대목이 비슷하지만 맹순이가 암 선고를 받고 투병생활을 해나가는 부분은 다르죠.”
영화 ‘마누라 죽이기’와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 최진실과 함께 출연했던 박중훈은 “‘장밋빛 인생’에 나오는 최진실의 연기에 생활의 때가 묻어 있었다. 깊어진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연기를 했다”라고 평했다.
“아무래도 상상력만으로 연기할 때와 겪어본 일을 연기할 때는 다르죠. 이번 드라마를 하면서 많이 울었어요. 정화에게 보내려 했던 문자 메시지 그대로예요. 대본 보면서 울고, 촬영하면서 울고, 방송 보고 울죠. 작가가 어떻게 이 대사를 썼을까, 어떻게 내 마음을 들여다봤을까 싶을 정도예요. 우리 사회에서 이혼의 아픔을 겪는 가정이 많죠. 과정이야 어떻든 마음은 비슷하다고 봐요. 지금까지는 어느 정도 경험한 부분이 많아 감정이입이 잘 됐지만 이제부터가 문제예요. 암 선고를 받고 죽음과 맞서 싸워나가는 대목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라 걱정이 돼요.”
-남편 반성문이 외도한 것을 알고 침대에서 뛰어내리면서 이단옆차기에 들어가는 것도 실제 상황에서 써먹어본 건가요.
“아뇨. 언제 해봤겠어요. 초등학교 때 태권도를 배운 적은 있었죠. 지문에 ‘맹순이 이단옆차기’라고 써있었어요. 눈 딱 감고 하니까 되더라고요. NG 없이 한 번에 찍은 거예요.”
기자가 “1년 전 ‘장미의 전쟁’은 왜 실패했습니까. 그때 이혼 과정이 너무 시끄러워서 인기를 잃은 건가요”라고 묻자 그는 ‘시끄럽다’는 표현을 따라 하며 깔깔 웃었다.
“사생활로 인해 너무 시끄러웠기 때문에 보시는 분들 또한 극중 인물로 보기보다는 ‘최진실’로 보았겠죠. 지금은 그냥 맹순이로 봐주시는데…. 제가 조급했던 거 같아요. 그때는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대다수 여배우가 30대에 접어들면서 아무래도 치고 올라오는 후배 연기자들을 의식하며 ‘어떻게 하면 외적으로 예쁘게 보일 수 있을까’에 집착하게 되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 내적인 면을 채울 생각은 못한 채 그런 부분에만 너무 집착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사진기자가 와서 촬영하는 동안 집을 둘러봤다. 정옥숙씨는 “분양면적은 1백10평이지만 실평수는 70평 내외”라고 말했다. 여러 장 걸려 있는 최진실의 가족사진에서 전 남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치운 것 같았다. 식당 유리장에는 코냑 ‘루이 13세’와 와인이 10여 병 들어 있었다.


“너무 고생하면서도 저와 동생을 버리지 않고 키워준 엄마에게 감사해요”
‘장밋빛 인생’으로 제 2의 전성기 맞은 최진실

최진실은 드라마 초반 맹순이와 비슷한 경험을 해 감정이입이 잘 됐다고 한다.


그를 CF 모델로 썼던 건설사가 제기한 30억원의 손해배상소송은 1심에서 최진실에게 건설사에 2억5천만원을 물어주라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피고 최씨가 부부간 불화에 대해 언론 인터뷰에 응하고 가정 파탄을 드러낸 것은 혼인생활의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기보다 오히려 장애를 확대시킨 행동으로 보인다. 이러한 행동은 건설사의 주택분양 사업과 강한 연상작용을 일으키면서 기업 이미지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음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이 판결에 대해 여성단체들이 이혼녀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반영한 것이라고 비판하던데요.
“판결에 대해서는 원고, 피고 양쪽 다 불만이 있는 거죠. 아마 연예인 중에서 제가 가장 시끄럽게 이혼했을 거예요. 이혼서류에 도장을 안 찍어주고 시간을 끌었던 이유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였어요. 가정보다 일을 먼저 생각했다면 더 시끄러워지기 전에 빨리 이혼하는 선택을 했을 테고, 그러면 이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을 거예요.

‘장밋빛 인생’으로 제 2의 전성기 맞은 최진실

아이들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고 싶었을 뿐인데도 그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 때문에 소송까지 당하니 억울한 생각이 들어요. 저는 심각한 가정폭력을 겪은 사람입니다. 겪어보기 전엔 몰랐는데 제가 그런 입장이 돼보니 너무 억울한 거예요. 판결대로라면 집안에서 그런 문제가 생겨도 맞아 죽을 때까지 바깥으로 나오지도 말고, 말도 하지 말아야 하는 건가 싶어요. 이게 선례가 될 수 있죠. 후배 연예인들도 결혼을 할 텐데 정말 남편한테 맞아 죽어도 밖에 나와서 티도 내지 말라는 건가요?”
최진실이 어린 시절 가정형편이 어려웠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그가 가정적으로 행복했던 것은 중동 근로자로 나간 아버지의 송금으로 집을 장만한 중학교 때였다. 그러나 아버지가 귀국해 사업을 하다가 실패해 집을 날렸다. 고등학교 2학년 어느 날 귀가하니 집이 팔리고 없었다. 갈 때가 없어 동생과 함께 고모가 경영하던 레스토랑 지하 단칸방에서 살았다. 점심을 못 싸 학교에서 친구들 도시락을 나누어 먹었다. 어머니가 포장마차를 해서 살림을 꾸렸다. 고2 때 친구들과 길을 가다 포장마차를 끌고 오는 어머니를 멀리서 보고 창피한 생각에 옆길로 피한 일이 있다.
“그때는 예민한 나이였기 때문에…. 엄마가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지금도 항상 감사해요. 엄마가 사는 데 지쳐서 우리를 버리고 갈 수도 있었을 텐데…. 끝까지 엄마가 동생과 저를 붙들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오늘이 있었습니다. 엄마가 자신의 삶을 택해서 떠났더라면 지금의 저희가 어떻게 됐을지 생각만 해도…. 저도 결혼하고 아기를 낳아보고 하니까 엄마가 여자로서 혼자 보낸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더 고마움을 느끼죠. 이제는 엄마한테 좋은 남자가 생겼으면 하는 생각도 있어요.”
-아버지 없는 슬픔을 자식들한테 대물림하기 싫어 이혼을 거부했다고 말한 일이 있던데요. 아버지가 언제 돌아가셨습니까.
“저희 아버지, 안 돌아가셨어요. 엄마하고는 일찍부터 생활을 같이 안 했죠. 따로 생활했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나가셨어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까지 해야 하나요? 한때는 아버지를 미워했죠. 그래도 자식이니까 완전히 단절하지 않고 아버지도 왔다 갔다 하시라고 하죠. 제 결혼식 때도 오셨어요.”
-동생 진영과는 어떻게 지냅니까.



“‘장밋빛 인생’의 맹순이 맹영이 자매처럼 저희 남매는 사이가 좋아요. 우리 둘은 어려서부터 ‘이 세상에 둘밖에 없다’라는 생각을 하며 서로 끌어주고 아껴주었죠. 싸우면서 정이 들었어요. 지금은 서로가 버팀목이고 그늘이 돼준다고 생각해요. 촬영하면서도 동생한테 전화해 ‘뭐 하니?’ 하고 물어요. 제가 수원 세트장에서 밤샘 촬영할 때 통닭 50마리 사들고 왔더라고요. 참 든든했어요. 모두에게 인사하고 스태프들 어깨 두드려주고 그러더라고요. 정말 고맙죠. 예전엔 가끔 툭탁거리며 술도 함께 마셨죠. 지금은 동생이 저 술 마시는 거 싫어해요.”
-전성기 때는 몇 병까지 마셔봤습니까.
“소주 3병 정도. 이것저것 다 마시죠. 소주 먹다 양주도 먹고. 저는 ‘소맥’이 좋더라고요. 맥주에 소주 타 마시는 거. 아이 하나씩 낳을 때마다 술이 팍팍 줄더라고요. 첫째 낳고는 1병 마시면 취하고, 둘째 낳고 나서는 반 병 마셔도 취하고….”
-유리장에 와인이 많군요.
“촬영이 아침 6시쯤부터 시작하면 보통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메이크업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긴장이 돼서 잠이 잘 안 와요. 와인을 마시면 잠이 잘 와요. 한두 잔 마셔도 잠이 안 오면 계속 마시다 취한 상태로 촬영장에 가서 혼난 적도 있어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엄마가 됐을 때
최진실은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남들처럼 학원에 다닐 수 없다 보니 미대 진학에 실패했고, 고교를 졸업한 지 얼마 안돼 모델 활동을 하고 있던 동생 최진영의 소개로 CF에 발을 디뎠다.
“그때는 대학에 대한 미련이 없었어요. 돈이 필요했죠. 부잣집으로 시집가지 않는 한 엄마 고생 안 시키려면 돈 버는 지름길이 연예인이라고 판단했어요. 처음에는 돈을 벌려고 했던 건데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게 됐죠. 그때는 정신없이 바빠 공부에 대한 갈증이나 내적인 부분을 채워야겠다는 생각을 못했어요. 이제 이렇게 엄마가 되고, 조금 있으면 40대에 접어드는데, 더 늦기 전에 공부를 하고 싶어요. 다른 공부가 아니라 좋아하는 연기 공부를 하고 싶어요. ‘장밋빛 인생’이 저한테 많은 것을 가르쳐줬죠. 저의 밑바닥이 보이는 거예요. 감정을 몰입해 더 열심히 하고 싶어요. 연극영화과에 가서 발음부터 다시 배우고 싶어요.”

‘장밋빛 인생’으로 제 2의 전성기 맞은 최진실

지난 1년간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다고 말한 최진실은 지금은 고통에서 많이 벗어난 듯 여유로워 보였다. 지난 8월 기자간담회 때 모습.


-90년대에는 연예인 중에서 종합소득세 납부 랭킹 1위를 여러 차례 했더군요. 그 돈을 모두 저축했으면 지금은 꽤 큰돈이 모였겠네요.
“실제로 받는 금액보다 더 많은 것으로 보도되는 일이 있어요. 1억원 받아놓고 5억원 받았다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라이벌 관계에 있는 연예인이 신문에 5억원 받았다고 나오면 다음날 10억원 받았다고 하는 거예요. 말로만 올리는 것이죠. 제가 CF 모델료와 영화·드라마 출연료로 지금까지 1백억원은 받았을 것이라는 말이 있는데, 받는 것만 합하면 그렇게 될 수 있죠. 그런데 종합소득세의 세율이 40%예요. 1억을 벌면 매니저 비용 30%를 떼고 거기서 다시 40%를 빼보세요. 실질적으로 남는 금액은 3천만원 정도 돼요.”
-순수하게 본인을 위해 쓰는 용돈은 얼마나 됩니까.
“요즘은 촬영 나가니까 승용차 기름값하고 세 끼 밥 먹는 돈 정도죠. 먹는 건 잘 먹어요. 기가 좀 떨어졌다 싶으면 삼계탕이나 삼겹살을 먹어요. 보신탕도 가끔 먹어요. 아버지가 좋아하셔서 어렸을 때 저는 그게 보신탕인지도 모르고 먹곤 했죠.”
그는 92년 ‘저축의 날’에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12개 통장에 2억원이 들어 있었다. 돈은 어머니가 관리했다.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재테크는 할 줄 모르고 버는 대로 통장에 넣었다고 한다. 평소 생활태도도 헛돈을 쓰지 않아 ‘짠순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다.
“하도 없이 살다 보니까 돈이 목표였던 시절이 있었죠. 이제는 돈보다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행복하구나 하는 걸 절실하게 느껴요. 어쩌다 ‘최진실’ 하면 돈에 관한 이미지가 떠오르게 되었는데, 10년 넘게 활동하면서 그런 부분에서 ‘내가 잘못했구나’ 하고 생각해요. 거품이 있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제가 지금 어려운 건 아니지만 밖에서 생각하는 것만큼 쌓아놓고 있지는 않아요. 저도 가장이잖아요. 20대에는 엄마와 동생을 위해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지금은 아이가 둘입니다. 재산을 물려줄 생각까지는 안 하지만 어쨌든 아이들한테 부모로서 기본적으로 해줘야 할 부분이 있잖아요. 남편에게 기대면서 살 수 있으면 불안한 마음이 덜할 텐데 혼자서 아이들을 다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저도 앞이 캄캄할 때가 있어요. 어렸을 때 하도 고생하고 자라다 보니까 아이들만은 고생하지 않고 컸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살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과 가장 슬펐던 순간은요?
“가장 기뻤을 때는 연예인이 됐을 때도 결혼했을 때도 아니고 엄마가 됐을 때에요. 엄마가 되니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더라고요. 전에는 참 이기적이었죠. 아이를 낳고 나서 감사하는 마음을 알게 됐고, 세상이 정말 아름답게 보였어요. 모든 것이 정말 많이 달라지더라고요. 가장 슬펐을 때는 혼란스러운 시간이 다 끝나고 마치 폭풍이 왔다 간 다음에 잔잔한 바닷가같이 됐을 때였죠. 저 혼자 이 집안에 남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1년이란 시간이 정말 너무 잔인하고 힘들었죠.”
-지금 이 순간 인생은 살 만한가요.
“뭐라고 말해야 하나. 30대 인생은 너무 힘들었어요. 결혼했고, 이혼했고, 다시 연기자로 복귀했죠. 개인적으로 이렇게 굴곡이 심했던 적은 없었죠.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거 같았어요. 그렇지만 절망 뒤에 바로 희망이 있어요. 하나님께 원망의 기도를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자꾸 원망의 기도를 하다 보니까 나중엔 감사의 기도로 바뀌더라고요. ‘차라리 이 고통을 남편을 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아이들을 통해 주셨다면 저는 정말 죽었을 겁니다’ 하고요. 그래서 절망으로 시작했던 기도가 나중엔 ‘하나님, 다시 손 잡아주시고 저에게 희망을 주실 거죠’라는 내용으로 바뀌었어요. ‘장밋빛 인생’의 시청률이 40% 넘는다기에 먼저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어요. 하나님이 정말 제 손을 옆에서 잡아주는 것 같아요.”


“아이들 아빠도 잘됐으면 좋겠어요”
-‘장밋빛 인생’에서처럼 아이 낳고 살다가 남자가 바람나 이혼을 요구하는 경우가 현실에서 그렇게 많을까요.
“그런 일들이 생각보다 많아요. 결혼한 여성들은 맹순이가 가진 짐들 중에서 하나는 짊어지고 사는 것 같아요. 맹순이는 ‘불행의 종합상자’죠. 사기 당하고, 남편한테 이혼 요구 당하고, 암 걸리고. 또 아들 못 낳아 시어머니한테 구박 당하고…. 맹순이하고 똑같은 경우로 이혼 요구를 당한 경험이 있어 분통을 터뜨리는 분들도 계실 거예요. 그래서 공감대가 형성되는 거 아닐까요. ‘장밋빛 인생’ 1회부터 이혼 요구를 당해 결국은 12회에서 이혼을 해주는데, 그 안에 서로한테 상처주고, 이단옆차기 날리고, 빌어도 보죠. 그게 맹순이 얘기만은 아닌 것 같아요. 제가 울면서 촬영하듯 시청자들도 울면서 보시는 것 같아요.”

‘장밋빛 인생’으로 제 2의 전성기 맞은 최진실

-이혼했다가 재결합하는 부부들도 있지요.
“요즘은 그런 일도 있는가봐요. 저는 구세대인지 아직 그런 대목을 이해하지 못해요.”
-최근 동아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 사람은 야구 잘할 때 살아 있고, 저도 드라마를 할 때 아름다운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아이라는 공통분모가 남겨져 있습니다”라고 말했더군요. 조성민 선수를 용서하는 건가요.
“용서는요. 용서라기보다는 아이들 아빠니까 잘됐으면 하는 마음이죠. 어쨌든 그 사람이 없었다면 두 아이가 어떻게 태어났겠어요. 그래도 저한테 보물 같은 자식을 주었으니 고마운 일이죠. 저는 살아가면서 아이들에게 아빠의 존재에 대해 부인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그가 잘 됐으면 좋겠어요.”
-친권은 포기했지만 조 선수 쪽에서 자식을 만나볼 권리는 있는 거죠.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제 마음이 이런데 매일이라도 못 만나겠어요? 말이 안 통하는 상황에서 이혼을 요구하는 남편에게 맹순이처럼 그 사람이 진짜 해줄 수 없는 것들을 요구할 때가 있어요. ‘좋아, 이혼해 줄 테니까 뭐 갖고 와’ 하고 그 사람이 해줄 수 없는 것들을 요구해요. 강한 부정이죠. 여자들이 이혼할 때는 보통 나중에 자식들 다 큰 다음에 복수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을 거예요. 저도 한낱 인간인데 왜 그런 감정의 기복이 없었겠어요. 미움이나 슬픔이 왜 없었겠어요. 이런 거 저런 거 다 생각하다 최종적으로 얻은 결론은 그 사람과 나의 관계는 여기까지가 끝이고, 아이들을 생각하면 둘 다 부모로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죠. 제가 뭐라고 그 사람을 용서하고, 그 사람이 뭐라고 저를 용서하겠어요.”
-두 분이 ‘전쟁’을 벌일 때 조성민 선수가 최진실씨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한 게 더러 있더군요. 그중에는 술, 담배 이야기도 있고….
“글쎄요, 그 사람의 말이 뭐가 참이고 거짓인지 얘기하고 싶지 않고요. 앞으로 살아가면서 긴 시간 동안 저를 봐주신다면 차차 알게 되겠죠. 술 마시고 담배 피운 것에 대해 변명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 사람이 저와의 짧은 결혼생활을 통해 그게 불만이었다면 불만이었겠죠. 그걸 제가 모르고 있었다는 게 바보죠. 만약 그걸 제가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그 부분을 다 고치고 잘 했을 텐데, 왜 몰랐을까 하고 후회하죠. 그냥 저는 어쨌든 원망도 없고, 다만 그때는 화가 났지만 지금은 이해하고 싶어요. 진실과 허위를 가리자면 또 하나의 싸움밖에 안돼요. 그 사람이 이 기사를 읽는다면 자기도 하고 싶은 말이 있겠죠. 이제는 싸움 그만하고 싶어요.”
-진실씨처럼 예쁘고 귀엽고, 모성애가 강하고, 돈 잘 버는 여성이 어디 있겠어요. 조 선수가 굴러들어온 복을 발로 찼어요. 지금쯤 후회하지 않을까요.
“후회 안 할 거예요. 그 사람 성격을 잘 아는데 정말 싫은 건 죽어도 못하는 사람이었죠. 그 사람과 저의 인연은 그게 다였던 것 같아요.”


“연기와 결혼했다 생각하고 혼자 두 아이 꿋꿋이 키울 거예요”
조성민 선수는 스물일곱에 결혼했다. 그러나 어린 남자도 최진실을 유명하게 만든 CF 카피처럼 ‘여자 하기 나름’은 아니었다.
-남자는 대개 30대에 결혼하면 마누라를 아낄 줄 아는데 어려서 결혼하면 아낄 줄 모른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혹시 최진실씨를 사랑하고 아낄 만한 마음의 여유를 가진 사람을 만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까?
“아예 없어요. 정말 저의 남은 인생은 연기와 결혼했다고 생각할 겁니다. 두 아이만 꿋꿋이 키우겠어요. 아이들한테 또 다른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요. 나중에 아이들이 커서 ‘정말 거추장스러우니까, 남자 좀 사귀세요’라고 말할 때까지는 아이들만 바라보고 편안히 살겠습니다.”
-묻지 않아서 못한 말이 있으면 해보세요.
“오히려 너무 많은 말을 한 것 같아 사실 불안해요. 그동안 말하기가 싫었어요. 말로 인해 너무 다쳤죠. 사람들 입이 제일 무서운 거 같아요. 물론 제 입도 무섭지만. 어떤 계산도 없이 제가 겪었던 한 부분을 솔직하게 다 말씀드린 거니까 독자 분들도 거기서 더하지도 빼지도 말고 그렇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얘기를 나누다 보니 전 남편에 대한 얘기를 너무 많이 한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요. 조 선수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 말만 했어요. 전 남편을 욕하라는 건 아니고, 이런 부분은 나로서도 어려웠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변명처럼 들릴까봐 싫어요. 어쨌든 열심히 재기하려 하는데 그 사람한테도 힘이 됐으면 좋겠어요. 환희는 지금도 아빠를 아주 좋아해요. 아빠가 야구선수인 것도 알고. 둘째는 ‘장밋빛 인생’의 손현주씨를 아빠로 알아요. TV에서 손현주씨를 보고 둘째가 ‘아빠 나왔다. 나, 아빠 좋아’라고 말하면 환희가 ‘아빠 아닌데’라고 말하죠.”
-환희는 드라마와 현실을 구분하는군요.
“아니, 아빠를 알죠. 첫째는 아빠에 대한 기억이 있는 거고, 둘째는 제가 임신했을 때 아빠가 떠나서 기억이 없으니까 손현주씨를 아빠로 알아요. 둘째는 할아버지를 많이 닮았어요. 환희는 자기 아빠를 닮았죠. 둘째 수민이도 입 부위가 아빠를 닮았죠. 처음 낳았을 때는 너무 못생겨 깜짝 놀랐는데, 지금은 훨씬 예뻐졌어요. 첫째보다 둘째가 더 예뻐요. 딸이 엄마 마음을 더 잘 알아주고 이해해주지요. 딸은 더 애틋하게 안기는 것 같고, 환희는 사내라고 거칠어요.”
“연기자들은 대본 보며 말하는 버릇이 붙어 그냥 대본 없이 말하려면 잘 못한다”며 걱정한 그는 인터뷰를 마친 후 “지금 저 말고도 이렇게 살아가는 ‘싱글 맘’ 여성들이 많으니까 그분들이 위로받고 힘을 낼 수 있게 써달라”는 바람을 피력하며 문간까지 배웅을 나왔다. 자정이 훨씬 지난 시간인데도 모친이 자지 않고 있다가 따라 나왔다. 똑같이 남매를 낳고 남자로부터 아픔을 당한 두 모녀가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 모습이 집에 돌아올 때까지 마음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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