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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jab

히잡 규제가 촉발한 이란 여성 인권 해방 운동

성일광 서강대 유로메나 연구소 책임연구원

2022. 10. 22

22세 여성이 히잡 사이로 머리카락이 지나치게 튀어나왔다는 이유로 경찰에 의해 의문의 죽임을 당했다. 경제난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불만이 쌓여 있던 민중이 폭발했다. 이란을 뒤흔들고 있는 히잡 시위에 대해 짚어봤다.

이란의 가을이 붉게 물들고 있다. 여성 인권 보장과 자유를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자들이 흘리는 피로 말이다. 체포와 죽음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인종이 다른 이란 여성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단결하고 있다.

이번 반정부 시위의 도화선은 22세 쿠르드 출신 마흐사 아미니가 테헤란을 방문했다가 악명 높은 ‘도덕 경찰’에 검거되면서 불이 붙었다. 아미니는 스카프에서 머리카락이 너무 많이 튀어나와 복장이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교육 센터로 보내졌다. 이후 혼수상태에 빠진 뒤 3일 후인 9월 16일 사망했다.

아미니의 죽음에 대한 항의 구호는 “독재자에게 죽음을” “우리의 치욕은 우리의 무능한 지도자이다” “우리는 이슬람 공화국을 원하지 않는다” 등 정권을 축출하라는 외침으로 빠르게 발전했다. 시위의 슬로건으로 해시태그 #WomanLifeFreedom이 등장했다.

히잡(hijab)으로 알려진 머리 스카프는 이란에서 여성 인권 상황을 대변하는 상징물이다.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헐렁한 옷을 입고 머리를 가리도록 요구하는 복장 규례는 1979년 이란혁명 이후 만들어졌다. 이 규례는 수십 년 동안 이란을 통치하는 신정 정치의 기둥 역할을 하며, 개혁을 지향하는 이란인들을 괴롭혀왔다. 이번 시위는 복장 규정을 강요당하길 거부하는, 이란 최고지도자의 정책에 반대하는 이란 여성들의 첫 번째 행동이다.

정권 교체 이후 강화된 여성 복장 규정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을 계기로 이란 내 반정부 시위가 발발했다(왼쪽). 지난해 8월 취임한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은 보수적인 복장법을 전면 시행했다.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을 계기로 이란 내 반정부 시위가 발발했다(왼쪽). 지난해 8월 취임한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은 보수적인 복장법을 전면 시행했다.

이번 반정부 시위의 배경에는 그간 실정을 연속해온 이란 정부에 대한 불만이 깔려 있다. 개혁파 정치인 하산 로하니 대통령 재임 기간에 도덕 경찰은 여성 복장 규정을 엄격히 단속하지 않았다. 독실하고 보수적인 도시, 곰에서 젊은 여성들이 머리카락을 날리며 걷는 모습도 관찰됐다. 그러나 지난해 새로 취임한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은 7월 “이란과 이슬람의 적들”이 “사회의 종교적 기반과 가치를 공격 목표로 삼고 있다”고 주장하며 보수적인 복장법을 전면 시행할 것을 촉구했다.



이에 따라 이슬람 규칙 위반을 감시하기 위해 공공장소를 순찰하는 도덕 경찰은 히잡 착용 규정을 강화했으며, 곰 중심부에 있는 카페 3곳은 히잡을 착용하지 않은 손님이 있다는 이유로 문을 닫는 일도 벌어졌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널리 공유된 영상에서 한 어머니는 히잡 규정을 어긴 딸을 태운 차량 앞에 몸을 던지며 “딸이 아프다. 데려가지 말기 바란다”고 절규했다.

올해 7월에는 28세 여성 세피데 라슈노가 히잡 착용을 거부한 채 시내버스에 올라 히잡을 쓴 다른 여성과 언쟁을 벌이던 중 경찰에 체포됐다. 이후 국영 TV에 출연해 공공장소에서 히잡 착용을 거부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 외부 전문가들은 한 달여간 구금돼 있던 그녀의 행동을 ‘강제 자백’으로 보았다. 실제로 방송 출연 전 복부 구타로 인한 내부 출혈로 라슈노가 구금 시설에서 병원 응급실로 이동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000년 이후 이란의 반정부 시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9년 부정 선거, 2017년 경제난 악화에 항의하는 시위가 있었다. 특히 2019년에는 유가 인상에 격분해 거리로 뛰쳐나온 반정부 시위대를 이란 보안군이 무자비하게 진압하면서 무려 1500여 명이 사망한 적이 있다.

현재 이란의 경제난은 심각한 수준이다. 미국과의 핵 합의가 중단된 이후 지난 4년간 경제제재로 리알화 가치가 10분의 1 수준으로 폭락하면서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다. 오염된 물과 빵 가격 인상에 이란 중산층의 불만은 가중됐고, 이제 달걀과 닭고기는 사치품이 됐다. 수백만 명의 이란인은 이미 빈곤선 아래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더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이후 2년간 공식적인 사망자만 14만 명 이상이다. 이러한 경제적 곤궁과 정치적 억압이 이란 시민들의 분노를 일으켰고,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현상은 이미 존재했던 분노가 폭발했다고 할 수 있다.

젊은 여성 시위대의 최고지도자 하야 요구

이번 시위가 조만간 진압될 것인지, 가속도를 낼 것인지는 현재로선 가늠하기 어렵다. 이전과 다른 점은 테헤란 북부의 부유한 이란인, 남부 노동계급의 시장 상인들과 쿠르드족, 투르크족 및 기타 소수민족이 연대해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시위를 주도하는 정치인이 없으며, 대부분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10·20대의 젊은 여성이다.

이란 전문가들은 젊은 세대가 이런 위험을 감수하는 이유에 대해 “잃을 것이 없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란 국민들은 개혁을 거부한 집권층과 국가 지도자들이 더는 낡은 시스템 개혁에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개혁을 실행할 능력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수 집권층은 이란 시민들이 좀 더 온건한 이슬람 공화국을 용인할 의향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시민들은 자신의 입장을 확고히 하며 타협할 의향이 없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번 시위의 구호 내용은 단순히 여성 인권을 보장하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란의 최고지도자인 알리 하메네이를 직접적으로 비판하거나 하야를 촉구하고 현 정권 퇴진을 주장해 더욱 의미심장하다. 핵 협상과 전쟁 선포를 포함한 이란의 모든 주요 정책 결정을 내리는 최고지도자의 퇴진을 거리낌 없이 요구한다는 것은 시위가 점차 과감해지고 있다는 신호로 여겨진다.

두 번째 특징은 시위가 끈질기게 전국에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2000년대 이후 반정부 시위가 반복돼온 만큼, 이란은 이제 반정부 시위로 인한 ‘혁명 상황의 연속’이 굳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반정부 시위의 향배는 3가지에 달려 있다. 첫째 시위대 규모다. 시위대가 늘어나면 정권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다. 둘째, 현재 일부 정유 산업체 외에는 노동자 단체와 같은 집단이 시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고 있다. 자영업자나 시장 상인 조합이 동참한다면 시위는 탄력을 받을 것이다. 셋째, 집권층의 균열 여부다. 시위대 진압은 경찰뿐만 아니라 이란 혁명수비대(IRGC)나 수비대 산하 민병대(Basji)가 주도하고 있다. 이 집단에서 균열이 생긴다면 시위 진압이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그런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한국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1979년 이란혁명 이후 줄곧 억압받아온 이란 국민에게 지지를 보내야 할 것이다. 캐나다와 영국은 이미 이란 국민의 인권을 짓밟는 단체나 인물에 대한 제재를 시행했다. 우리도 이 같은 조치를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란과의 경제협력을 고려해 침묵하기보다는 고통받는 이란 국민에게 도움과 성원의 손길을 보내는 것이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 수호에 동참하는 훨씬 용기 있는 행동으로 평가될 것이다.

#이란히잡시위 #여성인권 #국제이슈 #여성동아

사진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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