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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프로 직장인 다이어리

세계 최대 구호개발 비정부기구에서 일한다는 것

오유향 월드비전 디지털콘텐츠팀 마케터

2022. 10. 16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서는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다. 쏟아지는 업무 속에 자기 계발까지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게 K-직장인의 현실. 어떤 회사에서는 나를 위한 투자가 곧 남을 위한 일이 되기도 한다. 세계 최대 구호 개발 비정부기구 월드비전에서 일하는 직장인 이야기다. 

광고 회사에서 기획자로 일한 지 4년 차가 되었을 즈음, 문득 ‘내 일이 소비만을 조장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고민이 머릿속을 떠다니기 시작했다. 그 생각은 ‘내 경험을 살려 비영리기구 마케팅 분야에서 일하면 어떨까’ 하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현재 국제구호개발단체인 월드비전에서 디지털 모금 업무를 4년째 담당하고 있다.

“착한 일 하시네요”

내가 근무하는 월드비전은 취약한 아동·가정·지역사회가 빈곤과 불평등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구호 사업을 전개한다. 그 대상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향한다. 내 직장과 일을 밝히면 “착한 일 하시네요”라는 말을 가장 먼저 듣는다. 일에 착하고 나쁜 게 어디 있겠냐마는, ‘내’가 착한 일을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남을 돕기 위해 세워진 이 회사의 착한 일이 나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이 일의 주체가 ‘후원자’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일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렇다. 국내 결식아동부터 해외 전쟁 피해 아동까지 지구에는 도움이 필요한 다양한 아이들이 살고 있다. 나와 같은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 과연 맞을까 싶은, 이들의 믿어지지 않는 현실을 소재로 디지털 모금 캠페인을 기획한다. 그리고 온라인 채널 안에서 여러 형태로 노출해 캠페인으로 유입하고 후원을 유도한다. 다시 말해 후원자와 잠재 후원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그들의 관심을 통해 도움이 필요한 아이를 후원하게 만드는 일을 한다.

그러니 굳이 따지자면 나의 일은 착한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의지를 북돋는 일’에 더 가깝지 않을까. 누군가를 돕고 싶은 선한 의지들을 한데 모아 더 큰 힘을 발휘하게 하고, 그들의 의지가 꺾이지 않게 지지하며, 또 다른 새로운 의지들을 발굴하는 일. 남을 돕고자 하는 주체인 ‘후원자’가 없다면 나의 일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의 일은 ‘착한 일’이라고만 말할 수 없다.

각자 일을 하는 이유와 방식은 다양하다. 안정적인 수입을 위해 직장에 다닐 수도 있고, 자아를 실현하거나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기 위해 사업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요즘 시대는 단순히 하나의 의미로 정의될 수 있는 일로만 나의 하루를 채우게 두지 않는다. 



“남을 위해 하는 일”

‘갓생’이라는 말이 어느 순간 유행이 되기 시작했다. 갓(god)과 인생을 합쳐 하루를 매우 성실하게 사는 모범적인 삶, 훌륭하다 말할 수 있는 삶을 뜻한다고 한다. 점점 하루를 온전히 나만을 위해 살기에도 모자란 시대가 되어간다. 갓생을 살기 위해서는 더 많은 것을 해내야 하고, 이 트렌드 속에 모든 사람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지적 성장을 위해 공부도 하고, 근 성장을 위해 운동도 하며 자기 계발에 매진하는 사람들을 미디어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수도 없이 마주친다. 그런 그들을 보며 이것저것 열심히 배우고, 움직이고, 실행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나를 본다. 하루를 온전하게 전부 쓰면서 더 나은 삶을 위해 매진하는 것이 바람직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퇴근 후 전화 영어나 강의를 듣는다. 인기몰이 중이라는 전시와 팝업스토어도 찾아다닌다. 개중에는 내 취향이 아닌 것도 있지만 마케터로서 트렌드를 좇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틈날 때마다 ‘홈트’를 하며 체력을 보충한다. 그렇게 열심히 하루를 살고 잠자리에 누우면 어딘가 모르게 공허함이 느껴진다.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노력하며 살아야 할까? 그렇게 나를 위해 사는 나는 자신이 대체 어떤 모습이 되길 바라는 걸까? 나만을 위해 사는 게 괜찮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갓생을 살고자 하는 나의 이런 노력이, 내가 하는 일 안에서는 조금이나마 ‘남을 위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느낀다. 내 능력을 높이고자 했던 수많은 일이 결론적으로 남을 돕기 위해 한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영어 공부는 전쟁이나 식량 위기 등에 처한 해외 아동들의 현실을 발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해외 지사에 있는 현지 직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도 원활하게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더 구체적이고 유의미한 구호 캠페인을 제작할 수 있다.

평소에 봐둔 트렌디한 전시와 콘텐츠는 차별화된 기부 캠페인을 만드는 아이디어의 씨앗이 된다. 좀 더 많은 사람에게 다가가서 구호 사업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동기가 어찌 됐든 구호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나’로 귀결되기 쉬운 갓생을 남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내 일을 없애려 최선을 다한다

기후 변화로 인한 가뭄, 조혼과 할례, 결식 등 하루에도 위험에 처한 누군가를 돕기 위한 많은 일들이 쏟아진다. 아직 나의 일이 되지 않은 일들도 보인다. 그렇다. 오늘도 여전히 지구 어딘가에선 총성이 빗발치고, 먹을 것이 없어 흙을 먹는 아이들이 존재한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은 여전히 너무 많다. 이 일의 끝이 과연 있기나 할까, 쏟아지는 사례를 보다 보면 무력한 기분마저 들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나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나의 일을 없애기 위해서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에선 배고픔도, 눈물도 없을 것이다. 그런 곳에서는 분명히 ‘남을 돕는 일’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착한 일’도, ‘착한 일을 돕는 일’도 없어지는 그런 세상이 될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나의 일이 없어지길 소망한다. 

#직장인칼럼 #비영리기구 #오유향 #여성동아


필자 소개
순도 높은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 중인 9년 차 기획자. 디지털 광고 회사 AE를 거쳐 현재는 전 세계 취약한 아동을 돕는 월드비전 마케터로 일하고 있다.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제공 오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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