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IFE STYLE

column

“생리는 생리다” 파티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도우리 칼럼니스트

2022. 05. 20

여성 아이돌 그룹 ‘러블리즈’ 멤버 미주가 tvN 예능 프로그램에서 생리 이야기를 꺼냈다. 곧장 인터넷 세상이 들끓는 걸 보며 나는 ‘올 것이 왔구나’ 생각했다. 

미주의 ‘생리 발언’이 일으킨 논란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 먼저 생리에 대해 쓰고 그런 글을 읽는 일의 지겨움부터 언급해야 할 것 같다. 이미 너무 많은 여성이 “생리에 대해 침묵하라”고 강요하는 사회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해왔다. 그때마다 미국 작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쓴 글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의 한 부분이 자주 인용된다.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국립월경연구소가 설치되고, 의사들은 심장마비보다 월경에 대한 연구를 더 많이 하며, 정부는 생리대를 무료로 배포할 것이다.”

나는 이 글을 쓰며 “스타이넘이 위 글을 쓴 지 30년이 넘었다”는 문장을 또 반복하기 싫었다. 30년 넘게 살면서 위 구절을 이미 몇 번이고 읽은 탓에, 어떤 글에서든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이라는 대목이 나오는 순간 시선을 빠르게 다음 문단으로 옮기게 됐기 때문이다.

또 생리를 금기시하는 문화의 문제점을 강조하려는 목적으로 자주 소환되는 사례, 네팔에서 생리 중인 여성을 격리하는 ‘차우파디’ 문화에 대해서도 쓰기 싫었다. 차우파디 때문에 움막에서 지내던 여성이 몸을 녹이려 불을 피웠다가 연기에 질식돼 죽었다는 이야기는, 얼마나 많은 여성이 생리로 인해 고통받는지를 설명하려고 끌어다 쓰는 극단적 사례의 하나로 읽힐 위험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 글의 도입 부분을 읽고 상당수 여성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맞아. 미주가 생리한다고 말한 거 갖고 사람들이 왈가왈부하는 거 짜증 났어. 그 문제를 다루는 글이 나왔네. 그치 그치, 생리는 생리지. 하지만 나는 다 알고 있는 내용이니까, 남자들이나 보고 정신 좀 차렸으면.’



반면 몇몇 ‘악플러’는 글을 다 읽지도 않은 채 이런 댓글을 달 게 뻔하다. “여자가 생리한다고 말하는 건 남자가 몽정한다고 말하는 거랑 똑같은 성희롱이다!”

그러니 솔직히 말해 이 글을 쓰는 건 시작부터 맥이 빠지는 일이다. 그렇다고 생리에 대해 말하는 것을 멈출 수는 없다. 여성학 연구자 박이은실의 책 ‘월경의 정치학’에는 한 여성이 신문에서 생리에 대한 글을 읽고 느낀 소감을 털어놓은 대목이 있다.

“한 변호사가 그것(생리)에 대해 말하는 글을 읽었죠. (중략) ‘나는 변호사이고 여성운동을 하는 사람인데, 여성을 위해 정의를 이야기하는 사람인데 왜 아직도 생리대를 숨기려고 하는 거지?’ 그 글이 (나를) 생각하게 했어요. 어떤 것을 계속 더럽다고 여기면, 비정상적인 거라고 본다면 평등이란 영원히 가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요. 자신의 몸에 긍정적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데 그게 어떻게 되겠어요.”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생리는 생리’라는 주제에 대해 계속 쓰되,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쓰고 말하는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책 ‘마이너 필링스(Minor Feelings)’에서 실마리를 얻었다. 이 책은 한국계 미국인 예술 비평가 캐시 박 홍이 쓴 것으로, 미국 사회에서 아시아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면에서 한 인종 전체의 대변자로서 우리도 고통을 느끼는 인간임을 믿어달라고 호소하는 내가 아닌, 그저 나 개인일 뿐인 채로 얘기를 하는 미래가 과연 찾아올까? 현 실정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아니라 ‘나는 아프다, 고로 존재한다’이다. 그러므로 내 책은 통증의 강도에 따라 평가받는다. 강도가 2라면 굳이 내 얘기를 풀어놓을 가치가 없을 수도 있다. 만약 10이라면 아마 베스트셀러가 될 것이다.”

캐시 박 홍의 말을 빌리자면 현재 우리 사회에서 유통되는 생리에 대한 글 상당수는 “나는 아프다, 고로 생리는 존재한다”라고 할 수 있다. 생리에 대해 워낙 다들 숨기기를 강요받다 보니, 여성들은 그에 맞서 ‘생리가 얼마나 아픈지’에 대해서만 주로 이야기해야 했다. 하지만 생리의 고통을 강조하는 바람에 오히려 그 고통이 사소하게 여겨지고, 그 목소리가 더 들리지 않게 되는 것 같은 묘한 경험 또한 많은 여성들이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바로 생리에 관한 ‘마이너 필링스’ 아닐까. 그래서 이 글에서는 아이돌 미주의 이야기를 빌려,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 생리에 대한 다양한 감각을 깨워보려 한다.

‘섹드립’은 쳐도 생리는 말하면 안 된다?

미주가 ‘생리’ 발언을 해 이슈가 된 tvN 예능 프로그램 ‘식스센스’의 한 장면.

미주가 ‘생리’ 발언을 해 이슈가 된 tvN 예능 프로그램 ‘식스센스’의 한 장면.

일단 미주가 생리를 언급한 정황은 이렇다. ‘식스센스’ 프로그램 오프닝에서 여성 멤버들이 서로의 패션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었다. 유재석이 백팩을 멘 가수 제시에게 “가방 멨네. 어디 학원 다녀?”라고 묻자 제시는 “그게 아니고…. 오늘 그날이라서”라고 답했다. 유재석이 “내가 미안하네”라고 사과하자 미주가 “언니 건들지 마세요. 그날이니까”라며 핀잔을 줬다. 그러면서 “저도 오랜만에 (생리를) 했어요. 코로나19 후유증으로 두 달을 못 했거든요”라고 덧붙였다.

이 장면을 보면서 나는 ‘그렇지. 아이돌도 당연히 생리를 하지…’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나조차도 아이돌이 생리하는 존재라는 걸 잊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사실 아이돌만이 아니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여자들에 대해서도 그렇다. 우리는 그들의 생리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신연선 작가는 칼럼 ‘피 흘리는 여자들’에서 이렇게 썼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누군가는 깜짝 놀랄 겁니다. 어쩌면 믿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입니다. 우리 주변의 여자들은 지금 생리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이 아니면 내일이라도. 같은 공간에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버스를 타고, 일을 하고, 식사를 하는 여자들은 아래로 피를 흘립니다.”

왜 여자들의 사정이 이렇게 됐을까. 미국 작가 미셸 렌트 허슈의 ‘젊고 아픈 여자들’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우리의 문화는 여성에게 성적 매력이 있고 뜨겁고 매혹적이고 임신이 가능해야 한다고 요구하며 따라서 신체적인 건강 문제를 암시하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역겨움을 유발하게 된다. (중략) 우리가 학습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느낄 것으로 예상하는 역겨움은 우리 자신에게서도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 논리를 생리 이야기에 적용하면, 생리는 (남자들 관점에서) 섹시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애써 무시되고 회피되는 주제일 것이다. 위 책의 본문을 똑바로 인용하려고 구글 검색 엔진에 “젊고 아픈 여자들”을 입력하자 구글은 “이것을 찾으셨나요?”라며 내게 “젊고 예쁜 여자들”이라는 새로운 검색어를 보여줬다. 이 사회는 “젊고 아픈 여자들”에게 관심이 없음을 새삼 깨달았다. 같은 사이트에서 ‘미주’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에 ‘미주 ㅅㄱ’ ‘미주, 다리’ ‘미주 레전드’가 뜨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미주가 유부남인 유재석 앞에서 생리를 언급한 게 성희롱이나 마찬가지라는 온라인 공간의 비난은 좀 이상하다. 그동안 많은 사람이 여성 아이돌의 ‘섹드립’은 쌍수를 들고 환영해왔으니 말이다. 미주만 해도 그렇다. 그를 비롯한 ‘식스센스’ 여성 출연자들은 유재석을 앞에 두고 수시로 서로의 가슴 크기에 대해 말했다. 여성 출연자들끼리 가슴을 부딪치는 이른바 ‘가슴 박치기’를 하며 촉감을 말하거나, 가슴을 강조하는 춤을 추기도 했다. 이런 장면은 그동안 별다른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생리 안 하는 듯 살아야 하지만, 생리를 안 하면 안 되는

생리가 그렇게 터부시된다니, 미주와 우리 모두 생리를 아예 안 하면 문제가 사라질까. 그건 또 아니다. ‘생리 안 하는 여자’는 임신 확률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가치 없는 존재로 취급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 완경한 여성들이 “여성으로서의 삶이 끝났다”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승연 작가는 칼럼 ‘월경을 부정/긍정하는 것 모두 가부장적 시선이었다’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여성 섹슈얼리티를 ‘성애화’하고 ‘통제’하는 이중적인 억압 아래, 월경은 이러한 억압을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기제로 이용되기도 했다. 가부장적인 사회는 ‘생식’을 여성의 가장 중요한 역할 혹은 기능으로 상정하였다.”

그러다 보니 여성이 생리를 하는 것을 입에 담지 못하게 하면서, 생리를 멈추려고 미레나(자궁 내부에 삽입하는 피임 장치)를 시술하겠다고 하면 이상하게 여긴다. 생리혈은 더럽지만, 첫 경험 때 흘리는 피는 순수를 상징한다. 생리 기간에는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 ‘노콘 섹스’를 해도 임신하지 않는다며 이때를 ‘안전한 날’로 부르는 세태도 있다. 초경은 임신할 수 있게 된 징표라는 점에서 파티까지 열면서, 그 이후 매달 찾아오는 생리는 숨기라고 하다니. 이 모든 것의 바탕에는 여성의 몸은 ‘(남성 중심) 섹스’ ‘생식’을 위한 것으로 여기는 인식이 깔려 있다.

허슈는 이렇게 강조한다. “몸과 건강은 우리가 텔레비전에서 보는 것보다 더 골치 아프고 더 다양하다.” 미주가 코로나19 후유증으로 두 달 동안 무월경 증상을 겪었다는 것만 봐도 그렇다. 주변 지인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코로나19 확진 후 생리 양이 적어지거나 생리통이 더 심해지는 등의 경험을 한 사람이 많다. 반면 생리주기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도 있다. 같은 질병이라도 우리의 몸은 각자 고유의 방식으로 겪어내는 것이다.

나를 예로 들면 나는 “생리 때면 초콜릿이 유난히 당겨”라고 하는 이들의 이야기에 잘 공감하지 못한다. 일단 나는 초콜릿을 별로 안 좋아한다. 그냥 냅다 자고 싶다. 한번은 오히려 집에만 있으면 더 우울해지는 것 같아, 서울 연남동에 나가 햇볕 잘 내리쬐는 벤치에 앉아 맥주 한 병을 마신 적도 있다. 박이은실은 저서 ‘월경의 정치학’에서 생리통이 신체적으로 불쾌한 감각만 가리키는 게 아니라면서 미국 여성들 사례를 소개한다.

“미국의 한 젊은 여성은 (생리 때면) 신경이 예민해져 사람들과 괜히 다툰다고 했다. 그렇지만 날카로워진 감수성으로 평소에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고도 했다. 다른 친구는 보통 때 의식하지 못하는 자기의 몸을 그때만큼은 주의 깊게 돌아본다고 했다. 생리혈과 함께 노폐물이 빠져나가 기분이 상쾌해진다는 친구도 있었는데, 그래서 이 친구는 생리 기간이 끝나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에너지가 충전되는 것 같다고 했다.”

나로서는 생리에 ‘상쾌하다’ ‘에너지가 충전된다’는 설명이 붙는 게 낯설다. 그러나 박이은실은 같은 책에서 “월경 중 느끼게 되는 긍정적인 것들, 예를 들어 ‘안도감, 풀어낸 기분, 도취감, 새롭게 시작하는 기분, 활력, 자연과 연결된 느낌, 창조적 에너지, 활기, 높아진 성욕, 강해진 오르가슴’ 등”을 언급한다. 우리 사회가 이런 것에 거의 관심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 이 의견에는 동의한다. “생리할 때는 몸이 아프다”는 단일한 이야기 프레임이 너무 강력한 나머지 내 몸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된 것, 결과적으로 내 몸과 소원해진 것 말이다.

하필 이 글을 쓸 때 예정일보다 이틀 빨리 생리를 시작했다. 다른 때보다 생리통이 심한 탓에 회사에 2시간짜리 휴가를 신청해 늦게 출근했다. 휴가 일수를 그렇게 쓴 것, 그리고 밀린 일을 뒤로하고 쉰 게 아까웠다. 하지만 생리가 아니라면 내 몸에 쉼을 허락하는 일이 좀체 오지 않는다. 세상이 요구하는 생산성을 거부할 기회 또한 흔치 않다. 생리는 한 달에 한 번 스스로에게 조금 더 관대해지고–쌓인 일 따위 다 잊어. 내일 하면 돼-내 몸을 돌보는 때이기도 하다. 예민해지기도 하지만, 그 덕에 다른 사람의 아픔에 관대해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무엇보다, 우리 몸이 항상 ‘건강’하다는 환상을 깨뜨려준다.

미주가 생리에 대해 말한 건 우리가 “맑고 깨끗하고 자신 있게” 생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하는 계기일 수 있다. 사람은 늘 건강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환상, 아프지 않고 그저 성적인 대상이어야만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날 계기이기도 하다. 그런 거리두기에 두려움을 느낀 사회가 생리 논란을 만들어냈다. 이런 사회에 주문처럼 계속 말해야 한다. “생리는 생리다.” 갑자기 파티 하나 기획하고 싶어졌다. 생리 때 맥주 마시면서 미주, 그리고 다른 여성을 초대해 고통 외에 다른 감각들을 이야기하는 자리로. 이날 드레스 코드는 레드로.

#생리토크 #생리파티 #여성동아


도우리 칼럼니스트
‘시대의 엉망’을 감각하는 청년들의 대중문화 트렌드는 다르게 쓰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칼럼집 ‘청춘의 겨울’(가제), ‘ADHD는 밀레니얼의 병이다’(가제) 출간 예정.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제공 tvN 사진출처 인터넷캡처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