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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PEOPLE

거장들의 원픽, 배두나가 꼽은 연기의 변곡점

글 문영훈 기자

입력 2022.01.19 10:30:01

“거창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배우로서의 직업의식을 묻자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루이비통의 앰배서더이자 글로벌 스타, 배두나가 담백하게 터 놓은 연기와 변곡점이 된 작품들.
“이제 K콘텐츠 인기를 누구나 실감하는 시대를 살고 있지 않나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고요의 바다’에 출연한 배두나(43) 배우의 말이다. 달 기지로 향한 우주항공국 정예 대원들의 이야기를 다룬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고요의 바다’는 고요히 순항 중이다. 2022년 첫 넷플릭스 공식 주간 집계 차트에서 비영어권 시리즈 1위에 올랐다. 지난해 ‘오징어 게임’과 ‘지옥’에 이어 K시리즈물의 흥행 바통을 이어받은 셈이다.

데뷔 후 봉준호·박찬욱 감독과 작업한 배두나는 일찌감치 세계 무대에 섰다.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공기인형’ 속 ‘노조미’ 역할을 맡아 2009년 칸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고, 이듬해 일본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매트릭스’ 연작으로 유명한 워쇼스키 자매의 총애를 받고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센스8’의 주연도 맡았다. 한국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는 처음으로 글로벌 화제작이 된 ‘킹덤’ 출연 리스트에 배두나가 포함된 것은 당연한 일처럼 느껴진다.

그가 ‘킹덤’ 다음으로 선택한 한국 시리즈물이 ‘고요의 바다’다. 정우성 제작, 배두나·공유 주연이라는 설명만으로는 블록버스터 향기가 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도전 정신이 깃든 드라마다. ‘고요의 바다’는 한국 최초로 달을 배경으로 플롯이 전개되는 SF 장르물이다. 최항용 감독의 첫 드라마 연출작이기도 하다. 최 감독은 2014년 한국종합예술학교 졸업 작품으로 동명의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2021년, 7년 만에 그의 단편은 최소 수백억원대 제작비가 예상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물로 돌아왔다. 배두나는 “최 감독의 단편을 보고 매료됐다”며 이번 작품에 참여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어떤 점이 시선을 끌었나요.

단편영화에 클로즈업 장면이 많았어요. 그만큼 인물의 감정선에 집중하게 됐죠. 고요함 속에서 힘이 느껴지기도 했고요. 그런 면에서 탁월하다고 생각했어요. 또 졸업 작품으로 달에 가는 SF물을 찍기는 쉽지 않잖아요. 한정된 예산에서 찍었으니 세트는 전문적이거나 화려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극에 몰입하다 보니 그게 정말 달 기지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고요의 바다’는 SF 장르에 속하지만 생명과 환경, 정의와 인간 등 인문학적인 주제를 다루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맞아요. 시점은 미래고 공간은 달이지만 인간에게 초점을 맞추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그렇게 (섞는 걸) 좋아하는 거 같기도 합니다. ‘킹덤’ 경우에는 조선시대에 서양의 좀비를 데려오는 거잖아요. 이번 작품도 배경은 우주인데 인간의 존엄성을 이야기한다든가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새로운 조합이라고 생각했어요.

‘센스8’ ‘킹덤’에 이어 ‘고요의 바다’까지, 연이어 넷플릭스 작품에 참여했습니다. 넷플릭스가 제작하는 작품에 차별성이 있나요.

출연 제안을 받을 때 ‘넷플릭스 측과 상의 중인 작품’이라고 덧붙이면 안심돼요(웃음). 넷플릭스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 그러니까 창작자에게 많은 부분을 맡겨요. ‘고요의 바다’ 작가님도 그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이렇게 (작품에 대한) 코멘트가 없어도 되는 거냐고. 창작자가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게 해주니까 제안에 호감이 가는 건 사실입니다.


“연기는 무너뜨리고 쌓는 모래성”

촬영 내내 입은 우주복 무게만 10kg가량이라고 들었는데 힘들지 않으셨나요.

정말 무거웠습니다(웃음). 여름에는 너무 더워서 잠깐 촬영을 쉴 때 우주복 안으로 에어컨과 연결한 호스를 넣어두기도 했어요. 하지만 20년 배우 생활하면서 이 정도는 고생 축에도 끼지 못해요.

‘진짜’ 고생은 어떤 건가요.

‘킹덤’ 촬영 때는 영하 17도에 한복을 입고 있어야 했고 ‘센스8’을 찍을 때는 2주에 한 번씩 대륙을 횡단하며 17개국을 다니기도 했으니까요. 당시 바다에서 수중 촬영도 했는데 그게 정말 공포스러운 경험이었어요. 물론 이번 작품이 쉬웠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연기에 필요한 저만의 ‘버전’이 있어요. 굉장히 예민한 상태를 만드는 거죠. 마음을 보다 쉽게 열고 쉽게 상처 받을 준비를 해놓는 것. (우주복을 입고는) 그 상태를 만드는 게 힘들었죠.

현장에서 ‘연기 버전’을 계속 유지하시나요.

그 상태로 계속 있으면 욕먹을걸요. ‘배두나 인성 논란’이 나온다거나(웃음). 촬영 내내 그 상태를 유지하는 건 아니고 중간중간 풀어요. 모래성을 쌓는 것과 비슷해요. 모래성을 막 쌓다가 뭉개고 다시 새로 쌓는 과정을 반복하는 거죠.


그가 ‘고요의 바다’에서 쌓고 무너뜨리기를 반복한 모래성은 극의 흐름을 쥐고 있는 ‘송지안 박사’ 캐릭터다. 동물행동학과 우주생물학을 전공한 그는 비밀을 간직한 채 달로 떠나는 정예 부대에 합류한다.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면서 연기했나요.

시청자가 제 감정선에 집중하는 힘으로 드라마를 계속 보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연기할 때 감정을 즉각적으로 표출하기보다 눌러서 ‘지안’의 감정이 뭔지 궁금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감정을 절제하고 여백을 많이 두면서 극의 긴장감을 유지하려고 했죠. 지안의 서사가 더 밝혀지는 순간부터는 조금 더 감정을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극 초반에는 송지안 박사의 냉철하면서 까칠한 면이 부각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따뜻한 면이 드러납니다. 적절한 톤 조절이 관건이었겠네요.

저는 송지안이 차가운 인물이라고 느끼지 않았어요. 오히려 내면에 불이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했어요. 다만 그 불이 폭발할까 봐 최대한 누르고 사는 거죠. 톤 조절은 감독님에게 맡긴 측면도 있어요.

배두나의 직업의식

극 중 ‘마음에 불을 품고 사는’ 송지안 박사가 한윤재(공유) 대장이 직업의식을 건드리자 발끈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배우 배두나의 직업의식은 어떤 걸까요.

거창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관객들이 작품을 그럴 법하다고 인식하게 만드는 거죠. 작품 속 캐릭터, 바로 그 사람으로 보여야 해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게 배우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배우로서 조금 더 확장된 의미가 있다면 영화로 좋은 메시지를 사회에 전달하는 거죠. ‘고요의 바다’도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잖아요. 일상에서 당연하게 생각하고 놓칠 수 있는 주제를 생각해보도록 만드는 게 영화나 드라마의 순기능이라고 생각해요.

드라마 ‘비밀의 숲’에서 경찰인 ‘한여진’ 캐릭터와 ‘킹덤’에서의 의녀 ‘서비’ 모두 자신의 직업에 투철한 사명 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정말 그러네요. 제가 그런 인물에 빠져 있나 봐요. 봐서 아시겠지만 저는 고지식한 편이긴 합니다(웃음).

‘패션 아이콘’이기도 합니다. 루이비통의 앰배서더(ambassador)이고, 2021 F/W 시즌 서울 패션위크 홍보대사를 맡기도 하셨습니다. 그때는 또 다른 자아로 임하시나요.

제게 가장 소중한 직업은 배우예요. 인간 ‘배두나’에 대한 정보를 관객에게 많이 주면 캐릭터에 몰입하기 어려워진다고 생각해요. 저는 오래 활동했으니 그런 점에서는 불리하죠. 그래서 평상시에는 관객들이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최대한 모르게 해요. 의견을 낼 때도 조심스러워서 평소 주장하는 바 없이 살죠. 그럼에도 패션 일은 또 다른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배우 일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죠. 요즘 말로는 ‘부캐’ 같은 건가요(웃음).
“조카 탄생 후 아이들이 삶의 모티베이션”

배우 생활을 통틀어 변곡점이 된 작품을 소개해주세요.

첫 번째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플란다스의 개’예요. 이후 10년 정도 배우 생활의 방향성을 제시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공기인형’이었어요. 돌이켜보면 그 이후 제가 SF의 길을 가기 시작합니다(웃음). 마지막으로 정주리 감독의 영화 ‘도희야’가 영향을 많이 줬어요. 요즘 느끼는 건데 제가 아이가 나오는 영화에 연이어 참여하고 있어요. 신기하지 않나요. 미래의 희망이 되는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요즘 많은가 봐요.

‘도희야’에서는 당시 14세였던 김새론 배우와 연기했죠. 이번 작품에서 ‘루나’ 역을 맡은 14세 김시아 배우와의 호흡은 어땠나요.

너무 좋았죠. 함께 연기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웃음). 사실 원래 팬이었어요. 영화 ‘우리집’을 보면서 ‘저 배우는 도대체 누굴까’ ‘어떻게 저런 연기를 할까’ 생각했어요. 연기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눈빛을 보고 있으면 제가 막 빨려 들어가는 듯한 자연스러운 흡인력. 그런데 ‘고요의 바다’에서 만난 거예요. 제가 엄청 잘 보이려고 노력했어요. 앞으로 계속 꽃길만 걸었으면 합니다. 실제로 이번 작품에서도 야생에서 자란 소녀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손톱과 발톱을 길러서 왔더라고요. 일부분은 파먹히고 어딘가에 긁히기도 한 것처럼 보였어요.

당연히 분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친구(김시아)가 진짜 멋있는 배우라니까요. 다른 배우들은 누비로 된 우주복을 입고 있었지만 김시아 배우는 맨다리를 내놓고 맨발로 뛰어다니는 장면이 많아 추웠을 거예요. 그런데 불평 한마디도 안 했어요. 담대한 친구입니다.

극 중에서는 모녀 관계 같기도 합니다.

조카들이 태어난 뒤부터 아이들이 제게 큰 영감을 줘요. 살아가는 힘이 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삶의 모티베이션(motivation)이 되는 존재가 작품에 포함돼 있으면 제가 더 끌리는 것 같아요.

차기작도 궁금합니다.

‘도희야’를 만든 정주리 감독의 두 번째 작품에 함께하게 됐어요. 크랭크인을 앞두고 있습니다. ‘다음 소희’라는 이름의 영화입니다.

배두나가 꼽은배우 인생의 변곡점이 된 출연작 세 편


‘플란다스의 개’(2000) 
봉준호 감독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경리 일을 하는 ‘박현남’ 역을 맡았다. 봉준호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기도 하다. 배두나는 봉 감독과의 인연으로 이후 영화 ‘괴물’을 촬영했다.












‘공기인형’(2009)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인간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만들어진 공기인형 ‘노조미’ 역할을 맡아 2010년 33회 일본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배두나는 2022년 상반기 개봉을 앞두고 있는 고레에다 감독의 신작 ‘브로커’에도 출연했다.












‘도희야’(2014) 
정주리 감독
정주리 감독의 장편 데뷔작. 2014년 제67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대됐다. 배두나는 외딴 바닷가 마을에서 학대를 받고 자라나는 ‘도희’에게 손을 내미는 파출소장 ‘영남’ 역할을 맡았다.





사진제공 넷플릭스 네이버영화 



여성동아 2022년 1월 6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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