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듯 새로운, 모던 한식을 맛볼 수 있는 곳
1 홈그라운드의 델리밀을 맛볼 수 있는 공간으로 예약제로 운영된다. 인스타그램 계정(@ara_home_ground)에서 예약 공지를 확인할 수 있다. 2 키친 맞은편. 각종 집기와 식재료, 와인 등이 정리돼 있다. 3 홈그라운드에선 다양한 레이블의 내추럴 와인도 만날 수 있다.
지난한 코로나19 터널을 지나고 있는 모든 외식업계 종사자들이 그러했듯이, 미술 전시 업계에서 푸드 콘텐츠로 나름의 포트폴리오를 축적하며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던 안아라 대표에게 2020년은 몹시 혹독한 해였다. 홈그라운드 브랜드를 처음 선보였던 2015년, 그 시작은 미약했으나 곧 관련 분야에서 인정받으며 국립현대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 같은 주요 미술관과 박물관을 비롯해 크고 작은 갤러리의 전시 오프닝 케이터링을 도맡아 진행했다. 이후 접근성을 고려해 스튜디오를 서울 성동구 옥수동으로 옮겼고, 내실을 다질 요량으로 정규 직원을 채용해 ‘푸드 디자인’이라는 나름의 영역을 구축하며 정점에 이를 즈음 코로나19가 터졌다. “꽃 피기 직전, 봉오리가 맺혔을 때 사그라든 것 같아 굉장히 아쉽긴 해요. 코로나19가 종식되면 예전처럼 행사 케이터링 일을 다시 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게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거예요.” 모든 행사가 취소되는 상황에서 마냥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했고 결국 가장 기본적인 것, 음식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돌아갔다. “한곳에 묶여 있는 것을 못 견디는 자유로운 영혼이기도 하고 홈그라운드 론칭 이전에 식당 운영 전반을 아주 밀도 높게 경험했기에 음식점은 다시 안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전시 오프닝 케이터링이나 팝업 키친을 통해 우리 음식을 궁금해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용기를 얻었어요. 그분들과 같이 이 역경을 이겨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과 홈그라운드의 음식을 언제든 맛보고 싶은 소비자들의 염원이 만나 탄생한 푸드 디자인 스튜디오는 델리 숍과 예약제 식당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요리사가 된 그래픽 디자이너
안아라 대표와 함께 홈그라운드를 이끄는 요리사들. 곶감말이를 전담하며 일본 가정식을 접목한 메뉴를 선보이는 에이코 씨, 한식 베이스의 델리 숍 메뉴를 담당하는 류혜진 씨, 안아라 대표, 디저트와 음료 · 콜드 파트를 맡은 문다은 씨, 그리고 홈그라운드의 마스코트 베라(왼쪽부터).
예약제 식당에서 맛볼 수 있는 제철 메뉴. 델리 숍의 모든 음식을 선보이는 샘플러 플레이트인 델리밀 정식, 완두감자수프, 여름 채소 라타투이, 오미자베리 에이드, 여름 샐러드(노란 플레이트를 기준으로 시계 방향).
담담하면서도 담대한 안아라표 델리
1 다채로운 홈그라운드의 델리 메뉴. 두릅 죽순 아스파라거스 초절임, 머위땅콩 볶음된장, 주꾸미 꼴뚜기 방울토마토 오일 절임, 믹스베리 콩포트, 라임바질 마요네즈, 방아 페스토(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2 당근감자 커리 퓌레와 하귤 드레싱의 토마토 참외 마리네. 3 델리 숍의 효자 상품인 곶감말이. 4 식물성 오일을 사용해 만든 담백한 블랙올리브 스콘.
메뉴를 개발할 때마다 안아라 대표가 직원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말은 “매일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으면 좋겠다”이다. “식당 밥이 특별하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면 고객은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창업자에겐 기회가 많아지죠. 홈그라운드의 가치는 특별한 레시피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따뜻한 밥 한 끼 차리듯 모든 메뉴에 시간과 정성을 쏟는 요리사들의 마음가짐에 있어요. 저희의 성의를 알아주는 분들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 같아 감사할 따름이고요.” 그래서인지 홈그라운드의 모든 메뉴는 매사에 들뜨지 않고 담담하며, 한편으론 무모할 정도로 담대한 안아라 대표와 꼭 닮아 있다. 이쯤 되니 기존 요리사들과 조금 다른 길을 걸어온 그녀의 미래가 궁금해졌다. “작년에 큰 위기를 겪은 후 다행히 올해부터는 안정화에 접어들며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졌어요. 이럴 때일수록 흥분하지 않고 신중한 자세를 견지하려고 노력 중이고요. 다만 10년이든 20년이든 늘 유쾌하게 꾸준히 새롭고 싶다는 큰 꿈을 갖고 있어요. 그러다 보면 디자이너에서 요리사로 취직한 것처럼 어떤 ‘사고’를 치는 순간이 또 오지 않을까요?”
예기치 못했던 코로나19 상황에 직면하면서 일상이 달라졌고 외식 문화도 이전과 다른 양상을 보인다. 가장 큰 변화는 집단만큼 개인도 동일하게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는 것. 개인 삶의 질을 높이는 공간에 대한 연구가 늘었고, 대규모 식당에서조차 어느 때보다 개인 손님에 더 집중하는 시기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코로나 장막이 완전히 걷히게 되더라도 우리 삶 속 깊숙이 파고든 이러한 가치 변화는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홈그라운드 같은 작지만 옹골진 델리 숍이 더욱 소중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사진 홍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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