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류 회사 샘플 연구실에서 15년간 일해 온 이명성 씨. 그는 직장 생활로 쉼 없이 달려온 인생을 돌아보고자 잠시 일을 쉬고 있던 중, 늦둥이를 갖게 됐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마흔이 넘는 나이에 임신과 출산을 거치다 보니 몸은 예전 같지 않았고, 건강은 그야말로 바닥을 쳤다.
“늦둥이를 낳고 건강이 갑자기 무너지면서 살이 찌기 시작했고, 이유 없이 몸이 아프기도 했어요. 다이어트 보조제와 건강기능식품을 달고 살면서도 면역력이 떨어져 한 달에 2~3번은 병원에서 비타민 영양제를 맞아야 했죠. 그 때문에 경제적 부담도 너무 컸고, 건강과 체력도 계속 떨어지는 악순환에 빠졌죠.”
그가 포라이프리서치코리아(이하 포라이프)를 만난 건 그때였다. 포라이프는 1998년 이래로 20년 넘게 면역에 도움이 되는 제품들을 전문적으로 연구 및 개발해온 회사다. 그는 포라이프 고객으로 제품을 이용하다가, 1년 정도 제품과 수입 구조 등을 면밀히 알아본 뒤 사업가의 길로 들어섰다.
“직장 생활은 꾸준히 나오는 월급이 매력이지만, 평생 다닐 수 있는 건 아니어서 미래를 준비하는 게 막막했던 것 같아요. 또 세 아이를 키우며 회사 생활을 병행하는 것도 어렵고요. 그에 비해 포라이프 사업은 비록 씨앗을 뿌리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으나, 미래는 밝아 보였습니다. 시간적인 여유도 있고, 꾸준히 성실하게 일한다면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 보였거든요.”
이명성 씨는 7년간의 노력 끝, 안정적인 사업가로 자리매김했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어려움도 있었다. 이명성 씨는 그럴수록 ‘반드시 성공해서 뭔가를 보여줘야겠다’는 마음으로 일에 매진했다.
“남편이 벌어오는 수입에만 안주해 있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거예요. 포라이프 시스템 안에서 배우고 체험하고 성장해왔어요. 그 덕분에 코로나19 위기가 닥쳤을 때도 흔들림 없이 버텨낼 수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저는 이 사업을 시작하면서 수익금의 절반을 저축하고 나머지를 생활비로 썼어요. 그러다가 이사를 앞둔 어느 날 통장을 보니, 꽤 목돈이 모여 있었고 아주 요긴하게 쓸 수 있었죠.”
그는 포라이프 사업을 하면서 동시에 본인의 건강뿐 아니라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건강을 챙길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으로 꼽는다. 특히 어머니의 건강을 챙길 수 있다는 것에 큰 기쁨과 보람을 느끼고 있다.
“저희 어머니가 올해 89세인데 공공 근로를 다녀요. 그전에는 약도 많이 드시고 집에만 계셨는데, 제가 신경을 쓴 이후에는 혼자 지방에서 버스를 타고 저희 집(용인)까지 오가실 정도로 건강해지셨죠. 건강 사업을 하다 보니, 제가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낍니다.”
그는 사업에 있어서 믿음과 신뢰를 최고의 덕목으로 꼽는다. 때문에 사전에 미팅을 꼼꼼히 준비하고, 약속 시간에 일찍 도착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포라이프 안에서 꿈을 찾고 키워온 이명성 씨는 이제 어려운 이웃의 건강을 살피고 싶은 꿈이 생겼다.
“보람과 만족은 삶을 충만하게 하고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는 듯합니다. 포라이프를 통해 막둥이와 뉴욕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어요. 여행을 다녀온 뒤로는 아이가 ‘앞으로 엄마를 찾지 않을 테니 더 성공해서 다음 여행에도 데려가라’고 하더군요. 지금은 가족 모두가 제 사업을 응원하고 있어요. 아이들에게 엄마로서 멋진 삶을 살고 있다는 것에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성장해서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에게 포라이프 제품을 무료로 드리는 봉사를 하고 싶습니다.”
사진 김도균
“늦둥이를 낳고 건강이 갑자기 무너지면서 살이 찌기 시작했고, 이유 없이 몸이 아프기도 했어요. 다이어트 보조제와 건강기능식품을 달고 살면서도 면역력이 떨어져 한 달에 2~3번은 병원에서 비타민 영양제를 맞아야 했죠. 그 때문에 경제적 부담도 너무 컸고, 건강과 체력도 계속 떨어지는 악순환에 빠졌죠.”
그가 포라이프리서치코리아(이하 포라이프)를 만난 건 그때였다. 포라이프는 1998년 이래로 20년 넘게 면역에 도움이 되는 제품들을 전문적으로 연구 및 개발해온 회사다. 그는 포라이프 고객으로 제품을 이용하다가, 1년 정도 제품과 수입 구조 등을 면밀히 알아본 뒤 사업가의 길로 들어섰다.
“직장 생활은 꾸준히 나오는 월급이 매력이지만, 평생 다닐 수 있는 건 아니어서 미래를 준비하는 게 막막했던 것 같아요. 또 세 아이를 키우며 회사 생활을 병행하는 것도 어렵고요. 그에 비해 포라이프 사업은 비록 씨앗을 뿌리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으나, 미래는 밝아 보였습니다. 시간적인 여유도 있고, 꾸준히 성실하게 일한다면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 보였거든요.”
이명성 씨는 7년간의 노력 끝, 안정적인 사업가로 자리매김했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어려움도 있었다. 이명성 씨는 그럴수록 ‘반드시 성공해서 뭔가를 보여줘야겠다’는 마음으로 일에 매진했다.
“남편이 벌어오는 수입에만 안주해 있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거예요. 포라이프 시스템 안에서 배우고 체험하고 성장해왔어요. 그 덕분에 코로나19 위기가 닥쳤을 때도 흔들림 없이 버텨낼 수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저는 이 사업을 시작하면서 수익금의 절반을 저축하고 나머지를 생활비로 썼어요. 그러다가 이사를 앞둔 어느 날 통장을 보니, 꽤 목돈이 모여 있었고 아주 요긴하게 쓸 수 있었죠.”
그는 포라이프 사업을 하면서 동시에 본인의 건강뿐 아니라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건강을 챙길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으로 꼽는다. 특히 어머니의 건강을 챙길 수 있다는 것에 큰 기쁨과 보람을 느끼고 있다.
“저희 어머니가 올해 89세인데 공공 근로를 다녀요. 그전에는 약도 많이 드시고 집에만 계셨는데, 제가 신경을 쓴 이후에는 혼자 지방에서 버스를 타고 저희 집(용인)까지 오가실 정도로 건강해지셨죠. 건강 사업을 하다 보니, 제가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낍니다.”
그는 사업에 있어서 믿음과 신뢰를 최고의 덕목으로 꼽는다. 때문에 사전에 미팅을 꼼꼼히 준비하고, 약속 시간에 일찍 도착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포라이프 안에서 꿈을 찾고 키워온 이명성 씨는 이제 어려운 이웃의 건강을 살피고 싶은 꿈이 생겼다.
“보람과 만족은 삶을 충만하게 하고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는 듯합니다. 포라이프를 통해 막둥이와 뉴욕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어요. 여행을 다녀온 뒤로는 아이가 ‘앞으로 엄마를 찾지 않을 테니 더 성공해서 다음 여행에도 데려가라’고 하더군요. 지금은 가족 모두가 제 사업을 응원하고 있어요. 아이들에게 엄마로서 멋진 삶을 살고 있다는 것에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성장해서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에게 포라이프 제품을 무료로 드리는 봉사를 하고 싶습니다.”
사진 김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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