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집에서 방방 뛰는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든 나가야 한다. 3000cc 중형 세단을 구입해 10년째 타고 다니지만 아이들이 클수록 작게만 느껴진다. 킥보드 2개, 인라인 스케이트 풀 세트, 원터치 텐트 세트, 대형 돗자리에 먹거리까지 트렁크에 싣고 나면 가슴이 답답해져온다. 뒷좌석에 얌전히 앉아 있으면 좋으련만 발로 앞좌석을 차고, 서로 자리를 많이 차지하겠다며 전쟁을 벌일 때면 내부 공간이 넓은 SUV로 갈아타야 할 때가 온 것만 같다.
마침 7월 중순, 외부 및 내부 디자인이 확 바뀐 싼타페가 출시됐다. 2000년 첫 선을 보인 싼타페는 국산 SUV 붐을 이끌며 2017년 누적 판매 1백만 대를 기록한 베스트셀링 카다. 지난 7월 4세대 페이스 리프트 모델로 출시된 2020년 신형 싼타페의 기본 사양은 배기량 2151cc, 5~7인승, 복합 연비 12.8~14.2km/l 등으로 기존 모델과 비교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설계 변경으로 실내를 더 넓게 확보하고,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을 기본 옵션으로 적용하는 등 세밀한 변화를 줘 남성 운전자뿐 아니라 주부들에게도 높은 점수를 얻고 있다.
긴 장마 끝에 햇살이 쨍쨍하던 8월 말, 싼타페 라인 가운데 최상위 트림인 캘리그래피 모델을 서울 강남구 논현동 ‘현대 모터스튜디오 서울’에서 자세히 살펴본 뒤 시승 차량을 타고 경기 남양주 다산생태공원까지 달렸다. 페이스 리프트 모델의 경우 엔진과 프레임 등을 기존 모델과 동일하게 적용하고, 외관만 바꿔 출시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신형 싼타페는 풀 체인지 모델이라고 해도 믿길 정도로 현대자동차의 최신 기술이 탑재돼 운전이 다소 서툰 기자도 운전하는 재미를 느낄 정도로 신선한 경험이었다.
#1 EXTERIOR
큰 임팩트 없지만 정돈된 디자인, 질리지 않을 듯
솔직히 첫인상은 크게 임팩트가 없었다. 형님 격인 팰리세이드의 외관 디자인이 워낙 인상적이었던 탓도 있다. 도심형 SUV답게 세련되고 정돈된 디자인을 적용해 깔끔해 보이긴 했으나 싼타페 고유의 색채가 드러나지 않는 듯했다. ‘싼타페(Santa fe)’의 어원을 찾아보면 스페인어로 ‘거룩한 믿음’이란 뜻이고, 미국 남서부 뉴멕시코주의 주도 이름이기도 하다. 2000년 1세대 싼타페가 출시됐을 때 서구의 근육질 남성을 연상케 하는 파격적 디자인으로 주목받았다. 당시 미국 캘리포니아 현대자동차 디자인센터에서 외관에 혁신적 요소를 적용해 콘셉트 카로 출시했는데, 이름과 외관이 국내에서 반향을 일으키자 그대로 적용됐을 정도다. 그만큼 1세대 싼타페는 여러모로 많은 소비자들에게 각인돼 있다.
이번에 새롭게 출시된 싼타페는 전작들에 비교하면 다소 밋밋해 보였다. 물론 다크 크롬 라디에이터 그릴, 리어 스키드 플레이트, 상향등을 뚫고 아래로 이어진 듯한 T자형 LED 램프 등은 고급스러움을 한층 배가시켰다. 측면 역시 전후면을 하나의 에지로 이으면서 도어에 약간의 굴곡을 적용하고, 하단에 크롬 바를 덧대 도시적인 분위기를 한껏 풍겼다. 캘리그래피 모델은 20인치 전면 가공 알로이(합금) 휠이 적용돼 다른 고가의 휠을 갈아 끼울 필요가 없을 정도로 고급스러워 보였다. 후면도 최근 현대자동차 모델들에 적용된 일자형 램프가 위 아래로 적용돼 깔끔한 인상을 줬다.
신형 싼타페 외관은 전반적으로 잘 정돈된 인상을 줘 오래 타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다만 현대자동차에서 최근 출시된 여타의 차량 디자인의 임팩트가 컸기에 신형 싼타페 디자인에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2 INTERIOR
넉넉한 내부, 인상적인 투톤 인테리어
굴곡진 디자인으로 편의성을 높인 시트.
대시보드부터 시트까지 윗면은 브라운, 아래쪽은 블랙으로 나눠 투톤 인테리어를 적용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중앙부 디스플레이의 크기는 다소 작았는데 대시보드 위로 살짝 튀어 올라와 있어 운전하다가 힐끗 보고 확인하기에 편했다. 내비게이션이 헤드업 디스플레이와 디지털 계기판 두 군데에도 간략하게 뜨지만, 전체 지도는 중앙부 디스플레이를 봐야 하는데 운전자의 시야를 인체공학적으로 파악해 설계한 듯했다. 다만 바로 아래 매뉴얼 버튼이 모여 있는 중앙부 컨트롤러는 다소 복잡해 보여 아쉬움이 남았다. 디스플레이에서 터치식으로 찾을 수도 있는데, 버튼으로 빼놓은 것은 연령이 높은 소비자들을 위한 배려인 듯했다.
동승자를 위한 편의성도 돋보였다. 보통 7인승 SUV로 선택할 경우 3열로 들어가는 게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신형 싼타페에는 2열 시트 상단에 원터치 워크인 & 폴딩 시스템을 적용해 만족스러웠다. 버튼만 누르면 시트가 앞쪽으로 튀어나오면서 폴더폰처럼 탁 접히니 ‘와~’ 소리가 절로 났다. 내부 공간은 2열의 경우 시트를 뒤로 최대한 밀면 초등학생 이하 아이들은 앞좌석 등받이를 발로 찰 일은 없어 보였다. 실내 너비 역시 중간에 한 명이 더 타도 싸울 일이 없을 정도로 넉넉한 것도 높은 점수를 줄 만했다.
#3 DRIVING
디젤차에 대한 편견 깨는 주행감
신형 싼타페 모델은 전부 디젤 엔진이 적용됐다. 디젤 차량은 엔진 소음이 크고, 다소 진동이 발생하기 때문에 여성 운전자들은 선호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런데 신형 싼타페는 속도감 있게 달릴 때도 ‘디젤차 맞아?’ 싶을 정도로 정숙했다. 디젤차는 액셀을 밟으면 큰 엔진 소음과 함께 다소 버겁게 출발하고, 속도가 붙는 데 시간이 걸린다. 대신 한번 속도가 붙으면 차체가 크고 힘이 좋기 때문에 파워풀한 주행감을 즐길 수 있다. 신형 싼타페는 출발 시 소음은 적으면서 가속 시 엔진의 힘을 느낄 수 있어 고속도로에서 시원하게 달리기 좋았다. 차체가 크고 무게감이 있어 100km/h 이상 고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달려 나가 안정적인 느낌이 들었다. 특히 오르막에서 4륜구동 차량의 진가를 발휘하듯 부드럽게 올라가는 부분에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다. 도심에서는 고속으로 오프로드를 달릴 일이 없지만 교외 드라이빙할 때 싼타페 주행감의 진가가 드러날 듯하다.
기본 옵션으로 들어가 있는 후방 모니터와 서라운드 뷰 모니터는 특히 운전자들의 만족도가 높다. 방향지시등 스위치를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조작하면 왼쪽 혹은 오른쪽 뒤에서 차가 오고 있는지 카메라로 찍어 디지털 계기판에 영상으로 띄워주는 시스템은 볼수록 기발했다. 누가 발명해 냈는지 상을 주고 싶을 정도였다. 4대의 고화질 카메라가 전후 측면의 사각지대를 보여주는 서라운드 뷰 모니터 역시 기자의 마음에 쏙 들었다. 서라운드 뷰 모니터만 있으면 초보 운전자들도 충분히 주차할 수 있어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4 DRIVE IN
이중 접합유리로 외부 소음 차단해 조용
세단의 경우 서스펜션이 부드럽게 설정돼 있어 노면이 거칠어도 진동 없이 달리기 마련이다. SUV는 반대로 서스펜션이 딱딱해 도로에 돌이라도 있으면 엉덩이 시트에 바로 진동이 전해진다. 그런데 신형 싼타페는 세단처럼 승차감이 부드럽게 느껴졌고, 뒷좌석에서도 진동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신차라서 가능한 것 아닌가 싶기도 했다. SUV라 차체가 적당히 높은 것도 마음에 들었다. 세단은 시야가 낮고, SUV는 시야가 높게 확보되는 건 당연지사. 아이들을 뒷좌석에 앉히고 장거리 여행을 떠날 때 SUV에서는 외부 전경을 더 넓게 많이 볼 수 있어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다. 또 운전석과 보조석에서도 시야가 넓게 확보돼 안정감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이중 접합유리를 적용해 외부 소음을 차단한 것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차량 내부에서 시동을 걸었을 때 소음이 일반 SUV보다 적게 나는 것 같았는데 외부 엔진 소음이 내부로 들어오지 않아서 그런 듯했다.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가서 엔진 소리를 들어보니 다소 크게 들렸다. 4인 가족 패밀리 카를 찾는 소비자들에게 외부 소음의 방해 없이 주행할 수 있는 것은 커다란 매력 포인트다. 이들에게 차는 집의 연장선상이고, 거실만큼이나 많은 대화가 오가는 공간이다.
#5 STRENGTH
미숙한 운전 돕는 보조 시스템 놀라워
운전자의 편의성을 고려해 설계된 내부 공간. 매뉴얼 버튼이 모여 있는 중앙부 컨트롤러(왼쪽).
기본 옵션으로 적용된 차로 유지 보조, 차간 거리 유지 보조 장치는 운전이 미숙한 여성 운전자들에게 환영받을 만했다. 차로 유지 보조 장치는 전방 카메라로 양측 차선을 인식하고 스티어링 휠(핸들)을 스스로 제어해 차량이 차로 중앙을 유지하며 주행하도록 돕는 시스템. 과거에는 카메라가 양측 차선을 인식하기는 해도 지속적으로 핸들을 조절해 차선 중앙을 유지하며 달리기까지는 미흡한 점이 있었다. 그런데 신형 싼타페는 기자가 손을 떼도 핸들이 저절로 움직이며 차선 중앙을 지속적으로 맞춰줘 편리했다. 차간 거리 유지 보조 장치 역시 앞 차와의 거리를 설정할 수 있는데, 1m 정도로 설정하면 앞 차가 섰을 때 거기에 맞춰 브레이크가 걸려 저절로 속도가 줄어들었다.
이 밖에 고속도로 주행 보조 장치 역시 신박했다. 운전자가 설정한 속도에 맞춰 차량이 스스로 속도를 올리거나 내려 조절하는 시스템인데 꽉 막힌 오후 5시 올림픽대로 위에서 진가가 드러났다. 시속 40km로 맞추자 브레이크가 걸리면서 속도가 알아서 줄어들었고, 정체가 해소돼 앞 차가 속도를 내자 액셀이 살짝 내려가면서 저절로 시속 40km까지 달렸다. 운전대에서 손을 떼고 있으니 디지털 계기판에 ‘핸들에 손을 올려달라’고 계속 떴다. 브레이크 아래에 발을 내려놓고 전방을 주시하며 핸들만 잡고 있으면 차가 알아서 목적지까지 가줄 것만 같았다.
더불어 여타의 운전 보조 장치도 눈길을 끌었다. 전방 차량, 보행자, 교차로 대향차 등 충돌 위험 상황이 감지될 경우 운전자에게 경고하고 브레이크 작동을 돕는 ‘전방 충돌방지 보조’, 정차 후 탑승자가 차에서 내리기 위해 문을 열 때 차량이 감지되면 경고를 해주는 ‘안전 하차 보조’, 주행 중 운전자의 주의 운전 상태를 표시해 ‘나쁨’으로 떨어지면 경고를 해주는 ‘운전자 주의 경고’ 등도 아이들을 데리고 운전해야 하는 주부들에게 높은 점수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6 WEAKNESS
디젤 차량 오래되면 소음 및 진동 우려
일자형 램프 디자인이 깔끔한 인상을 주는 후면부.
총평
옷 잘 입고, 일 잘하는 만능 과장 같은 차사진 지호영 기자 사진제공 현대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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