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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투성이’ 이혜영의 그림 한 점

글 · 김유림 기자 | 사진 · 가나아트센터 apr 제공

입력 2015.11.17 10:43:00

우연히 들여다본 거울 속에서 고통과 상처로 얼룩진 과거의 ‘나’와 마주한 경험이 있는가.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지난날의 ‘상처’가 훗날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안겨줄 때가 있다.
패셔니스타 이혜영이 붓과 팔레트를 들고 캔버스 앞에 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상처투성이’ 이혜영의 그림 한 점
소아마비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평생 신체적 고통에 시달려야 했던 멕시코 유명 여성 화가 프리다 칼로. 이혼과 유산 등 심리적 고통 또한 컸기에 그의 작품은 거울을 통해 자신의 내면 상태를 관찰해 그린 자화상이 많다. 지난 10월 3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첫 개인전 ‘상처와 고통의 시간들이 나에게 준 선물’을 연 탤런트 이혜영(44)은 이런 프리다 칼로를 오마주한 작품들을 여러 점 선보였다. 자신의 얼굴에 프리다 칼로의 검은색 짙은 눈썹을 조합한 ‘Haeyoung Lee with Frida Kahlo’s Eyebrows’를 비롯해 자궁의 형태를 말괄량이 삐삐 캐릭터로 변형해 아기를 갖기 위해 힘겹게 노력했던 시간들을 표현한 ‘Too Late’ 등의 작품들은 그가 내면의 상처를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프리다 칼로와 많이 닮았다. 특히 전시회 제목이기도 한 ‘상처와 고통의 시간들이 나에게 준 선물’이란 작품은 그림을 그리며 스스로 상처를 치유했음을 고백하는 이혜영의 자화상으로, 그림 속 이혜영은 두 다리는 가시넝쿨에 옥죄어져 있고 왼쪽 가슴은 칼에 베여 피를 흘리고 있지만 양손에 붓과 팔레트를 든 채 환하게 미소 짓고 있다.

10월 2일, 전시회를 하루 앞두고 열린 오프닝 파티에는 김희애, 황신혜, 정려원, 로이킴, 심은진 등 동료 연예인들과 미술계 인사들이 모여 이혜영의 작가 데뷔를 축하했다. 이날 그는 “이번 전시회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나의 안부이자 소통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행복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전시된 그림은 총 31점으로,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2011년부터 약 4년에 걸쳐 완성된 것들이다. 그동안 이혜영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그림 그리는 모습을 종종 공개해왔는데, 미술 전공자가 아니기에 색채 선택이나 붓 터치 등이 오히려 더 자유분방하고 대담하다는 평을 듣는다. 오프닝 행사에 참여한 한 중견 작가도 그의 작품에 대해 “이혜영이 뿜어내는 삶에 대한 고뇌와 화려하지만 조화로운 색채감을 느낄 수 있다. 프로 작가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퀄리티”라고 호평했다. 연예계 대표 ‘트렌드세터’답게 늘 새롭고 유니크한 라이프스타일을 선보여온 그는 그림에도 위트와 재기 발랄함을 쏟아냈다. 흑인 인어공주가 하이힐을 부여잡고 서럽게 울고 있는 ‘하이힐…’이란 제목의 그림은 여자의 특권이자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하이힐을 신을 수 없는, 아름다움의 상징이면서도 그 아름다움을 즐길 수 없는 인어공주의 모순을 설명한다. ‘씻어넣자’라는 제목의 그림은 눈썹도 가발도 슬리퍼도 한쪽씩 잃어버린 한 여인이 자신의 뇌를 씻고 있는데, 깜빡깜빡 잊어버리는 자신의 모습을 다소 공포스러우면서도 엉뚱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반쯤 열린 욕실 문 뒤로 남편과 딸 서현 양이 놀란 표정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 2011년 결혼한 남편 부재훈 씨와 그의 딸 서현 양은 이 그림 외에도 여러 작품에 등장한다. ‘또 불러내셨군’이란 제목의 그림은 이혜영이 램프의 요정으로 변신해 남편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내용으로 그가 남편에게 주는 선물과도 같은 작품이다. 또 그림 ‘Bu · Me on Red Carpet’은 한 주얼리 브랜드 초청으로 칸 영화제의 레드 카펫에 섰던 순간을 기억에 담고자 그린 작품이다.

그림의 소재는 가족 · 반려견 · 상처…

최근 이혜영의 인스타그램에는 전시회 오프닝 파티를 비롯해 전시회 관련 사진이 여러 장 올라와 있다. 전시 기간 동안 수시로 전시장을 찾은 이혜영은, 10월 8일에는 전시장에서 엄마와 함께 온 꼬마에게 ‘그림 답장’을 받았다며 아이가 그린 그림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사진 밑에는 ‘전시장에서 아줌마와 아줌마 그림을 본 후 너의 고사리 손으로 그려준 ‘그림 답장’을 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단다! 세상에 이런 깜짝 선물이 어디 있으며 이렇게 순수한 그림 답장이 어디 있을까!’라고 어린 팬의 선물에 화답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비롯해,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웠던 반려견 ‘도로시’, 그리고 현재 키우고 있는 반려견 ‘부부리’와 ‘쪼꼬’를 다수의 그림에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아버지의 초상화는 수년 전 아버지가 위 절제 수술을 받았을 때를 회상하며 그린 작품으로, 그림 속 아버지는 중절모에 보타이 차림으로 절제된 위를 부여잡고 있다. 이는 현실을 견뎌내고자 애썼던 아버지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한편 ‘그래 알았어’와 ‘엄마의 꿈’이란 제목의 작품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오래도록 잊지 못하는 어머니를 위로하는 그림이다. ‘그래 알았어’에서는 새가 된 아버지가 어머니가 쥐고 있는 끈을 잡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이혜영은 그런 아버지에게 ‘이제 그만 끈을 놓으라’고 이야기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기노 큐레이터는 이 전시에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 중 하나로 이혜영이 작가로서 성장해가는 모습을 꼽았다. 그는 “2011년 그린 그림과 올해 그린 그림을 비교해보면 그사이 얼마나 많은 발전을 했는지 알 수 있다. 내면의 치유와 더불어 작가의 예술성도 농익어갔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상처에 연고를 바르듯 캔버스 위에 유화를 바르며 지난날의 아픔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혜영. 아직도 그를 ‘옷만 잘 입는 연예인’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그림을 꼭 한번 보기를 권한다.

‘상처투성이’ 이혜영의 그림 한 점
디자인 · 최진이 기자

여성동아 2015년 11월 6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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